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왕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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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4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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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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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무게감

DUMMY

성령은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어수선한 복장이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귀에 낀 아티팩트를 포함해서, 모든 장신구가 주술을 보조하는 장치였다.


귀족들은 복장을 보고 기함을 터트렸다. 복장이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투 복장으로 회의실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저런 못돼먹은..”

“상식이 없는 놈이다!”

“어느 안전이라고 회의장 품위를 떨어트리냐!”


어느 귀족은 성령에게 직접적인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회의장에 격전지에서 보일 법한 폭력의 전운이 감돌았다. 성령은 무감각하게 회의장 귀족들을 관찰했다.


‘···괴물이 많다.’


가히 전투 종족의 귀감이었다.


흔해빠진 계승자와 격이 달랐다. 특히 원탁에 앉은 4명은,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이었다.


행동력 넘치는 귀족이 성령을 퇴장시키기 위해서 일어났다. 원탁의 주인도 소란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오, 이제 왔는가?”


이권율이 성령을 반갑게 맞이했다.


행동력 넘쳤던 귀족은, 이권율이 성령을 맞이하자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다시 착석했다. 분노를 표출했던 귀족들도 어색하게 헛기침했다.


회의장 분위기는 금방 가라앉았다. 즈젠 샤오민은 여타의 귀족들과 다르게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상한 놈을 데리고 오셨군요.”


샤오민이 이마를 찌푸렸다.


“저런 패기면, 전장에서 그럭저럭 쓸만할 거 같군.”


오카베 자키하라는 샤오민과 반대로 성령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발견한 주술사입니다. 가문의 힘을 계승하기 이전에 계승식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일심이기의 경지죠.”

“어려 보이는데 벌써 일심이기라고요? 허..”


샤오민이 의문을 표했다.


“저 나이면 계승 하나를 제대로 다루기도 힘들 텐데, 복합 계승자는 성장이 꼬이지 않습니까?”

“첫 계승은 이미 백령의 단계입니다. 균형이 흐트러질 일은 없습니다.”

“···그건 놀랍군요.”


원탁의 인물이 성령을 품평했다. 그들은 성령을 쓸만한 물건으로 인식했다.


귀족들도 새삼스런 시선을 보냈다. 적어도 회의에 참석할 자격은 있다는 반응이다.


긍정적인 분위기다. 성령은 소름이 돋았다.


이권율이 대놓고 성령을 칭찬했기 때문이다. 침 발라놓았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귀족들에게 성령의 소속을 강제했다.


군대에 들어갈 생각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겠지만, 성령은 군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간악한 미물이..’


당장은 호의지만,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노예처럼 부려질 거다.


이권율이 생각하지 못한 건, 비등한 권력자가 성령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젊은 나이에 그런 성취라니. 오노타에 초대하고 싶군요.”

“···농담이 짓궂으십니다.”

“저는 농담 같은 거 안 합니다.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이권율 이마에 혈관이 돌출됐다. 지금은 얌전히 지내고 있지만, 과거의 이권율은 파괴자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불같은 성격을 자랑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자키하라는 무엇이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성령을 두고 은근한 알력 다툼이 발생했다.


“잠깐..”


샤오민이 더듬더듬 손을 움직였다. 그는 잊었던 100년 전의 기억을 갑자기 떠올렸다.


“주술사 성무르의 계승자?!”


그는 눈을 부릅뜨면서 주먹으로 원탁을 쳤다. 원탁은 두부처럼 부서졌다. 회의장에 바람이 몰아쳤다.


귀족들의 시선이 샤오민에게 집중됐다.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회의장이 고요해졌다.


“···크흠.”


샤오민이 부끄럽다는 듯 헛기침했다.


즈젠 샤오민, 그는 국경지에서 길쭉하게 이어진 280,788㎢ 크기의 영토를 다스리는 영주였다. 국가 간의 수입 · 수출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사회적인 체면이 중요했다.


이권율이 찝찝하다는 기색으로 물었다.


“아시는 계승자인가 봅니다.”

“젊었을 적에 선조 계승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관각의 주인께서 기억할 정도면, 굉장히 강력한 계승자였나 봅니다.”

