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나라의 앨리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2023.04.30 20:4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527
추천수 :
42
글자수 :
159,433

작성
22.09.11 20:06
조회
90
추천
1
글자
7쪽

4화. 귀국선 –1-

DUMMY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은 크다”


이인권 노래, ‘귀국선’ (1946) 中


2022년 겨울.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앞으로 약 40분 뒤에 나진 경흥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현재 공항의 날씨는 맑으며 기온은 섭씨 영하 2도입니다. 현재 시각은...”


남자 기장의 안내 목소리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뚫고 A330 여객기 내부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상해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699편은 2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여느 때와 같이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철혁은 눈 앞에 놓인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구글어스같이 3D 인공위성 지도로 구성된 비행정보 항목은 이 비행기가 함경남도 단천시에서 함경북도 성진시로 막 도계를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백두산 천지에서 뻗어 나온 이 산줄기들은 그 경사를 자랑하며 개마고원에서 이곳저곳으로 뻗어나간다. 어떤 산줄기는 저 평안북도 쪽으로 뻗어나가고 또 어떤 산줄기는 함경북도로, 함경남도로 뻗어나가다가 동해안에서 그 고개를 숙이고 파란 대지 속으로 서서히 얼굴을 묻는다.


이 산줄기들이 바다를 앞두고 겸손해지면서 형성된 작은 해안가의 자투리 평야에 사람들이 정착해 밭을 가꾸고 부락을 건설하고 도시를 세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산줄기들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기에는 자연의 관용은 결코 충분치 않았다.


이 가혹한 역사의 땅에서 함경도민들은 천년 넘게 살아야 했기에 고슴도치처럼 매사에 날을 세우고 모든 것을 매의 눈으로 예의주시해야 했다. 그렇게 고난을 씹으면서 그들은 이 거친 땅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오늘의 문명을 이뤘다. 김철혁도 그랬다. 감상에 젖으면서 그는 마음 속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씨팔.’


김철혁의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철학은 그의 번뇌를 잠시라도 씻어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제 잠시 후면 그렇게 감상적 사고에 젖어 앉아 있을 여유도 없다.


‘내가 왜 이걸 하겠다고 했을까... 차라리 매장당하는게 낫지.’


철혁은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자 핸드폰을 꺼내 드라마라도 보려 했다. 그러나 착륙도 얼마 남지 않은 판에 영상을 볼 마음이 사라졌다. 그는 이윽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놓고 앞에 놓인 모닝캄을 꺼내 들었다.


잡지에는 철혁이 가보지 못한 온갖 해외 여행지에 대한 화려한 사진과 미사여구로 가득 차 있었다.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부터 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의 절벽 해안까지 이 미지의 세계들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를 하면서도 뭔가 여운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하는 건 독자들로 하여금 돈을 들여서라도 방문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듯 했다.


국내 여행지도 있었다. 지리산 노고단에 피어있는 진달래 꽃밭부터 묘향산 칠성봉까지. 사실 칠성봉은 그도 가보기는 했다. 단지 동계 훈련을 위해 갔을 뿐. 그래서 그 경치는 제대로 감상해볼 겨를은 없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한번 가볼까. 그런데 내가 살아있을 거란 보장은 있을까? 김철혁의 머리는 또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귀 또 아파!”


이륙 직후부터 가운데 좌석에서 귀가 아프다고 칭얼대던 꼬마 남자애가 한동안은 조용히 있더니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지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젊은 엄마는 사탕을 물려 진정을 시키려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자 당황하는 눈치였다. 애가 자꾸 울어대자 철혁은 짜증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론 저 아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에 부러움과 회한이 밀려오기도 했다.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비행기는 곧 경흥국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하여 좌석 등받이와 발 받침대, 테이블을 제자리에 해주시고 꺼내놓은 짐과 노트북 등 전자기기는 좌석 아래나 선반 등에 보관해주십시오.


