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베다(God S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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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드니안
작품등록일 :
2022.07.1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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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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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별

DUMMY

이별




달빛이 유난히 옅은 날, 음험하고도 불길한 기운이 맴도는 한 건물의 지하실에서 어둠을 품은 비밀스러운 목소리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목소리들에 담긴 위험하고도 사악한 기운은 주변의 공기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고 어떤 생명체들도 그들의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 중 유난히 분노를 담은 목소리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무형의 경계를 뚫고 나가고 싶은 듯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나태의 그릇이 깨진 것입니까! 대업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는데!”


다소 흥분된 목소리와 반대되는 너무나도 차분하고도 무감정해 보이는 목소리가 답변을 했다.


“예상 밖의 일은 늘 존재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몇몇의 뛰어난 후보들이 그를 대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여섯 개의 그릇은 온전히 완성되었습니다.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나태의 그릇은 나태의 결과로 신의 품으로 간 것 일뿐입니다.”


그러나 흥분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직도 더 해명을 필요로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희생이 필요로 합니다. 그릇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숭고한 희생이 동반됐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리 허무하게 깨져버리다니요. 십 년 전에 깨졌던 또 다른 그릇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이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그 말의 뜻은 제가 책임지고 목숨이라도 내놓으라는 뜻인가요?”


전혀 흥분하지 않은 무감정한 말투였지만 알 수 없는 위엄과 권위를 담고 있었다.


“아니, 아닙니다. 감히 대제사장님께 그런···, 제 말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조금은 수그러진 말투였지만 여전히 질책의 의미는 담겨 있었다.


“그 부분은 조사 중입니다. 잔영들을 보냈으니 곧 진상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기세 좋던 목소리가 수그러들자 또 다른 목소리가 음흉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자들은 처리하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날린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들은 이번의 일로 이제 더욱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될 것일 텐데 걱정입니다.”


“그들을 처리하는 것은 애당초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목적에 맞는 도구로 사용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곧 잔영들로 처리하겠습니다. 아니면 완성된 그릇들의 첫 사냥감으로 이용해도 괜찮을 것 같군요.”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제가 관리하고 있는 시기의 그릇은 요즘 피 맛을 못 봐 미쳐서 날뛰고 있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그들을 처리하겠습니다.”


음흉한 목소리를 가진 자의 제안에 대제사장이라고 불리는 자는 약간의 고민을 했지만 곧 허락했다.


“좋습니다. 다만 잔영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아직 모든 것을 세상에 공개하기엔 이른 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계획은 다음 모임에서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제사장의 말을 끝으로 어둠의 존재들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깊고 깊은 어둠의 공허 속에서 사악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올린 보고가 사실이었습니다. 나태의 그릇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한 존재는 다른 그릇들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흠······.”


대제사장이라고 불리는 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이 아주 많이 복잡해졌군요. 어떤 것이 문제일까요? 이 참담한 결과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다른 그릇들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둠의 추종자들은 일곱 그릇의 완성이라는 허망된 생각에 매달려 있기에 굳이 그것을 방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 다른 생각을 품는 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음... 혹시라도 제 자리를 노리기 위해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들이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잔영의 눈을 피해 배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설령 배신한다고 그들이 실질적으로 얻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한 일말의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조사를 해주셔야할 것 같습니다. 만약 제 추측이 맞다면 아주아주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좀처럼 표정과 말투의 변화가 없던 대제사장이라는 인물의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드리웠다. 그런 일이 처음이었는지 공허 속에 있던 존재는 섬뜩함과 의문스러움의 중간 쯤 되는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



카인은 긴 하루를 마치고 콘웰 집사의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이었기에 모두가 잠들어 있었지만 콘웰은 따듯한 차를 내오며 카인을 맞이했다. 카인은 춥고 피곤함을 느꼈기에 콘웰이 준 차를 단숨에 마시고 온기를 회복했다.


“바깥일은 잘 보고 오셨습니까? 도련님과 에릭 군은 축배를 들다가 잠에 들었습니다. 내내 카인님을 기다리다가 잠든 것이니 너무 서운해 하시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콘웰의 따듯한 말에 카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 몸을 뉘였다. 그리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그에게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 날이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중요한 일은 체사례에게 무엇인가 직접적인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벨제붑이 악귀에게 흡수한 피의 양으로 봤을 때 체사례는 그것을 만들기에 수많은 살인을 하며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분명 악귀의 죽음은 체사례에게 큰 타격일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더해졌다. 자신이 악귀를 없앰으로 인해 체사례는 다른 악귀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또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불행에 빠져야 한단 말인가?


