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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만 탱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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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순딘이
작품등록일 :
2022.06.30 21:17
최근연재일 :
2022.07.25 16:53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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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4
글자수 :
83,559

작성
22.07.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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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1화

DUMMY

'어떻게 된 거지?'


일어서려고 노력했지만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해보자. 우선 팔부터.'


온 신경을 팔에 집중했다.


'안 움직여. 아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그럼 다리는?'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고개조차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어떻게 된 거냐고?'


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누구한테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깜박이는 것밖에 없었다.


"다막기 환자 분. 제 말 들리세요?"


눈앞에 의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대답하기 힘드시면 눈을 깜박거리셔도 돼요. 하실 수 있겠어요?"


나는 대답 대신 눈을 깜박였다.


"깨어나시긴 했지만 신경의 문제가 있는 건 여전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깨어난 것 만 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좋아질 가능성이 생긴 거예요. 우선 시간을 두고 정밀검사를 해보죠."


이번에는 엄마가 눈앞에 나타났다.


"막기야. 엄마야. 기억나?"


눈을 깜박였다.


"그랬구나. 깨어나 줘서 고마워. 조금만 지나면 다 나을 거야. 알겠지? 의사선생님한테 다녀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엔드의 검이 가슴을 관통했을 때는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기적을 보여준다고 했던 엔드.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어떠한 기적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 나 막자야.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하지.'

"다행이다. 처음에 사고 났을 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알고 있어. 아니. 사실 지금까지는 잘 몰랐어. 미안해.'


나와 막자는 조금은 특별한 방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 맞다. 오빠가 구해준 아이는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서 저번에도 오빠를 보러 병원에 와서는 한참을 고맙다고 이야기하다가 갔어. 오빠가 걱정할까 봐 말해주는 거야."


맞다. 모든 건 차 사고 때문에 시작되었지. 아이는 많이 안 다쳤다니 다행이다.


"기수 오빠도 매일 같이 찾아와서 걱정해주고 갔어. 아마 조금 있다가 올걸."

'기수도 왔었구나. 고맙네.'

"오빠 옆에 붙어서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갔어. 몰랐지?"

'어.'


막자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게 얼마 만일까? 오랜만에 본 막자의 얼굴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


"같이 게임 하기로 했다며. 기수 오빠가 아직까지도 안 하고 기다리고 있대. 오빠 일어나면 한다고. 그나저나 힐러 하기로 했다며?"

'아. 그걸 말했어?'


평소에 막자가 게임을 하면 그만하라고 혼냈었는데. 그래서 막자는 내가 게임을 싫어할 줄 알 텐데 다 들켰네.


또다시 막자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중에 일어나면 나도 같이하자. 오빠가 힐러하고 기수 오빠가 탱커 하면 내가 딜러 할게. 그러니까 꼭 일어나."

'걱정하지마. 꼭 일어날거니까. 그리고 난 이미 힐러야.'


얼굴에 감각이 있었다면 분명 웃어주었겠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그럼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막자가 사라지자 병실의 천장이 나타났다.


코마월드에서는 분명 살아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막상 이렇게 다시 돌아온 현실은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좋지는 않았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평생을 이렇게 누워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코마월드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왜 현실로 돌아오려 노력하지 않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눈으로만 이야기하면 답답하지? 그래서 내가 준비해왔어."


막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막자는 나에게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여기 자음하고 모음들이 보이지?"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


스케치북에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가지런히 적혀있었다.


"이제 내가 펜으로 한 글자씩 짚을 거야. 오빠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원하는 글자에서 눈만 깜박하면 돼. 알겠지?"

'어.'


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자를 선택했을 때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완성되었다.


"안녕. 오빠 지금 안녕이라고 말한 거 맞지?"

'어. 안녕.'

"봐봐 이러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조금은 느리지만. 계속할 수 있겠어?"

'어.'


스케치북을 통해 나의 질문이 완성되었다.


"잘 지냈어. 이렇게 물어본 거야? 음. 난 잘 지냈어. 아빠랑 엄마는 많이 울었지만. 오빠는 아무런 기억도 안 나지? 우리가 보기에는 계속 잠만 자고 있었거든."


코마월드에 대한 설명을 해주려고 할 때였다.


두근두근.


또다시 느껴지는 압박감.


그리고 흐려지는 시야.


눈앞에는 더 이상 막자가 없었다. 대신 하지의 모습이 보였다.


***


"깼다."

"깼다고? 벌써? 잠시 돌아온 모양이군. 오래간만에 간 현실인데 벌써 돌아오면 아쉽잖아."


다가오는 엔드를 바라보았다.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고 하지는 내 옆에서 모닥불로 어둠 속을 밝히고 있었다.


"뭐라는 거에요? 어? 이제 목소리가 나오네."


방금 전까지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막자와 대화를 하기 위해 스케치북을 이용했었는데.


"뭐가 꿈이죠? 이게 꿈인가요? 방금 제가 본 것들이 꿈인가요?"

"둘 다 현실이지. 자네가 있는 곳이 현실 아닌가?"

"그럼 전 다시 돌아온 건가요?"


아까와 달리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어나기는 힘이 들었다.


