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어린족장
이번 전투에서는 마나를 많이 소모했다. 총 마나량 7,600에서 이번 전투에서만 6,000 가까이 사용되었다. 전투 초기 미노타우노스들의 돌도끼를 쉴드(Shield)로 버티면서 꽤 많은 마나를 소모했다. 현재 마나량은 900정도 남았다. 이 정도로는 오늘은 더 이상 사냥이 힘들 것 같다.
나는 사냥은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토굴로 들어가 야영을 하기로 했다. 너무 일찍 사냥을 마무리 한 덕분에 낮 시간 동안 할 일이 없어,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뭐 건질 것이 있는지 확인해 봤다. 대부분의 토굴에서는 몬스터나 동물 뼈다귀가 전부였다.
“이놈들은 새끼도 안 낳고 사나 봐.
다른 몬스터 서식지에는 새끼들도 있고 그러던데 여기는 아무 것도 없네”
“그러네요. 하지만 주인님 새끼들이 없는 게 더 좋지 않으세요? 처치 곤란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있으면 고민 좀 해야 되니까”
다시 발걸음을 옮겨 제일 커 보이는 토굴에 들어갔는데 토굴 안쪽이 꽤 넓었다. 아마도 족장이 사는 토굴이 아닌가 싶다. 토굴의 중앙에 죽은 큰뿔사슴 12마리가 있었는데 오전에 몰이 사냥으로 잡은 것들이었다.
“우리 주인님 사슴고기 좋아하시는데 횡재 했네요..헤헤”
“그러게 말이야. 이것들 손질해서 잘 챙겨둬 두리안”
“네..주인님”
토굴을 둘러보던 나는 토굴 안쪽으로 생소한 것을 발견했다. 통나무를 쌓아서 막아 놓은 흔적이었다. 라쿤을 휘둘러 통나무들을 모두 잘라버렸다. 단 한번의 휘두름에 모든 통나무들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라쿤의 순수 공격력이 1,020이고 나의 일반 공격력이 2,400이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3,400에 이르는 엄청난 공격력이 발산된다. 결코 통나무 따위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대형 몬스터라 하더라도 사체를 보존하지 않고 목숨만 취하겠다 한다면 라쿤의 공격 3-4번이면 온몸을 찢어발길 수 있다.
“뭐지? 토굴이 또 있는데···”
“뭔가 급히 통나무로 막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주인님”
“그치? 나 때문인가?”
“그런 거 같아요. 오늘 주인님이 안 오셨으면 이들에게 위협은 없었을 테니까요”
“일단 뭐가 있는지 들어가 보자. 두리안”
“네 주인님”
토굴 안쪽은 무척 어두웠다.
나는 1서클 라이트(Light, 30) 마법 2개를 시전 하여 앞과 뒤를 밝혔다. 20m 정도 들어오자 공동이 나왔다. 그곳에는 여러 마리 미노타우노스 새끼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갑자기 나타난 나를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작은 것 들은 1m 내외, 좀 큰 것 들은 2m 정도 되는 놈들도 섞여 있었다. 모두 14마리였다.
“어쩐지 새끼들이 안 보인다 했다. 서식지에 새끼가 없는 게 말이 안되지···암”
“으그···우리 주인님 고민거리 하나 느셨네요. 이를 어쩌나..쯧쯧”
“이게 허를 찰 일이 아니야. 두리안. 너도 함께 고생 좀 해야 될 거다. 당장 저 놈들 먹을 거 챙겨야 할 일은 너의 몫이란 걸 망각하지 마라. 나만 고생할 거 같냐?”
“헐···듣고 보니 그러네요···에궁···”
그래도 머리가 좀 큰 놈들은 나에게 덤벼들려고 했지만, 내가 라쿤을 뽑아 벽을 한번 치자 토벽이 그대로 무너지는 것을 보곤 눈을 내리 깔았다.
일단 새끼들을 족장의 토굴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안쪽 토굴을 라쿤으로 내리쳐 허물어 버렸다. 새끼들이 다시 그리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다.
넓은 족장의 토굴 이외에 14마리나 되는 새끼 미노타우노스를 한꺼번에 모아둘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야영장 위치를 족장의 토굴로 옮겨왔다.
“귀찮은데 다 죽여버릴까?
“그럴까요? 근데 주인님은 그럴 마음 없으시잖아요?”
