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몹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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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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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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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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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3. 때론 사냥감도 사냥에 나선다 (3)

DUMMY

고명태 대표의 방 앞. 오는 내내 생각했지만, 머릿속이 정돈되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운 부름이었다. 우리가 했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고서야 부를 이유가 없는데. 논리에 허점이 있었나.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동행한 고주경 부장이 가만히 내 팔을 톡톡 두드렸다.


“안 대리.”

“네?”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마.”

“티 나요?”

“응, 언제나 티 나.”


쩝. 회사 쪽에 서서 날 상대해 온 사람의 말이니 맞을 것이다. 그녀가 그동안 나와 얼마나 얼굴을 붉히며, 속고 속였는가. 아무래도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속내가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쉽게 생각하고 대답해. 우리 오빠 단순한 놈이라 그편이 상대하긴 편할 거야.”


그러고 보니 고 부장이 대표를 오빠라고 하는 건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바리 게이트의 대표에 대한 조언일 뿐 아니라 인간 고명태 대한 조언이라는 건가.

믿어볼만한 이야기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거침없이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건 커다란 장식장이었다.

사람 대신 장식장이 방문객의 시선을 오롯이 빼앗아가는 구도였다.

거기엔 모조 장식 열쇠와 락스미스 협회에서 준 임명장과 상패 따위가 놓여 있었다.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눈에 뻔히 보였다.


‘아직 애다. 그래서 위험하다.’


“안 대리, 우리 안현중 대리. 오랜만이야.”


푸근한 목소리.

나에 대한 태도가 180도 바뀌어 있었다.

언제 얼굴을 붉혔었냐는 듯한 유연한 태도. 하지만 그건 시대를 잘 타고난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소양이다.

그저 잡몹일 뿐인 나는 딱딱한 태도로 대꾸했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제 동생에겐 별말이 없다. 고 부장은 익숙한 듯 정면보다 약간 위쪽을 바라보며 초점을 흐려놓고 있다. 이미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다. 좋은 방법인데?


“오크를 물리쳤다고?”


다행이다 용건부터 말해서. 나는 고 대표와 한 마디라도 덜 섞고싶다.


“네, 팀원들과 함께 물리쳤습니다.”

“어떻게?”

“제가 사설 헌터라 관련 화기를 좀 갖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팀원들에게 모두 분배했고, 당장 이 자리에 있는 고 부장도 몇 발 쏴서 나를 거들었으니까.


“설마 했는데, 자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락스미스가 됐지?”


깜짝 놀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 부장을 바라봤다. 이것까지 말했어요? 라는 뜻이었고, 당연히 그녀는 눈동자를 굴려 가며 부정했다.


“오크 척후조를 물리치라는 건 위키 의회의 의뢰야. 당연히 실린더로 지시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인 실린더가 아니라, 위키를 만나러 다녀왔던 ‘심연 속 실린더’를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아무도 못 봤는데.

고 대표가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푸근히 웃으며 말했다.


"위키 의회에 자네 이름이 떡하니 걸렸다니까. 이 사람아.”


뭐? 생각 못 해본 변수다. 이서영이 정리해 준 관련 문서를 읽어보고 왔어야 했는데, 나중에 위키를 만나면 보상을 준다더라, 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버렸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 유능한 락스미스가 가까이 있었는데 그동안 몰라보고 있었군.”


징그러워서 더는 못 들어주겠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더 푹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당연히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는 아니었고 그의 손아귀에서 몸을 빼내기 위해 몸부림을 친 거였다.

하지만 고 대표는 흡족하게 웃었다.

고 부장이 오빠 성격을 제대로 말해줬군. 단순한 놈.


“그런데 부르신 이유는···.”

“참, 내가 정신이 없었군.”


그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공략이라는 자경단이 어젯밤에 게이트 몬스터에게 공격 당했나 봐.”


고 대표는 락스미스 협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그것도 지역 임원이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정보를 접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정보야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지.


“지도부가 다 궤멸할 정도로 큰 피해를 봐서 당분간 활동을 중단한다나 봐. 이대로 다른 자경단에 흡수될지도 모르고.”


어? 이건 예상 못 한 소식이다. 개차반처럼 돌아가는 그 조직에도 나름의 체계가 있던 건가. 대표 궐위라고 활동을 중단해야 할 정도라니.


“공략이 자리를 비우면 서울 동쪽에 큰 구멍이 생겨.”

“설마...공략 말고도 다른 자경단은 많을 텐데요.”

“자네, 오크 척후대와 마주쳤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바리 오피스텔은 안전구역 한참 안쪽이다.

정리가 안 된 폐건물이 있다지만, 그건 건물에 숨어든 게이트 몬스터가 공격 의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 또한 오크 척후조가 왜 거기에서 나왔는지 궁금해하던 차였다.


