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처음 인사드리네요 여러분 Show Time대표 김석진입니다."
-.......?
다들 멍한 얼굴,
'반응이 왜이래?'
그 누구도 모르는 눈치,
의아한 얼굴의 김은석 대리가 최은아 과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혹시 진이사님의 아들 아닐까요??"
꽤나 그럴싸하게 들린 모양인지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진현모 이사님 아드님 이신가요??"
'으잉? 어딜봐서..!'
이탈리아 마피아같이 긴 장발에 쓸데없이 어울리는 수염을 한 중년미 넘치는 아저씨와 석진의 닮은 구석이라고는 기껏해야 키밖에 없었다.
"아뇨 진이사님은 제가 뽑은 분이구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제가 Show Time대표 김석진입니다."
하지만 사원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은 상황,
-짝!
그러던와중 한혜수 사원이 박수를 치며 삿대질을 했다.
"혹시 슈스싱 우승자 김석진 아니에요??"
정웅인 사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네맞아 우승 축하드려요. 팬인데 싸인 좀.."
'싸인같은 소리하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싸인은 해주는 석진,
결국 전화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이사님께 연락 해보시면 확인 해줄거에요."
"에이 또 그런다~"
'이 정도 했으면 알아들을 법도한데'
평소 일처리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않았던 진이사,
수술을 앞둔 혜린이 걱정에 이 부분까지는 설명해주지 못한것 같았다.
'그래도 이 양반이! 최소한 회사 대표가 누군지는 알려줬어야지!'
"이사님 지금 병가 쓰셨거든요!?"
계속 땡깡을 부리는 줄 아는 한혜수 사원이 표독스럽게 대답하자 답답한 석진이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그 병가 승인한게 나라고요 나!"
'대화 진행이 안되네..'
참다 못해 휴대폰을 꺼내 진이사에게 직접 통화를 걸었다.
"예 대표님 아..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실수를..."
스피커폰으로 연결한 후 진이사의 확인을 받은 뒤에야 대표라는걸 증명 할 수 있었다.
'정말 얼른 어른이 되고싶다.'
나이들면 아마도 다시 어려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얼른 어른이 되고싶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됐어요. 그보다 현재 다카무라 물류 이외에 추가로 계약 할 거래처와 국내 공장 명단도 정리해서 주세요."
"네 대표님"
전에 왔을 때와 다르게 2층 전체를 확장시켜 우리 사무실로 꾸며놨다.
'사무실 정리는 마음에 드네'
뿌듯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며 그 동안 밀렸던 결제서류를 체크했다.
"앞으로도 전 회사에 일에 많이 관여하지 못할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처럼 진이사님 지시에 잘 움직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대표님!"
***
"다들 책 덮어! 시험 시작한다. "
슈스싱이 끝나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니 중간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부에 뜻이 없는 친구 두놈과 원래 공부머리가 좋은 석진은 반에서 유일하게 스트레스 받지않는 3인방이었다.
"키야~이맛에 예체능한다. 꿀잠자야지~"
"예체능 같은 소리하네... 창피하니까 푸는 척이라도 하다가 누워라"
"으윽...난 진짜 피곤해서 자야돼...zzz.."
진로가 정해진자들의 여유,
동급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둘이었다.
그나마 초조함을 느끼는 건 석진 뿐,
슈스싱에 나가는 바람에 학기중 절반 이상을 빠졌기에 기본 실력으로 승부볼 수 밖에없었다.
그나마 짬이 생길때마다 암기과목을 미리 공부한게 다행이었다.
'약속은 지켜야하니까..'
방학전 교장선생님과 맺었던 거래조건을 완수하기 위한 첫번째 스탭은 바로 공부,
-탕탕탕!
"뭐해? 안 집어넣어?"
선생님 호통에 다들 서둘러 책상에 교과서를 넣고 시험지를 분배 받았다.
'잘해보자..'
*
"진짜 이해 할 수가 없다니까"
시험이 끝난 뒤 책상에 코박고 엎드린 석진과 콧노래를 부르는 상수의 모습을 보며 민창이는 고갤저었다.