“네가 어떻게 알아?. 남의 마음을···”
“주인님 마음에 저것들을 죽일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저것들이 또 들어가면 무너질까 봐 그 작은 토굴을 허물어버리지도 않으셨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처럼 추울까 봐 모닥불도 피우지 않으셨을 거구요”
“뭐 모닥불이야 내가 추우니까 피운 거고···”
나는 지금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을 죽일 마음이 추호도 없다. 다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모닥불은 새끼들 중 한 놈이 기침을 하기에, 토굴 안에 나뒹굴고 있던 통나무를 모아 마법으로 불을 붙여준 것 뿐이다.
두리안이 식사 준비를 했다. 여러 개의 돌 판을 깔고 사슴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구수한 냄새를 맡은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놈들도 처음에는 멀뚱멀뚱 두리안을 쳐다보다 잘 익힌 사슴고기 한 점을 맛보고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두리안은 한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능숙하게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을 다뤘다. 차례를 지키지 않으면 주지 않았다. 새끼들도 눈치가 있어서 통제에 잘 따랐다. 그렇게 사슴고기 50kg이 한끼 식사로 사라져버렸다.
“우리 20일치 식량이 이놈들에게는 한끼 식사밖에 안되는 구나”
내가 볼멘 소리를 하자 두리안이 허리를 차며 한 소리 했다.
“이게 다 주인님이 정이 많아서 생긴 일이에요”
“뭐, 아무리 돈이 좋아도 새끼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잖아”
“이제 어쩌실 건가요?”
“혹시 벌칸에게 데려다 주고 키우라면···.안 되겠지?”
“아직 새끼이긴 해도 이놈들도 천성이 사나운 몬스터예요. 나중에 힘의 격차를 알게 되면 마을의 고블린들을 다 죽일 거예요. 지금 이놈들이 순종적인 것은 주인님의 압도적인 힘 때문이에요”
“흠···..그럼 다른 부족에 데려가서 키우라고 던져주고 올까?”
“안될 말이에요. 하루하루 사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미지의 수림이에요. 자기의 자식도 아닌 타 부족 새끼들을 먹여서 키울 만큼 이성이 있는 존재들도 아니고요. 잡아 먹을 가능성이 커요”
“허..참,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두고 떠나야 하는 건가!”
“달리 방법이 없어요. 데리고 같이 가지 않은 이상 더 이상의 미련은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주인님”
“알았어. 그렇게 하자 두리안”
그날 밤에도,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도 나와 두리안은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에게 맛있는 고기를 잔뜩 구워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성체 미노타우노스 몇 마리는 살려둘걸 그랬어’
약간 후회가 됐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나는 아공간에서 이제는 잘 먹지 않는 회색 곰고기와 회색 늑대고기 그리고 거대 멧돼지 고기와 이들의 부모들이 마지막으로 사냥한 큰뿔사슴 고기를 모두 꺼내어 부패를 막는 마법을 걸어서 토굴에 놓아 두었다. 아마도 몇 달은 식량 걱정 없이 살아 갈 것이다. 그 후에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밀림의 법칙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씁쓸했지만 미노타우노스 마을을 등지고 길을 나섰다. 새끼들은 내가 놓아둔 식량에 눈이 팔려 식량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떠나고 나면 서로 먹겠다고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저들 중에서도 우두머리가 나와서 질서를 잡는 것이 저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49마리의 성체 미노타우노스의 사냥으로 레벨은 147레벨이 되었다. 오우거보다 약하지만 그래도 대형 몬스터이고 경험치만 따져도 특전 적용하여 2,500,000 경험치를 얻었는데 고작 6레벨 오른 것이다.
좀 아쉬운 감이 있지만 그래도 한번 사냥의 성과 치고는 괜찮다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대초원의 상공을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속 이동 중이다. 대초원이 워낙 넓다 보니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상공에서 대형 몬스터가 보이는 족족 사냥하고 있다. 큰뿔사슴도 식량 비축 용으로 다시 몇 마리 잡았다.
대초원의 대형 몬스터 중에는 집단이나 무리를 이루고 사는 놈들도 있고, 혼자 다니는 떠돌이 대형 몬스터들도 많다. 대초원이 넓다 보니 대형종끼리 마주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굳이 무리를 이루지 않아도 절대 포식자로서의 위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초원의 대형 몬스터들은 평생 포식자로 살아왔지만 지금 대초원을 쑤시고 다니는 인간 한 명에 의해 포식자가 아닌 피식자로 전락해버렸다는 사실을 아직 모를 것이다.
