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90,053
추천수 :
4,434
글자수 :
848,903

작성
22.07.07 15:00
조회
631
추천
32
글자
10쪽

5장. 심해탐사(14)

DUMMY

7.

새로운 생명체가 우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소문은 곧 유벤타 기지 전체에 퍼졌다. 덕분에 누구도 에머의 연구실을 찾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단백질을 분리하고, 효소를 찾고, 분자식을 알아보는 건 내 분야가 아니었다. 에머의 연구실에 가도 방해만 될 뿐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유로파 말미잘의 몸 구조를 살피고, 기관이 있는지, 그 기관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등을 조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종이처럼 납작해버린 그놈의 말미잘을 어떻게 다루야 할지 작전이 세워지지 않았다.


나는 심해에 다녀온 이후 꼬박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그 어둠속에서 죽을 뻔 했던 기억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답답함만 강해졌다. 자꾸만 내 방이 도망갈 곳도 없었던 잠수정 같았다. 창도 없고 밀폐된 곳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하루가 지나고 나는 에머의 연구실로 갔다. 에머는 작은 샘플 몇 개로 화학적 분석을 하고 있었다.


“그 세포들은 아직도 살아있나요?”


“예. 어제와 다름없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에너지원이 뭘까요?”


“유로파의 바다물에 포함된 유기물이겠죠. 뷰렛으로 바닷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는데, 운동량은 더 증가했어요.”


나는 방호복을 입고 마지막 밀폐실로 들어가 삼중의 금속통에서 말미잘을 꺼내 관찰용 금속 쟁반에 놓고 찬찬히 살펴가며 사진을 찍었다. 에머가 샘플을 채취하느라 몇 군데에서 살이 베어져 있었지만 샘플 채취 이전에 찍어 놓은 사진도 있어 온전한 모양을 유추하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생물체를 말미잘 같다고 했지만, 실제 촉수라고 할 만 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몸은 물먹은 종이처럼 늘어져 너덜거렸다. 세포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지 못했다면 죽었다며 폐기했을 것이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조심스레 뒤어저가며 현미경과 확대경을 이용해 유로파의 말미잘을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세포가 살아있다면, 이 자체도 살아있는 거겠죠?”


밀폐실 밖에서 샘플을 분석하고 있던 에머가 대답했다.


“그렇죠. 그건 살아있어요. 다만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그럼 이것에게 인간의 단백질을 넣어보면 어떨까요?”


“인간의 단백질요?”


“예, 실험실에 있는 것 없나요? 아님 다이어트용이라도···”


“우르에 그런 실험을 안 해봤나요?”


“들은 기억이 없어요. 우르를 잡으면 으깨기 바빴겠죠.”


에머가 고개를 꺄우뚱하더니 연구실을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에머의 손에는 다이어트용 단백질 캡슐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병이 들려있었다.


“이전의 연구원이 복용하다 남겨놓고 간 거예요.”


나는 에머가 건네주는 캡슐을 열고 그 속의 가루를 말미잘이 놓여있는 금속 용기에 뿌렸다. 그리고 단백질 가루가 잘 퍼지기 위해 유로파의 바닷물을 조금 부었다. 어느새 에머도 밀페실로 들어와 말미잘을 보고 있었다. 유로파의 말미잘은 1분 가까이 대로였다. 그러나 얇아졌던 몸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커지고 있어요.”


에머가 놀라 외쳤다. 나는 유로파의 바닷물을 조금 더 붓고, 단백질 캡슐 하나를 열어 금속 용기 안에 뿌렸다. 단백질의 양이 임계치를 넘은 것 같았다. 말미잘의 몸은 급속도로 커져 곧 금속 쟁반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던 촉수는 10cm 이상으로 길어졌다. 겁이 난 에머가 소리쳤다.


“더 커지기 전에 통에 넣어요.”


에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말미잘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려 금속통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에머가 황급히 통의 두껑을 덮고 잠금쇠를 채웠다. 통의 크기는 가로세로 50cm였다. 바다 속에서 30cm였던 말미잘이 그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가 단백질을 흡수하자마자 순식간에 통을 채울 만큼 커진 것이다.


