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떡국의 맛
99. 떡국의 맛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진 저녁 시간, 부령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남자가 숟가락을 집어 맛을 보았다.
“떡국을 좋아하시나 봐요. 오실 때마다 떡국을 찾으시잖아요.”
“이곳 떡국이 맛있잖아요.”
“떡국이 맛있어 봐야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그런가요? 그런데 왜 내 입에는 이곳 떡국이 더 맛있죠?”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무튼, 맛있게 먹어주니까 고맙네요.”
“다른 데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맛이요.”
지금 부령의 식당에서 떡국을 먹는 사람은 하나교에서 별동대를 이끈 차기철이었다. 차기철은 하나교에서 나온 뒤에 가끔 이곳 식당에 들러 떡국을 먹었다. 그가 이곳에 와서 떡국을 먹는 이유는, 조금 전 자신이 말한 것처럼 떡국이 특별나게 맛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전에 살았던 세상에서 먹었던 떡국과 맛이 똑같기 때문이었다. 다른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전에 살았던 세상에서 먹었던 음식과 맛이 조금씩 달랐다. 그런데 이곳 식당에서 먹은 떡국은 맛이 거의 같았다. 이미 오래전 일이라서 전에 살았던 세상에서 자기에게 떡국을 끓여준 사람이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났다.
“근처에 사시나 봐요.”
“근처에 사는 건 아니고요. 저번 때 한번 먹어보고 맛이 좋아서 다시 찾게 되더군요.”
“떡국 한 그릇 먹겠다고 먼 데서 오신다는 거잖아요?”
부령은 차기철이 근처에 사는 줄 알았다. 떡국 한 그릇 먹겠다고 먼 데서 찾아온다고 하니까 사람이 다르게 보였다. 솔직히 차기철이 부령의 눈에 드는 건 아니었다. 인상이 너무나 날카롭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기철이 가끔 찾아와도 달갑다는 생각보다는 왜 또 왔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떡국 한 그릇 먹겠다고 먼 데서 찾아온다고 하니까, 싫은 마음은 씻은 듯 사라지고 사람이 고맙게 느껴졌다.
“맛있으니까요.”
“일 때문에 근처에 온 것도 아니고요?”
“특별한 직업도 없는걸요.”
“직업도 없이 어떻게 먹고 살죠?”
“돈을 버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요.”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나 봐요.”
“그렇다고 봐야죠.”
“어떤 기술인데요?”
“그것까지는 알 필요가 없고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라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다. 그 말을 듣고 의심해 경찰서에 신고하면 자기만 불리해졌다.
“일이 많은가 봐요.”
“많지는 않아요. 가끔 의뢰가 들어오면 가서 처리를 해주죠.”
“성격이 깔끔하시죠?”
“저요? 그런 셈이죠.”
“그러면 일 처리도 깔끔하시겠어요.”
“일해주고 욕먹은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요.”
그때 식당 문이 열리고 젊은 사람이 들어왔다. 기준이었다. 부령이 기준을 향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하고 물었다. 차기철도 동시에 고개를 돌려 기준을 보았다. 기준이 차기철 눈을 피해 자리에 앉았다.
“손님이 있었네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왔거든요.”
“일 끝내고 들어온 거야?” “우리 일이 끝이 있나요. 사건이 터지면 언제든 나가는 거죠.”
“클럽 사건은 아직도 해결이 안 됐어?”
“아마도 길어질 것 같아요.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요.”
“두 남녀가 함께 클럽에서 빠져나갔는데, 어떻게 남자는 골목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아가씨는 행방불명이 되냐고.”
“누군가가 남자를 죽이고 여자는 차에 태워 데려갔겠죠.”
“지금까지 못 찾은 걸 보면 죽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거야 모르죠. 어디서 잘살고 있는지도요.”
“골목에서 죽은 채 발견된 남자, 조선족 사람이 죽였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그 말이 사실이야?”
“그 소문은 어디서 들었는데요?”
“우리 식당에 가끔 와서 밥 먹고 가는 아가씨가 있거든. 이야길 들어보니까 그 아가씨가 사고가 난 클럽에서 일한다지 뭐야.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조선족 이야길 하잖아. 클럽에 마약을 대주는 조직이라나 뭐라나.”
