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가서점 영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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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와캬퍄
작품등록일 :
2022.06.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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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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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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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화

DUMMY

한 아이가 객잔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입구만 바라보던 아이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영화 객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손님을 맞이하던 객잔 주인은 아이의 행색을 보자마자 안색을 굳혔다.

여기저기 기운 옷, 며칠은 굶은 듯한 얼굴.

아이의 그 어느 곳을 보더라도 구걸하러 온 거지로 보일 뿐이었다.

객잔 주인은 아이의 보잘것없는 모습에 잠깐 눈살을 찌푸렸으나 얼른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리 아이의 행색이 추레하다고 해도 성급하게 쫓아 내서는 안 된다.

이곳은 개봉.

무림맹의 총단이 있는 곳이자 거지들의 문파인 개방이 자리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개봉에서만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지라면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홀대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객잔 주인은 최대한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개방에서 오셨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저, 그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돈은 얼마를 주셔도 상관없으니 부디 일하게만 해주세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억지로 올리고 있던 객잔 주인의 입꼬리가 완전히 귀에 걸렸다.

눈마저 초승달이 된 그는 두 팔을 벌려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아이고, 잘 왔다. 안 그래도 사람을 구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타지에서 올라와 객잔 문을 연지 이제 한 달.

고향땅을 떠나와 성공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과는 달리 그는 지금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가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개봉에 무림맹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십 년간의 마도 천하가 종식되고 무림 맹주이자 영웅 남궁위(南宮僞)의 얼굴을 보고자 전국에서 무인들이 매일같이 몰려들었다.

그 덕에 개봉은 객잔이나 주루, 심지어 다루마저도 항상 만석이었다.

고향을 떠나 개봉에 자리잡고 성공을 거둔 객잔 주인.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변의 쓸 만한 청년들은 이미 경쟁 객잔이 데려간지 오래였고 객잔 주인은 며칠째 사람을 구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점소이만 다섯을 쓰고 있음에도 몰려오는 손님들을 감당할 수 없어 오늘도 객잔 주인은 쟁반을 들었다.

그런 그의 앞에 비쩍 마르긴 했으나 일하길 원하는 아이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나이는 몇이고?”

“이름은 선혜성(鮮慧星)이고 나이는 열다섯입니다.”

“흠······ 일을 하기에는 조금 어린 감이 없지 않아 있구나. 너보다 어린 점소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객잔은 손님도 많고 무인들을 상대해야 해서 조금 힘들 텐데 괜찮겠니?”

“물론이죠. 힘과 체력은 자신있습니다.”


선혜성은 자신을 믿어 달라는 듯 팔에 힘을 주어 근육을 만들어 보였다.

의외로 마른 몸인 그에게서 제법 단단해 보이는 팔뚝이 보이자 객잔 주인은 내심 흡족했다.

잘 먹여서 살 좀 찌워 보기 좋게 만들면 충분히 제 몫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누구든 빨리 구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다.


“좋다. 그럼 오늘부터 일을 할 수 있겠니? 보다시피 지금도 손이 부족해서 말이야.”

“예. 물론이고 말고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일을 시작하자구나. 일단 네게 일을 가르쳐야 하는데······”


지금도 손님을 감당할 수 없어 점소이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선혜성을 빨리 교육해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객잔 주인은 손님의 응대를 마치고 탁자 정리를 하려던 점소이 장삼을 불렀다.


"장삼. 이리 좀 와 보게.”

“예. 주인어른.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부터 이 아이가 우리 객잔에서 일하게 됐네. 자네가 이 녀석을 데리고 다니며 객잔 일을 가르치게.”


안 그래도 객잔 주인이 사람을 더 뽑아 주길 바랐던 장삼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팔십 먹은 노인이나 갓난 아기만 아니면 어떤 사람이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장삼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구겨졌다.

장삼은 선혜성을 붙잡고 당장 그를 객잔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다.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 누가 보기 전에 당장 여기서 나가!”

“왜 이러세요? 이러지 마세요.”


선혜성은 필사적으로 버티며 장삼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객잔 밖으로 끌려갔다.

객잔 주인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당황하여 장삼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뭐하는 건가?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나!”

