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왔어? 줘!"
"뭐?"
Show Time 쇼핑몰 회의실에 앉아 석진을 향해 손을 뻗는 두 친구가 있었다.
서둘러 가방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꺼내주었다.
"아하하 재밌다 재밌어 그치?"
"이게 바로 어뭬리칸식 유먼가보군 하하하"
둘이 사이좋게 대화하는데도 손바닥은 여전히 거두질 않았다.
'아씨 이거 조용히 끝날 분위기가 아닌데..'
"아하하하 그럼그럼 내가 너희들 선물을 안 챙겨 왔을까봐 하하.."
어색한 석진의 미소에 순간 둘은 정색을 하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이새끼..잡아"
"예스,"
"아 아니!! 일하러 갔는데 선물을 살 시간이 어딨... 아아악!!!"
-벌컥 커헉!
때마침 이번에 새로 뽑은 한예슬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준 덕분에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다음에 올까요?"
"아뇨오!!"
필사적으로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하자 떨떠름한 얼굴로 가까이 왔다.
"말씀하신 자료내역입니다. 몇 군데 형광색으로 칠한 부분들은 아직 조율단계입니다."
확실히 대기업에서 비서를 하던 실력은 대단했다.
'인천국제 공항에서 부탁한 서류 작업을 이렇게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주다니.. '
"고맙습니다. 한비서님 그럼 지금 아프릭스 45%에 , 미튜브 30%말고는 더 없는거죠?"
"그렇습니다. 근데 출장 가셨던 넷플러스 건은...?"
"아 그거요? 넷플러스 40% 내년에 상장 한다고 하니 금액은 협의 후에 연락 준답니다."
'여기도 오래 다닐곳은 아닌가보네'
그래도 대기업에서 비서일을 해왔던 짬밥이 있던 한비서는 지금딱 재벌3세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석진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스스로가 쌓아온 재산을 탕진하는 데 누가 뭐라 그러겠냐만은..그 정도가 상당히 심각했다.
'제 정신이 아니야'
현재 대표가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꼬라박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액수의 금액을 투자했다.
투자에 대한 설명은 진현모 이사를 통해 듣긴했지만 도대체 옷이랑 신발 파는 회사와 아프리카,뉴튜브,넷플러스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불만들은 비서라면 절대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팁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JTP 박준택 대표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벌컥
문을 열고 JTP 박준택대표가 들어오자 깨방정을 떨던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 깍듯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네 반갑습니다. 석진아 잠깐 시간 되니?"
박준택이 등장하자 대표실에서 모두 신속하게 퇴장하고 둘만 남게 되었다.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형 바빠서 정신이 없네요."
"이제 슬슬 앨범 작업 해야지? 방송국에서 아직도 너랑 어떻게 연락할 수 있냐고 문의한다니까?"
작년 '무한 직업'과 '도전 노래방 어택' 이후로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방송 활동까지 전면 중단 했기에 JTP엔터테이먼트는 적지 않은 항의 전화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죠.."
"이번에 미국 갔다며 큰 아버지는 좀 어떠셔?"
"예 걱정해주신 덕분에 많이 호전되셨어요."
"아이고..누가 알았겠니? 이런 일이 생길줄..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텼다."
석진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던 화웅 중학교 김동건 교장,
그가 췌장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석진은 모든 스케줄을 접고 병간호에만 집중했다.
그런 석진의 사정을 알게된 기자들이 대신 좋은 기사를 써주지 않았더라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대표님도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신경 많이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아버지를 간병 하는 동안 석진의 사정을 봐준 회사 덕분에 앞으로의 회사 방향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 결과 더 늦게 전에 자신의 꿈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생은 무슨.. 그나마 네가 만들어 보내준 곡들 덕분에 회사입장에서도 도움 많이 받았지 뭐"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구요. 근데 아직 방송은..."
"야잇! 작곡도 활동이야 네 곡을 받은 신인들 죄다 스타 된 건 알지? 개들이 예능에서 너 언급한 부분만 편집해도 드라마 한편은 나올 정도라더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만 걱정마세요 TV말고 곧 개인방송으로 얼굴 비출꺼니까요"
의아한 표정으로 석진을 보는 박준택이 개인방송이라는 말을 되새기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개인방송이라면 그 개인방송??? 네가 왜!! 왜 거길나가?"
"방송국은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무엇보다 개인방송이 제게도 편해서요 하하"
"야 그럼 앨범은 어쩌려고?"
"그거야 뭐 디지털 앨범으로 내면 되죠"
"생각해둔 곡은 있고?"
"예 근데 이번에는 1등 못 할 수도 있어요"
'최고의 히트 메이커가 당당하게 1등을 하겠다고 선언 해도 모자를 판에..'
