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북벌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나홍연
작품등록일 :
2022.08.12 23:14
최근연재일 :
2022.11.06 03:20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7,925
추천수 :
467
글자수 :
318,555

작성
22.10.06 16:00
조회
251
추천
4
글자
11쪽

범찰의 이간계

DUMMY

차기 대추장 자리라면 먼터무의 친아들인 아고나 충샨 중에 하나여야 이치에 맞는 것이었다. 양무타우는 어디까지나 주워다 기른 양아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먼터무가 이끄는 오도리족의 부족 대부분이 양무타우가 차기 대추장이 될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용에 있어선 그를 따를 자가 없었고, 먼터무 역시 그를 친아들처럼 대해 왔으니 더욱 그러하였다.


하지만 먼터무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차기 대추장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친아들의 입장에선 그런 아버지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못내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숙부인 범찰마저 차기 대추장으로 양무타우를 이미 확신하고 있으니, 어찌 곱게 받아들일 수 있으랴.


그런데, 사실 이는 범찰의 꾀였다.


먼터무로 하여금 조선과 싸우게 하기 힘들다면, 양무타우를 그로부터 떨어뜨려 이만주와 합종케 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먼터무의 병력이 없이도 충분히 조선군과 대적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자신 또한 어가를 공격했다는 죄목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몸이 묶여 조선에 바쳐지는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이건 내가 쓰려고 따로 빼놓은 것인데, 이거라도 가져가겠느냐? 내 미리 챙겨주지 못하여 미안하구나.”


범찰은 아고와 충샨에게 그렇게 말하며, 뒤편에 숨겨두었던 면포 한 필을 꺼내어 내밀었다. 조카가 두 명인데, 면포는 고작 한 필이라니... 아까 부하 병사가 지게에 싣고 나르던 것과 비교해 보니 더욱 초라해 보였다.


“이건 숙부님이 쓰십시오. 저희는 괜찮습니다.”


아고는 난감해 하는 범찰을 향해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사양하였다. 하지만 아고도 충샨도 속이 좋지는 않았다.


그쯤에서 아고와 충샨은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포에 관한 건 형님께 비밀로 좀 해주게. 나도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다 보니... 족장님께는 다음번에 따로 더 나은 걸로 보내드릴 테니까.”


“네, 그리하겠습니다. 숙부님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범찰의 성채를 떠나 먼터무의 본성으로 다시 돌아온 그들은 먼터무에게 자신들이 본 숙부 범찰의 용태를 전했다. 굳이 면포에 관한 일을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결국 먼터무도 면포에 관한 일과 범찰이 조선 왕의 마차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범찰은 물론 양무타우까지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


다시 현재, 범찰의 성채를 포위하고 있던 최윤덕의 진영


어느덧 해가 져서 밤이 되었다.


최윤덕의 군대는 일부러 진흙뻘이 펼쳐져 있는 서문만을 비워둔 채 진채를 구축하여 밤을 보냈다. 그러자 이를 눈치 챈 일부 범찰의 부족원들이 야음을 틈타 진흙뻘을 지나감을 감수하면서 서문을 통해 탈출을 감행하였다.


윤덕의 병사들은 이미 이를 알고 있음에도 그대로 탈출하게끔 내버려 두었다. 진창이 20리도 넘게 이어진 길이기에 군량을 가지고 도망갈 수도 없는 길이었다.


두 번째 밤이 되었을 땐, 먼저 탈출을 감행한 부족원들이 별 탈 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터라, 더 많은 인원들이 밤을 틈 타 탈출을 시도하였다. 이때에도 역시 조선군은 그들의 탈출을 짐짓 못 본 척 하였다.


그렇게 사흘째가 되던 날, 마침내 성채의 문이 열렸다. 노약자와 부상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이들은 먼터무의 구원군을 포기하고 조선군에 항복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성 내로 들어선 최윤덕이 병사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늙은이와 어린 아이들을 함부로 상하게 하지 마라. 부녀자를 희롱하지 마라. 장정이라도 항복하면 죽이지 마라. 가축을 상하게 하지 말고 집을 불태우지 마라. 이를 어기는 자는 반드시 군법에 따라 처벌하겠노라.”


윤덕이 그렇게 겁에 질린 범찰의 부족원들을 위무하자, 성내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 갔다. 조선군의 뜻밖의 후한 대접에 야인 포로들은 적극적으로 조선의 병사들에 협조했다.


성내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이양정이 윤덕을 찾아와 말했다.


“성안의 상태를 살펴보니, 이들은 전쟁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기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합니다.

압록강에서 가장 가까운 진채가 이 정도라면, 먼터무의 본성도 대비가 소홀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참에 여유를 주지 않고 바로 먼터무의 본성을 짓쳐봄은 어떠신지요.”


양정이 성채의 방비 상태와 지난 이틀간 결국 먼터무의 구원군이 오지 않았음을 감안하여 그렇게 책략을 올렸다. 하지만 윤덕은 무겁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주상께서 내린 명령을 벌써 잊으셨는가. 주상께서는 설령 기회가 난다 하여도 이곳에서 주상의 군대를 기다리라 이르지 않으셨나.”