나는 40m 상공에서 오우거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지상으로 급 하강하고 있는 중이다.정확하게 오우거의 뒤통수를 향해 사선으로 떨어지며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퍽~우드드득
두개골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오우거는 30여 미터를 데굴데굴 굴러서 대자로 뻗어버렸다. 마치 아이들의 장난질로 패대기 처진 개구리가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뻗어버린 듯, 최강의 포식자 오우거가 인간의 주먹질 한 방에 팔다리를 쫘-악 펴고 즉사해버린 것이다.
[경험치 30,20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힘 1 / 체력 1 상승했습니다]
시스템 알림 메시지는 어김없이 정산을 해 준다.
오우거의 사체가 아공간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공중으로 올라갔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또 다른 사냥감을 찾는 모습이 마치 한국산 뚱뚱한 송골매가 사냥감을 찾는 모습과 닮아 있다.
“에이~씨,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뭔 초원이 이렇게 넓냐”
“넓으니까 대초원이죠. 작으면 대초원 아니죠.”
“하긴, 그렇기는 하지”
“근대 우리 북쪽으로 가고 있는 거 맞냐.”
“네..주인님. 확실하게 북쪽으로 가고 있는 거 맞아요”
“오케이. 어이쿠 저기 또 한 마리 있구나. 이번엔 트롤이네. 자 간다 태권브이 로켓트 주먹~~~”
“주인님 트롤은 눈깔 안 터지게 잘 좀 부탁 드립니다. 트롤 눈깔이 특급 상품입니다.”
“그래”
나는 트롤의 눈알을 보호하기 위해 두개골이 아닌 뒷목을 목표로 삼고 급 하강 했다.
-퍽···우드득···.
역시나 트롤도 저 멀리 날아가 처박히며 기절했다. 목뼈가 부러졌는지 목이 덜렁덜렁 거렸다. 재생이 벌써 시작되었는지 근육이 들쭉날쭉 한다. 기절한 트롤에게 다가가 라쿤을 심장에 쑤셔 박았다.
-크허허헉..끄응
트롤은 짧고 굵게 괴성 한번 지르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경험치 30,200 얻었습니다.
특전에 의해 2배의 경험치를 적용 받습니다]
[민첩 1 상승했습니다]
트롤 사체를 아공간에 넣고 마나 충전을 위해 잠시 쉬고 있는데,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눈이다”
“네..눈이 와요. 좀처럼 보기 힘든데···”
“겨울인데 눈을 보기 힘들다고?”
“네..미지의 수림은 남쪽에 치우쳐져 있어서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아요. 그래서 눈이 오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어요. 저도 거의 100년 만에 보는 것 같아요”
“헐···100년..”
“보세요. 주인님 , 지금이 한참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대초원에는 아직 초록색 풀이 남아있잖아요. “
“글치···.겨울 치고는 따뜻한 편이긴 하지, 그리고 여긴 풀만 있지. 풀만 잔뜩..”
대초원에는 풀만 있다. 야생 채소도 없고, 과일이나 열매도 없다. 있는 것은 내가 먹지 못하는 풀만 잔뜩 있다. 그래서 마나 충전하는 2시간이 언제나 길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할게 없어서···
대초원에서 이렇게 지낸 지도 벌써 1달이 넘었다. 언제 쯤 대초원을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더 지겹게 느껴지는 것 같다.
“두리안 오늘은 눈도 오는데 이만 쉴까?”
“네..주인님. 그렇게 해요”
“그럼 우리 동물들이나 사냥해서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에게 갔다 주고 오자. 식량도 얼추 떨어질 때가 됐을 것 같은데”
“주인님···..”
“아..뭐···좀 신경 쓰여서 말이지.”
“그렇게 해요. 주인님”
나는 곧바로 동물들을 사냥했다.
큰뿔사슴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약한 광대역 전격마법으로 대량으로 사냥해 버렸다. 그리고 큰뿔사슴을 노리고 달려드는 아울베어나 샤벨타이거 , 회색늑대들도 닥치는 대로 잡았다.
1시간정도 정신없이 잡다 보니 큰뿔사슴 50마리 , 회색늑대 22마리, 샤벨타이거 3마리, 아울베어 3마리를 사냥하여 아공간에 넣고 미노타우노스 마을로 텔레포트(Teleport)했다. 갑자기 마나가 슝~하고 4,000 정도가 빠져나갔다.
