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음유시인은 이세계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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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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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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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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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찬양하라 #1

DUMMY

일행은 야영을 마친 뒤 여정을 서둘러 어느 산에 들어섰다.


이 산의 이름은 쿠란이었고, 이곳에는 강대한 정령이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일행 중에는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아는 이가 많았다.


“이 빌어먹을 산은 언제 와도 적응이 되질 않는군.”


길리언이 산에 가득 낀 안개를 보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엘프 필리아가 그를 나무랐다.


“산의 주인에게 무례한 언사는 삼가렴. 길리언. 그는 까마득한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고귀한 정령이란다.”


“저 같은 칼잡이가 안개 속에서 얼마나 불안해지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시나 본데, 아마 당신도 이십 년 정도 칼을 잡으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아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하는데도 길리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으로 투덜거릴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필리아. 너는 이 산의 정령을 만나는 게 처음이겠구나.”


“네. 대모님. 정령께선 어떤 분이실까요?”


오필리아는 눈을 반짝이며 산등성이 너머를 바라보았다. 필리아는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 웃으며 바라보았다.


세빌은 하루 동안 지내면서 그들의 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


오필리아와 길리언은 혈족이 아니었다.


길리언은 성이 없는 평민이었고,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퀘사르 코미어와 의형제 관계였다. 그는 코미어 후작의 개인적인 부탁으로 오필리아를 돕기 위해 나선 상태였다.


필리아는 오필리아의 대모였다. 오필리아에게 듣기로 그녀의 이름 또한 필리아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이 산의 정령인 데미르는 매우 온화하고 친절한 성격이란다. 특히 너처럼 사랑스러운 소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네가 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면 네게 축복을 내려줄지도 몰라.”


필리아가 오필리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 행동이 마치 딸에게 하는 것과 같았기에 세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저 두 사람 모두 백금색 머리카락인데, 설마 진짜 모녀지간은 아니겠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길리언이 한숨을 푹 내쉰 뒤 말했다.


“아무튼 출발합시다. 난 이 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으니.”


코미어 후작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 생각하던 세빌은 급히 길리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세빌은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온화한 정령이 산다기엔 산의 분위기가 조금 음산했다.


새나 풀벌레가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안개 너머에서 발톱으로 땅을 긁는 소리가 종종 들렸다. 위화감을 느낀 건 세빌만이 아니었다.


“이거 저번에 왔을 때하고는 또 느낌이 다른데. 그 데미르라는 정령의 성격이 몇 년 만에 바뀌기라도 한 겁니까?”


길리언이 묻자 필리아가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뭔가 이상하구나. 여기까지 왔다면 안개 정령들이 벌써 마중을 나와야 하는데.”


“꺄아아악!”


그때 어린 소녀의 비명이 들렸다. 놀란 세빌이 그쪽을 돌아보자 조그만 엘프 소녀가 넘어진 모습이 보였다.


그 불쌍한 소녀는 시꺼멓고 길쭉한 손아귀에 발목을 붙들렸는데, 팔과 몸통이 없이 허공에서 손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젠장, 안개 괴물이잖아? 오필리아. 엘프들을 지켜라!”


길리언이 쏜살같이 튀어나가 검을 휘둘렀다. 오러가 깃든 그의 검은 어김없이 안개 괴물의 본체를 갈랐다. 시꺼먼 연기가 그 괴물의 혈액인 듯했다.


세빌은 안개 괴물의 본체를 마주하곤 잠깐 굳었다.


몸은 새까맣고 길쭉했는데 마치 빗자루에 까만 뱀으로 팔다리를 만들어 붙인 것처럼 보였다. 어디가 팔이고 머리인지 구분이 힘들었고 붉게 빛나는 눈이 있는 자리가 얼굴일 것이라 간신히 추측할 뿐이었다.


“최소한 네 마리가 넘는다! 조심해!”


“네? 아, 네!”


당황한 오필리아가 즉시 검을 뽑았다. 그녀 또한 훈련된 기사였다.


그러나 안개 괴물 같은 것과 싸워본 일은 없었기에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괴물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아아! 셀비!”


괴물들은 영악하게도 아직 어린 엘프들만 골라 노렸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최선을 다해 자식을 지키려 노력했으나 안타깝게도 엘프라는 종족은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평생 누군가를 사랑할지언정 증오하지 못하는 종족이었다.


괴물들은 엘프들의 발버둥을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세빌은 물론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괴물에게 붙들린 어린 엘프들을 돕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아니, 힘이 무슨?’


어린 엘프의 팔을 붙든 손을 떼어내려고 용을 쓰던 세빌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평범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데미르! 나의 친우여! 이곳은 당신의 땅일진대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당신의 친구가 위험에 처해 있어요. 데미르...”


필리아는 다급히 땅의 주인을 불렀으나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 정령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으니 스스로를 지키시오!”


막 두 마리째의 안개 괴물을 베어 넘기던 길리언이 외쳤다. 제아무리 그가 검의 달인이라도 안개에 모습을 숨기는 괴물들을 한 번에 여러 마리나 상대하기는 힘들었다.


-감히 내 손님에게!


분노한 정령의 외침이 들린 건 그때였다. 세빌은 저 멀리서 흐릿한 색의 늑대 한 마리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호랑이만큼이나 덩치가 컸으나 늑대는 상처를 입은 듯했다. 깊게 파인 가죽에서 피가 흘렀고 털은 윤기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왼쪽 앞발까지 절뚝거리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내 힘이 약해졌다 해도 어찌 감히 악에서 비롯된 피조물들이 내 땅에서 내 손님을 덮칠 수 있다는 말인가?


