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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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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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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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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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재회 (4)

DUMMY

관광지로 유명한 호숫가, 한 척의 나룻배가 쾌속정처럼 빠르게 호수 중앙을 가로지른다.

그 위에는 남녀 한 쌍이 있었는데.

덩치 좋은 남성, 제이드가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다.


“끙차.”

“흠~.”


아그네스는 뱃머리에서 눈을 감은 채 콧노래를 부르고.

시원한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의욕적이었나.’


오전 16강전 경기를 가볍게 마치고, 오후 시간에 강을 보고 싶다는 공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제이드는 아그네스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어 조용한 곳을 찾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호수까지 오게 되었다.


‘뭐, 만족했으면 됐지...’


제이드는 머리를 비우고 지금 이 순간을 편하게 즐기려 애썼지만.

가슴은 진정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어느새 주황빛 노을이 져가고.

호숫가에 사람이라고는 나룻배를 탄 두 사람뿐이었다.


“드디어 내일인가.”


아그네스가 내뱉은 혼잣말에 제이드가 손을 멈춘다.

제이드는 감정의 동요를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내일이면 결승전, 그 말은.


“벌써 작별이네.”


아그네스의 말에는 아쉬움과 두려움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제이드와 놀기만 하고, 어떠한 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그녀는 쾰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 내일이, 마지막이야.”


우드득.

제이드가 붙잡고 있던 노가 바스러진다.

아그네스는 아직 의식하지 못한 제이드에게 손가락을 들어 알려주었다.


“노가 부서졌네.”

“...상관없어.”


호수에 비친 노을이 그들의 어두워진 낯빛을 밝혀주었다.

고요한 호숫가를 오랫동안 둥둥 떠다닐 때.

심각한 표정의 제이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그네스, 내일이면 호위 종료야.”


제이드의 굳은 표정을 보고도 아그네스는 방긋 웃어 보였다.


“정말이지 즐거웠어.”

“너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아마도. 죽지 않을까?”


제이드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침음이 흘러나온다.

무덤덤한 대답으로 보였지만, 분명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너도, 망명하지 않을래?”


대답을 알면서도 제이드는 망설이며 운을 떼고 만다.


“그것도 좋을지도.”


잠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전쟁이 일어날 거야.”


곧바로 거절당한다.


“죽는 건 국민들이야.”


제이드가 고개를 들어 아그네스를 바라보자.

그녀의 올곧고 굳센 눈동자 속에서 흐리멍덩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보 같군.’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도망치라는 말을 하다니.

제이드는 그녀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나를 믿는 이들이 많아. 그들의 희망을 버릴 수 없어.”


그녀가 지은 힘겨운 미소가 너무나도 눈부셔서 제이드는 눈을 감아버렸다.

언젠가 자신이 여왕을 죽여서, 아그네스가 자신에게 복수심을 가질지라도.


“...아그네스, 난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해.”


제이드는 그녀가 부디 살아남아 주길 바랐다.

오랜만에 듣는 제이드의 다정하고 걱정이 담긴 목소리.

아그네스는 무너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물론이지. 네 소원도, 저버리지 않을 거야.”


제이드는 왈칵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있었지만.

아그네스는 이미 볼을 타고 내려오는 한줄기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정말 잘한 짓일까...’


결국 마음의 짐을 덜지 못한 상태에서.

제이드는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회의 마지막 날이 오고야 말았다.


*


오전에 준결승전까지 치르고, 이제 대망의 결승전만이 남아있었다.

제이드는 4강을 싱겁게 이기고 결승전에 올랐으며.


“...경과 다르게 난 그 이상한 수법에 당하지 않는다.”


다니엘도 마찬가지로 상대를 가볍게 제압하고 올라왔다.

기대에 찬 환호소리가 울려 퍼지는 경기장의 입구에서, 다니엘은 입을 쉬지 않았다.


“공주와 무슨 사이지?”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나?”

“다시 돌아갈 생각인가.”


제이드가 대답을 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그의 의중을 알고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마침내 제이드의 입을 여는 것에 성공했다.


“말이 너무 많아.”


변명도 설명도 아닌 오직 귀찮음과 짜증만이 드러난 대답.


“뭐라...!”


다니엘은 어처구니가 없어 제이드를 노려보았지만.

제이드의 기세에 압도당해 말이 끊어지고 만다.


“뭐가 그리 궁금해.”


건조한 말과 함께 내비치는 살기.

다니엘은 말을 할 수도,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대답해 줄 테니 똑바로 다시 말해봐.”


제이드의 머리 위로 악귀의 형상이 피어나면서, 무형의 기운이 다니엘을 압박하고.

다니엘은 덜컥 숨이 막혀왔다.


“아, 으으...!”


도저히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이 저절로 떨렸다.

딱딱, 딱!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가랑이 부근이 축축해지고 말았다.


*


“하, 이게 말이 되나? 중앙 기사단이 우승을 차지했다고?”


화려한 파티장에서 차분히 관망하던 제이드의 귀에 불만 어린 목소리가 꽂힌다.

이곳은 대회를 무사히 마친 공작가에서 열어준 연회장이었다.


“그러니까,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다니엘 경이 갑자기 기권이라니.”

“무슨 비열한 짓을 벌인 거 아니야?”


이제 공주와 제이드의 사이를 의심하는 종자들은 사라지고.

다른 음모론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결승전이 워낙 허무하게 끝났고 제이드가 항상 싱겁게 이겼던 탓에 의심의 여지가 많았다.


“이전 경기도 이상했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날아가?”

“경지를 넘은 초인이 아니고서야.”

“정말 몰래 마법이라도 쓴 거 아니야?”