‘먼 거리인 건 알겠는데 너무 많이 빠지는 거 아녀? 젠장’
내가 미노타우노스 마을을 떠난 지가 1달 전이다. 거리 상으로 따지면 엄청난 거리일 것이다.
내가 족장의 토굴 앞에 나타나자 무언가 열심히 갈고 있던 새끼 미노타우노스 한 마리가 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워···우워···음메에에에~~
그러자 다른 놈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음모우우우우···
-음메에에에
···.
나에게 다가 온 8마리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은 머리를 비벼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나도 새끼들을 쓰다듬어 주면서 새끼들을 살폈다. 식량이 떨어졌는지 굶주려있는 것 같았다.
“두리안? 이놈들 많이 굶주린 것 같은데 일단 밥부터 줘라”
“네..주인님 준비 하겠습니다.”
두리안이 아공간에 나와 돌 불판을 설치하자,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이 모두 그쪽으로 달려가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때 먹었던 고기 맛을···
“근데 이놈들 토굴 안에서 뭐하고 있었던 거지?”
“돌을 깎아내는 흔적이 있는 것이, 아마도 돌도끼 만들고 있었나 봐요”
토굴 안에는 여기저기 돌을 깎아내고 있는 흔적이 많았다. 인간으로 치면 아직 유치원도 못 간 땅꼬마 수준의 어린 새끼들이 하기에는 좀 벅차 보이는 일이다.
“좀 더 큰 놈들이 안 보이는 거 보니 사냥이라도 나간 건가!”
나는 새끼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혹시 몰라 상공 50m까지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놈들이라 5-6마리로는 큰뿔사슴 한 마리 사냥하기도 힘들 것이다.
잘못해서 회색늑대나 아울베어 또는 샤벨타이거 한 마리만 만나도 이놈들은 떼 죽음을 당할 것이다.
“멀리는 못 갔을 것 같은데···..”
나는 숲 속과 평원 지대를 꼼꼼히 살폈다. 그러다 숲과 평원이 맞닿은 곳에서 나머지 새끼들을 발견했다. 그런데 성체의 미노타우노스에게 새끼들이 둘러 쌓여 있었다. 한 마리는 죽었는지 두개골이 박살 나서 쓰러져 있고 품에는 큰뿔사슴의 새끼 사체를 꼭 안고 있었다.
새끼 미노타우노스들로서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냥을 한 것이다. 대초원에서 훌륭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기질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빼앗으려고 성체가 된 놈들이 동족의 새끼들을 저렇게 죽인단 말인가?
“이런 개 씨발놈들이 뒈질려고 환장을 했구나. 내가 오늘 다 찢어 죽여주마. 이 개새끼들아”
나는 극도로 흥분했다. 마치 내 동생이라도 죽은 것처럼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라쿤을 뽑아 들고 앞 뒤 안 가리고 전 속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성체 미노타우노스 3마리에게 둘러 쌓인 새끼 미노타우노스들은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
나는 족장이다. 이전에는 우리 마을 족장님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없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날 마을 어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 자신들이 마주친 이상한 생명체는 자기들을 위협하지 않고 식량을 잔뜩 주고 떠났다. 그렇게 남겨진 우리들은 가장 나이가 많고 덩치도 가장 큰 나를 족장으로 뽑았다.
지금까지 그 이상한 생명체가 주고 간 식량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식량이 떨어지고 동생들과 우리들은 며칠을 굶주렸다. 그리고 마침내 위험을 무릎 쓰고 사냥하기 위해 평원에 나왔다.
무서웠다. 하지만 굶주림은 더 무서웠다. 며칠 동안을 숨어서 기다렸다. 마침내 어린 사슴이 부모로부터 약간 떨어져 나온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끼로 찍어 죽였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마을에 있는 동생들과 배부르게 먹지는 못하겠지만 허기를 달랠 수는 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런데 마을이 가까워지는 곳에서 동족의 어른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에게 사슴을 내 놓으라고 했다. 우리는 줄 수가 없었다. 이것을 빼앗기면 동생들과 우리는 굶어 죽는다.
셋째가 절대 못 준다며 어린 사슴을 품에 꽉 끌어 안았다. 하지만 동족의 어른들은 인정이 없었다. 세째의 머리를 도끼로 찍어 죽여버렸다. 내가 달려들자 그 옆에 있던 놈이 내 어깨를 도끼로 찍었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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