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두 여자
20. 두 여자
“지은 씨, 무슨 일이에요?”
낡은 SUV를 사이에 두고 지은이와 처음 보는 남자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지은은 남자가 자기 쪽으로 한 발짝만 움직여도 당장에라도 도망칠 자세였다. 남자는 그런 뜻이 전혀 없어 보였다.
“차 안에서 쉬고 있는데, 이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문을 열잖아. 그래서 얼른 차에서 내렸어.”
남자는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며, 사람이 좀 모자라 보였다. 더벅머리에다가 입고 있는 옷도 누가 버린 걸 주워서 입었는지 후줄근했다. 얼굴은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데, 아침에 일어나 세수나 제때 했나 몰랐다.
“이봐요! 당신 누군데 남의 차에 함부로 손대는 거요?”
기준이 남자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소리를 질렀다.
“나, 나쁜, 사람, 아니야.”
남자가 말을 한 번에 쭉 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말했다.
“당신, 저 마을에 살아요?”
기준이 손을 들어 멀리 보이는 마을을 가리켰다.
“응, 나, 저, 마을에 살아.”
“그런데 여긴 뭐하러 왔어요?”
“이야기, 할 것이, 음, 있어서.”
“우리한테 할 말이 있다고요?”
“응!”
남자가 주위를 살피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지은이 기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괜찮겠냐고 물었다. 사람이 좀 모자라 보이는데, 그냥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우리한테 무슨 할 말이 있는데요?”
“당신들, 음, 누구야? 여기, 음, 사람이야?”
남자가 손을 들어 학생들이 모두 떠나고 아무도 없는 빈 건물을 가리켰다.
“아니요. 저는 형사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해보세요.”
“형, 형사?”
남자가 못 믿는 눈치여서 기준이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다. 그제야 남자가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그날, 저기서, 음, 나쁜 사람이, 음, 그러니까.”
남자가 다시 풀숲을 가리키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답답한지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기준은 어쩌면 이 남자가 여학생을 풀숲으로 끌고 가 몹쓸 짓을 저지른 자를 목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그날 풀숲에 나쁜 사람이 있는 걸 봤다는 거잖아요?”
“맞아! 그날, 나쁜 사람이, 음, 저기에 있었어.”
“여학생도 봤겠군요?”
“봤어! 나쁜 사람이, 음, 여학생, 음, 팬티를, 벗기고, 음, 입으로 물었어. 음, 음, 괴물처럼.”
괴물처럼이라고 말할 때 남자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남자는 괴물을 본 것이었다.
“아저씨는 그때 어디에 있었는데요?”
“나는, 음, 강가에서, 음, 고기를 잡고, 음, 있었어.”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여학생이 소리를 지르자 몰래 숨어서 봤다는 거네요?”
“맞아!”
남자는 물고기를 잡으러 강가에 나왔다가, 풀숲에서 여자 비명이 들리지 얼른 몸을 숨겼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았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여학생을 쓰러뜨리고 속옷을 벗기려고 하자, 여학생이 몸부림치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여학생이 몸부림치지 못하게 하려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주먹으로 여학생 명치 부분을 세게 쳤다. 여학생은 순간 숨이 막혀 윽! 하고 쓰러졌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속옷을 벗기고 여학생 음부를 물어뜯었다. 여학생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의식을 잃었다.
“그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요?”
“몰라! 음, 머리가, 음, 이렇게. 나이가, 음, 많아.”
남자가 말로 설명을 제대로 못 하고, 손바닥으로 머리만 만지작거렸다.
“머리가 어떻다고요?”
“음, 머리가, 음, 이렇게.”
남자는 여전히 머리만 만지작거렸다.
“머리가 반짝거렸다는 의미잖아. 딱 보면 몰라?”
지은이 옆에서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기준이 “그런가.” 하고는 다시 물었다.
“머리가 반짝거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는 뜻이군요?”
“맞아!”
“아저씨가 봤다는 그 사람, 여학생을 풀숲에 두고 어디로 가던가요?”
“저곳으로, 음, 뛰어, 음, 이리로, 음, 왔어.”
“풀숲을 돌아서 이곳으로 왔다, 그 말이죠?”
남자의 말이 맞는다면 범인은 그날 임시 건물에 있었던 하나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머리가 반짝거리는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맞아!”
“그 사람, 얼굴 기억나요?”
“몰라!”
남자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얼굴을 자세히 못 봤다는 거네요?”
“맞아! 음, 못 봤어, 음!”
“그런데 그 말을 왜 여태 안 했어요?”
“몰라! 음, 무서워, 음!”
“무서워서 말을 못 했다는 거네요?”
“맞아!”
“아저씨가 사는 집은 저 마을에 있겠네요?”