"너무 일찍 왔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말게."

"네?"

"금방 다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지."

"그러니까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냐고요?"


두근두근.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할 때 엔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저 기적을 보여주고만 오면 돼. 기적을 보여준다면 희망을 품고 자네를 기다릴 거야.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마. 자네만의 세상이 아니니까."


***


"오빠 자? 자나 보네."


눈을 떴다. 막자는 여전히 스케치북을 든 채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잠에서 깬 거야? 내가 시끄러웠지? 미안해. 이제 그만하자."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았다.


"뭐 이야기하고 싶은 게 더 있는 거야?"


그제야 눈을 감았다.


"음. 그럼 조금만 더 이야기 하자. 사실 오빠가 싫어할까 걱정했거든."


막자는 스케치북에 적혀있는 자음과 모음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랑 함께 잘 지내라는 거지? 당연히 잘 지내지.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있어. 그리고 운동도 매일 하고 있어."

'착하네.'

"빨리 집으로 돌아와. 다 같이 저녁도 먹고 게임도 하게 난 오빠가 나을 거라고 믿어."

'어. 알겠어.'


막자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쪽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기가 깼다고?"

"어. 오빠가 깼어. 그런데 아직 움직이지는 못해."

"그래도 다행이야. 난 평생 못 일어나는 줄 알았잖아."

"대화는 가능해. 이리 와서 오빠랑 이야기해볼래? 분명 오빠가 좋아할 거야."


잠시 후 기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학교가 끝난 후에 바로 달려온 것 같았다.


"정말이야. 눈을 떴네. 내가 말했잖아. 깨어날 거라고. 막기는 세계관 최강이라니까."


오랜만에 보는 기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여기. 막기 오빠가 하고 싶은 말에서 눈을 깜박일 거야."


막자가 들고 있던 스케치북이 기수의 손에서 보였다.


"음. 나 기억하지? 기수야."

'어.'

"와. 신기하다. 대답했어. 지금 나 막기랑 대화하고 있는 거 맞지?"

'어.'


기수는 신기한지 스케치북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친구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

'고마워. 꼭 돌아갈게.'

"그리고 나 너랑 하려고 했던 게임도 아직 안 하고 있어. 너랑 같이 할거야. 네가 힐러. 내가 탱커."

'그러자.'


누워서 기수를 보니 같이 걸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같이 다닐 때는 언제나 지켜주어야 할 것 같았다면 지금은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래서 고마웠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기수가 떠났다.


중간에 의사 선생님이 한 번 더 들어오셔서 내 상태를 체크하셨고 아빠와 엄마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 몸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아니 손가락이라도 움직였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막기 오빠. 오늘은 내가 여기에 있기로 했어. 아빠랑 엄마한테 말했어. 괜찮지?"

'어.'

"그래도 아까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기적이라고. 어쩌면 신경도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고 하셨으니까. 포기하지 말자. 사실 아빠랑 엄마 그리고 나까지도 오빠가 깨어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었어."


나라도 분명 의심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적을 보여주라고 했었던 거구나. 엔드가.

그런데 엔드는 어떻게 나를 이곳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이제 자야겠다. 내일은 더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게."

'막자야.'

"어. 오빠."

'기다리고 있어. 반드시 다시 돌아올게.'

"어. 끝까지 기다릴 거야."


병실에는 밤이 찾아왔다.

생각해보면 꿈만 같은 하루였다.

좋은 꿈은 아니었지만 악몽도 아닌 평범한 꿈.


'엔드가 다시 돌아 갈거라고 했었는데. 언제쯤 돌아가는 걸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위압감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이제 돌아가려나 보구나.


마지막으로 막자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되겠지. 그래도 보고 싶어.


고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간이침대에 자고 있는 막자의 모습이 보였다.


'고마워.'


***


이번에는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 엔드에게 다가갔다.


모닥불 주위에 있던 엔드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현실에 간 기분이 어땠나?"

"왜 절 보내 신거죠? 아니. 왜 절 다시 데리고 오신 거죠?"


엔드의 미소 지었다.


"널 보낸 건 기적을 보여주라고 보낸 거였지.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그러면 다시 데리고 오신 건요?"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다시 보내주지. 평생 누워있어야 하겠지만."


냉정한 평가에 아직 준비되지 않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럼 마지막 던전을 다 깼을 때 저는 현실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건가요?"

"그건 다 깨보면 알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오늘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가족들하고 친구들을 봤어요. 저는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엔드는 나뿐만 아니라 하지에게도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끝을 보러 가야겠지. 마지막 던전을 깨고 난 후엔는 스스로 알 수 있을 거야."

"네. 그런데 혹시 하지도 가족을 한 번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건 내 능력 밖이야."


하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하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빨리 자게. 내일부터는 더 힘든 여정이 될 테니?"

"같이 가시려고요?"

"당연하지. 나도 혼자 다니기 심심했거든. 그리고 자네에게도 더 유리할 텐데. 끝을 본 사람하고 같이 여행한다면."


엔드는 모닥불 때문인지 이 어둠 속에서 가장 빛나고 있었다.


마치 희망처럼.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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