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22. 치열한 영업 신경전
굽이쳐 흐르는 한강의 야경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우주통신 정선규 사장과 H대학교 배명호 교수는 "드론" 이라는 미래의 월척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늦은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우리 나라는 그렇다 치고, 미국은 민수용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민수용 드론 시장이 3~4년 후에나 현실화 될 거라는 배명호교수 얘기에 조바심이 난 정사장이 외국의 시장동향은 어떤지 물어본다.
"예, 미국은 민수용 드론이 기술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수용 상용화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매우 엄격합니다."
"미국은 자유국가라서 웬만하면 다 허용하는 거 아니오?"
"아유~ 무슨 말씀을요. 자유 민주주의다 보니까, 자칫 법규를 잘못 정했다가는 여기 저기서 두드려 맞으니까, 정부에서 법규제정 단계부터 발생 가능한 문제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집행하느라고 청문회다 뭐다.. 하 세월 걸립니다."
배교수가 민수용은 미국시장에서 그리 만만한 게 아니라는 듯 설명을 한다.
"여기 저기서 두드려 맞는다는 건, 언론사 얘기인가?"
"미국 언론사들은 럭비, 골프 같은 스포츠중계나, 사고발생 현장중계용 드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드론 상용화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문제가 되는 거지요."
"그러면.. 어디서 반대를 한다는 건가?"
정선규 사장이 이해가 잘 안된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오늘 인터뷰기사에도 나와 있습니다 만, 미국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가 배송 서비스에 드론을 활용하려고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화물 운송업체 노조가 가만히 안 있는 거지요!"
"허허~ 그렇기는 하겠네. 아무래도 운송업체 운전기사들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볼 거니까."
"그렇습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서 농산품이고 공산품이고 전부 트럭으로 나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 정치인은 기업체 후원금 없으면 안되거든요. 노조 파업하면 회사 망할 건데, 정치 후원금 대주던 운송업체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하, 우습지요?"
배명호 교수가 신이 나서 양손에 든 포크와 나이프를 휘둘러가며 얘기한다.
"아니, 그러면.. 미국은 우리보다 더 늦어 지는 거 아니오? 민수용은.."
"뭐,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돈 많은 아마존과 구글은 캐나다와 호주에서 이미 서비스 준비를 하면서, 미국 FAA(연방항공청)에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정치 후원금 대어준 상원과 하원의원들 총 동원 하겠지요, 하하."
"아니, 그러면 미국보다 외국에서 먼저 상용화를 한다는 얘기요? 배교수!"
"예, 그렇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사장님도 잘 아시는 DHL 있잖습니까? 그 운송회사는 이미 파셀콥터라고, 수평 날개 4개 달린 헬리콥터로 도서지방이나 산악지역에 의약품 배달을 시험운행 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우리나라도 거, 기술적으로 동력문제만 잘 해결되면 민수용이 상용화 되는 거는 더 당겨질 수도 있겠고 만 배교수!"
"예~ 사장님. ...사장님도 이 드론 시장 참여를 한번 검토해 보시지요. 무선통신도 좋습니다만, 드론 시장은 앞으로 비교가 안될 만큼 커질 겁니다."
배명호 교수가 드디어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며 정선규 사장을 유혹한다.
"그래도, 택배기사가 몇명이나 된다고.. 드론으로 대체 해 봤자 몇 대나 수요가 있겠소?"
드론이라는 이름도 오늘 처음 들어본 정선규 사장이 미심쩍어서 시장규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예, 사장님 당연히 그렇게 생각 드실 겁니다. 드론 시장에 대해서는 저도 구체적으로 조사해본 자료가 충분치는 않습니다만, 미국 방산전문 컨설팅 기업인 틸 그룹(Teal Group)이 발표한 게 있습니다. 4년 후에 60억 달러로 내다 봅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6조원이지요. 이 중에 민수용이 약 10%로 6천억 입니다. 물론 전 세계 시장규모 입니다만, 한국 경제규모가 4년 후면 10위권 안에 들겁니다. 그래서 한국시장을 5%만 잡아도 민수용 시장이 300억 아닙니까?"