기준이 멀리 보이는 마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음! 나, 저기에, 음, 살아.”
“다음에 또 물어볼 게 있으면 마을로 찾아갈게요. 내 말 알아들었어요?”
“그래! 음, 알아.”
남자는 할 말을 다 했는지 다리를 절며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기준은 마을까지 데려다줄까 하다가 그만뒀다.
“거봐! 범인은 하나교 내부에 있다고 했잖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럴지도 모르다니. 느낌이 딱 오지 않으세요, 기준이 형사님?”
“지금 나 놀리는 거예요?”
“놀리긴, 바보 같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빨리 오데?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많이 놀랐어?”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어요.”
“무슨 일 생기게 내버려 두지, 뭐 하러 왔을까?”
지은이 기준이 쪽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내가 싫다면서, 내심 신경은 쓰이는 모양이지?”
“난 지은 씨를 싫어한 적 없어요. 싫어할 이유도 없고요. 나는 단지 지은 씨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니, 지은 씨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아보라는 거죠.”
“그 여자는 잘 어울리고?”
“왜 또 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보기에 너는 그 여자랑 전혀 어울리지 않아. 애 딸린 유부녀랑 젊은 총각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 이야긴 이제 그만해요. 그런데 저 남자는 왜 여태 조용히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 이야기했을까요?”
사건이 터졌을 때, 이야기했으면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머리가 반짝거리고 나이가 많은 남자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이제 합숙소는 문을 닫고, 합숙소에 머물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물으니, 합숙소에 들어와 살던 학생들은 합숙소가 문을 닫자 일제히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하나교에서 명단을 넘기지 않아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서 사는지 담당 형사도 알지 못했다. 학생들 명단은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에 하나교에서 불태워 없애버렸다. 하나교 교인들이 썼던 컴퓨터도 가져다 확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부터 학생들 신상에 관한 내용은 컴퓨터에 입력하지 않고 노트에 기록해 관리했기 때문에,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질 걸 예측하고 일부러 컴퓨터에 입력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컴퓨터에 입력하면 깨끗이 지우더라도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양심에 가책을 느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사건이 터졌을 때 이야기했으면 미궁 속으로는 빠지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그때 합숙소에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내, 머리가 반짝거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보았냐고 물으면 되잖아?”
“사건을 담당한 형사한테 물으니, 자기한테는 학생들 명단이 없다더군요. 학생들과 함께 지냈던 교인들은 자기네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끝까지 잡아뗐고요.”
“명단이 없다니? 그 사람들은 사람 관리를 그런 식으로 했대요?”
“학생들 주소나 전화번호 그런 것은 공책에 기록하고 관리했던 모양이에요. 사건이 터지고 난 후, 경찰이 조사를 벌이기 전에 학생들을 내보내고 공책은 모두 불태워 없앴겠죠.”
“준비를 철저히 했던 사람들이었네. 요즘 누가 명단을 공책에 기록해 관리해. 나보고 공책에 기록해 관리하라고 했으면 못한다고 했을 거야.”
“지은 씨는 컴퓨터가 편하니까 그렇겠죠.”
“이제 어쩌지? 더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일단 사무실로 들어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 좀 해봐야겠죠. 지은 씨는 가는 길에 내려줄 테니까, 차에 타요.”
기준이 먼저 낡은 SUV에 올라타자, 지은이 뒤따라 문을 열고 올라탔다. 지은이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지은을 지하철역 근처에 내려주고, 기준은 사무실을 향해 차를 몰랐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부령은 아침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불안해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아침 열 시만 되면 전화벨이 울리는데, 수화기를 집어 들고 누구냐고 물으면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처음에는 잘못 걸려온 전화인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해서 걸려왔고, 장난치려고 일부러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굴까. 왜 아침마다 전화를 걸어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걸까. 그래도 그 사람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전화를 끊고 이십 분쯤 지났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부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누구인지 확인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얇은 슬립 한 장만 걸치고 있어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집에 있을 때는 속옷도 다 벗어버리고 슬립 한 장만 걸쳤다.
“사람을 급하게 부른 이유가 뭔가요?”
기준이 신발을 벗고 들어서며 물었다. 그제야 부령이 슬립 한 장만 걸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가게에서 봤던 모습과 너무나 달라, 갑자기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아침마다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가 걸려와 불안해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라고 했어요.”
“언제부터 걸려왔는데요?”
“한 달 전부터요. 거의 매일 걸려오기 시작한 건 일주일 전부터고요. 전에는 어쩌다가 한 번씩 걸려왔거든요.”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감추지 말고 바로 알렸어야 했다. 그랬으면 좀 더 빨리 조치했을 것 아닌가.
“이렇게 오랫동안 걸려올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경찰에 신고는 했고요?”