“물론 기억합니다만, 당시 주상께서는 먼터무의 구원군을 염려하셨던 것일 겁니다. 하지만 소신이 미루어 보건데, 지금까지 먼터무의 성쪽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을 보면, 필시 그들이 준비해 놓은 계교가 아직 미흡함이 분명할 것입니다.

노련한 장수는 적이 예상치 못한 장소와 예상치 못한 때를 노린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전장에 나선 장수는 왕명이라도 거스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부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만주 땅에서의 첫 번째 공적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이보게, 이군사!”


양정의 말에 윤덕의 표정이 돌연 차갑게 변하였다.


“소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선은 넘지 마시게. 주상께서 구체적으로 영을 내리실 때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세. 그리고 이군사는 우리 군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은가.

지난 일당가와의 일전에서 군사의 책략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이해하네. 하지만 군사의 그 책략이란 것도 결국 핵심은 주상께서 문악에 미리 준비해 두신 배 때문이 아니었나.

내가 주상이었으면 중강진에서 자네를 일등공신으로 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네.”


윤덕이 양정의 눈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윤덕의 눈빛은 격앙되지도 감정을 억누르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싸늘할 뿐이었다. 그 끝에 닿기만 하여도 온몸이 가루가 되어 부서질 정도로 예리하고도 싸늘할 뿐이었다.


“소신의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부디 용서하소서.”


양정은 그제야 도원수라는 자리의 무서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장에서 왕명을 거스를 수 있는 자리, 그와 동시에 왕이 직접 임명한 장수라도 왕의 윤허 없이 목을 벨 수 있는 자리. 그저 사람 좋게 허허 웃을 줄만 아는 반백의 노장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군사, 공을 다투지 마시게. 책사가 공을 다투는 순간, 시야가 흐려지는 법이네. 이는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일세.”


양정을 너무 몰아세운 것 같아, 윤덕이 짐짓 어조를 부드럽게 하여 그렇게 말했다.


기실 윤덕은 양정이 첫 전투에서 너무 큰 공을 세운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일생을 산중에 틀어박혀 글만 읽었던 그가, 벗이라고 해봐야 고만고만한 또래들과 친교하며 서로 추어주기만 해왔던 그가 -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의 생리를 이해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함길도 길주 전선.


함길도 도관찰사 김종서가 길주의 병사들을 군영에 모아 놓고 훈련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봉시진 훈련이다. 공격군과 수비군을 나누어 각기 병장기를 분배토록 하라!”


종서는 훈련 시간에 일찌감치 나와 절제사 성달생과 함께 직접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본시 태조(이성계) 대에만 해도 동북면의 국경은 두만강 유역의 경원을 기준으로 하였다. 그런데, 태종(이방원) 대에 그 지방이 먼터무가 이끄는 오도리족의 침략을 받으며 그만 함락당해 버리고 말았다.


군과 백성들이 아울러 경원 지역에서 벗어나니, 조정에선 더 이상 그 쪽 지역을 조선의 영토로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연유로 한참 남쪽으로 내려와, 이제는 길주 북면에 방어선을 구축하기에 이르고만 것이었다.


그리고 반 년 전, 임금은 당시 좌대언이었던 김종서를 불러 일렀다.


“경도 알다시피 두만강 유역 경원 지방은 본시 태조께서 거느리던 땅이었소. 하지만 그 무도한 먼터무가 태조와 상왕전하(태종)의 은혜를 저버리고 경원 땅을 침략하여, 지금은 야인들이 설치는 땅이 되어 버렸소.

과인은 그 땅이 반드시 조선의 영토로 다시 편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러기 위해선 일단 그 근거를 마련해 두어야겠지. 경은 이런 과인의 뜻을 받들어 고려 때의 동북 9성의 위치를 확인해 주길 바라오.”


임금은 동북 9성의 북쪽 한계가 두만강 유역의 경원, 온성은 물론, 두만강을 건너 북쪽 700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려를 계승한 조선이 이 땅을 반드시 수복하여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길도 도관찰사에 임명된 김종서는 처음에는 임금의 제수에 불만을 가졌었다. 중앙에서 멀어져 변방에 처박혀 있다 보면 그만큼 승진에 불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껏 부여받은 임무가 고려 윤관이 세운 동북 9성의 위치를 찾아내라니.


처음엔 조정의 신하들 중 누군가가 자신을 음해하여 변경으로 내친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어명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 비록 옛 유물이나 찾아 나서는 - 하급관리에게나 시킬 법한 일을 부여받기는 하였으나, 종서는 매일매일 성심을 다하여 그 일을 수행해 나갔다.


그런데 며칠 전, 뜻밖에도 중강진에서 임금의 칙지가 내려왔다. 증원군을 보내줄 테니, 동북면으로 북진을 하라는 명령이었다.