"어떻게 3개 맞은 애랑 3개 틀린 애랑 바뀐거 아니냐?"
100점을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그래도 아는 범위에서 모조리 출제된 시험문제를 틀린 석진은 너무도 분했다.
"다 알고 있던거라니까! 으흫.."
"헛소리 그만하고 시험 끝났으니 노래방이나 가자"
"오~ 민창이 네가 왠일이냐? 먼저 놀자는 말을하고?"
손가락으로 V를 만드는 강민창이 개운하다는 듯 기지개를 피자,
"벌써 연재를 다 끝냈다고!?"
"다 네 덕분이지 스토리라인이 확실하니까 펜이 막히지 않더라~"
'아무리 그래도... 정말 5월안에 끝내는 미친놈이 어딨냐...'
행여나 스튜디오에 도움받을 일이 생길까 걱정한 민창의 생활패턴은 온 종일 그림에 맞춰져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독한놈... 그래 좋다! 나도 첫 월급 탄 기념으로 한톡 쏠게 가자!"
"오올~ 진심? 오늘 상수가 풀코스로 쏘는거야?"
"미친놈이세요? 내 10년치 연봉을 상금으로 받은 자식이...넌 네돈네산하세요."
'장난 좀 친거가지고.. 쩝...'
간만에 셋이 모였으니 먼저 무한리필 갈비집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노래방으로 갔다.
"뭐 부를래?"
"당연히 이순 노래지!"
"뭔 소리야? 남자라면 김경후지!"
이 시절 남자들 사이에서 노래 잘 부르는 기준은 단 하나였다. 그건 누가 더 높은 고음을 부를 수 있는가 였다.
"그럼 노래방 점수내기로 캔모아 내기 하싈?"
거기다가 소리가 크면 클수록 노래방 점수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석진의 제안은 꽤나 솔깃했다.
-콜~!
요즘 가장 뜨는 예능 2박3일의 멤버들이 내기를 수락할때처럼 익살스럽게 '콜'을 외치는 두 친구,
-행복하지마요 행복하려면 사랑한 날 잊어야 하잖아
가시가 박힌 듯 숨쉴 때마다 눈물이 흘러와
첫 스타트는 느끼한 목소리 강민창의 [이선 - 행복하지마요]로 시작했다.
"야 쟤 콧소리 좀 어떻게 안되겠냐?"
질색하며 옆구리를 찌르는 상수를 어이없는 눈으로 보던 석진이 빵터졌다.
"너나 잘해 색갸 크큭"
-가수 임박! 대단해요! 99점!
가운데 손가락을 들며 유치하게 메롱하는 상수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잘 봐 이게 노래야"
[김경후 - 와인]
-많이 아팠었어
긴 호흡에도 가라앉지 않아
지독한 그리움을 앓게 한
날 울린 사랑 너였어
"오~ 이번엔 꽤 느낌있다?"
"노노....속지마"
감탄하는 강민창과는 다르게 석진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갤 저었다.
-한 번 파놓았던 아픈 사랑은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
이제 다 잊도록 우리 조금만 노력해
다신 와선 안될 길을 오지마
작↗은↘ 희망도 @#$
"저 봐라"
평소 음치였던 실력에 비하면 일취월장한건 사실이지만, 김경후 노래는 워낙 난이도가 높은 곡이 많았기에, 이제 막 노래 걸음마를 뗀 상수가 건들인 것 부터가 실수였다.
"게다가 쟤 2키 올려서 불렀어 크큭"
그나마 타고난 목 덕분에 어느정도 고음을 따라할수 있었던 상수가, 헥헥대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노래는 취미로만~노력은 인정해요~ 80점!
"으아악~!! 이건 말도안돼!!"
머리를 감싸안고 절규하는 상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중 하나가 소리를 많이 지를수록 100점에 가까워지는줄로만 알고있다. 하지만 노래방 점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바로 음정과 박자 이 2가지다. 고로 상수처럼 목에 핏줄을 세우지 않더라도 충분히 높은 점수로 승부가 가능하다는 뜻,
'그리고 숨은 비결은 바로 이거지!'