"그럼 1등 할만한 곡으로 하면 되잖아?"
"에이 대표님 그게 뚝딱하면 뚝딱 나오는게 아니잖아요"
"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그런 말 하면 안되지! 누구보다 그 뚝딱을 잘하잖아!"
박준택 대표의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석진도 좋은 곡을 모두 소화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곡들은 저마다 주인들이 있는 법이고 그 사람들의 역량으로 차트에 순위를 올리는 것 뿐 강제로 강탈하는 것도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형 나 디렉팅 대충 안 하는 거 아시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알지 나보다 더 한 놈이잖아"
"그런 제가 반쪽 짜리 녹음으로 앨범을 낼꺼 같습니까?"
오랜만에 보는 저 거만한 얼굴, 박준택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믿으세요~"
***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45살 직장인 공태원은 지하철 기둥에 기대 MP3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노래에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오늘도 지옥철을 버티고 퇴근 하고 있다.
김석진 - 반포 대교
-배고플 땐 이 노래를 아침 사과처럼 꺼내 먹어요. 피곤해도 아침 점심 밥 좀 챙겨 먹어요.
27살 계약직 오규범은 만원버스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노래에 격려받으며 오늘 하루도 피곤함을 이겨내고 출근길을 나섰다.
김석진 - 챙겨먹어요
-자꾸 거울 보지마 몸무게 신경 쓰지마 넌 그냥 그대로 너무 예쁜 걸 No make up ye no make up ye No make up 일 때 제일 예쁜 너
34살 문승애는 맞선 보기로 한 카페에서 울리는 노래에 손에 들고 있던 파우더를 다시 가방으로 넣으며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김석진 - 생얼이 가장 이뻐
-99 complexes but you can’t be me 99 complexes but you can’t be me 콤플렉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돼 I got no complex yea that’s me
20살 새내기 대학생 고연아는 점심시간 대학교에서 들리는 노래에 머리카락으로 가려놓은 앞머리를 올리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던졌다.
김석진 - 자신감
디지컬 앨범임에도 JTP홈페이지에 많은 사람들의 감사인사가 넘쳤다.
그 중 이번 앨범을 들으며 자신의 터닝포인트를 얻게 된 다양한 사연들은 많은 이슈를 내며, 처음 음원 발표 당시에 100위권 차트에 진입도 못했던 노래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후기들로 인해 역주행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자네 역주행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나?"
KM엔터테이먼트 대표실에 앉아 김석진의 곡을 들으며 강지은 비서에게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김석진군의 노래를 일컬어 생긴 신조어라고 들었습니다."
"잘 알고 있군 그러면 역주행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이유를 아는가?"
"글쎄요 그거까지는 아직 파악 못 했습니다."
"별거 아니야, 그 친구는 그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일 뿐이지"
씁쓸한 미소를 짓는 이송만 대표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도 이런느낌을 받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진드래곤이요?"
"그래 맞어 딱 그 친구야, 석진군도 이제 대중들에게 그런 이미지가 될듯 하구만
우리는 그저 김석진군의 발자취를 따라 뒤쳐지지 않게 달리는 수밖에 없겠어"
이송만대표의 씁쓸한 웃음을 지켜보는 강지은 비서는 그저 머리를 숙인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
- 짭 아니야?
- 짭이겠지 여기서 방송을 왜해?
- 김석진 노래 불러봐라
모니터에 정신없이 올라가는 채팅을 보며 캠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가수 김석진입니다."
- 진짜 같은데?
- 헐 대박 오빠!!
- 아이고 회장님이 오셨다!!!
- 뭐해 새x들아 얼른 좌표 찍자!!
아프릭스TV 제목에 김석진 본인이라고 적으니 확실히 보는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시간날때마다 방송 킬 예정이에요. 혹시 원하시는 곡 있으면 불러드립니다.
- 우와 본인 맞잖아!!!
- 로드 플라워 불러주세요
- 러브레인!!
- 아무말 춤도 춰줘요!!
"그럼 처음에는 가볍게 아무말 부터 해보도록 할까요?"
-왜들 그리 다운돼있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분위기가 겁나 싸해 요새는 이런 게 유행인가
카메라를 향해 몸을 흔들며 아무말을 부르고 나자 채팅창에 분위기는 한층 뜨거워져 있었는데 가장 큰 변화는 100명밖에 없던 인원이 3분사이에 4천명으로 늘어버려서 첫 방송 5분만에 1등 BJ가 되어있었다.
"하하 도토리 월드에는 댓글 보는 재미만 있었는데 확실히 소통하면서 노래 부르니 정말 재밌네요. 다른 곡도 추천 받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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