거품을 물고 읊조리던 배명호교수 입가에 씹던 송아지 스테이크 흔적이 묻어 나고, 배교수는 목이 마른 듯 레드와인 잔을 기울이며 정사장을 바라본다.
두 사람이 미래의 드론 시장을 논하고 있는 그 시각, 정선규 사장의 미래인 아들 정현종 부장은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산 광안리에 신축중인 Y아파트 3개 건설회사 중 T건설회사는, H대학교 전기과 출신인 정선규 사장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전기부장으로 근무했던 회사여서, (주)우주통신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
이미 두 가닥 방식으로 설계한 도면과 견적은 T사에 제출했고, 내일은 T사에서 얘기를 전해 들은 D사 요청으로 두 가닥 방식의 설명을 위해서 만나러 가는 중이다.
소방설비 공사업체 면허도 소지한 (주)우주통신 작년 매출이 약 30억 정도이고, 그 중에 (주)태성에서 구입하여 납품하는 무선중계 설비 부분은 5억 정도 차지한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도 안 되지만, 이미 소방설비 부분은 소규모 업체들이 덤핑을 쳐서 남는 것도 없어서, 무선통신에 기대를 걸고 수 억원을 투자하여 배명호 교수에게 의뢰해 두 가닥 방식을 개발했던 것이다.
내년쯤에 무선통신 부분을 독식하게 되면 25억 정도는 목표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전체 매출이 50억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의 무선통신 시장규모는 100억 정도로 예상되지만, 아직은 기존의 LCX(누설동축케이블) 방식을 고집하는 건설회사들이 많아서 하루아침에 안테나 방식으로 바꿀수는 없을 테니까, 4분지 1정도 인 25억만 내년 목표로 잡고 있다.
(주)태성에서 년평균 4억에 사다가 5억 받고 팔면 마진이 1억인데, 한 달에 800만원 수익이 있는 셈이다.
(주)태성과 8년 넘게 거래하면서 남은 돈으로, 관련 건설회사 접대비 지출에 상당한 도움을 받은 셈이다.
더구나 (주)태성 이재성 사장의 기술 전수자인 배명호 교수가 두 가닥 방식을 개발해서 우주통신이 앞으로 무선중계 설비를 독식하게 되었으니, 간접적으로 이재성 사장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오늘 저녁에 중기은행 박대봉 부장에게 준 500만원도 태성 이재성 사장이 벌어서 준 거나 마찬가진데, 이재성사장 회사를 내려앉히는 비용에 쓰게 되어서 좀 미안하기는 하네. 아버지 뜻이지 내 생각은 아니니까 뭐.."
원래 남을 해코지 할 정도로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 정현종부장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서린다.
정현종 부장보다 하루 먼저 부산에 도착했던 무진전기(주) 김태경 전무도, Y아파트 건설회사 중에 (주)동남무선과는 우호적이면서 무진전기(주)와는 미지근한 관계에있는 D사의 전기부장을 접대하고 있는 중이다.
(주)우주통신이 꽉 잡고 있는 T사는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오전에는 우호적인 W사를 방문해서 자기들 주특기인 LCX(누설동축케이블) 방식 도면과 1차견적을 제출하고 200만원 봉투도 건넸다.
무진전기 사장에게는 3개 건설회사에 각각 300만원씩 900만원을 청구하여 비자금 현찰로 받고는, 그 중에 300만원은 본인이 챙기고, 나머지 600만원을 건설회사 마다 200만원 씩 배분해 쓰려고 작정하고 있다.