해외 감염병의 국내 유입 방지를 위해 해외의 가축 농장을 방문하였거나 해외에서 생산된 농축수산물을 가져오신 분은 검역당국에 반드시 신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저희 대한항공에서는 러시아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에 육로로 입국하려는 손님 여러분들의 편의를 위해 경흥국제공항에서 러시아 하산과 중화인민공화국 방천, 훈춘, 도문 방면으로 가는 KAL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입국심사 후 공항청사 1층에 있는 KAL 리무진 교통센터의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대한민국 외교부와 중화민국 외교부의 요청 사항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입국하려는 중화민국 국적 소지자분들을 위해 특별 안내 사항을 말씀드립니다. 2021년 12월 29일부로 중화민국 내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전역에 대한 통행경보 적색 단계를 발령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중화민국 국적자에게 발급된 기존 출경허가증은 12월 29일부로 효력이 중지되었으며 국적자들의 내정부의 특별 심사를 받지 않은 중화인민공화국 입경은 금지됩니다. 중화민국 국적자가 중화민국 혹은 제3국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무단으로 입경할 시 중화민국 국가안전법 3조에 의거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만 중국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점 안내드립니다. 관련한 상세 내용은 입국심사 후 공항청사 1층에 있는 주한 중화민국 영사관 경흥국제공항 출장소에 방문하여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스튜어디스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 특별안내사항이 한국어에 이어 중국어로 나오자 남중국인들로 보이는 승객 몇 명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하거나 중국계로 보이는 스튜디어스를 불러 중국어로 뭐라뭐라 하고 있었다. 철혁에게 해당 되는 얘기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전혀 남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그도 어차피 이 거대한 게임의 한 참가자였기 때문이었다.


엔진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쿠루룩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퀴가 내려가는 소리였다. 김철혁은 창밖을 다시 바라 봤다. 나진광역시의 풍광이 보였다. 앞으로는 동해 바다가 자리잡고 있었고 뒤로는 개마고원의 끝자락이 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끝없이 늘어선 유리 마천루와 항구. 부두로 접근하려는 수많은 화물선의 트래픽과 이 배들이 만들어내는 하얀 물살. 이 국토 최북방의 거대 도시는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철혁을 마치 팔을 벌려 환영이라도 하듯이 뻗어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이 환영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비행기가 마침내 경흥국제공항 활주로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착륙했다. 동번포(東藩浦)와 서번포(西藩浦) 호수의 자태는 그대로였다. 백두산 홍토수에서 시작된 두만강은 547km의 여정을 마치고 동해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두만강의 여정은 끝났지만 김철혁의 기묘한 여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북쪽 나라의 앨리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4월 말 쯤 연재 예정입니다. 23.04.21 16 0 -
공지 다음주 일요일 쯤 연재예정입니다. 23.04.02 22 0 -
공지 다음 주 일요일 쯤 연재될 예정입니다. 23.03.18 13 0 -
공지 이번주 일요일 연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23.03.03 43 0 -
37 21화. 책임 회피 23.04.30 26 1 7쪽
36 20화. 유혹 23.04.09 26 1 7쪽
35 19화. 심문 23.03.26 40 1 7쪽
34 18화. 체포 23.03.12 31 1 7쪽
33 17화. 첫 만남 (3) 23.02.26 34 1 7쪽
32 17화. 첫 만남 (2) 23.02.19 26 1 10쪽
31 17화. 첫 만남 (1) 23.02.12 29 1 9쪽
30 16화. 시작 23.02.05 33 1 8쪽
29 15화. 전조 23.01.29 44 1 7쪽
28 14화. 그림자 23.01.22 38 1 7쪽
27 13화. 시비 -2- 23.01.15 38 1 9쪽
26 13화. 시비 -1- 23.01.08 39 1 9쪽
25 12화. 망중한(忙中閑) 23.01.01 50 1 11쪽
24 11화. 의심 22.12.25 48 1 8쪽
23 10화. 가창조국 +2 22.12.18 56 1 10쪽
22 9화. 방사능 녹차 22.12.11 59 1 13쪽
21 8화. 계획 -3- 22.12.04 64 1 10쪽
20 8화. 계획 -2- 22.11.27 59 1 9쪽
19 8화. 계획 -1- 22.11.20 59 1 10쪽
18 7화. 탄식 -3- 22.11.13 62 1 11쪽
17 7화. 탄식 -2- 22.11.06 57 1 13쪽
16 7화. 탄식 -1- 22.10.30 64 1 12쪽
15 6화. 연길 가는 길 22.10.23 64 1 19쪽
14 5화. 조우 -3- 22.10.16 64 1 14쪽
13 5화. 조우 -2- 22.10.10 64 1 8쪽
12 5화. 조우 -1- 22.10.09 64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