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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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고도파
작품등록일 :
2022.07.2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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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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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DUMMY

28화.




“한 달 만에 7곡을 완성하는 것은 무리예요.”


배주인 음악 감독이 엄청나게 스위치가 많은 믹싱 콘솔 앞에 앉아서 매끈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한 달 반. 어떠세요? 6주? 7주?”


유 대표가 급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7주라고 해도 일주일에 1곡씩 만들라는 건데, 음악이 그렇게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배 감독의 난감한 표정 뒤에는 불쾌감마저 엿보였다.


“이래 봬도 저는 작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에요. 설렁설렁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낼 수 없다고요. 설마 대표님도 제가 아무렇게나 대충 만든 곡 받고 싶으신 건 아니시겠죠?”


“······”


유 대표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기··· 혹시 미리 만들어 둔 멜로디나 착상 같은 거는 없으세요? 전에 어느 음악가분 인터뷰를 보니까. 평소에 만들어 두는 게 있다고 하던데요.”


감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배 감독이 감찬을 보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저도 음악업계에 들어와서 초창기에는 그런 게 있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꽤 쌓아 둔 게 있었죠. 그거 바닥난 지 오래됐어요. 아마추어 때 만든 거라 쓸만한 것도 몇 개 안 됐고요. 지금은 주문받아서 만들기 급급해요.”


결국, 일정에 관한 얘기는 더이상 진전이 없었다.

배 감독은 최대한 빨리 만들어 보겠지만 완성 일정을 개런티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나마 오늘 미팅의 성과는 7곡 중에서 3곡만 노래를 붙이는 것으로 하고 BGM(배경음악)을 포함한 제작비를 1억2천만 원으로 합의한 것이었다.

유 대표는 제작비를 1억 원 이내로 하고 싶어 했지만, 절충해야 했다.



배 감독의 작업실을 나오면서 감찬이 유 대표에게 물었다.


“음악이 촬영 시작 전에 안 나오면 어떻게 하죠?”


“그러게···.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나 감독하고 상의를 해 봐야지. 나 감독에게 전화 좀 해 주겠어?”


감찬이 나성진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했다.


- 음··· 곤란하네요···


수화기를 통해 나 감독의 근심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도 창작하는 거라서 무작정 일정을 밀어붙일 수가 없었어요.”


감찬이 고충을 설명했다.


- 뭐, 그건 이해가 돼요···. 중요한 건 촬영 때 안무가 준비될 수 있느냐 하는 건데···, 안무가와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 * * * *


연출부가 있는 오피스텔에 감찬과 유 대표, 나 감독, 안무가가 모였다.


안무가의 명함에는 ‘호미령 교수’라고 새겨져 있었다.

군살이 전혀 없는 날렵한 몸매의 여성으로, 왼팔에 길게 새겨진 장미 문신이 인상적이었다.


나 감독이 댄서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알게 된 사이라고 했다.

대학교 실용 무용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유명 댄스 그룹의 안무도 디자인하는, 꽤 인지도 있는 무용가라고 한다.


음악 쪽의 사정을 듣고 호 교수가 말했다.


“음원이 없으면 밀도 있는 안무를 짜기가 어려워요. 막말로 비트와 장르만 알아도 짤 수는 있지만, 너무 대충이라서···”


“장르요?”


감찬이 물었다.


“팝, 힙합, 디스코, 레게, 블루스···. 머 이런 거요.”


“아···”


“그런데 안무도 기승전결이 있고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음원을 듣지 못하고 디자인하면 나중에 춤이 겉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


“저도 최소한 멜로디는 들어야 영감이 떠오르고 관객에게 어필할 만한 무브가 나오거든요···”


호 교수의 말이 너무나 당연해서, 딱히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일단, 학교에서 찍는 댄스 장면은 최대한 미뤄서 대여 기간 막바지에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나 감독이 이어서 유 대표를 보고 말했다.


“문제는, 클라이맥스인 댄스 대회 결승전에서 여자 주인공이 추는 춤인데, 이건 정말 멋지게 나와야 하거든요. 여기에 깔리는 노래라도 최대한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알겠어요. 음악 감독에게 사정해 보지요.”


유 대표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 * * *


“아··· 골치 아파”


포레스트 사무실 근처 이자카야에서 유 대표가 생맥주를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음악 때문에 이렇게 골머리를 썩일 줄은 미처 몰랐네.”


유 대표가 투덜거리자 맞은 편에서 사이다를 홀짝거리던 감찬이 물었다.


“다른 영화 때는 이런 일 없었어요?”


“보통 음악은 ‘포스트 프로덕션’이라고 해서 촬영 다 끝나고 필름 보면서 넣거든. 음악 때문에 촬영 일정이 좌지우지되는 일은 없지. 내 실수야···. 음악부터 일찍 준비를 시켰어야 했는데···”


유 대표가 속이 답답한지 다시 맥주를 꿀꺽 들이켰다.


“뭐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영화 만들면서 이런 난관에 부딪히는 것은 비일비재하니까.”


“남주도 문제잖아요.”


감찬이 말했다.


“아··· 남주···. 그것도 빨리 해결해야지···”


유 대표가 또 맥주를 들이켰다.


“천천히 드세요.”


감찬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두 사람은 정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한잔은 유 대표와 정화가 통화 끝에 모이기로 한 거고, 여느 때처럼 감찬은 유 대표에게 끌려 온 셈이었다.


정화는 독립영화를 찍고 있었다.

전에 트러블이 있었던 턱수염 감독이 소개해 준 그 영화였다.