다행이 말미잘은 몸이 불어나도 삼중구조의 금속 밀폐통을 부술 정도의 힘은 없는 모양이었다. 밀폐실을 뛰어나온 우리는 긴장이 풀어지며 마치 백미터 달리기를 한 듯 숨이 몰아쉬었다. 성급한 단백질 투여를 자책하며 내가 에머에게 물었다.


“이제 어떡하죠?”


에머는 하얀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단백질 효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려야죠.”


“보고를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군요.”


이런 실험결과를 숨긴다면 미래의 연구자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우리가 밀폐실의 의자에 앉아 긴장을 풀고 있을 때 김철수가 통신기로 나를 찾았다.


김철수가 오라고 한 곳은 통제실의 회의실이 아니라 VIP전용 라운지였다. 나는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나는 김철수가 알려주는 대로 통제실 옆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짧은 복도를 걸어 복도 끝의 자동문을 들어서자 양탄자가 깔린 근사한 응접실이 나타났다.


방은 넓지 않았지만 대리석 회의용 탁자에 가죽 소파까지 놓여 있었다. 벽에는 유로파와 목성을 그린 크고 멋진 유화 작품이 걸려있었다. 김철수는 미찌코, 샘슨과 함께 회의용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서 와요. 긴한 얘기가 있어 불렀습니다.”


김철수는 나를 자신의 맞은 편 자리에 앉혔다. 김철수의 옆에 앉은 미찌코와는 거의 정면으로 보게 되었다. 미찌코는 새침하고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미찌코는 곁눈으로도 나를 보지 않고 그림만을 응시했다. 김철수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처럼 밝은 소리로 말했다.


“좋은 소식이에요. 지구의 신디케이트 본부가 김 박사에게 제안을 하나 하기로 했습니다.”


“제안요?”


나는 놀라며 되물었다.


“여기서의 김 박사의 활약상은 신디케이트도 알고 있습니다. 좀비 대원과 싸우고, 분출공 아래의 바다를 탐험해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것들을요.”


그것이 신디케이트가 흥분할 일인가? 나는 뜨악했다. 김철수는 웃는 얼굴로 계속 말했다.


“그래서, 김 박사를 특채키로 했습니다.”


“예? 특채요?”


“예. 우리 신디케이트의 정직원이 되는 거죠. 임원직을 바로 주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관례라는 것에 막혀 먼저 부장 직급을 주는 것으로 결정했답니다. 하지만 연봉은 임원 대우를 하는 걸로 하고요.”


그건 정말 뜻밖의 소식이었다. 직급은 부장에 연봉은 임원급이라! 궁핍한 떠돌이 강사의 운명에서 드디어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왜 갑자기···”


나는 얼떨떨해져 그런 말밖에 하지 못했다. 김철수가 하하 하며 웃고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야 김 박사가 이 유로파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죠. 최초의 우르 사냥꾼이라는 타이틀을 운이 좋아 단 게 아니었어요. 특히 잠수정으로 분출공에 들어가 2호의 잔해를 발견하고 생명체를 채집한 성과가 신디케이트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김철수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던 샘슨이 가볍게 덧붙였다.


“거기에 좀비 대원을 테이저 건으로 쓰러뜨린 것도요.”


신디케이트는 오직 우르뿐이었다. 내가 새로운 생명체가 아니라 더한 뭔가를 발견했어도 그것이 우르를 잡아 유벤타를 생산하는 것과 관련있지 않는 이상 이런 제안을 할리 없었다. 나는 미찌코의 얼굴을 살폈다. 미찌코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오직 그림만을 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김철수에게 말했다.


“우르가 광파발생기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를 찾지도 못했는데, 새로운 생물체의 발견과 잠수정 2호의 잔해를 발견한 것만으로 부장으로 특채하겠다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설마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겠죠?”


김철수가 본심을 들킨 것처럼 씩 웃고는 가볍게 말했다.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자는 의미죠.”


“운명을 같이 한다뇨?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군요.”


김철수가 내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샘슨도 같이 웃었지만, 미찌코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김철수가 웃음을 그치지 않고 말했다.