클럽에 마약을 대주는 조직이라는 말에 기준과 차기철이 동시에 부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가 정말 그렇게 말했단 거죠?”
“그렇다니까. 내가 왜 없는 말을 하겠어.”
“조선족 일당이 클럽에 마약을 대준다는 사실은 우리도 다 알아요.”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 그런 못된 짓을 다시는 못 하게 깡그리 잡아다가 가둬야 하는 거 아닌가?”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니까요. 급하다고 절차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막 하면 일이 제대로 되겠어요.”
“그럼 언제 다 잡아들일 건데?”
“그들과 결탁한 조직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못 찾고 있어요.”
“조선족은 물건만 대주고, 판매는 다른 사람이 한다는 거잖아?”
“장사하는 분이라서 이해가 빠르시네요.”
“장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까. 물건을 대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물건을 받아서 판매하는 사람이 있잖아. 마약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기준이 고개를 끄덕했다.
“물건을 판매하는 조직이 아직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지켜보는 중이에요. 물건을 대주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판매하는 자를 잡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마약을 판매하는 조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겠지?”
“그럴 테죠. 그런데 요즘 들어 조선족 일당 움직임이 뜸해졌어요.”
“뜸해지다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조선족 내부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싶어요.”
“무슨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건 아직 몰라요. 조선족 일당 중 몇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자기들끼리 다투다 죽였겠지.”
“짐작만 할 뿐이죠. 시체를 봤다는 사람도 없고요.”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시체를 못 볼 수가 있지?”
“불태워 없애든가 땅속에 묻었겠죠. 시체가 조선족이라는 게 밝혀지면 자기들까지 위험해지니까요.”
차기철이 거기까지 이야길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미끄러지는 소리를 듣고 기준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 얼마죠?”
차기철이 음식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갔다.
“자주 오는 사람인가 봐요?”
기준이 출입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와서 떡국만 먹고 가.”
“떡국만 먹고 간다고요?”
“다른 음식도 많은데, 이상하게 떡국만 찾네.”
“떡국이 입맛에 맞는 모양이죠.”
“입맛에 맞으니까 자주는 아니어도 드문드문 오는 거 아니겠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고요?”
“일 때문에 왔냐고 물으니까, 특별한 직업이 없대. 그래서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냐니까 그렇다는 거야.”
“어떤 기술인데요?”
“그건 알 필요가 없다고 안 알려줬어. 손님이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 말하기 싫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야지. 안 그래?”
“다음에 또 오면 무슨 기술인지 물어봐요.”
“말을 안 해줄 것 같은데?”
“안 해주면 어쩔 수 없고요.”
“밥 먹고 갈 거지?”
“간단히 차려줘요. 빨리 먹고 나가봐야 하거든요.”
“조금만 기다려. 금방 차려올 테니까.”
부령이 기준의 어깨를 툭 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기준은 조금 전 봤던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인상이 굉장히 날카로워.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차기철은 밖에 나와 두 사람 이야길 떠올렸다. 두 사람 이야길 듣고 기준이가 형사라는 걸 알았다. 조선족 일당 중 몇 명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그들을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는 하나교에서 일을 그만두고 나와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냈다. 밖에도 밥 먹을 때 빼고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다 보니 조금씩 지루해졌다. 급기야 뭔가를 하지 않고는 미칠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할 일을 찾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었다.
“난 놈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었어.”
해가 바뀐 첫날 밤 두 시경이었다. 좀체 잠이 들지 않아 그는 숙소에서 나와 거리를 헤맸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를 찾았다.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클럽 간판이 눈에 띄었다. 클럽에 가서 술이나 한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걸어가는데, 두 남녀가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남자의 팔에 안기 여자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때 승합차 한 대가 뒤따라 오는가 싶더니, 문이 열리고 사내 세 명이 차에서 내렸다.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 사내가 두 남녀 쪽으로 걸어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여자를 부축한 남자가 몽둥이를 맞고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고개를 쳐들자, 사내가 다시금 몽둥이로 있는 힘껏 휘둘렀다.
“아주 질긴 새끼구나, 이거!”
그사이에 다른 두 명의 사내가 여자를 일으켜 승합차에 태웠다.
