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통사 37. 흑장미 홀
삼통사 37. 흑장미 홀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의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내린 땅벌파 일행은 도동파 보스 계두식의 안내로 오야붕 이화수가 오라고 한 장미 홀을 향해 걸어갔다.
대로변 뒷길로 들어서 조금 걸어가자, 요상한 그림간판에 핑크 빛 조명이 비추는 맥주, 양주 홀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선 좁은 골목이 나온다.
얼핏 보아, 홀 안의 종업원 아가씨들이 많아야 네댓 명 정도일, 작은 규모의 유흥음식점들이 양쪽 합해서 열 두서너 개쯤 다닥다닥 붙어있다.
“와따~ 뭐 이리 후진 데서 파티 한다꼬 오라 캐씰꼬?”
삼천포 보스 털보 선장 심천보가 어이 없다는 듯 투덜거린다.
비까번쩍한 룸살롱이라도 기대하고 왔던 모양이다.
“말씀 조심하이소. 여기는 우리 오야붕 관할구역입니다.”
반보 앞서가던 계두식이 웃으면서 주의를 준다.
그 뒤를 따라는 9명의 사내들도 기대 이하라서 실망감을 드러낸다.
골목을 조금씩 걸어 들어가자 미닫이 출입문 윗부분 유리창 너머로,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난로 가에 손을 비비고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밤이 10시가 되어가는데 손님들이 아직 없는 건지, 아니면 남는 인원이 호객을 하는 건지, 추운 겨울 날씨에 몸을 녹이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반기는 얼굴로 쪼르르 창가로 다가온다.
그러다, 열 명이 넘는 건장한 사내들의 행렬에 놀라서 문도 안 열고, 속눈썹 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둑한 창 밖을 가만히 주시만 한다.
골목 중간쯤, 왼쪽의 제법 큰 홀 간판 앞에서 계두식이 걸음을 멈춘다.
분홍색 간판 위에 검은 색으로 그려진, 잎사귀 작은 장미 한 송이와 `흑장미` 라는 큰 글씨가 보인다.
금세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리고, 여섯 명의 제각각 옷차림의 아가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구에 양쪽으로 늘어서 다소곳이 배꼽인사를 한다.
문을 들어서자 복도 오른쪽 방문 앞에 다섯 명의 아가씨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앞에선 마담 같은 여자가 계두식을 반긴다.
“어서 오세요, 계보스님!”
“안녕 하셨습니까? 형수님!”
계두식이 형수라 부르며 깎듯이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리는 바람에 뒤따르던 사내들도 얼떨결에 머리를 조아려 목례를 올린다.
나이는 들어 보여도 단아한 듯 섹시한 마담의 안내로 일행은 방문 맞은편 큰 홀로 들어선다.
“오, 호~ 어서들 와! 수고들 많았내!”
꽤나 널찍한 홀에 길쭉한 테이블이 가로로 놓여있고 술상 위에는 맥주와 양주, 훈제치킨과 과일안주 등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맞은편 창문 쪽 중앙에 등받이 높은 고급 목제의자에 앉은 땅벌 오야붕 이화수가 들어서는 아우님들에게 손을 들어 반긴다.
“안녕하셨습니까? 땅벌 형님!”
계두식이 허리 꺾은 큰절을 올리고 주저 없이 테이블 가장자리를 돌아서 땅벌의 왼쪽 한 칸 건너 의자에 들어가 앉는다.
다음, 최 연장자 55살 천전파 보스 구덕배는 큰 절을 올리고, 땅벌의 오른쪽 한 칸 건너에 들어가 앉는다.
그 다음부터는 큰 절을 올린 뒤 땅벌의 지시에 따라, 삼천포 보스 털보선장은 땅벌을 기준으로, 테이블의 우측 상석, 사천과 거창 보스는 땅벌의 맞은편, 문도는 테이블 좌측 상석에 앉는다.
나머지 행동대장 급들은 자기 보스 옆 등, 알아서들 자리를 잡는다.
“와~ 파티장이 엄청 크고 좋습니다, 땅벌 형님!’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더 높은 걸 모르는 털보선장은, 나이 많은 천전파 보스와 자기가 땅벌의 우측에 앉게 되자, 자기가 문도보다 더 높아서 우의정 자리에 앉힌 줄 착각하고, 넌지시 기분이 좋아져서 올 때는 불평하더니 이제는 입에 바른 너스레를 떤다.