“그보다는... 음, 뭐, 그럭저럭 쓸만하긴 했습니다.”


어째, 반응이 떨떠름했다.


원탁은 부서졌지만,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귀족들은 연기가 가라앉고 나서야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


성령에게 말을 거는 이들도 있었다. 원탁의 권력자가 관심을 보였으니,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성령은 그들을 피하지 않았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친분을 쌓아두는 건 의미 있었다.


회의장은 중앙에 위치할수록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성령은 외곽에 위치한 탓에 반대편의 이야기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무르익을 무렵, 한 귀족이 즈젠 샤오민에게 직접적인 의견을 물었다.


장황하고 거창한 질문이었다.


“중동은 수출 비용을 계단식으로 늘리고 있고, 아메리카는 작년부터 여행객을 막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해외로 수출하는 용병 규모를 대놓고 줄이고 있는데, 현 상황에 대한 팔도국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원탁에서 멀지 않은 인물이기에, 샤오민에게 말을 걸 용기가 있는 거다.


샤오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왕이 사라진 지 200년이 지났다. 놈들도 슬슬 흘러가는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거겠지.”

““ ··· ””


샤오민이 왕을 언급하자, 회의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왕’은 단어의 무게감부터가 달랐다. 우주의 여타 행성들은 왕이란 단어를 가볍게 쓰지만, 지구에서는 전혀 달랐다.


왕의 정확한 개념은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은 정복이었다.


대륙의 3분의 1을 정복한 자만이 왕이라 불릴 자격이 있었다. 까다로운 조건 탓인지, 기나긴 역사에서 정식으로 왕이라 인정받은 존재는 5명에 불과했다.


왕은, 천하를 지배한 자다. 유럽의 마지막 왕을 끝으로, 지난 200년은 귀족들의 시대였다.


왕이 없는 기괴한 평화의 시대.


일반적으로, 왕이 없는 시대는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서 매일같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세계의 흐름은 그것과 반대로 흘러갔다.


“나이를 먹어서 그렇지, 내가 너희처럼 젊었으면 지금이라도 전쟁을 준비했을 거다.”


관각의 주인은, 작금의 평화가 폭풍 전의 고요함이라고 여겼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세계의 균형은 절대로 영원하지 못할 거다. 여섯 개의 창은 안전한 평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서로를 찌르겠지.”


‘여섯 개의 창’, 절대 세력이라고 불리는 여섯 세력을 뜻한다.


아시아의 이씨세가, 중동의 요르단 성법기관, 아프리카의 대군벌, 유럽의 마법사 연합, 러시아의 뱌체슬라프, 아메리카의 로벌가 등.


지구의 여섯 세력은, 3개의 권세 귀족과 1개의 연합, 그리고 2명의 절대 지주로 나누어져 있었다.


중립국도 있지만, 흐름을 주도하는 건 결국 이들 여섯 세력이다.


샤오민의 발언은 위험했다. 조금은 돌려 말할 법도 한데, 모두에게 충격을 줄 생각인지 언어가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분위기가 침체됐다. 샤오민의 발언으로, 정보를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보다 못한 이권율이 회의를 강제로 종료시켰다. 빨리 끝나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귀족은 없었다.


귀족은 회의가 끝난 이후로도 바쁘게 움직일 거다. 이해관계가 얽힌 만남, 귀족이 회의에 참석하는 진정한 이유기도 했다.





* * *





회의장은 이씨세가가 제공한다. 세가는, 다른 귀족에게 자유를 주면서도 고삐를 놓지 않았다.


이권율은 이씨세가가 심어놓은 감시역이다. 참석자도 이러한 사실을 안다. 그것에 불만을 표하는 귀족은 없었다.


오히려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진 이씨세가가 다른 귀족에게 자율권을 보장해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세가는 아시아를 500년 넘게 지배한 진골 귀족이다. 귀족들은 이씨세가가 회의를 주도하는 것이 고맙기까지 했다. 권력자에게 오해받지 않고, 다른 귀족과 걱정 없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한 소감은 어떤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강력한 계승자더군요.”