무진전기(주)는 작고한 선대 사장이 건설업계 출신으로, 전국의 고속도로 터널구간 무선통신 설비를 별다른 기술력이 요구되지 않는 LCX방식으로 독점하다시피 해왔고, 후계자인 젊은 아들, 현재의 사장은 김태경 전무에게 영업을 일임하고 있다.
매출은 년간 40억을 조금 넘기지만, 영업 판매관리비 지출이 워낙 많아서 회사의 재무구조는 점점 나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주)태성의 안테나 방식은 태성이 설계해 놓은 현장에 수주만 따오면 되면서 마진도 30% 정도 남길 수 있어, 태성의 박신배 이사와 밀착된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최근에 (주)우주통신이 두 가닥 방식을 들고나와 시장을 독식하려는 움직임을 간파하고, 우선은 양다리 걸치기로 돌아가는 추세를 지켜볼 생각이다.
어제 박신배 이사와 만난 저녁식사 후에 (주)우주통신 정선규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논현동 아파트 건으로 (주)태성이 두 가닥 방식을 알게 되었다는 정보를 전해주며 자기는 태성과 밀착된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보였던 것이다.
"이제는 무진전기도 안테나 방식을 적용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안테나 방식으로는 추정가격이 무진전기 절반 수준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내가 김전무를 도와 주고 싶어도 가격이 어느 정도라야 해볼게 아닙니까?"
T사의 친구로 부터 (주)우주통신에서 8억 수준의 안테나 방식 견적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우주통신에 기술설명 요청을 하면서, 우호적인 (주)동남무선에 도면을 보내어 견적요청을 하고 다른 안테나 방식 가격이 8억 선이라는 걸 알려 주었던, D사 전기부장이 김태경 전무를 못 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얘기한다.
해운대까지 나갈 필요 없다고 해서 건축현장 근처 회집에서 식사대접을 하고 2차는 룸살롱으로 모시려던 김전무는 절반 가격이라는 D사 전기부장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아연실색 해진다.
안테나 방식이라면 (주)태성 이거나 (주)우주통신 뿐인데, 우주통신이 (주)동남무선과 우호적인 D사에 벌써 접촉했을 리는 없고, 태성의 박신배 이사가 Y현장을 알면서도 엊저녁에 모른 척 시침을 뗐구나 싶어 화가 벌컥 난다.
"절반 수준이라고요? 어느 회사에서 그렇게 낮은, 말도 안되는 가격을 얘기합니까?"
"말도 안되는 가격은 무진전기 이지요! 어떻게 이런 터무니 없는 견적을 제시합니까? 5억 이라니요!"
되레 전기부장에게 핀잔만 받고 김태경 전무는 무안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절반 가격 제출한 회사를 알려줄 것 같지도 않고 하여, 김전무는 룸살롱 접대 계획을 변경하고 10만원 권 자기앞수표 20매를 억지로 건네주고 D사 전기부장과 헤어지고 만다.
"박신배 이런 죽일 놈! 동남무선에 2억정도 견적주고 나한테 내숭을 떨어?"
한개 건설회사당 5억으로 3개동 모두 15억을 목표로 했던 김전무는 그 절반이라면, 동남무선에서 2억 5천씩 3개동 합계 7억 5천 정도로 견적내고 있다는 얘긴데, 잘못하면 3군데 중에 한군데도 수주를 못 받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김전무는 D사 전기부장을 배웅하자 말자 박신배 이사에게 전화를 건다.
어제 회사에서 점심식사 후에 생산부에 들러 여현숙 반장을 성추행하고, 저녁에는 김태경 전무와 금가루 뿌린 일식 회를 먹고, 헤어져 룸살롱에서 혼자 양주 마시고 취해서 오늘은 회사 출근도 못한 채, (주)우주통신 정선규 사장을 만나 도가니탕 점심에 반주를 함께한 (주)태성의 박신배 영업이사는, 열심히 영업하느라 지친 육신을 사우나탕에서 숙면으로 회복하며 오후시간을 다 보내고, 이제 막 늦은 저녁식사를 하다가 김태경 전무의 전화를 받았다.