땅벌을 포함해 모두 12명의 덩치들이 한 자리씩 건너서 둘러 앉고, 땅벌 왼쪽에 앉은 흑장미 마담의 지시에 따라 11명 아가씨들이 사내들 왼쪽 빈 의자에 차례로 들어가 앉는다.
남녀 모두 24명이나 되어 제법, 영화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종로 우미관패들이 운집한 술집 장면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 골목에서 제일 참한 아가씨들만 골라서 왔습니더! 형제님들, 이쁘게 봐 주이소 예?”
오야붕 이화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왕비 같은 위엄을 갖춘 50살의 흑장미가, 보조개 있는 입가에 섹시한 미소를 지으며 좌중의 시동생들을 훑어본다.
그녀는 20살에 땅벌을 만난 후 지금껏 홀몸으로 살면서 이 골목의 여왕벌로 군림하고 있다.
“하이고 마, 천사가 따로 업슴니더, 형수님! 어디서 이런 이쁜 처자들을 데려왔습니꺼?”
땅벌과 마주 앉은 충성심 높은 거창보스가 오늘 처음 본 마담한테 형수라 부르며 아첨을 떤다.
거창보스는, 땅벌의 정면에 앉아서 충성심을 보이려는 건지, 아니면 선수 선발 때부터 으르렁거리던 사천파 보스와 화해라도 하려는 건지, 사천파 보스 오른쪽에 붙어 앉는 바람에, 유독 자기 혼자 오른쪽에 아가씨를 앉혀서, 지리산 골짜기에서 온 촌놈 티를 내면서 마담의 눈총을 받는 줄도 모르고 웃고 있다.
그런데, 문도의 오른쪽에 빈 의자 한 개가, 뒷벽에 붙어 놓여져 있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자매님들이 폭탄주 만들어 올리겠습니더, 괘한치 예?”
흑장미 마담의 한 마디에 아가씨들이 익숙한 솜씨로 맥주 컵에 맥주와 양주를 적당량 섞어서 재주껏 폭탄주를 만들어 옆자리 서방님께 바쳐 올린다.
“자~ 다함께 승전의 축배를 들자!”
땅벌이 흑장미가 바친 폭탄주 잔을 높이 치켜든다.
“우리 땅벌 오야붕 형님의 만수무강과 우리 땅벌 형제들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땅벌 만세 삼창을 하겠습니다. 땅벌 만세! ~”
“땅벌 만세!, 땅벌 만세!, 땅벌 만세! ~”
계두식의 선창으로 12명 땅벌파 보스급들의 만세소리가 흑장미 홀을 넘어 진주 시내 유흥가 뒷골목에 울려 퍼진다.
“그래, 인자 두식이 아우가 승전보고 함 읊어 봐라!”
모두들 폭탄주를 단숨에 원샷으로 비우고 아가씨들이 다시 폭탄을 장전하는 동안, 안주를 집어 먹으며 땅벌이 왼쪽 흑장미 옆에 앉은 계두식을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낸다.
“예, 형님! 경과보고 드리겠습니다. 에, 대표선수 7대 7로 무작위 집단 맞장을 떴습니다. 우리가 6대 1로 압도적으로 이겼는대, 마창패 새끼들이 진해파를 연장 들리가 잠복 시키 놨다가 쳐들어 왔다 아입니까?”
계두식이 어깨를 좌우로 우쭐거리며 실감나게 설명한다.
“시합 전에, 연장 쓰모 반칙패라꼬 안했더나?”
“와, 안 했어요! 지가 그, 신창원이 오야붕한테 확실히 말해 줬씁니더!”
땅벌로부터 세 사람 건너 멀리 우측상석에 앉은 삼천포 보스 털보선장이, 자기가 대표로 나서서 창원파 오야붕과 당당하게 결투 규정을 담판 지은 사실을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어? 천보 니가 대표로 나섰어? 여그, 덕배가 안 하고?”
정훈의 도움으로 동방호텔에 앉아서 드론이 보내온 생생한 동영상을 보고, 현장 사항을 다 파악하고 있는 땅벌이, 모른 척 시침을 떼고 우측에 앉은 55살 최 연장자 천전파 보스를 돌아본다.
“아, 예. 그게 저..”
구덕배가 대표자리를 털보에게 내 주게 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우물거린다.
