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똑똑똑
"대표님 결재 서류..."
평소라면 한예슬 비서보다 일찍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을 대표가 보이질 않았다.
"회의는 따로 없으실텐데..."
-띠리리리
"어? 뭐지?"
국제전화로 걸려있는 상태로 연락이 두절된 대표의 휴대폰을 확인하자 놀란 한비서가 다시 진현모 이사에게 연락을 했다.
"대표님이 해외에?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상황을 전해 들은 진현모 이사도 강민창과 상수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냥 휴대폰이 꺼져있었다면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국제전화라는 사실에 등꼴이 오싹해진 직원들은 서둘러 각자의 연줄을 동원해 석진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이새끼 이거 여기갔네"
[메시지 - 석진이가 새벽에 미국가야된다고 여권 가질러 왔었는데 무슨 일 있니?] - 한수연 여사님
상수가 석진의 어머니에게 온 메시지를 보여주자 한예슬비서와 진현모이사 강민창 대표 그밖에 쇼타임 직원들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납치 안 당한 게 어디에요. 아이고 놀래라.."
"일단 연락해봐 얘 하나 때문에 아침부터 이게 뭔 지랄이야!"
아침부터 철없는 대표 때문에 소란스러워진 사내, 안도감이 불만으로 변하는 건 한 순간이였다.
"여보세요?"
"이 미친새끼야 갑자기 미국에는 왜 갔어? 가면 간다고 문자라도 한통 남겨뒀어야지! 너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 몇명이 지금 걱정하면서 뛰어다닌 줄 알아? 네가 그러고도 회사 대표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실종신고도 했어 이 또라이 자식아!!!"
'나도 말 좀 하자 이자식아'
한번도 끊김없이 속사포로 내뱉는 상수의 욕설,
순간 뒤에 진현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움찔했으나 이번 만큼은 같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 있었다.
"크흠.. 미안해 나도 새벽에 급하게 연락받고 오게 된 거라서 설명할 겨를이 없었어 근데 내가 지금 또 미팅이 있어서 있다 1시간 뒤에 다시 연락 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야야야!!"
이들의 잔소리가 더 길어지기 전에 잽사게 전화를 끊은 석진을 보며 박준택이 걱정되는 듯,
"야 너 괜찮겠냐..?"
"형 때문이거든요? 됐고 여기에요?"
콤럼비아 레코드와는 다르게 회사 앞에 아무도 나와 있지 않는 리퍼블릭 레코드사를 열고 들어가자 안내 데스크 직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헤이 JTP 무슨 일이야?"
"미스 베티양을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이 되어있는데 연락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안내 데스크에서 수화기를 들었을 때 손에 도넛을 들고 들어오는 베티를 향해 수화기를 내려놓고 손을 흔들었다.
"헤이 베티!"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 둘을 무시 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던 베티 길핀이 멍하니 쳐다보는 우리와 시선이 마주치자 잠시 멈칫 하더니 물었다.
"혹시 그쪽이 미스터 JTP?"
"네 맞습니다. 베티양 이쪽은 한국에 있을 때 제 파트너 미스터 킴입니다."
가볍게 눈 인사를 주고 받은 우리가 이동 한 곳은 작업실이 아닌 그녀의 사무실이었다.
"미스터 JTP의 노래는 잘 들었어요. 우리 리퍼블릭 레코드사의 스타일을 아시겠지만 우리는 팝과 흑인음악을 주로 다루는 편인데 한국에서 작곡을 하던 미스터 JTP가 어떻게 우리 감성에 맞는 음악을 만들었는지 정말 신기하더군요."
그녀의 극찬에 몸둘바를 모르던 박준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흑인 음악을 동경해와서 머나먼 한국에서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여기 리퍼블릭 레코드에서 관심을 가져준 것만으로도 제겐 크나 큰 영광입니다."
황송해하는 박준택의 허벅지를 석진이 꼬집자 '아차'싶었던 박준택이 서둘러 자세를 고쳐 잡으며 앉았다.
'그렇게 겸손떨지 말라고 충고 했는데!!'