“주인어른.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녀석은 절대 안 됩니다. 이 녀석을 객잔에 들이면 큰 사달이 날 겁니다.”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뭐가 문제길래 이 아이를 내쫓으려 하냔 말이야.”

“주인어른 이 녀석은 정말 들이시면 안 됩니다. 이 녀석은 우리 객잔을 망하게 할 거라고요.”

“이 아이가 어떻게 우리 객잔을 망하게 해? 자네 지금 나와 장난하나?”


장삼의 말이 이어질수록 객잔 주인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평범한 아이가 객잔을 망하게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장삼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참, 큰일 날 분이네. 주인어른, 타지에서 오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이 녀석의 아버지가 사파 무인입니다.”

“뭐,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말로는 마을에선 제법 유명했다고 하지요. 곰같이 커다란 덩치 때문에 대웅(大熊)이라고 불렸답니다.”

“대웅이라. 듣기만 해도 무서운 이름이군.”

“게다가 옛날에 술과 음식을 강탈한 적도 있었다지요.”

“뭐야? 허, 이거 정말 큰일 날 뻔했군. 자네가 아니었다면 사람 하나 잘 못 뽑아서 곤욕을 치를 뻔했어.”

“저 녀석 아비는 옛날에 죽었지만 사파 출신은 변함없죠. 생각해 보십쇼. 이놈이 여기서 일하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입니다.”


객잔 주인은 그제야 장삼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마도가 무림을 지배하던 시절 사파는 그들의 밑에서 앞잡이 노릇을 하며 패악을 부렸다.

마인을 등에 업고 사람들의 돈을 뜯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를 건드리거나 살인을 하는 등 인간 같지 않은 행동을 했었다.

그때문에 사람들은 사파라고 하면 그들이 키웠던 개라고 할지라도 눈에 띄면 돌을 던지곤 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럴진대 사파를 벌레 보듯 하는 정파 무인들은 어떻겠는가.

만약 사파인의 자식이 일하는 객잔으로 소문이 나면 정파 무인들은 그의 객잔을 찾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장사를 방해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가 망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왜 그런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냐?”

“어르신······.”

“당장 내 객잔에서 나가거라.”

“제발 쫓아내지 마세요.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다 할게요. 여기서 일하게만 해 주세요.”


선혜성은 객잔 주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으나 객잔 주인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이미 그에게 선혜성은 객잔에 재앙을 가져올 흉물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거 놓고 나가거라.”

“제발요. 전 꼭 일을 해야만 해요.”

“시끄럽다! 네가 스스로 나가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장삼, 어서 이놈을 밖으로 내쫓아 버리게.”

“예. 알겠습니다.”

“참, 혹시라도 다른 손님들이 놈의 얼굴을 알아봐서는 안 되니 이걸 뒤집어 씌우고 뒷문으로 나가 던져 버리게. 어서!”


객잔의 손님 중에는 정파 무인은 물론 오랫동안 개봉에서 살았던 사람도 있다.

그들이 선혜성의 얼굴을 본다면 그가 사파인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객잔 주인은 장삼에게 큰 자루를 주어 선혜성을 안에 담으라고 시켰다.


“이, 이러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 왜 이렇게 힘이 세? 어이, 잠깐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


선혜성이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치자 장삼은 혼자서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잠깐 동안 끙끙대다가 근처를 지나가던 점소이를 불렀다.

두 사람이 힘을 써 제압하니 결국 선혜성은 자루 속에 들어가 버렸다.

장삼과 점소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고 신속하게 뒷문을 통해 객잔 밖으로 나온 후 자루를 내동댕이쳤다.


“카악 퉤! 다시는 우리 객잔에 나타나지 말아라. 또다시 보인다면 아주 묵사발을 내주마.”


점소이들이 떠나고 선혜성은 한참을 바둥거리다 간신히 자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억울했다.

태어나서 얼굴 한 번 못 본 아비가 사파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아야 한다는 것이.

선혜성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던 해에 어머니를 두고 개봉을 떠났고 그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유품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대검을 보며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집안 사정과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도 없이 비난받을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치밀어 올랐다.