“아, 예 큰 형님! 그게 어찌 됬냐면요, 창원파 아~들이 차에 헤드라이트도 안 끄고 안 내리니까, 선장 형님이 썽이나서 뛰 나갔다 아입니꺼!”
문도 외에 유일하게 마창패 구마를 때려 뉘여, 문도가 일부러 자기 왼쪽에 불러 앉힌 천전파 행동대장 천전이, 성급했던 털보선장을 지적하면서 자기 보스인 구덕배를 옹호하고 나선다.
“아~ 그랬더나? .. 천전이 니도 대표로 나갔나?”
다 아는 땅벌이 보스들 얘기에 끼어든 천전을 나무라지 않고 능구렁이처럼 슬쩍 화제를 돌린다.
“예, 형님! 천전이 야가 바로 내 앞에 있는 구마산 대표 한 놈 때려 잡았습니더! 그 바람에 제가 그 자슥들 원형진을 깨부실 수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문도가 약간 순서를 바꿔서 천전의 공치사를 하며 두둔해 준다.
“아~ 그랬어? 천전이 니, 마이 컸내! 쟈 한테 내 술 한잔 건니 조라!”
“네, 오라버니! 천전 대장님, 하사 주 받으시지요!”
땅벌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흑장미가 땅벌의 빈 컵에 폭탄주를 만들어 좌측 아가씨를 통해 전달해서 천전에게 건네준다.
땅벌과 나머지 사내들도 새 잔을 들어, 하사 주 잔을 받고 벌떡 일어 선 천전을 향하고,
“영웅, 천전을 위하여!”
하는, 땅벌의 구호를 복창하며 팔을 쭉 뻗은 뒤 원샷으로 마셔 비운다.
“캬~ 오늘 술 맛이 와 이리 좋노? 장미 니가 여그다가 꿀 섞었재? 허허. 술 맛 쥐긴다!”
험상궂은 얼굴이 벌개진 땅벌이 면상을 씰룩거리며 흑장미의 허리를 껴안는다. 여자를 함부로 다루는 것이 잘난 사내인 줄 알고 있는 건달들의 습성이 자기도 모르게 수하들 앞에 드러난다.
“형님, 우리는 짱개만 눈티 쪼매 다쳤고, 저기 코모도 형제가 혼자서 다섯 놈이나 완전히 개 박살 내서, 그 놈들 몇 달간은 입원 할 겁니다, 형님!”
계두식이 문도의 활약을 치하하면서 넌지시 털보 선장은 한 일이 없음을 강조한다.
“와~따, 우리 코모도 아우가 새끼들 완저이 다 떼리 뿌사뿐나? 캬~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창원에다가 와서 붙어보라 캔기라! 허허. 자, 코모도! 니는 내 잔 직접 받아 묵거라! 컵, 날리모 받을 수 있겄재?”
땅벌이 빈 맥주 컵을 들고 3미터 앞, 좌측 상석의 문도를 바라본다.
“예, 형님! 맘 놓고 던지 십시요!”
-휘릭~
-싹!
땅벌이 던진, 속에 양주 잔 든 빈 맥주 컵이, 수직 상태를 유지한 채 뱅글 돌면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테이블에 가만히 손을 얹고 꼬나보던 문도가 거의 코 앞에서 가볍게 컵을 잡아 낸다.
“야!~ 솜씨 좋습니더, 코모도 형제요!”
거창 촌놈 보스가 탄성을 지르며 제일 크게 손뼉을 치고, 아가씨들이 흑장미 마담 따라서 짜악짝, 짝짝짝 기생박수를 쳐준다.
“오야붕 오라버니, 저 코모도 형제분은 특별상을 내리셔야 되는 거 아입니까? 부상을 제가 준비해도 될까예?”
흑장미가 땅벌에게 말하며 야시시한 눈으로 32살 젊고 멋있는 문도를 바라본다.
“응, 그래라! 일등 품 아이모, 안 된다이! 허허.”
문도 왼쪽 아가씨가 날아와 받은 땅벌의 컵에 폭탄주를 만들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다.
` 발렌타인 18년 산, 양주나 한병 내어 오려는 건가? `
좌중의 사내 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옆에 앉은 아가씨들에게 나직이 물어들 본다.
- 작가의말
독자 여러분, 주말 동안 잠시 쉽니다.
제 서재에 오셔서 다른 글, 군대 체험 소설인
“짧은 군대생활 긴 이야기"를 한번 열어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삼통사 38화는 월요일(20일) 오후에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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