"예, 전무님 박신배 입니다. 부산에는 안 가셨던가요?"
"박이사,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요?"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는 김태경 전무의 전화 목소리에 박신배는 기분이 상한다.
"무슨 일인데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는 겁니까? 김전무님!"
"내가 화 안나게 생겼소? Y아파트에 견적까지 보내놓고, 나한테는 일언반구도 없이.. 물 먹이자는 거요 뭐요? 박이사하고 나 사이가 그리 밖에 안 되요? 그래도 나는 엊저녁에 우주통신 두 가닥 방식 정보까지 알려줬는데 말이지!"
박이사는 처음 듣는 Y아파트가 어쩌고 하면서 떠들어 대는 김전무 얘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Y아파트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김전무님!"
"부산 광안리 Y아파트를 모른단 말이오?"
"저는 처음 듣는데요! 그것 때문에 부산 내려가신 겁니까?"
"박이사는 정말로 몰라요? ... 그럼 뭐야? 동남이 아니고, 우주통신이란 얘긴가?"
김태경 전무가 잘못 짚었구나 싶어서 갑자기 목소리가 수그러든다.
"아, 이런 미안하오 박이사! 나는 또 태성에서 D사에 견적을 넣은 줄로 알고.."
"D사 견적 말씀이면, 동남무성에 우리가 견적을 보냈다는 거 같은데, 제가 모르게 나가는 견적은 없습니다 김전무님. 저는 엊저녁에도 영업현황표까가 다 까발려 보여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전무님은 Y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부산 간다는 말씀도 안 해주시고.. 참 서운하네요!"
박이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호흡이 가빠진다.
"아, 아.. 그래요 박이사! 내가 실수 했네. 미안하오, 미안해!"
김전무는 건성으로 박이사에게 사과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아,.. 태성이 동남무선에 준 게 아니면. 우주통신이 직접 D사에 넣었다는 얘긴데..어제 밤에 내가 직접 정선규 사장한테 전화걸어, 태성이 알아버렸다는 얘기를 했는데도 나 한테 Y아파트 건을 얘기 안 해준 걸 보면, Y가 크니까 3개동 건설회사 전체를 다 먹으려고 했구나! 두 가닥으로 독식하려면 1년은 더 걸릴 거고, 그때 가서 우주통신하고 손을 잡더라도, 이번 Y는 우리 LCX방식으로는 안되는 거고, 태성 중계방식을 잡고 들이 밀어서라도 7억에 수주해야 되겠다! 그럴 여면 아직은 박이사 신경을 건드려서는 안되겠구나!"
하고 주판알을 튕긴다.
"아이고~ 박이사,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소! 이거 미안해서, 내가 올라가면 거~하게 한턱 쏠테니까 오해 푸시오 박이사! 허허~ 내일 당장 본사에 전화해서 태성으로 Y아파트 도면 메일로 보내라 할거니까, 견적이나 속히 주시오. 데게 급하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Y아파트는 얼마 짜리나 되길래 그 난리를 치십니까?"
"음... 태성 판매가로 3개동 합해서, 한 5억에 맞춰주면 될 거 같은데."
"5억이요? 그렇게나 큰 현장이란 말씀입니까?"
"그래요. 부산 광안리에 짓는 지상 85층 고급 아파트 3개 동인데, D사, W사, T사가 한 개동 씩 나눠서 짓고, 준공시점도 거의 다 되어가요. 원래 지상층은 소방에서 빠졌던 건데 건물주 시행사가 추가로 넣으라고 한 모양이야. 견적 받아서 시행사 예가만 정해지면, 곧바로 공사 들어가야 되는 현장이라 급하오!"
김태경 전무의 설명을 들은 박신배 이사는 5억이라는, (주)태성의 반년치 매출에 버금가는 금액에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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