"mase가 당신의 노래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에게 노래를 이미 보냈는데 자세한 부분은 이 쪽 연락처를 통해 얘기하시면 됩니다."
'mase라.. 잘 어울리겠네'
-똑똑똑!
'헙..! 이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온 귀엽고 아담한 그녀는 미래에 빌보드 Hot 100 차트 Top 3를 모두 자신의 곡으로 채운 솔로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였다.
"mase가 만나려면 지금 오라는데 같이 가실래요?"
"네? 지금 말인가요?"
당황한 베티 길핀이 되묻자 가볍게 고개만 까딱였다.
"그럼 실례지만 먼저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티양"
"네 좋은 결과 바랄게요"
인사를 마치고 차에 타려는 데 차문 앞에서 그녀가 손으로 석진을 막았다.
"당신은 누구야?"
"나? 저 사람 파트너"
"넌 안돼 초대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 바이~"
"무..뭐??"
도와달라는 듯 박준택을 쳐다보았지만, 두손을 모으고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내고선 떠나버린 나쁜 형 때문에 홀로남은 석진,
"에이씨.. 할일도 없는데 뭐하지?"
졸지에 미아가 되어버린 석진이 휴대폰 목록을 뒤저 보다 눈에 띄는 연락처를 발견하곤 통화버튼을 눌렀다.
***
"어떻게 할꺼야 해리슨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석을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야?"
작업실에 앉아 있는 콜럼비아 레코드 직원들과 머라이어 캐리가 심각한 얼굴로 CD를 듣고 있는데 해리슨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연락처라도 내놔 내가 직접 컨택 해볼테니까!"
"그보다 이거 부른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 설마 아까 그 애송이는 아니겠지?"
제이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해리슨이 웃었다.
"설마 가수라곤 했지만 저렇게 풍부한 음역대가 동양인에게서 나올리가 없어"
결국 해리슨도 도저히 참기 힘든 모양인지 박준택의 명함을 꺼내 연락을 넣었다.
"미스터 팍 바쁠텐데 미안하네"
"아닙니다. 대표님 무슨 일이시죠?(저기서 왼쪽에 있는 리퍼블릭 타운으로 들어가)"
통화중에 아리아나 그란데의 음성을 들리자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뭐해! 당장 못 가게 막아!!"
"야 너희 지금 어디야? 당장 말해!!"
해리슨의 전화를 뺏어 제이미와 머라이어 캐리가 소리치자 짜증이 나버린 아리아나 그란데가 통화버튼을 꺼버렸다.
-뚜뚜뚜..
"이런 씨x!!! X같은 "
분노를 표출하는 그녀들을 말리는 해리슨이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이럴게 아니라 리퍼블릭 레코드사에 연락을 하면.."
흥분한 그녀들이 해리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사무실을 나가버리자 서둘러 그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같이 안 갔다구요?"
***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하 자네는 여전히 젊구만 오랜만에 말 동무가 되어 주려고 여기까지 왔는가?"
반갑게 석진을 맞이해주는 그는 넷플러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대표였다.
"하하 물론이죠 근데 제가 아직 한끼도 못 얻어먹었는데 근처에 맛있는 레스토랑 없겠습니까?"
"젊은 대표가 끼니를 거르고 다녀서야 쓰나 내가 자주 가는 근사한 스테이크 하우스가 있다네 같이 가세나"
배고픈 척 불쌍한 표정을 짓는 석진을 보며 웃는 스팅스 대표를 따라서 근처 스테이크 하우스에 도착하자, 자신을 버렸던 박준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지금 어디야??"
"흥! 알게 뭡니까? 어디서 밥이나 얻어 먹으며 살고 있겠죠!"
"장난 하지 말고 급해 너 지금 어디냐고(전화 내놔! 야!! 너 어디야? 리퍼블릭 레코드야? )"
"뭐야? 넌 누구야?"
안 그래도 배고픈데 자신을 버리고 간 박준택이 시끄럽게 굴자 메뉴를 고를 수가 없었다.
"저 이제 첫끼 먹으러 왔어요. 방해 하지 마시고 볼일 보세요"
통화를 끊고 메뉴를 고르는데 계속 오는 연락에 전화기를 꺼버렸다.