“뭐하니, 빨리 안 타고!”
“죽었는지 봐야 하지 않겠니?”
몽둥이를 든 사내가 남자가 죽은 걸 확인하고 맨 나중에 승합차에 올라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차기철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무자비하게 죽일 수가 있지?”
자기도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만, 조금 전 봤던 사내처럼 무자비하게 죽이지는 않았다. 차기철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죽은 걸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숙소로 가면서 조금 전 봤던 사내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몽둥이를 휘두른 사내는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는데, 다른 두 명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밤에 다시 클럽을 찾았다. 다른 두 명까지 죽이려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새벽까지 기다려도 전날 봤던 승합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찾았으나 전날과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나타났군.”
나흘째 되는 날 그들이 나타났다. 차기철은 검은색 승용차에 몸을 숨기고 그들을 보았다. 승합차에서 세 명이 차례로 내려 담배를 피웠다. 그는 차에서 내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두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은 기억 못 해도 목소리는 분명히 그날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여기서는 안 돼!”
가지고 있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세 명을 한꺼번에 죽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놈 한 놈 죽이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는 다시 차로 돌아와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승합차가 움직이면 따라가 그들이 어디에서 사는지 알아둘 생각이었다.
“며칠 전 그 아가씨 어찌했니?”
“아무도 모르게 잘 묻었으니, 걱정할 거 없네.”
“경찰이 그 아가씨 찾는다고 난리지 않니?”
“난리 치면 뭐하니. 증거가 없는데.”
“근데 죽일 것까지는 없었지 않니?”
“죽이지 않으면 그 아가씨가 조용히 있었을 거 같니?”
사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저 자식이 고향에 있는 여동생이 생각나 지껄이는 거니까 네가 이해해라.”
“자식아! 정신 차려라. 여긴 우리 고향이랑 다르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죽은 목숨이란 걸 모르니?”
“자자! 진정하고, 이제 들어가 쉬어야 하지 않겠니?”
“넌 시계도 안 보니? 일 끝나려면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잖니.”
“삼십 분 일찍 끝난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니.”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고 들어갈까?”
세 사내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승합차에 올라탔다. 승합차가 출발하자 차기철도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았다. 그들이 차를 세운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모텔 주차장이었다. 차기철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모텔 안으로 들어가자 차를 돌렸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다시 모텔 앞에 차를 세웠다. 오후 다섯 시쯤에 사내들이 승합차를 몰고 모텔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식당 앞이었다.
“셋 중 한 놈은 오늘 꼭 죽인다.”
그들이 식당에서 나온 건 삼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한 사내는 화장실에 갔는지 나오지 않고, 두 사내가 먼저 나와 담배를 피웠다. 차기철은 차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그의 손에는 가늘고 끝이 뾰족한 철침이 쥐어져 있었다. 두 사내는 이야기하는 데 정신이 팔려 차기철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등지고 있는 사내의 가슴에 철침을 찔렀다. 날카로운 철침이 정확히 가슴살을 뚫고 들어가 심장에 꽂혔다. 사내를 찌르고 오 미터쯤 갔을 때, 뒤에서 “왜 그러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어서 오세요!”
사내를 죽이고 그가 찾은 곳은 부령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사내를 죽이고 나니까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그는 차에 올라타 부령이 운영하는 식당을 향해 달렸다. 다른 건 생각이 없고, 오직 부령이 해준 떡국만 먹고 싶었다.
“떡국 한 그릇 주세요.”
“또 오셨네요?”
하나교 피해자들 모임 대표가 찾아온 날 떡국을 먹고 간 뒤로 몇 번 더 가게를 찾았기 때문에 부령이 차기철을 한눈에 알아봤다.
“이곳 떡국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요.”
“그런가요. 그런데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부령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니요. 얼굴이 다른 날과 좀 달라서요. 뭔가 큰일을 하고 온 얼굴 같거든요.”
“저 같은 하찮은 인간이 무슨 큰일을 하겠어요. 배고프니까 빨리 떡국이나 한 그릇 끓여 줘요.”
그날 그는 다른 날보다 더 맛있게 떡국을 먹었다. 특별한 양념은 넣지 않고 다른 때와 똑같이 해준 떡국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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