속된 말로 돈이 안 되는 영화였지만, 정화는 주연을 맡은 게 신이 나는지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어머, 유 대표님, 벌써 얼굴이 빨개지셨네요?”


뒤늦게 나타난 정화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유 대표는 생맥주를 벌써 석 잔이나 비운 터였다.


“어서 와. 요즘 골치 아픈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 좀 푸느라고··· 후후”


유 대표가 정화를 반기며 말했다.


“제작 들어가면 다 그렇죠. 머··· 전쟁터잖아요.”


“정화 씨가 잘 아네?”


유 대표의 말에 정화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영화 만들 때 언니가 해준 얘기잖아요.”


“아, 그런가?”


“그런데, 감찬 씨는 멀쩡하네요? 전쟁터에서 별로 스트레스 안 받나 봐요?”


정화가 사이다를 마시는 감찬을 쳐다보면서 웃었다.


“제가 좀 낙천적이거든요. 그리고 <그녀와 댄싱>은 유 대표님이 주도하고 계시니까, 저는 그냥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처지라서···. 아무래도···.”


감찬이 변명처럼 대답하자 유 대표가 끼어들었다.


“<그녀와 댄싱>은 내가 오랫동안 준비했던 거니까 내가 마무리를 해야지. 그리고 감찬 씨에게는 엄청 큰 프로젝트를 맡겼으니까···”


“윤정호 감독님 영화 말이죠?”


정화가 되물었다.

갑자기 감찬의 가슴도 답답해졌다.


<가자미 게임>은 3대 메이저 영화사에서 투자에 대한 답변을 좀처럼 주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거절하는 회사도 없었다.


“그건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거야.”


유 대표가 다시 맥주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눈치요?”


감찬이 물었다.


“내가 먹기에는 부담스러운데 남 주기에도 아까운 떡인 거지.”


“아···”


“윤 감독님이 지난번 영화에서는 부진했지만, 그전에는 정말 승승장구했었거든. <살수대첩>도 작품 완성도로 보면 그렇게 평이 나쁜 영화는 아니었어.”


“그럼, 이번 <가자미 게임>은 할지 말지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는 얘기겠네요.”


“그렇지. 영화사 경영진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뭔데요?”


“내가 버린 영화가 남한테 가서 대박 나는 거야. 그건 내 영화가 폭망하는 거 보다 더 큰 실패로 생각한다고.”


“흐흐··· 사촌 배 아픈 심보인가요?”


“사실이 그래··· 후후.”


종업원이 유 대표 앞에 생맥주가 가득한 잔을 내려놓고 갔다.

유 대표가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그래서 <가자미 게임> 펀딩은 시간을 좀 끌면서, 메이저 3사를 각개격파해야 할 것 같아.”


* * * * *


맥주를 연거푸 들이켜던 유 대표가 결국 취하고 말았다.

본인은 맥주 정도로는 취하지 않는다고 우겼지만, 감찬과 정화는 비틀거리는 유 대표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유 대표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감찬은 이번에는 정화가 바래다 달라고 졸라서 택시를 함께 탔다.


“정화 씨는 취하지 않았잖아요.”


감찬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전 일일 매니저였는데, 여배우를 집까지 에스코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녜요?”


정화가 입술을 샐쭉 내밀며 말했다.


“일일 매니저···. 너무 자주 써먹는 거 아녜요?”


감찬이 되물었다.

정화는 대답 대신 몸을 감찬에게 바짝 붙이며 물었다.


“오디션 결과는 언제 나와요? 아직 통지를 못 받았어요.”


“아··· 일단 다음 주에 정해진 일정이 끝나니까, 그때 연락이 갈 거예요.”


“그럼, 저는 어떻게 돼요? 붙었어요?”


감찬이 사실대로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괜찮아요. 감찬 씨에게 미리 들은 건 비밀로 할게요.”


정화가 끈질기게 졸랐다.


“뭐··· 비밀 같은 건 아녜요. 정화 씨는 아마 조연으로 발탁될 거 같아요. 나 감독님 얘기로는 주인공 댄스팀의 동료 역할이라고 하던데···”


“그래요···?”


정화의 눈에 실망의 기색이 어렸다.

감찬이 서둘러 설명을 덧붙였다.


“스토리 비중이 높은 건 아닌데, 화면에는 많이 나오는 역할이에요. 물론 정화 씨도 오케이 해야겠지만요.”


“그럼, 춤만 많이 출 거라는 얘기네요.”


“······”


감찬과 정화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채미도 배우를 상대할 다른 여주인공은 정해졌어요?”


정화가 물었다.


“오디션에서 괜찮은 신인을 하나 건졌어요. 나 감독이 주인공으로 밀 것 같은데, 투자사에서 컨펌을 해 줄지 걱정이에요.”


“그렇군요.”


정화가 감찬에게서 떨어져 창밖의 밤거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다시 쾌활한 표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주말에 시간 있으면 저 촬영하는 거 보러오지 않을래요? 일요일에 쫑칠 거 같아요.”


“또 일일 매니저 소환인가요?”


감찬은 정화의 밝은 표정에 안도감을 느꼈다.


“아뇨, 이번에는 <그녀와 댄싱> 제작 프로듀서로서 출연 배우 점검을 나오는 거죠.”


감찬이 피식 웃었다.


“토요일에 속초 가야 하는데···, 시간이 되면 보러 갈게요.”


“속초에는 무슨 일로 가요?”


“윤정호 감독님 만나러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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