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음유시인은 이세계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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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주
작품등록일 :
2022.07.31 23:59
최근연재일 :
2022.08.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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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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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을 얻는 법

DUMMY

세빌은 오필리아의 말 레아에 길리언과 같이 타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몸 한 번 제대로 풀었군. 하나를 놓친 건 아쉽지만...”


씨익 웃으며 목을 꺾는 길리언을 보며 세빌은 조용히 몸서리쳤다. 그의 전투력은 인간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오러가 이글거리는 검으로 고작 몇 수만에 티어니 경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한 뒤 마치 추수하는 농부처럼 병사들의 사지나 머리통을 잘라내었다.


완전히 무장한 서른 명의 병사와 이 시대의 공성 병기나 다름없는 기사 셋이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차가운 시체가 되어 협곡에 널브러진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길리언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그래도 네가 아니었다면 꽤 곤란할 뻔했어. 이런 국지전에서 마법사 한 놈은 기사 열 놈보다도 훨씬 도움이 되기 마련이지. 게다가 그놈은 하늘을 날 줄 알았어. 그건 놈이 대학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전쟁마법사란 이야긴데.”


혼잣말하는 것처럼 심각하게 중얼거리던 길리언이 이내 표정을 바꾸며 피식 웃었다.


“네가 날 도운 걸 보니 아예 코미어 후작 쪽으로 갈아타려는 모양이군. 하긴, 너처럼 약아빠진 놈이 겨우 중장보병 처지에 만족할 리가 없지. 아일한드 백작 가문은 쩨쩨하기로 유명하니 너 같은 놈이 출세하긴 힘들겠고.”


그의 말을 듣던 세빌은 길리언이 뭔가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기, 죄송한데 저는 징집된 겁니다. 출세하고 싶어서 입대한 게 아니라요.”


“그 몸으로? 몸을 그렇게 단련하고서? 어지간한 기사 수련생도 너보다는 몸이 덜 잡혀 있을 텐데.”


길리언의 말대로 세빌의 신체는 전투에 꽤나 적합했다. 팔다리가 길고 근육이 잘 발달해 어지간한 용병이나 검사들보다 조건이 훨씬 나았다.


“전 원래 음유시인으로 살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몸을 단련한 건 노상강도나 산적들과 싸울 일이 있을 때 도움이 될까 싶어서고 말입니다.”


세빌의 설명에 길리언은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별난 놈을 다 보겠군. 사내라면 자고로 힘을 길러 세상에 우뚝 서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생각했다.


‘영민하고 기본적으로 선량한 데다 야망이 없으니 오필리아 밑에서 일하게 하면 딱 좋겠군. 저런 놈은 대우만 잘해 주면 어지간해선 배신하지 않으니.’


그의 판단에는 꽤 정확한 구석이 있었다.


“삼촌! 무사하세요?”


말발굽 소리를 들은 오필리아가 부르자 길리언이 소리쳤다.


“오냐! 사랑하는 내 조카, 네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제대로구나. 글쎄 저놈이...”


그는 과장을 섞어 자신의 조카에게 세빌의 활약상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세빌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끌고 그것을 오필리아에게 내밀었다.


족쇄를 단 것처럼 걸음이 무거운 걸 보니 피로가 쌓인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잠을 설친 대가가 지금 찾아오기 시작했다. 세빌은 도저히 떨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잠이 찾아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는 그대로 땅에 쓰러져 잠들었다.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응?”


추격대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뼉을 치며 좋아하던 오필리아가 깜짝 놀라 그의 상태를 살폈다.


길리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짓했다.


“녀석이 긴장이 풀린 모양이군. 마차에 태우고 네가 잘 돌보거라. 가까이 두면 좋을 놈이니. 이제 우리는 길을 재촉해야 한다.”




******************




세빌은 들판에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그의 얼굴을 간질였고 시원한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높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녔으며 앙증맞은 토끼 몇 마리가 겁도 없이 세빌의 발목 근처에서 풀을 뜯었다.


‘또 그 꿈이군.’


끔찍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16년, 이천 번이 넘도록 꾼 바로 그 꿈. 세빌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그는 그동안 쌓인 모든 분노와 원한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


물론 될 리가 없었다. 그의 외침은 소리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곳은 그런 공간이었다.


