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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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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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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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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심해탐사(13)

DUMMY

나는 여섯 시간을 잤다. 유벤타를 먹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없는 긴 수면시간이었다. 그렇게 잤어도 깨어났을 때 머리는 맑지 않았다. 자는 내내 칠흑 같았던 심해를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꿈속에서 우르는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검은 바다, 그 속을 쉬지 않았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찝찝한 기분 속에 일어나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마침 에머에게 연락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바다 속에서 채집한 생물이 궁금했던 차였다. 나는 에머가 알려준 대로 연구실을 찾아갔다. 에머의 연구실이 아니라 다른 방이었다. 그 연구실에 가서야 그곳에 밀폐실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들어간 연구실은 사중구조였다. 차폐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차폐문이 나왔다. 그 문을 들어가면 분석기기들과 밀폐실이 있고 그 안에 또 하나의 밀폐실이 있었다. 그 밀폐실에는 로봇 팔과 현미경등을 제어기가 있어 안에 있는 작은 밀폐실 내의 생물이나 샘플을 원격으로 조사할 수 있었다.


에머는 세 번째 밀폐실에 있었다. 피곤 때문에 하얀 얼굴이 파리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여전사 브륀힐트처럼 정열에 차있었다.


“이게 뭔지 보세요.”


에마는 나를 보자 대형 모니터를 가리켰다. 하얀 무형질들, 세포라고 한다면 세포라고 할 수도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세포벽 같은 벽으로 나누어져있었지만 형태는 일정하지 않았다. 핵이나 세포내 기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무형질로서 두 개나 네 개로 나누어졌다가 다시 합쳐져 하나가 되는 등, 단 1초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처럼 번잡스럽고 활기찼다.


“우리가 발견했던 새로운 생물의 세포인가요?”


에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상한 점이 없나요?”


나는 다시 모니터의 영상에 집중했다.


“글쎄요···, 단지 너무 힘이 넘치군요.”


내말을 듣자 에미가 심각한 얼굴로 웃었다.


“바로 그거에요. 이건 생물체에서 떼어낸 조직이지 않아요? 그렇다면 죽어야 해요.”


나는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머리를 지나갔다.


“그럼 이것들은 죽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4시간 전에 샘플을 만들었으니까 적어도 4시간째 죽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유로파의 바다밑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늙거나 죽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둠과 기압에 필사적으로 저항한 결과 일 수도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우르도 죽는다. 유로파의 물속에서 나와 2시간 정도가 지나면 우르의 세포는 낮은 기압과 극저의 기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늘어져 버린다. 물론 그것으로 우르가 완전히 죽었다는 말은 아니다. 우르는 적당한 수분과 수압이 있으면 다시 살아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의 한계 내에서이고, ‘적당한’이라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하지만 이 생물은 수분과 압력이 달라졌는데도 4시간 동안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 의미를 생각하자 쿵 하는 울림이 가슴을 때렸다.


“어쩌면 죽지 않을 수 있겠군요.”


나는 흥분을 누르며 조용히 말했다. 에마가 쉬지도 않고 정열적으로 모니터를 보던 이유를 알았다.


“맞아요. 어쩌면, 이 생물체는 우르보다 더 생명력이 강할지도 몰라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그럼 유벤타보다도 더 강한 물질···”


에마도 흥분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미칠 것 같은 환희에 몸이 떨렸다. 늙지 않는 물질을 가진 우르와 죽지 않는 생물체. 그 둘 다를 내가 잡은 것이다. 그러나 그 환희는 잠시였다. 과거의 아픔과 내가 처한 현실이 기쁨을 짓누르고 제정신을 차리게 했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 말했습니까?”


“아직 아무도 몰라요. 지금 대학에 보고하려고요.”


나는 모니터로 다시 눈을 돌렸다. 무형질의 세포는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로파의 생물체에 대해 신디케이트가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그런 말을 듣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것과 무슨 상관이···.”


“큰 상관이 있어요. 이 생명체에 불사의 물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신디케이트는 이 생명체를 가져가버릴 겁니다. 그럼 신물질에 관한 연구는 끝이에요. 슈나이더 박사는 그저 최초의 채집자로 그치고 말지요.”


에머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얘기를 계속했다.


“신디케이트가 언제 저 생명체를 넘겨 달라고 할지 모르니까 별도의 샘플을 떼어 놓아요. 그리고 물질을 분리하기 전에 성급한 발표는 하지 말기로 하죠.”


“그건 당연하죠.”


에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우리가 있는 연구실로 들어왔다. 두꺼운 창을 두 개나 너머 보이는 사람은 미찌코였다. 미찌코가 밀폐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에머가 스위치를 눌러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스를 다음 슬라이스로 돌렸다. 그 슬라이스에는 우르의 세포가 있었다. 에머가 말미잘 생명체와의 비교를 위해 우르 세포로 슬라이스를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미찌코는 우리가 있는 밀폐실까지 왔다. 미찌코는 샘플과 현미경이 있는 안쪽 밀폐실을 들여다보고는 거만한 얼굴로 에머에게 말했다.


“새로운 생명체를 보여줘요.”