“후우, 괜찮아. 그래도 분명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야. 포기하지 말자.”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킨 선혜성은 지금도 힘들게 일하고 계실 어머니를 떠올렸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홀로 그를 키우고자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서 빨리 일을 구해 돈을 벌어야 한다.

선혜성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일할 곳을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현재 무림맹이 위치한 개봉은 무림의 성지이며 관광명소였다.

멋모르는 강호초출은 물론이고 무림맹의 하급 무사라도 되고자 하는 무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개봉에 찾아왔다.

개봉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만큼 객잔이나 주루 등이 많았고 일자리 또한 넘쳐났다.

그러나 그 많은 곳 중에서 사파인을 아버지로 둔 선혜성이 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들렀던 곳에서는 사파 잡졸이 객잔에 들어와 부정 탔다며 온갖 욕설에 소금을 맞으며 쫓겨나야 했다.


“하아······”


선혜성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일자리를 찾아 하도 걸어 다니느라 이제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무도 날 써주지 않으니 차라리 산에서 약초를 캐거나 나무를 해다 파는 것이 낫겠어.”


선혜성이 절망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길을 걸어 가고 있을 때 앞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배수(掱手) 짓이야?”

“이거 놔!”


그곳에는 열 살은 되어 보이는 아이가 검을 찬 장한에게 붙잡혀 바둥거리고 있었다.

장한의 곁에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인이 있었는데 한 남자는 안절부절못하며 떨고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이 상황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어!”


장한은 발버둥 치는 아이의 목을 꽉 쥐고 품 속을 뒤져 금색 주머니를 찾았다.


“이거 봐라. 이 겁 없는 녀석. 감히 나 수검절(秀劍掱) 남궁지산의 전낭을 훔쳐?”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감히 다른 누구도 아닌 남궁 대협의 전낭을 노리다니. 참 운도 없는 녀석입니다.”

“그래도 어린 녀석의 수법이 제법이네요. 남궁 소협의 품에서 전낭을 훔치다니.”

“이거 참, 저도 수련을 게을리했나 봅니다. 아무튼 팽 형과 제갈 소저께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민망합니다.”


개봉 무서운 줄 모르고 그저 남궁지산의 행색이 졸부의 느낌이라 생각 없이 전낭을 훔치다 걸린 모양이었다.

아이는 남궁지산의 손에 잡힌 것이 억울했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흔들었다.


“이씨. 놓으라고!”

“뭘 잘했다고 성질이야! 볼기라도 때려주랴?”

“대협,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좀도둑이 없도록 관리를 잘 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때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남궁 지산에게 죄를 청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혜성은 그 남자를 알아보고는 그가 남궁 지산에게 보이는 태도에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은 분명 이명걸인데. 저놈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남궁지산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고 있는 사람은 척사단(斥邪團) 단주 이명걸이 분명했다.

척사단은 무림맹에서 사파를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곳이었는데 단주인 이명걸은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안하무인으로 유명한 자였다.

그는 사파와 관련되었다면 남녀노소 이유를 불문하고 교화를 시킨다며 폭력을 휘둘렀는데 선혜성 역시 그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많았다.

선혜성은 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알아볼까 봐 사람들 틈으로 숨었다.


“아아, 괜찮습니다 이 대협. 평소 대협께서 강호의 치안을 위해 고생하시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하, 괜찮다니까요. 그나저나 이 녀석! 다시 또 남의 전낭을 훔칠 것이냐?”


남궁지산은 아이를 들쳐업고 볼기를 때렸다.

그러자 아이는 더욱 심하게 바둥거리며 악을 썼다.


“악! 이거 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날 풀어 달라고.”

“남의 돈을 훔치고도 당당하구나. 네 부모님이 그리 가르치더냐?”

“이씨, 아까 객잔에서도 그러더니 또 우리 아버지를 욕해?”

“내가 언제 네 아비를 욕했다는 것이냐? 네 아비의 이름이 뭔데?”

“우리 아부지 이름은 단심휘야.”

“뭐, 뭐라고?”


이름을 들은 네 사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단심휘라면 마도천하 때 민가를 도둑질하고 다녔던 사파 잡졸의 이름이 아닌가. 꼬마야. 정말 네 아비가 은형섬수(隱形閃手) 단심휘가 맞느냐?”