늑대는 하늘을 보며 한 번 울더니 보이지도 않는 안개 괴물들을 하나씩 물어 죽이기 시작했다. 성대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괴물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세빌은 이 초자연적인 싸움에서 철저히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쩔 수 있나.’


물론 그에게 고대 정령과 안개 괴물 사이의 싸움에서 제몫을 할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징집 같은 건 당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상황이 정리되자 필리아가 늑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창백해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데미르. 내 친구. 당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 상처는 어떻게 된 거죠?”


아무래도 저 늑대가 이 산의 주인이라는 정령 데미르인 모양이었다.


세빌은 늑대가 저렇게 침통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소. 내 친구여. 일단 내 동굴로 갑시다. 그곳은 아직 안전하니.


정령 데미르는 앞장서서 걸었다. 그 절뚝거리는 걸음걸이가 세빌은 영 불안했다.




*******




-당신에겐 미안하게도, 필리아. 이젠 이 산 전체가 내 영역이 아니게 되었소. 이 산을 가로지르는 길을 놈에게 빼앗겼으니 당신을 이 너머로 보내줄 수도 없게 되었지.


정령이 집으로 삼은 동굴은 꽤나 아늑했다. 오십 명이 전부 들어가도 될 만큼 넓었고 땅도 제법 평평했기에 야영지로 삼기에도 괜찮았다.


물론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이요? 대관절 놈이 누군데?”


길리언이 끼어들었다. 정령 데미르는 잠시 맹수의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길리언은 겁먹지 않았다.


-놈, 악령 케바논은 어느 간악한 마법사가 소환한 악령이다. 십여 년 전에, 어느 인간이 나를 찾아와 내게 은신처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 묻더군.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사악한 마법의 잔재를 느꼈고, 그를 산 밖으로 쫓아냈다.


정령은 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놈은 그 인간이 소환한 악령일 터. 나는 몇 년 전부터 산 아래 땅에서 끈적한 죽음의 기운을 느꼈으며, 고대의 악에서 비롯된 악령이 소환되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허나 그놈이 내 땅에서 날 압도할 거라곤 예상할 수 없었지.


“그런데도 가만히 있었단 말이요?”


길리언이 헛웃음을 뱉었다.


“그만하렴! 데미르는 안개의 정령이기 때문에 안개가 끼는 날이 아니면 이 산을 벗어난 곳에서는 힘을 쓸 수 없어. 그를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필리아가 길리언을 나무랐다. 길리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주변의 눈치를 보던 세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산을 내려가 다른 길을 찾아야지 않겠습니까?”


길리언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모든 계획은 이 산을 무사히 지나간다는 가정 아래 진행되었지. 이 산을 지남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사흘을 아낄 수 있었어. 추적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다른 길을 찾는 건 아인할드 백작이 보낼 추격자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이동하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세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격이 한 번 실패했으니 아인할드 백작은 이를 갈고 다음 행동에 나설 터였다.


길리언은 말할 것도 없고 오필리아나 세빌도 잠을 줄이며 걷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으나 지금 일행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강행군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나는 엘프들이 언제나 이 땅을 무사히 지나도록 하겠노라 맹세했다. 이 모든 일이 나의 방심으로 일어난 일이니 그 책임 또한 온전히 나의 몫. 그러니 목숨을 걸고 그 맹세를 지키리라.


정령의 목소리는 비장했으며 그 맹수의 눈에 흉포함이 깃들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악령에게 덤벼들 기세였다.


“아니에요! 제발 그러지 말아요. 정령님!”


침울해 있던 오필리아가 나섰다.


그녀는 안개 괴물을 상대로 한 싸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듯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참이었다.


“맞소. 놈이 악령이건 무엇이건 칼이 드는 놈이라면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할 것도 없지.”


길리언 또한 앞으로 나섰다.


-그 마음은 가상하나 너희는 그 악령을 모른다. 그 사악한 존재가 발하는 저주에 당한다면 어떤 용사라도 기력을 잃고 말리라.


‘한마디로 깝죽거리지 말라는 소리군.’


그렇게 이해한 사람은 세빌만이 아니었다. 길리언 또한 침음성을 내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그였지만 악령과는 싸워본 일이 없었다.


“혹시 그 악령한테는 약점 같은 건 없답니까? 그 왜, 악령들은 신을 두려워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세빌이 나섰다.


-악령은 태생적으로 이치를 거스른 부정한 존재이니 신을 두려워할 수밖에.


정령이 세빌의 의견을 긍정했으나 길리언이 고개를 저었다.


“퇴마를 할 만큼 경험 많은 사제를 구하려면 이 산을 내려가 큰 도시로 가야 할 텐데, 우리에겐 그런 여유가 없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종교적인 상징물 같은 걸 두려워할 수도 있잖습니까?”


세빌은 꽤 다급했다. 길리언이야 추격대에 붙잡힌대도 자기 한 몸쯤은 빼낼 수 있고 귀족인 오필리아는 몸값만 내면 풀려날 수 있을 터.


그러나 세빌은 곱게 죽지 못할 터였다.


-놈이 상징물 따위를 두려워할 것 같지는 않다.


“아뿔싸.”


세빌은 정령이 말하는 순간 마치 교수대 위에 선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세빌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먼 과거에는 인간들이 스스로 악령을 퇴치하곤 했었지. 악령의 징조가 나타나는 날이면 마을마다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런 날이면 태양이 모습을 감춘 한밤중에도 악령이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세빌이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네?”


신을 찬양하는 노래라면 찬송가를 의미했다.


그리고 세빌은 전생에 성가대 출신이었다.


작가의말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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