에머가 말없이 화면을 가리켰다. 미찌코가 화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우르의 세포 같은데?”


미찌코가 에머를 노려봤다. 에머가 당당하게 말했다.


“이 샘플의 슬라이드에는 차이점이 없어요. 아마 우르에게서 떨어져 나와 환경에 맞게 적응하며 사는 생물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미찌코가 에머를 향해 차갑게 물었다.


“새로운 생물체의 전체 샘플은 어디 있어요?”


“안쪽 밀폐실의 냉동고에 있어요. 오염을 막기위해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야 해요.”


미찌코는 들어갈 기세였다. 하지만 밀폐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 듯 했다. 미찌코가 우리 둘을 보며 진지하고 무겁게 말했다.


“슈나이더 박사는 이 생물체에서 새로운 효소나 단백질을 찾을 생각이죠?”


“먼저 기본적인 것부터 조사를 하고, 필요하다면 물질 분리를 해 볼 생각입니다.”


미찌코가 한 발자국 우리에게 다가와 낮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뭘 연구하던 슈나이더 박사의 자유죠. 하지만 분명히 해야 될 게 하나 있어요.”


미찌코가 나를 한 번 째려보듯 하고는 말을 이었다.


“뭘 발견하던 나에게 먼저 얘기해줘야 해요. 특히 김철수 이사에게는 그와 관련된 어떤 정보도, 어떤 물질도 줘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에머가 반박했다.


“하지만 김 이사는 유로파에서 실권자지 않아요?”


“그건 유로파에서 연구팀을 운영하는 일에 국한된 권한입니다. 새로운 화합물, 단백질, 효소등 물질적인 부분은 전부 내게 보고해야 돼요.”


에머가 작게 대답을 했다. 에머의 자신없는 소리가 미덥지 않는지 미찌코는 못을 박았다.


“난 신디케이트의 연구위원이에요. 신물질에 관해 조사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거라고요. 만약 뒤에 문제가 생기면 슈나이더 박사가 소속된 대학부터 곤란할 거예요.”


협박에 가까운 미찌코의 명령에 에머가 큰 소리도 대답했다.


“알겠어요.”


거구의 에머를 꼼짝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미찌코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확실히 미찌코는 과거의 야리야리했던 여자가 아니었다. 미찌코는 나를 한번 째려보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미찌코의 눈빛에는 '네가 더 문제'라는 무언의 경고가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미찌코가 나가자 에머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신디케이트에는 암투가 대단하군요.”


나는 김철수를 조심하라는 문건한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 문건한의 눈은 학자들끼리의 암투 이상의 것이 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나는 미찌코가 나간 문을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쩌면 암투 이상의 것이 숨어있는지도 몰라요.”


에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변했다.


“그런데 신디케이트의 연구위원을 속였으니 어떡하죠?”


“괜찮아요. 그때의 슬라이스가 오염되어 있었다고 둘러대면 돼요.”


나는 미소로 에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밀폐실을 나가려는 순간 이번에는 김철수가 들어왔다.


“새로 발견했다는 생물체를 구경하러 왔어요.”


김철수가 활기차기 웃었다. 이번에도 에머는 우르 세포의 슬라이드를 가리켰다. 김철수는 미찌코보다 더 오랜 시간 화면을 들여다봤다. 에머는 미찌코에게 말했던 것과 같은 설명을 했다.


“믿을 수가 없군요. 겨우 우르라니···”


김철수가 실망스러운 얼굴로 에머를 봤다.


“이제 무슨 연구를 할 건 가요?”


“다른 부분의 세포도 슬라이스로 만들고, 그리고 화학적인 부분을 조사해보려고요.”


김철수가 엄숙하게 말했다.


“그 연구에 나도 참여해야겠습니다.”


“예?”


에머가 놀라더니 곧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건 저와 저희 대학의 프로젝터입니다. 이 프로젝터를 위해 난 목숨을 걸고 유로파의 바다 속까지 갔다 왔다고요.”


김철수도 화 난 목소리로 날카롭게 말했다.


“하지만 여기는 유로파고 난 신디케이트의 임원이에요. 난 연구에 참가할 자격이 있어요.”


“그렇다면 먼저 지구의 신디케이트 본부와 제 대학의 명령을 가져오세요. 그럼 저와 공동 연구자가 될 수 있어요.”


김철수의 얼굴에는 분노가 뚜렷이 떠올랐다.


“여기서 내 도움을 받고 싶지 않나보죠?”


김철수의 압박에 에머가 멈칫했다. 방금 있었던 미찌코의 엄포를 생각하며 내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새로운 생명체를 연구하는 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무리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뒤에 가서 시끄러울 수 있습니다.”


김철수가 못 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힐끔 보았다.


“좋아요. 이 문제는 다시 얘기합시다.”


김철수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연구실을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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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휴가 등의 사정으로 잠시 연재를 쉽니다. +1 22.07.30 880 0 -
170 에필로그 +12 23.05.21 225 27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0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2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25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5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4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46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0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0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1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69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1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54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3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6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47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4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3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57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47 14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58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79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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