“우리 아부지는 잡졸이 아니라 나쁜 놈들을 혼내 주고 다녔던 의적이거든. 네가 뭘 알아?”


아이는 자신이 남궁지산의 전낭을 훔친 이유가 아버지를 욕해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궁지산은 말없이 아이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아이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듣고 겁을 먹고 놔준 줄 알고 신나하며 외쳤다.


“너희 앞으로 조심해라. 또 우리 아부지 욕하면 다 이를 거야.”

“후, 그냥 넘어가선 안 될 놈이었군. 이 대협. 잠깐 검을 맡아주시오.”


남궁지산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던 신경 쓰지 않고 검집은 손에 든 채로 검을 이명걸에게 건넸다.

그의 눈빛을 본 이명걸은 두 손으로 검을 받고 주변의 사람들을 뒤로 물리며 아이의 뒤를 가로막았다.

남궁지산은 살벌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과연 이제야 네가 내 전낭을 훔칠 수 있던 이유를 알겠다. 네가 그 파렴치한 쥐새끼의 아들이라니. 게다가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도둑질이라······ 정파의 무인으로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구나.”


남궁지산은 검집을 몽둥이 삼아 아이를 내려쳤다.

머리든 가슴이든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아이를 때리는 그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냉혹했다.

살이 찢어지고 입술이 터지며 피가 튄다.

아이가 사파인의 자식이라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남궁지산을 말리지 않고 맞는 모습을 구경만 했다.


“네 아비가 얼마나 비열한지 아느냐? 정파가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을 때 네 아비는 재물을 탐했었다. 단심휘 그놈은 의적도 뭣도 아닌 그저 도둑놈일 뿐이라고!”

“아니야! 아부지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쁜 사람들의 것을 빼앗은 의적이랬어. 수 천명의 배고픈 사람들을 살린 영웅 이랬다고.”

“네가 아직 덜 맞은 모양이구나. 오냐, 네 입으로 ‘단심휘는 좀도둑 쥐새끼다’라고 말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


쏟아지는 매질에 아이는 몸을 웅크리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이는 고통에도 남궁지산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남궁지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쉴 새 없이 검집을 휘둘렀다.

아이가 피 떡이 되어 숨이 넘어가려는 모습에 선혜성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만하세요. 그러다 아이가 죽겠어요.”

“누구냐?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이놈은 내 전낭을 훔쳐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니 그냥 갈 길 가거라.”

“아직 어린아이잖아요. 전낭을 훔친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해요.”

“지금 사파인의 자식을 옹호하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아직 어린데 말로 잘 타이르면 되잖아요. 아이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그만두세요.”


관에서도 도둑질을 했다고 사람을 때려 죽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이건 너무 심한 짓이다.

선혜성은 두 팔을 벌려 남궁지산의 앞을 막아섰다.

그때 이명걸이 선혜성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끼어들었다.


“넌 선혜성이 아니냐? 왜 이 아이가 사파인의 자식이라니까 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응? 이 대협, 아는 놈이오?”

“예. 저 녀석도 아비가 사파 출신입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허접한 자이나 현에서는 제법 어깨에 힘을 줬던 놈이라 하지요.”

“그래요? 어쩐지. 같은 사파 무리라 나선 모양이군. 비켜라. 너는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만 계속 끼어들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지 마시고 정파의 협객으로서 이 아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이놈이 그래도!”


끝까지 선혜성이 아이를 지키려 하자 남궁지산은 그를 밀쳐 넘어트리고 검집을 휘둘렀다.

남궁지산은 광기 어린 눈으로 매 타작을 시작했다.

선혜성은 이미 정신을 잃은 아이를 몸으로 덮어 최대한 자신이 대신 맞으려고 애를 썼다.

검집이 그의 몸을 두드리고 남궁지산은 두 사람이 죽어야만 매질을 멈추겠다는 듯이 몽둥이질을 했다.

주변에서는 그 누구도 남궁지산을 말리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사파 출신은 더 맞아야 한다며 옹호하는 자들마저 있었다.

그렇게 선혜성의 의식이 흐릿해져 갈 무렵 누군가가 나타나 남궁지산을 밀쳤다.


“이놈! 그러다 애들 잡겠구나. 그만 멈추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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