「함길도 도관찰사 김종서는 삼가 받들라. 김종서는 이 칙지를 받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경성 지방 수복을 위한 출정 준비를 하라. 과인이 이를 위해 따로 증원군을 보내니, 함께 의논하여 겨울이 오기 전 경성을 확보하도록 하라.」


임금이 내린 칙지는 종서로 하여금 길주를 지키고 있던 군사를 이끌어 길주 북쪽에 있는 경성 지방을 공략하라는 것이었다.


‘증원군까지 보내주신다면, 주상의 동북면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셨구나.’


길주는 여진이 활동하는 지역과 가까운 곳으로 원래도 적잖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병 일 천을 포함하여 총 5천 정도의 병력이었는데, 이 정도만으로도 경성 지방 정도는 충분히 토벌이 가능하였다.


그럼에도 증원군을 보내준다는 것은 동북면 전체를 수중에 넣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그러자 종서의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변방의 한직으로 내몬 것이 아니라, 기실 병마를 이끌고 대장군으로서 공을 세우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꾸물대지 말고, 민첩하게 움직이거라! 새로 오는 병사들에게 얕보이고 싶은 것이냐!”


종서는 문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의식해, 도관찰사로 임명된 뒤 더 열성으로 병사들의 훈련에 열을 올려왔던 터였다. 그럼에도 행여 임금이 보내주는 증원군보다 자신이 조련시킨 병사들이 뒤처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흡사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병사들을 닦달하기 일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종북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추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스토리 라인 변경) 22.10.04 253 0 -
57 최종회 22.11.06 240 2 11쪽
56 진정 마음을 굳힌 것이오 22.11.06 216 2 13쪽
55 장군의 무예 22.11.01 175 2 12쪽
54 홍사석 vs 척효성 22.10.29 193 5 12쪽
53 오라버니 군대 두 번 간다 22.10.27 211 4 12쪽
52 외통수 22.10.25 204 4 12쪽
51 만인장의 기재를 갖추다 22.10.22 214 5 13쪽
50 군대를 두 번 가라니요 22.10.20 235 3 13쪽
49 인재는 우라산성으로 모이고 22.10.18 223 2 12쪽
48 호부견자 22.10.15 213 3 13쪽
47 송서방, 말은 탈 줄 아는가? 22.10.13 225 3 13쪽
46 다음달이 전역인데... 22.10.11 244 5 13쪽
45 병력의 절반을 잃게 될 걸세 22.10.09 251 3 12쪽
44 이징규 22.10.08 245 4 13쪽
» 범찰의 이간계 22.10.06 252 4 11쪽
42 양무타우 22.10.04 273 4 12쪽
41 과인이 서운한 점이 많소 22.10.01 299 4 12쪽
40 척가의 핏줄 22.09.30 279 4 12쪽
39 대적하려는 자, 이 칼을 들어라 22.09.29 267 4 12쪽
38 극강 생존의 달인 22.09.28 289 4 12쪽
37 김인을, 최해산 22.09.27 287 5 12쪽
36 소인이 아니라, 소장이라 하거라 +2 22.09.24 318 5 13쪽
35 왕은 인의를 지키는 자가 아니다. +1 22.09.23 316 5 13쪽
34 오랑캐는 그만 항복하시오 22.09.22 320 6 13쪽
33 조선 왕의 만용이로다 +1 22.09.21 306 6 13쪽
32 그것이 그리 쉽게 부서지겠나 22.09.20 297 4 12쪽
31 어찌 나의 병사들을 버리란 말인가 22.09.17 312 5 13쪽
30 이 전쟁, 오래 끌 이유가 없습니다 22.09.16 333 5 12쪽
29 일고초려 22.09.15 336 3 12쪽
28 삼고초려 22.09.14 353 5 13쪽
27 떡값이나 받아 가시오 22.09.13 332 3 12쪽
26 그만 떠들고 덤벼라, 오랑캐 22.09.10 366 7 12쪽
25 너의 왕을 지켜라! 22.09.09 366 6 12쪽
24 뜨거운 술이 식기 전에 (2/2) 22.09.08 346 6 13쪽
23 뜨거운 술이 식기 전에 (1/2) 22.09.07 366 7 13쪽
22 조선군의 피로 해자를 채우게 되었구려 22.09.06 420 8 12쪽
21 네가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였구나 22.09.03 390 9 13쪽
20 아무래도 눈이 침침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1 22.09.02 414 10 12쪽
19 네놈이 이제야 고개를 숙이는 구나 22.09.01 437 10 13쪽
18 이만주의 구상 22.08.31 443 8 13쪽
17 내 다시 한 번 해 보리다 22.08.30 450 10 12쪽
16 이놈이 발칙한 구석이 있었구나 +1 22.08.27 482 10 13쪽
15 밤시중이라도 들겠느냐 +1 22.08.26 533 10 13쪽
14 복룡 이양정 22.08.25 520 10 13쪽
13 약산의 늑대 추양구 22.08.24 540 10 12쪽
12 백인참살 곽성오 22.08.23 557 12 12쪽
11 흑표 홍사석 22.08.22 618 12 12쪽
10 야인 7부족 회의 22.08.21 694 13 12쪽
9 과부를 내어주고 장수를 얻다 22.08.20 776 1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