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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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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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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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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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선택 (1)

DUMMY

매캐한 연초 향도 독한 술 냄새도 돌지 않는 상쾌한 궁내.

코린느는 우울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됐다. 그냥 포기할래.”


짙은 한숨을 내쉬며 허망하게 중얼거리는데.

주어가 없었지만, 장내 모두가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러면 놓아줄 수밖에 없잖아.”


제이드는 그가 원하는 대로, 코린느의 손에서 벗어난 최초의 장기말이 되었다.

어째서 갑자기 여왕이 제이드를 포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녀가 직접 선언한 이상 더는 그를 쫓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책임을 질래?”


어쩔 수 없이 포기했지만, 여왕의 기분을 풀어줄 책임자는 필요했고.

화풀이 대상으로 선택된 것은.


“여,여왕님 살려주십시오...!”


저번에 의견을 제시한 기사였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바들바들 몸을 떠는 모양새가 불쌍하지만.


“아그네스를 이용한 방법이 실패했잖니. 책임을 져야지.”


여왕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건 누군가의 계략입니다!”


기사도 제이드를 데려올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으며, 실패를 예측하고 있었다.

둘의 사랑이 애틋하더라고 현실은 참혹했으니까.

문제는 기사도 당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제비들을 동원한 거지?’


공주를 희생양으로 이용한 적이 없다.

게다가 혼자 있을 때도 아니고 연회장을 노리는 어림도 없는 습격이라니.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기사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작전은 좋았는데. 참 안타까워.”


쾰른의 귀빈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재판을 위해 이곳으로 압송하겠다는 허무맹랑한 계획.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네 손을 벗어난 것도, 네 탓이지 않겠니?”


그 사이 여왕은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기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허탈감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말도 안 돼.”

“끌고 나가렴.”


어떻게 들었는지 모를 작은 목소리를 경비들이 알아듣고.

문을 열고 들어와 기사를 끌고 나간다.


‘공주님. 부디 살아남으시길...!’


기사의 마지막 소원을 끝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렇게 해야 뒷덜미 잡힐 일이 없다는 거지?”


소란스러움이 잦아들고 조용히 앉아있던 여왕이 허공을 향해 말을 내뱉는데.

마치 그곳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여왕의 시선은 한 공간을 뚜렷하게 향하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심증은 있겠지만, 물증은 하나도 없으니 추궁만 하다가 끝이 날것입니다.”


공간이 살짝 비틀리는 듯한 현상이 일어나고.

로브를 뒤집어쓴 신원불명의 인영이 등장한다.

가슴께에 그려진 노란색 펜타그램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의상.


“오랜만이야. 제대로 대화 하는 건 거의 2년만인가? 크흠, 저번엔 미안했어.”


여왕은 그의 등장에 놀라지 않았지만, 헛기침을 하며 무안해하고 있었다.


“이번엔 돌발 행동을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아, 나도 후회하고 있으니까. 예언이나 말해 봐.”


코린느도 정체를 모르는 수수께끼의 인물.

시시때때로 나타나 조언을 해주는 이였다.

경계하는 것과 별개로 여왕은 그를 신뢰하는 듯했다.


‘수상한 놈들이긴 하지만. 적은 아니지.’


활동영역은 물론, 집단의 이름 하나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아군으로 여기고 있었다.

제국과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은 파악한 데다가.


‘이 자의 예언이 없었다면 이미 쾰른은 지도에서 사라졌겠지.’


그의 도움으로 쾰른은 무사할 수 있었으니까.

첫 만남부터 가디언을 이용하는 기지를 제안하며.

쾰른을 안개 섬의 재앙으로부터 구원해 주었다.


“프리지아에 등을 떠밀린 아그네스 공주님은 다시 코린느님의 수중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 것 말고. 내가 원하는 건 따로 있다는 거, 알잖아?”


여왕의 닦달에 알고 있다는 듯, 예언자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달랜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코린느 여왕, 당신은 제이드를 손에 넣을 것입니다.”


예언자의 말에 여왕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경험한 바로는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게 언제인데?”


여왕이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묻는다.

현재 평소의 이미지랑 확연히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예언자도 여왕도 이를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알 것입니다. 제이드는 여왕님께 스스로 찾아올 겁니다.”

“그거 정말 기대되네.”


여왕이 무수한 상상을 펼치다가, 이제 물러나려는 그에게 물었다.


“근데 정말 너의 정체는 뭐지? 제국의 수뇌부들이 떠드는 소문의 근원이 너희야?”


순수한 호기심에 물어본 질문.

한순간 예언자의 얼굴에 조롱의 미소가 나타났지만, 빠르게 자취를 감췄고.

여왕도 이 부분을 눈치채지 못했다.


“모르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 알았어. 다음에 봐.”


의외로 순순한 여왕의 작별인사까지 받으며 등장과 비슷한 형식으로 퇴장한다.

비틀린 공간 속에는 똑같은 새하얀 펜타그램이 새겨진 로브를 쓴 검은 머리의 인물이 있었다.


“와, 진짜 네 능력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니까. 저 고약한 여자와 친해지다니.”

“시끄럽고. 본부에 전달하기나 해.”


예언자는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새로운 인물에게 안겨주었다.

느릿하게 소매 속으로 집어넣으며,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저거 문제는 없는 거지?”

“틀린 말은 없었다.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야.”

“그렇긴 해. 이미 여왕의 손은 떠났으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검은 머리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예언자의 발언에 살을 덧붙이며 동의했다.