근 몇 년간은 큰 연쇄살인사건은 없는 듯 했는데 자신이 악귀를 죽임으로 인해 또 다시 큰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한편 새로운 연쇄살인 사건이 생긴다면 그것을 통해 체사례를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악귀든 납치범이든 악을 쫓다보면 그 끝에는 반드시 체사례가 있을 것이 때문이다.


물론 추적을 할 수 있는 것은 체사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분명 악귀를 제압할만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악귀를 죽인 자를 찾아 나설 것이다. 체사례가 부리는 유령 같은 존재들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진짜 떠나야할 시간이 온 것이다. 사실 얼마 정도는 더 머물며 인간의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었지만 처음의 결심보다 조금 빨리 떠나는 것일 뿐이다. 잠시나마 그가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알게 해준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생각해보면 죽음의 용병단에서도 그랬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의 친밀감이나 관계의 발전은 금물이었다.

그들 모두 자신 때문에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 때문에 불행해진 존재는 니엘 하나로도 충분했다.


카인은 아직도 니엘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


새 지저귀는 소리에 눈이 뜬 에릭은 제일 먼저 카인의 방으로 향했다. 거실에서 마주친 콘웰은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이른 아침임에도 혼자서 모두의 식사를 다 준비해놓고는 에릭을 반겼다.

구수한 양송이스프 냄새와 갓 구운 호밀빵을 보고는 잠시 한 눈을 팔았지만 에릭은 자신의 원래 목적인 카인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그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카인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방은 깨끗이 정리가 되어있었다.