"마이크 바꾸게?"
"어 난 이게 편하더라고"
기계에 직접 연결된 마이크도 점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 이건 다년간 노래방을 전전했던 석진만의 노하우였다.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다고
밤을 세워 간절히 기도했지만
"야..!! 그건 반칙이지!!"
둘의 야유를 호응삼아 석진은 [박완구 - 천년의 사랑]에 집중했다.
-나를 위해서 눈물도 참아야 했던
그 동안에 넌 얼마나 힘이 들었니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
템포가 빠르지 않고, 고음도 석진이 소화하기 딱 좋은,
이 전설의 명곡은 흔히 노래방 치트키라 불릴정도로 고득점에 특화되어있는 노래였다.
게다가 지난 슈퍼스타 싱어 결승에서 불렀던 창법에 꽤나 익숙해진 모양인지, 평소보다 샤우팅을 더 편하게 내지를 수 있었다.
-나랑 가수할래? 녹음하러 오셨어요? 100점!
예상은 했지만 막상 100점을 받게되니 석진을 향해 두 친구 모두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우우~~ 사기꾼~ 쓰레기~
친구로써 최고의 극찬,
"네 감사합니다. 앵콜은 사양하겠습니다~"
이로써 상수의 풀코스가 확정되었다.
그래봤자 월급에 비하면 푼돈이겠지만,
노래방을 즐긴 셋은, 캔모아를 들러 시원한 빙수와 무한리필 식빵을 곁들인 환상의 궁합을 대접받을 수 있었다.
***
아침부터 JTP대표실로 부른 박준택 옆에는 처음보는 낯선 20대 청년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석진씨! 전 한호준이라고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뉘신지...'
"오늘부터 네 스케줄 전반을 담당해줄 한호준 매니저야 잘 지내봐~"
"아니..저 연습실하고 집만 돌아다니는데 벌써 매니저님이 생겨요?"
슈퍼스타 싱어 우승 후 본격적인 데뷔를 준비해야하는 시기임에도, 박준택이 매니저를 붙여준 까닭은 조금 특별했다.
"지금 네 앞으로 섭외 요청건만 이 정도야, 너도 알겠지만 이번 슈스싱 인기가 좀 좋았어야지~ 그리고 어차피 신곡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잘 부르는 노래 그대로 음방에서 하면 되는거니까 차라리 방송출연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무대보다는 연습생으로써 오래 해왔다고는 하나, 슈퍼스타싱어 생방송중에도 컨디션 난조없이 무난하게 곡을 소화해냈던 석진이니까,
"무대 울렁증도 없고, 그냥 넌 딱 실전파야"
"크흠..그럼.."
칭찬에 약한 석진이 화재 전환을 시키고자, 섭외 들어온 목록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천기누설 정강이팍,무한직업, 2박3일, 패밀리가 모였다..."
하나같이 전부 대세 예능, 그 어디를 수락해도 순식간에 인지도가 급상승할만한 프로그램들 뿐이었다.
"대표님 혹시 이거 전부 다 해야하나요? 한다면 하나만 하고 싶은데..."
남들은 못해서 청탁까지 하려는 대세예능 프로그램들을 고작 하나만 하겠다는 석진의 말에 한호준이 물었다.
"혹시 부담스러우십니까?"
"아..그렇다기보다는 제가 말 주변이 없어서요. 아직 방송 초보이기도 하다보니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잠시 고민하는 박준택도 같은 생각인 모양인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지금 슈퍼스타싱어로 잠깐 이슈몰이하는 와중에 너무 예능에서 소비되는 건 역효과일수도 있겠다. 그럼 틈틈히 모니터링 하면서 어떤 프로그램 섭외 받을지 고민해둬"
"아..하고싶은 프로그램은 이미 정했어요."
"뭔데?"
내키지 않을것 같았던 석진이 고른 프로그램은 바로,
"패밀리가 모였다. 이걸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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