“뭐, 제이드가 직접 찾아가는 것이 맞기도 하고.”


다만 언제 찾아가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는 점.

제이드가 여왕을 죽이려 마음먹는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자업자득이다. 어셔 가문을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이리 꼬이진 않았을 거야.”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다는 듯 예언자는 진절머리를 친다.

여왕은 그의 경고에도 기어코 어셔 가문을 습격하고 말았고.

본부의 1차 계획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이러면 여왕은 나가리지?”


굳이 대답은 필요 없었다.

더 뽑아낼 단물도 얼마 남지 않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

그들에게 여왕은 이미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아깝네, 여왕이 죽는다면 우리도 준비를 할 필요가 있겠어.”

“세계가 오염되었다는 뜻이니까. 대책을 마련해야 해.”

“예언서도 믿을 수 없게 되고. 아, 골치 아프구만.”


둘은 의미심장한 말을 주고받으며, 각기 다른 공간으로 나아가 헤어졌다.

검은 머리는 더욱 깊은 곳으로.

예언자는 제이드의 고향, 어셔 백작령으로 향했다.


*


쾰른의 공주, 아그네스를 귀국시킨 후. 공작령은 며칠 사이에 많은 피바람이 불었다.

습격자들의 90%가 쾰른의 망명자인 상황.

동부의 사람들은 분노했고, 무고한 이들도 한 번씩 조사를 받은 다음.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낌새가 있다면 비밀을 밝힐 때까지 벗어날 수 없었다.


“제이드 경은 거절했습니다. 지금 분위기로 봐선 안 오는 게 서로에게 좋겠지요.”


병상에 누워있는 알프레드가 공작에게 내뱉은 보고였다.

바깥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내부를 진정시켜야 했다.

특히 기사들의 동요가 심했다.


‘안 그래도 다니엘의 기권 때문에 평판이 안 좋았는데.’


동부 기사들 사이에서는 사실 제이드가 저들의 배후에 있고.

다니엘을 몰래 협박했던 것이 아니냐는, 허황된 주장까지 나오고 있었는데.

물론 수도에서 배치받아 내려온 마법사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고 있었다.


‘기사들이 왜 마법사들한테 무식하다는 소릴 듣는지 알겠군.’


제이드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은 멈췄지만, 그에 대한 우려는 종식되지 않았다.

불과 스무 살도 아닌데 피륙이 난무하는 전투에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니.


‘그 광경을 본 이들은 더욱 의심스럽게 여기겠지.’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야 당연하듯 넘어갔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매우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네 의견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무심코 떠올린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알프레드의 앞에서.

하이웰 공작이 아쉽다는 목소리를 내었고.

알프레드는 그의 동생, 프루다 공녀에게도 목소리를 높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너도 포기해.”

“알았어요.”


프루다는 공자의 주장을 반대할 수 없어서 순순히 포기하는가 싶었지만.

무언가 다급히 뒤로 감추는 것이 알프레드의 눈에 포착되었다.


“...뭘 감추는 거야. 응?”


프루다는 뭔가 켕기는 것이 있었는지 손에 쥔 것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알프레드의 우악스런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


“앗, 돌려줘! 선물이란 말이야!”


멋들어진 회색의 창을 수놓은 손수건.

공자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제이드에게 줄 선물은 그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압수다. 아버지, 프루다는 여기 두고 가시죠.”

“싫어, 통성명도 못했다고!”


그녀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귀족들이 제이드와 만남을 원했지만.

후작이 원천봉쇄하며 제이드는 저택에서 칩거하는 중이었다.


‘돌아가려는 거겠지.’


이번 일을 계기로 오랜만에 프리지아에서 사절단이 꾸려질 터.

마탑이 재량껏 조율하는지라 제이드가 참여할지는 모르겠지만.

공작도 그가 수도로 돌아가려는 것이라 짐작하고 감사와 함께 작별을 위해 나선 것이었다.


“그럼 갔다 오마. 프루다를 잘 챙기거라.”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나 갈 거라고!”


공작은 자식들은 내버려둔 채 후작의 저택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자신의 예상이 절반만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오르빌 후작의 저택에서 깊숙하면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지하실.

창고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희귀한 재료들이 보관된 이곳에.

가디언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참가자는 이게 전부인가?


벽면에 세워둔 거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의 정체는 가디언의 수장 아론이었다.

그 외에도 거울 속에는 베드로, 클로에 등이 옆에 앉아있었다.


“마를롱, 에녹, 스테인. 이 세 명은 바쁜 것 같아.”


먼지 낀 바닥에 대충 누워 있는 리나인이 답변하자.

다른 임무를 하는 세 사람이 제외된 채, 회의가 시작되었다.


“쾰른이 애매하게 선을 넘었다. 직접 본 사람들은 어떻게 보여?”


아론이 이번에 일어난 사태에 대한 화두를 꺼내고.

이에 대해 리나인은 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대꾸했다.


“이참에 멸망시키자. 너무 나대잖아.”


거울 속에 있는 클로에가 살며시 손을 들어 조용히 리나인의 주장을 반박했다.


“쾰른을 멸망시키면 그 땅은 어쩌시게요. 프리지아의 능력으로는 관리가 안 된다고 이미 예전에 결정이 나지 않았나요?”


정면으로 부정당하고 반박할 거리조차 없는 리나인은.

그저 클로에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그렇다고 알고 있어서요. 죄송...!”


클로에는 말을 다 끝마치지도 않고 책상 밑으로 숨어버렸고.

리나인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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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1화 전출 (2) 22.11.03 10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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