새들의 노랫소리도, 시원한 바람 소리도, 토끼들이 풀을 뜯는 소리도 없는 공간.


마치 귀머거리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 꿈속이었다.


-부디...


그때 머릿속에 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에선 세빌이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응어리진 슬픔이 느껴졌다.


갓난아이를 잃은 어미의 슬픔이라도 이 목소리의 주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울음조차 섞이지 않고, 그 누구의 이름조차 불리지 않았으나 세빌은 그 슬픔의 아주 작은 조각을 엿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씨발.’


그리고 이곳에서 그가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곤 오직 이것뿐이었다.


‘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고?’


-부디...


‘그만, 그만해. 제발. 아니면 다른 말이라도 좀 해 봐.’


세빌은 애원하는 심정으로 생각했으나 그의 염원이 닿는 일은 없었다. 이대로 잠이 깰 때까지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았다.


-부디...


‘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데. 제발 알려줘.’


-부디...


세빌은 들판에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소리 없이 흐느끼며 애원했다.


‘...어떻게든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게. 제발.’


십육 년이라는 시간 동안 노력했지만, 세빌은 아직 이 목소리의 주인을 증오할 수 없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깨워 주길 바라며 두 눈과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그가 일어난 건 네 시간이 지난 뒤였다.





세빌은 마차의 진동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의식을 찾을 때쯤 마차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저기, 괜찮으니? 슬퍼 보이는구나.”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리자 세빌은 천근같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야가 선명해진 뒤에야 하얀 얼굴이 보였다.


“...누구...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세빌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다 하마터면 그 얼굴과 부딪힐 뻔했다.


“자는데 깨워서 미안해. 하지만 네가 식은땀을 너무 흘리는 바람에 걱정이 되었단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세빌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나서야 자신을 깨운 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차의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백금색 머리칼과 대리석보다도 하얀 피부의 여자였다. 세빌은 그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에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그녀의 귀밑머리를 뚫고 나온 뾰족한 귀를 보고서야 세빌은 그녀의 정체를 깨달았다.


“...엘프?”


“그렇단다. 아가야. 놀라는 걸 보니 오필리아가 아직 말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엘프 여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땀에 젖은 세빌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세빌은 그 거리감 없는 행동이 이상하게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가 뒤로 몸을 뺀 이유는 그 여인의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자신의 땀으로 더럽혀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코미어 후작 가문은 우리 엘프들의 오래된 친구란다. 그들은 이백 년 동안이나 우리가 아즈나 숲에 무사히 돌아가도록 돕고 있거든.”


“그러면 아까 그 로브를 입고 있던 분들이 전부 엘프들인가요?”


엘프 여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필리아가 데려온 몇 명을 빼면 모두 엘프들이지. 네가 우리를 위해 해준 일에 대해 들었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정말로 고맙구나.”


괜히 민망해진 세빌이 손을 내저었다.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게다가 적을 물리치는 건 전부 길리언님께서 하셨습니다.”


여인은 세빌이 기특하다는 듯 그의 뺨을 매만졌다.


“우리는 친구를 함부로 사귀지 않아.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일을 당했거든. 하지만 엘프를 위해 망설임 없이 목숨을 건 사람에게 낯설게 굴 만큼 염치없지도 않단다.”


그렇게 말한 엘프 여인이 마차의 문을 가리켰다.


“자, 이제 나가보렴. 오필리아가 네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앞으로 어떤 엘프를 만나건 네가 나 필리아의 친구임을 밝힌다면 네게 잘 대해 줄 거야.”


엘프 여인, 필리아는 어서 문을 열어보라는 듯 손을 흔들어 세빌을 재촉했다.


“아,감사합니다.”


난데없이 엘프 친구가 생긴 세빌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야영을 준비하는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난 방금 일어났는데.’


꼼짝없이 뜬눈으로 밤을 보내게 된 세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일어나셨군요!”


오필리아 코미어가 세빌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녀는 갑주를 벗고 튜닉과 바지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갑주를 입었을 때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대체 몇 살일까.’