회의장에서 멀지 않은 곳, 성령은 이권율과 단란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권율이 성령에게 차를 내줬다.


“여기까지 왔으면, 슬슬 결정을 내려야지. 설마 내 호의를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겠지?”


그는 지금까지 결정을 여유롭게 기다렸지만, 경쟁 상대의 등장에 조급함을 느꼈는지 대답을 재촉했다.


이권율이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성령이 차를 홀짝였다. 부드럽고 은은한 차였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군에 뜻이 없습니다.”

“그런 놈이 호의는 낼름 받아먹은 거냐?”


이권율이 성령을 압박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지만, 폭력까지 사용하면서 성령을 영입할 생각은 없었다. 깡다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건방진 놈.”


이권율은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로는 압박을 가했다.


담배 연기가 성령의 찻잔에 들어갔다. 성령은 연기가 가라앉은 찻잔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켰다.


차에서 쓴맛이 났다. 맛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권율은 담배를 뒤집어서 바닥에 담뱃잎을 털어버리고, 탁자에 놓인 문서를 성령에게 건넸다.


“처리할 일이 있다.”


애초부터 무작정 호의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일방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순간, 호의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나를 압박한 것도 이것 때문인가?’


성령은 이권율 앞에서 문서를 펼쳤다. 남성의 사진과 신상 명세서가 보였다.


“군부 출신의 범죄자다. 잘못을 저지르고 민간 지역으로 도망친 놈이지. 조용히 처리하려 했지만, 환각을 일으키는 놈이라 잡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야.”


군부는 범죄자 때문에 소란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계승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예상외로 흔했다. 도덕의 경계선이 옅어졌기 때문이다.


초월적으로 강해졌는데, 계급에 대한 특권의식이 섞이다 보니, 평범한 인간을 동족으로 보지 않는 거다.


게다가, 범죄를 저질러도 웬만해서는 사형당하지 않는다. 국가 입장에서 계승자는 어디서든 써먹을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생포가 최우선이긴 하지만, 능력이 까다로우니 처음부터 죽일 작정으로 상대해라.”


이권율은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길 원했다. 그래서 군부와 연결이 없는 성령에게 임무를 맡기는 거다.


성령은 확신했다. 제안을 거절하면 좋지 못한 꼴을 볼 거라고.


“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아서 좋군.”


이권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뒤편에 있는 시중에게 파이프 담배를 맡겼다. 성령은 이권율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이렇게 고개를 숙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서로의 위치가 바뀔 거다.


성령은 매일매일 강해지고 있었다. 그릇이 커지면서 권능의 저장 한도도 점진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성수진이 인간으로서 그릇이 크다면, 성령은 인간과 본질적으로 크기가 달랐다.


회의에서 본 괴물들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들이 세계에서 통하는 강자라면, 성령이 추구할 목표는 간단했다.


‘압도적인 강함.’


때로는 단순한 목표가 즐거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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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자연의 계승자 22.08.21 579 22 10쪽
18 성무르의 진정한 힘 +3 22.08.20 627 25 11쪽
17 집단을 자살시키는 자 +1 22.08.19 636 23 12쪽
16 계승자 범죄자 +1 22.08.18 685 22 12쪽
» 왕의 무게감 22.08.17 724 31 12쪽
14 아시아의 새로운 귀족 +2 22.08.16 723 26 11쪽
13 가문의 진실 22.08.15 733 31 11쪽
12 성령의 약혼녀 +1 22.08.14 760 27 10쪽
11 빗살 판을 계승하다 +1 22.08.13 797 30 11쪽
10 특별 자치 사무소 22.08.12 786 34 10쪽
9 가문으로 귀환하다 22.08.11 816 37 12쪽
8 계승자 성령 +1 22.08.10 836 41 11쪽
7 독보적인 존재 22.08.10 877 35 13쪽
6 지랄맞은 시험 +1 22.08.09 958 28 10쪽
5 가장 특별한 존재 +3 22.08.08 986 36 13쪽
4 계승식의 실체 22.08.07 1,030 33 12쪽
3 아시아 계승식 22.08.06 1,089 35 14쪽
2 과거의 영광 +2 22.08.05 1,303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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