"급한 일 아닌가? 난 괜찮으니 그냥 받으시게"
"아닙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요~ 지금 제겐 스테이크가 제일 중요하죠 하하 저는 티본 스테이크 600g 안심 스테이크 600g 토마호크? 이거 기대되네요 토마호크 하나까지"
중학교 이후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덕분에 과식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기내에서 숙면을 취하느라 기내식 조차 못 먹고 하루 꼬박 굶은 석진,
향긋한 스테이크 향에 취해 간만에 식욕이 폭발해버렸다.
"그..그걸 다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한창 먹을 나이라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게다가 살면서 음식 남겨 본 적이 없습니다. 하하"
"너무 무리 하지 말게나 이 집 스테이크 맛이야 내가 보장 한다만.."
스팅스의 염려는 테이블에 지글지글 세팅 되는 티본 스테이크 소리에 묻혀 버렸다.
-지이이익~~!!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소리가 있다면 이 소리가 아닐까? 나중에 작곡할때 꼭 넣어야겠다.'
굶주린 늑대가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듯 석진의 입은 이미 전투태세로 접어 들었다.
-스으윽! 냠!
"세상에서 가장 빨리 녹는 솜사탕 집이 바로 이곳이군요!?"
"하하하 이 친구 맛있게도 먹는 군 천천히 들게"
가볍게 한 조각만 썰어 먹어봤는데, 말 그대로 녹았다.
고기가 너무 부드러워 포크로 누르기만 해도 썰리는 수준,
'이렇게 맛있는 고기에 나이프를 이용하는 건 실례야'
체면도 잊은 채 이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를 포크로 푹 찔러 그대로 물어 뜯었는데 예상대로 입안에서 쥬시한 육향의 감칠맛이 혀끝을 마비 시키는 것만 같았다.
반면 석진의 식사 모습을 힐끗힐끗 보던 스팅스 대표가 물었다.
"그렇게 맛있는가? 나도 한입.."
아주 조심스럽게 묻는 그에게 입으로 베어 물지 않은 쪽으로 한 덩어리 썰어 건네주자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였다.
"이렇게 먹어보세요 이렇게!"
'고기는 뜯어먹어야 제맛'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것처럼 석진의 식사법을 따라하는 스팅스 대표,
마치 자신이 호랑이가 된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단히 신선하군 이렇게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자네 참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구만 하하"
"말했잖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빨리 녹는 솜사탕이라고 이런 고기를 드시며 일하시니 그렇게 멋진 회사를 만드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두번째로 나온 안심 스테이크 역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마지막 토마호크가 나왔을 때 우리 테이블을 향해 소리치는 무리가 있었는데,
"저깄다!! 야! 한가롭게 스테이크나 썰고 있을 때야!?"
머라이어 캐리와 제이미가 우리 테이블을 향해 걸어오자 같이 식사를 하던 스팅스가 놀라며 물었다.
"이쪽으로 오는데 혹시 자네 손님인가?"
"손님은 무슨.. 불청객이라고 해두죠"
그녀들이 부르던 말던 눈 앞에 있는 토마호크를 집고 맛깔나게 물어 뜯자 앞에 선 제이미가 한소리했다.
"거참 야만스럽게도 먹네 얼른 일어나!"
'아씨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손에 든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내려놓으며 차가운 말투로 얘기했다.
"지금 앞에 계신 분과 식사중인거 안 보입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행패 부리면 제가 받아줘야 하는 건가요? 그게 당신들의 비지니스 방식입니까?"
솔직히 급한 쪽이 먼저 찾아오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본인들의 비지니스만을 주장하는 방식은 굉장히 불쾌했다.
"내 곡을 사고 싶거든 정중하게 다시 찾아오세요. 아까도 얘기 했을텐데? 나도 한국에서 기획사 사장이라고 꼭 당신들이 아니여도 그 CD그대로 여기서 데뷔하면 그만이야"
"네가 그런 명곡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겠어? 그건 곡을 썩히는 일이라고!"
'얘네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그거 내가 부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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