매우 궁금했으나 그는 귀족 여식의 나이를 함부로 물을 만큼 용감하지 못했다.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네. 덕분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배가 고프지는 않으세요? 목이 마르시진 않고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그녀에게 세빌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물은 가진 게 있었고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그런가요?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하셔야 해요. 아셨죠?”


“예, 그러겠습니다.”


세빌은 힘있게 대답하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이 야영을 준비하는 것을 도왔다.


엘프들은 밤에도 체온이 낮아지지 않아 천막이 필요하지 않았다. 때문에 세빌과 오필리아, 길리언 그리고 코미어 가문에서 데려온 두 명의 하인이 지낼 천막 두 개만 치면 되었다.


야영 준비가 끝나고 모닥불이 지펴졌다. 하인들이 끓이는 스프 냄새가 야영지에 퍼질 무렵 세빌은 마차에서 류트를 챙겨 나왔다.


“응? 노래하시게요?”


“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요.”


그 모습을 발견한 오필리아가 묻자 세빌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까 꾼 꿈에서부터 비롯된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싶었던 탓이었다.


“실례라뇨. 사실 조만간 노래를 들려 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는데요? 전 음유시인들이 부르는 노래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아버님께선 유명한 음유시인이 영지 근처를 지날 때마다 저를 위해 그들을 초대해 주셔요. 음유시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은 날이면 가슴이 두근거려 잠도 잘 오지 않는답니다.”


그녀는 어려 보이는 나이답게 말이 꽤 많았다. 세빌은 그 고위 귀족답지 않게 순수한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마 제 노래는 그들이 부르는 것과는 좀 다를 겁니다.”


이 땅의 음유시인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귀족의 궁정에 초대되어 기사들의 유명한 일화나 오랜 전설을 노래하는 궁정시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민요나 속요 따위를 부르며 돈을 버는 유랑 시인이었다.


세빌은 모닥불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류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다루었던 현악기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몇 번 튕겨 보니 제법 손에 익었다.


곧 류트에서부터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백파이프도 아코디언도 없었지만 세빌은 요들송을 부를 생각이었다.


“크흠, 큼!”



저기 저 브리티안의 꽃과 같은 코미어 아가씨

귀여운 목소리로 요를레이띠

발걸음도 가볍게 산을 오르면

목소리를 합쳐서 노래하네


그 아가씨는 언제나 요를레이띠

에헤헤이 요를레 요를레이띠




세빌의 노래가 이어지자 오필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세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래에 내가 들어가잖아?’


물론 세빌은 본래 가사인 알프스와 스위스라는 지명을 대신하기 위해 대충 끼워 맞춘 셈이었지만 오필리아가 그걸 알 리는 없었다.


오필리아는 곧 요들송의 빠른 멜로디에 빠져들었다. 태어나 이렇게 빠르고 신나는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다.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과 엘프들이 모여들었다.


세빌은 전생의 어릴 적부터 요들송을 연습했기 때문에 실력 하나만큼은 발군이었다.


처음에는 진기한 장기자랑을 보는 듯 구경하던 하인들은 어느새 감탄하며 어깨를 들썩거렸고, 엘프들은 처음부터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저놈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어느새 다가온 길리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경험이 많은 만큼 세빌이 노래로는 어느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과거 온 대륙을 누비며 여행했던 그는 문화와 예술의 왕국이라 불리는 프르뉴 또한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난다 긴다 하는 음유시인들도 저런 건 하지 못했다.


만일 세빌이 프르뉴로 간다면 그는 꽤 대단한 유명인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세빌은 흥이 올랐는지 다음 곡을 준비하기 위해 류트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길리언은 그를 만류하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일부터는 강행군이 될 테니, 하루 정도야 괜찮겠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증류주를 한 모금 마신 뒤 소리쳤다.


“노래 좀 할 줄 아는군! 조금 느린 건 없나? 가락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거든!”


작가의말

사정이 생겨 어제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ㅠㅠ 대신 오늘 연참 달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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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자는 직감이다 +2 22.08.02 135 10 13쪽
2 여정의 시작 +3 22.08.01 176 10 14쪽
1 프롤로그 +2 22.08.01 257 1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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