“김 박사도 알다시피 여기는 지금 난리죠. 그래서 신디케이트는 김 박사의 용기와 순발력을 필요로 해요. 그리고 새로운 생명체와 관련된 권리를 신디케이트에 이양하는 것도요.”


“아하 그렇군요. 그 권리!”


나는 마음속으로 이마를 쳤다. 하지만 곧 반문이 일었다.


“그건 내가 마음대로 승낙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새 생물을 발견한 공적의 절반은 슈나이더 박사에게도 있고요. 그리고 어차피 신디케이트는 유로파의 생물체에 관해 독점권이 있지 않습니까?”


미찌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입가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런 건 그냥 핑계에요. 김 박사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건 이미 너무 많은 걸 봤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볼 것이기 때문이에요. 신디케이트의 비밀을 확실히 지키기 위한 수단이죠.”


김철수가 미찌코를 한번 노려보고는 웃음이 사라진 얼굴로 말했다.


“가와무라 박사의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신디케이트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김 박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내게 떠오른 의혹과 미찌코의 일갈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이런 좋은 조건이 너무 과분해서···”


김철수가 달래듯 말했다.


“이건 신디케이트의 가족이 될 좋은 기회입니다. 김 박사에게는 어마어마한 기회가 생기는 거죠.”


그건 맞는 말이었다. 얼굴과 피부는 20대지만 마음에는 능구렁이가 백 마리는 들어있을 것 같은 교양센터의 노인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될 기회였다. 대학교의 학생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내가 대학의 얼굴마담일 뿐으로 자신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력도 주지 못한다는 걸 잘도 알아챘다. 그들에게 나는 학점만 잘 주면 되는 주변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숨은 이유가 뭐든 이 좋은 기회를 차버릴 이유가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유로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6장 13회 분은 토,일요일 중에 올리겠습니다. 23.05.19 26 0 -
공지 다음 회차(16장 2회분)는 하루 늦은 화요일 올리겠습니다. 23.04.10 29 0 -
공지 죄송합니다. 이번 주 월요일 한 번 쉬겠습니다. 23.04.02 60 0 -
공지 죄송합니다. 1월 2일은 쉬고 다음부터 월, 금 주 2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23.01.02 65 0 -
공지 이번 주 연재는 1회만 올리겠습니다. 22.12.26 63 0 -
공지 추석연휴 여러 사정으로 9월9일, 9월12일 연재를 쉬겠습니다. 22.09.08 123 0 -
공지 8월부터 약 한달 정도 일주일 3회 연재합니다. 22.08.08 144 0 -
공지 휴가 등의 사정으로 잠시 연재를 쉽니다. +1 22.07.30 880 0 -
170 에필로그 +12 23.05.21 225 27 9쪽
169 16장. 죽음과 변용 (13) 23.05.21 140 14 16쪽
168 16장. 죽음과 변용 (12) 23.05.15 232 11 12쪽
167 16장. 죽음과 변용 (11) +2 23.05.12 125 16 12쪽
166 16장. 죽음과 변용 (10) 23.05.08 135 14 11쪽
165 16장. 죽음과 변용 (9) 23.05.05 144 11 11쪽
164 16장. 죽음과 변용 (8) +1 23.05.01 146 15 13쪽
163 16장. 죽음과 변용 (7) +2 23.04.28 150 15 13쪽
162 16장. 죽음과 변용 (6) 23.04.24 140 16 13쪽
161 16장. 죽음과 변용 (5) 23.04.21 151 11 13쪽
160 16장. 죽음과 변용 (4) 23.04.17 169 14 11쪽
159 16장. 죽음과 변용 (3) 23.04.14 161 13 13쪽
158 16장. 죽음과 변용 (2) 23.04.11 154 13 12쪽
157 16장. 죽음과 변용 (1) +1 23.04.07 153 14 15쪽
156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6) +1 23.03.31 186 15 13쪽
155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5) 23.03.27 147 15 10쪽
154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4) 23.03.24 144 19 13쪽
153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3) 23.03.20 153 16 12쪽
152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2) +1 23.03.17 157 15 14쪽
151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1) 23.03.13 147 14 11쪽
150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10) +1 23.03.10 158 14 14쪽
149 15장. 유벤타 공장의 처절한 붕괴.(9) 23.03.06 179 1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