불길한 마음이 든 에릭은 카인의 행방을 묻기 위해 콘웰에게 달려갔다. 다시 마주친 콘웰은 말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렇다. 카인은 떠난 것이다. 에릭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실 에릭도 카인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었고 무모함에 가까운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급작스러웠다. 검투 대회 우승정도는 같이 축하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최소한 작별 인사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여러 생각에 에릭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곧 에릭은 실망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카인은 바람 같은 존재이고 잡고 싶다고 잡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단지 그와 함께한 시간과 그에게 배운 것에 감사하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언젠가는 그처럼 강해져서 당당히 그의 앞에 설 것이라는 굳은 맹세를 스스로에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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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38. 신을 베다 +2 22.11.08 149 1 11쪽
93 37. 체사례 22.11.06 81 1 15쪽
92 36. 결착 (3) 22.11.05 65 1 11쪽
91 36. 결착 (2) 22.11.01 64 1 12쪽
90 36. 결착 (1) 22.10.29 72 1 13쪽
89 35. 인과의 결집 (5) 22.10.26 60 1 12쪽
88 35. 인과의 결집 (4) 22.10.23 75 0 14쪽
87 35. 인과의 결집 (3) 22.10.19 72 1 15쪽
86 35. 인과의 결집 (2) 22.10.15 74 3 13쪽
85 35. 인과의 결집 (1) 22.10.11 72 0 13쪽
84 34. 추적 22.10.09 81 2 14쪽
83 33. 루드비히 백작 (4) 22.10.07 72 1 11쪽
82 33. 루드비히 백작 (3) 22.10.05 66 1 11쪽
81 33. 루드비히 백작 (2) 22.10.03 76 2 12쪽
80 33. 루드비히 백작 (1) 22.10.01 78 1 12쪽
79 32. 자유 용병 파비안 22.09.30 89 2 13쪽
78 31. 신부 우르벵 (5) 22.09.27 79 1 14쪽
77 31. 신부 우르벵 (4) 22.09.24 72 0 13쪽
76 31. 신부 우르벵 (3) 22.09.23 77 0 12쪽
75 31. 신부 우르벵 (2) 22.09.22 85 0 12쪽
74 31. 신부 우르벵 (1) 22.09.21 85 2 11쪽
73 30. 베르톨도 이야기 (4) 22.09.20 81 2 12쪽
72 30. 베르톨도 이야기 (3) 22.09.19 78 2 12쪽
71 30. 베르톨도 이야기 (2) 22.09.18 74 1 11쪽
70 30. 베르톨도 이야기 (1) 22.09.17 87 2 13쪽
» 29. 이별 22.09.16 89 2 9쪽
68 28. 마녀들의 집회 (2) 22.09.15 93 1 13쪽
67 28. 마녀들의 집회 (1) 22.09.14 82 1 12쪽
66 27. 무투 대회 (6) 22.09.13 83 1 13쪽
65 27. 무투 대회 (5) 22.09.12 81 2 15쪽
64 27. 무투 대회 (4) 22.09.11 87 1 12쪽
63 27. 무투 대회 (3) 22.09.10 85 2 11쪽
62 27. 무투 대회 (2) 22.09.09 87 2 13쪽
61 27. 무투 대회 (1) 22.09.08 92 1 14쪽
60 24. 프리츠 하버 (2) 22.09.07 99 1 11쪽
59 26. 복수의 시작 22.09.06 101 0 11쪽
58 25. 여행 22.09.05 94 1 13쪽
57 24. 프리츠 하버 (1) 22.09.04 101 1 14쪽
56 23. 해적 (4) 22.09.03 96 1 15쪽
55 23. 해적 (3) 22.09.02 97 1 14쪽
54 23. 해적 (2) 22.09.01 99 1 15쪽
53 23. 해적 (1) 22.08.31 111 1 15쪽
52 22. 항해 (2) 22.08.30 107 2 11쪽
51 22. 항해 (1) 22.08.29 110 0 13쪽
50 21. 귀향 (3) 22.08.28 111 2 14쪽
49 21. 귀향 (2) 22.08.27 120 2 13쪽
48 21. 귀향(1) 22.08.26 122 2 11쪽
47 20. 생환 22.08.25 119 1 14쪽
46 19. 태초의 기억 22.08.24 11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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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16. 폭풍 전야 (3) 22.08.18 119 1 14쪽
39 16. 폭풍 전야 (2) 22.08.17 108 1 13쪽
38 16. 폭풍 전야 (1) 22.08.16 116 1 12쪽
37 15. 죽음의 용병단 22.08.15 117 1 10쪽
36 14. 죽지 못하는 이유 (2) 22.08.14 118 2 16쪽
35 14. 죽지 못하는 이유 (1) 22.08.13 136 2 11쪽
34 13. 첫 출정 (4) 22.08.12 115 1 10쪽
33 13. 첫 출정 (3) 22.08.11 119 1 12쪽
32 13. 첫 출정 (2) 22.08.10 129 1 11쪽
31 13. 첫 출정 (1) 22.08.09 148 2 12쪽
30 12. 되살아난 불씨 (3) 22.08.08 116 1 11쪽
29 12. 되살아난 불씨 (2) 22.08.07 116 2 13쪽
28 12. 되살아난 불씨 (1) 22.08.06 127 3 12쪽
27 11. 부러진 날개 22.08.05 124 4 12쪽
26 10. 날갯짓으로 하는 저항 (4) 22.08.04 124 2 13쪽
25 10. 날갯짓으로 하는 저항 (3) 22.08.03 125 2 11쪽
24 10. 날갯짓으로 하는 저항 (2) 22.08.02 130 1 11쪽
23 10. 날갯짓으로 하는 저항 (1) 22.08.01 136 1 13쪽
22 9. 조사 (3) 22.07.31 146 1 11쪽
21 9. 조사 (2) 22.07.30 145 1 10쪽
20 9. 조사 (1) 22.07.29 149 2 13쪽
19 8. 악의 실체 (3) 22.07.28 194 2 14쪽
18 8. 악의 실체 (2) 22.07.27 179 4 12쪽
17 8. 악의 실체 (1) 22.07.26 183 2 14쪽
16 7. 악의 전조(3) 22.07.24 175 2 11쪽
15 7. 악의 전조(2) 22.07.24 185 2 9쪽
14 7. 악의 전조 (1) 22.07.24 223 1 10쪽
13 6. 나비가 되다 (3) 22.07.21 221 4 11쪽
12 6. 나비가 되다 (2) 22.07.21 220 5 12쪽
11 6. 나비가 되다 (1) 22.07.21 259 3 15쪽
10 6. 각자의 사정 22.07.18 261 4 15쪽
9 5. 만남 (3) +1 22.07.18 273 4 15쪽
8 5. 만남(2) 22.07.18 289 5 10쪽
7 5. 만남 (1) +2 22.07.17 320 5 14쪽
6 4. 입학 22.07.17 375 7 10쪽
5 3. 염소젖으로 자란 아이 (2) 22.07.13 409 7 9쪽
4 3. 염소젖으로 자란 아이 (1) +2 22.07.13 518 10 14쪽
3 2. 저주받은 탄생 (2) +2 22.07.11 689 9 15쪽
2 2. 저주받은 탄생 (1) 22.07.11 1,108 11 13쪽
1 1. 죽지 못하는 남자 +2 22.07.11 2,090 1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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