“그게 안전 구역이 무너진 증거라고요?”

“오크 척후 부대는 락스미스가 두려워하는 게이트 몬스터지, 왜 그러겠나.”

“몰려···다녀서인가요?”

“수준 높은 락스미스는 그런 놈들이 한 트럭씩 와도 아무렇지 않게 물리칠 수 있어.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척후라는 거야.”


아, 전선을 개척하러 왔구나. 오크들이 바리 오피스텔까지 왔다는 건, 그때까지 락스미스를 전혀 만나지 못했다는 건데, 그건 곧 그 경로를 따라 게이트 몬스터 본대가 몰려온다는 뜻이다.


“그래, 안전 구역은 뚫렸어.”

“말도 안 돼···.”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버려가며 만들어낸 안전 구역이 이렇게 쉽게 뚫렸다니, 그것도 내 손으로 뚫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다른 자경단은 어디 있나요? 협회 쪽 락스미스는요.”

“없어. 자네에겐 아직 말해줄 수 없는 이유로 지금 안전선 곳곳에 구멍이 난 상태야.”


맙소사. 그런데 다들 이렇게 평화롭다니.

뉴스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소수의 락스미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고 대표처럼 출근하며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위기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평화는 곧 끝날 거야.”

“끝나다뇨.”

“말하자면 락스미스들에게 동원령이 내려지는 거지.”

“동원령이요?”

“쉿, 이건 기밀이야.”


고 대표가 눈을 번뜩였다. 뱀 같은 눈. 보고 있기 싫지만, 이 대화의 주도권은 관계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그가 쥐고 있다. 흥분한 그가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


“나는, 아니 자네는 참 운이 좋아. 그 타이밍에 자네 가치를 보여줬잖아.”

“가치요···?”

“오크 척후조를 물리친 거 말이야. 덕분에 나는 자네를 계속 거기에 둘 명분을 얻었어.”


락스미스 협회는 아무래도 락스미스 중 일부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그들을 서울 동쪽 안전선 유지에 투입할 계획인 것 같았다.

당연히 정부의 허락을 받고 벌이는 일은 아닐 거고. 정부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손 놓고 있겠지.


“동원한 락스미스를 회사 근처에 한 명이라도 더 투입하자고 주장하셨나 보군요.”

“맞아. 그런데 그뿐이 아냐. 덕분에 체면이 섰어. 정말 고마워.”


조금 놀랐다. 고 대표는 저런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가 아니고, 그저 고마움 자체를 못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맙다고 말하다니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자네들은 지금처럼만 하면 돼. 바리 오피스텔에 상주하면서, 적을 막아내라고.”



*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겸, 위험도 피할 겸 돌아갈 때는 안전 구역 안쪽 길을 택했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분수대에서 아이돌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다.

안전선 안쪽 서울은 바리 오피스텔 근처와 달리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불과 2㎞ 너머가 지옥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까요.”


락스미스로 이뤄진 치안팀이 순찰하는 모습이 보였다. 서울에 전투 목적의 락스미스가 5000명 정도 상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과연 그 정도가 될까 싶다.


“부장님 댁은 용산구죠.”

“응.”

“그럼 그냥 이 안에서 살 수 있잖아요.”


안전구역에서 평화롭고 부유하게. 선 밖의 일 따위는 신경 안 쓰고 말이다. 고 부장은 대답 없이 그냥 웃는다. 네가 뭘 알겠냐 그런 건가. 그런데 곧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락스미스 협회에 대해 얼마나 알아?”

"...딱 알려진 만큼요."


게이트가 열린 후 정부가 어리바리 타고 있을 때 경영자단체와 락스미스가 힘을 합쳐서 만들었고, 엘쓰리 부회장인 최재현이 협회장을 맡고 있다는 것 정도.

다시 생각하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긴 하다. 지들이 뭔데 동원령을.


"고 대표는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야. 회사의 크기나 락스미스의 능력이 우열의 모든 것인 그 협회에선 매일같이 열등감을 느낄 거야.”

“자신만만해 보이던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가 내보인 자신감이 열등감의 다른 단면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고 대표는 전방위적으로 무능해서, 전 대표인 그의 아버지로부터 지독히도 타박 당해 왔다.


"생각해 봐. 아무 것도 못 하던 사람이, 갑자기 게이트가 열리고 남들보다 잘하는 게 생긴 거야. 그런데 협회에서 한 자리씩 하는 기업들보단 뒤떨어진다는 게 내심 자존심이 상했겠지. 알잖아. 대기업 못 가는 락스미스만 우리 회사에 남은 거."