물론 우승자에 대한 축하를 아끼지 않았지만.

어디나 불만은 튀어나오는 법이다.


“저것들이, 진짜.”


참다못한 클라크가 그들을 향해 한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괜찮아. 클라크. 냅 둬.”


제이드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클라크를 말렸다.


“단장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클라크는 의욕이 떨어진 제이드의 모습에 매우 걱정했지만.


“괜찮으니까 너도 저기로 꺼져. 저기 아가씨가 아까부터 널 보고 있던데?”


희미한 미소를 지은 제이드가 클라크의 어깨를 잡고 그쪽으로 밀어버렸다.


“으악!”

“어맛.”


클라크는 가까스로 충돌하지 않았고,

그 앞에 선 아가씨는 클라크의 대담함에 놀란 듯했다.


‘어맛은 지랄.’


냉소적인 태도로 그 꼴을 지켜보던 제이드에게 붉은 머리의 미녀가 포도주를 들고 찾아왔다.


“왜 이리 궁상떨고 있어. 애송아.”


어두운 보라색 계열의 드레스를 갖춰 입은 리나인.

그녀는 잔 없이 병나발로 마시며 근처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옷 색깔 하고는 진짜...’


제이드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리나인에게 물었다.


“라이언은 디아나 쪽인가요?”

“그래서 떫냐? 그 띠꺼운 표정 좀 치우지.”


확 눈깔을 찌를 듯이 두 손가락을 가져갔지만, 제이드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균형을 맞추려면 내가 이쪽으로 와야지 않겠어?”


제이드의 눈가에 가져간 손을 거두고 리나인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현재 대회 기념 파티는 두 개의 연회장을 쓰고 있었다.


“하여튼 꼭 선을 그어놓고 자기들끼리만 논다니까.”


귀족이나 초대받은 이들, 그리고 공작가 기사들이 참가하는 파티.

초대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파티 이렇게 두 분류로 나뉘었다.


“근데 쟤는 왜 여기 있냐? 여기 있을 급도 아니면서.”


분명 귀족들의 파티에 있어야 할 아그네스가 안쪽 구석 자리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거야 공주 마음이겠죠.”


이곳의 인물들은 그쪽으로 갈 수 없지만.

거기 사람들은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는 암묵적인 룰도 존재했다.


“참 그지 같네.”

“그건 동감합니다.”


웬일로 일치단결 한 두사람.

술을 다 마셨는지, 빈병을 흔들던 리나인이 다른 종류의 와인을 가지고 똑같은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제이드는 나직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그네스가 그리 말하더군요. 돌아가면 죽을 것 같다고.”


잠시 와인을 내려둔 리나인이 제이드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었다.


“도망치자고 말했는데 그래선 안된다고 했어요.”

“음. 그것 참. 불쌍하네.”


성의없는 답변을 끝으로 다시 병을 집어들었고.

잔을 한잔 따라 제이드에게 내밀었다.


“...”


제이드는 내민 잔을 한 번에 들이키고는 일어서서 아그네스를 향해 걸어갔다.


*


한창 파티가 무르익어갈 시간.

특정 귀족들의 연회장에 있어야 할 하이웰 공작가의 장남이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만날 수 있어. 이제야 얼굴을 보겠군.’


이전에 한번 제이드에게 넌지시 권유할 생각을하고.

먼저 후작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힌 것이 문제였다.


‘후작님이 제이드 경을 엄청나게 아끼시는군. 그렇게 훼방을 놓으실 줄이야.’


그 이후 후작은 눈에 불을 켜고 공자를 주시했고.

대회 대비를 핑계로 제이드와의 만남을 막았지만.


‘대회는 끝났고, 후작님은 아버지와 대화하고 계시지.’


결국 알프레드는 후작 몰래 빠져나와 제이드를 보러 가는 것에 성공했다.

연회장의 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공자를 알아보며 경례를 하고.


“공자님, 환영합니다. 무슨 용무이신지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안에 제이드 기사단장이 계신가?”


알프레드는 서둘러 제이드를 찾았다.


“네, 계십니다. 불러 드릴까요?”


당장이라도 찾아 나서려는 경비병을, 알프레드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아니, 뭘 그렇게. 내가 가도록 하지.”


문을 열고 들어간 알프레드는 얼마 안 있어 제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후작의 반응만 보아서는 꽤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는 듯하고.

이곳으로 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번은 찔러봐야지.’


제이드의 진행방향을 재빠르게 가로질러 그에게 도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이드 기사단장님. 알프레드 하이웰입니다.”


알프레도 공자가 등장하자마자 주변의 웅성거림이 짙어졌다.


“알프레도 님이시다.”

“어쩐 일로 오셨지?”

“제이드 경과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동부 쪽 인원들에게서 제이드의 안좋은 소문이 돌고 있지만.

하이웰 공작가의 후계자, 알프레드는 그들이 모략을 꾸미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앙 기사단장인 제이드 경을 의심한다니.’


중앙의 마법사들은 머저리가 아니고, 수도에 존재하는 마탑도 장식이 아니다.

중앙에서 문제없다고 판단했다면 신뢰를 해도 좋았다.


‘적당히 반응만 보고 빠져야겠어. 안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을 테니 오고 싶지도 않겠지.’


동부 기사들이 꽤 무례한 짓을 한 것을 알지만.

그 태도를 심하게 꾸짖을 수는 없다.

실제로 그가 처한 현실이 의심쩍어서 어떻게든 말이 나오고, 반발심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그가 직접 해결할 일이야.’


물론 알프레드가 제이드를 대면해본 결과, 그것도 오래가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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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1화 전출 (2) 22.11.03 101 0 11쪽
91 90화 전출 (1) 22.11.02 1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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