“신고는 안 했어요. 보복할까 봐 두려웠거든요. 가게 문 닫고 집에 들어가면 자정이 넘는데,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면 무섭잖아요.”
“의심 가는 사람은 없고요?”
“모르겠어요.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그것조차 모르니까요.”
“여자일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목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 없으니까요.”
“가게에 자주 찾아오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봐요.”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해요. 불가능해요.”
부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죠? 말해 봐요. 뭐든 들어줄게요.”
“지금처럼 필요할 때 와서 곁에 있어 줘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니까요.”
“그런데 오전에 반찬거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놓고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제야 오전에 받은 문자 메시지가 생각나 물었다.
“반찬거리 만들어 줄 사람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오전에 잠깐 기준 씨 집에 다녀왔어요. 오늘은 가게 쉬는 날이잖아요.”
“다녀와서 또 잤던 거예요?”
“자긴요! 그냥 누워 있었어요.”
“그런 옷차림으로 누워 있었어요?”
“왜요? 추워 보여요?”
“당연히 추워 보이죠.”
기준이 속살이 훤히 비치는 옷차림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저 좀 안아줘요.”
기준이 부령을 끌어당겨 힘껏 안았다.
“우리 침대로 가요!”
부령이 기준의 옷을 벗기며 침실로 잡아끌었다. 기준이 부령을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눕히고 슬립을 벗겼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부령이 허리띠를 풀고 그의 성기를 꺼냈다. 성기는 단단하게 서 있었다. 부령은 성기를 입속에 넣고, 이빨로 골이 파인 귀두를 자극했다. 기준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토해냈다.
“위로 올라와요.”
부령이 앉은 채로 기준의 팔을 잡아당겼다. 기준은 부령을 밀치고 침대 위로 올라가 가슴을 애무했다. 부령의 가슴은 무척 작았다. 유두가 없으면 가슴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가슴을 붙잡고 힘껏 빨았다. 부령이 허리를 들어 올리며 몸부림쳤다.
“입으로 거기 좀 해줘요.”
부령이 기준의 머리에 손을 대고 힘껏 밀었다. 기준은 부령이 원하는 부위를 손으로 만지고 혀를 집어넣었다.
“좋아요! 더욱더 세게 빨아줘요!”
기준은 사정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성기를 세워 진의 음부에 넣었다. 두 번째 사정하고 시계를 보니 네 시가 넘었다. 그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죠?”
“미나가 돌아왔나 봐요. 아침에 아빠 보러 간다고 나갔거든요.”
“어쩐지 미나가 안 보인다 했어요.”
“내가 나가 볼 테니,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요.”
부령이 보라색 가운을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갔다.
“집에 누구 왔어요?”
미나가 낯선 남자의 신발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기준이 삼촌!”
기준이 옷을 챙겨 입고 나와 “미나, 병원에 다녀왔다며?” 하고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죠?”
미나는 엄마 방에서 나오는 기준이 의심스러워 눈을 흘겼다.
“아빠 문제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단다.”
기준이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부령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런데 왜 엄마 방에서 나와요?”
“엄마 방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 잠깐 들어와 봤을 뿐이야.”
“거짓말!”
미나가 고개를 획 돌리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눈치챘나 봐요.”
기준이 부령의 귀에 얼굴을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내버려 둬요.”
“그런데 남편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계속 그대로 둘 건가요?”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네요.”
“미나는 뭐라던가요?”
“미나한테는 아직 물어보지 않았어요.”
“아빠가 깨어날 거라고 믿고 있군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병원에 가서 보면, 아빠가 어떤 상태인지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으니까요.”
“저 애는 주의력 결핍증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잖아요?”
“아빠가 어떤 상태인지 모를 정도로 심한 편은 아니에요.”
“요즘도 혼자 돌아다니고 그러나요?”
미나는 어디에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가, 정처없이 떠돌다 저녁 늦게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납치라도 당하면 큰일인데, 부령도 일을 나가다 보니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알았다. 감기 기운이 있어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집에 들어와 보니 미나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도 미나가 들어오지 않아, 경찰에 신고하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미나였다. 어디에 갔다가 이제야 들어오는 거냐고 묻자, 미나는 친구 집에서 놀다 온다고 거짓말하고는,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그런 일이 반복해 벌어졌다.
“그건 여전해요.”
“어디에 다녀온다는 말은 하지 않고요?”
“그 이야길 꺼내면 입을 다물어버려요.”
“그래도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오는 걸 보면 신기하군요.”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오늘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혼자 있었으면 우울해 약 먹고 죽어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런 말을 왜 해요. 당신 같은 여자가 우울해 죽는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그 정도 우울증은 누구나 다 가지고 살아가니까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기준이 부령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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