그 말에 락스미스가 된 후로 고 대표가 부린 패악질이 떠올랐다. 락스미스를 확보하는 데 광적으로 집착하고, 평범한 직원들은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게 고작 자신의 열등감과 자존감 때문에 나온 결정이었다니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네.


"락스미스라는 게 태반이 그런 인간들이야."


고 부장이 차갑게 말했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잡몹의 삶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나도 락스미스가 되자마자 유경수나 고 대표처럼 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그런데 고 대표가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를 퍼뜩 깨달은 듯 허둥지둥했다.


“아, 안 대리한테 한 말 아냐.”

“알고 있습니다. 괜찮아요. 나는 그런 걸 부끄러워할 여력도 없습니다. 이 행운을 열등감이나 자부심 따위로 낭비하기엔 내 삶이 이미 너무 처량하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볼을 붉히고 해명하느라 애썼다.

참. 저러니까 더 나한테 한 말 같잖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매일 이 악물고 회사생활 하느라 어른스럽고 간사한 사회인의 모습만 봤는데, 이렇게 보니 은근히 허당이다.


“흠흠. 어쨌든. 내 말의 요지는 고 대표가 말한 체면이라는 게 우리 계획에 도움이 될 거란 거야.”

“체면이요?”

“그래, 고 대표는 앞으로는 기업이 강력한 락스미스를 얼마나 보유하느냐에 따라 사세가 결정된다고 생각해.”

“기업이 무협지에 나오는 표국(鏢局) 같은 역할이라도 할 거로 생각하나 보네요.”

“표국?”


내 간략한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 비슷할 거야. 협회가 이미 정부의 국방, 치안 기능을 사실상 대신하고 있는 판이니, 앞으로는 락스미스가 있어야 기업 활동도 유리할 거로 생각하는 거지.”


하긴 엘쓰리는 장한용 팀장 같은 락스미스를 이미 수도 없이 고용했다. 배송 업무를 하느라 친근한 인상이지만, 열쇠를 손에 쥐기 시작하면 유경수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게 강할 것이다. 아, 그러면···.


“혹시 체면이라는 게···.”

“그래, 내 직원이 이만큼 강한 락스미스다 이거지. 지금까진 대기업에 가려다 떨어진 사람만 회사에 남았잖아.”

“부장님 오빠에게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네요.”

“병신이지 뭐. 그래도 협회 멍청이들 사이에서는 그게 또 얼마간 효과도 있을걸.”


그녀는 다시 맹렬히 분노를 쏟아냈다. 어지간히 맺힌 게 많은가 보군.


어쨌든 덕분에 이제 당분간 바리 게이트에서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는 건 처음 목표대로 게이트키퍼를 잡기 위한 준비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때 이서영에게 문자가 왔다.


-게이트 몬스터가 계속 출몰하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바리 오피스텔 오백 미터 밖에 머물러서 더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요. 혹시 모르니 데이트 그만하고 돌아와요.


데이트라니 무슨 무서운 소리를···.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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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P 28. 데스나이트 서태상 (5) 22.09.13 44 0 11쪽
27 EP 27. 데스나이트 서태상 (4) 22.09.12 54 1 11쪽
26 EP 26. 데스나이트 서태상 (3) 22.09.08 47 1 10쪽
25 EP 25. 데스나이트 서태상 (2) 22.09.07 49 1 11쪽
24 EP 24. 데스나이트 서태상 (1) 22.09.04 51 1 12쪽
» EP 23. 때론 사냥감도 사냥에 나선다 (3) 22.09.02 62 1 13쪽
22 EP 22. 때론 사냥감도 사냥에 나선다 (2) 22.09.01 55 1 11쪽
21 EP 21. 때론 사냥감도 사냥에 나선다 (1) 22.08.31 69 1 13쪽
20 EP 20. 잡몹 각성하다 (5) 22.08.30 68 2 12쪽
19 EP 19. 잡몹 각성하다 (4) 22.08.29 77 2 12쪽
18 EP 18. 잡몹 각성하다 (3) 22.08.28 83 2 12쪽
17 EP 17. 잡몹 각성하다 (2) 22.08.22 73 2 10쪽
16 EP 16. 잡몹 각성하다 (1) 22.08.19 89 2 11쪽
15 EP 15. 잡몹 아지트 '리젠' (4) 22.08.18 92 2 10쪽
14 EP 14. 잡몹 아지트 '리젠' (3) 22.08.17 90 2 11쪽
13 EP 13. 잡몹 아지트 '리젠' (2) 22.08.16 100 2 11쪽
12 EP 12. 잡몹 아지트 '리젠' (1) 22.08.15 10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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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P 08. 잡몹들의 목숨 건 어그로 (2) 22.08.13 169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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