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심심하니 게임이나 해야겠다.
시간 죽이기 좋고, 플레이 타임 적절한 걸로.
상위권 게임은 거의 찍먹해봤다. 그래서 스크롤을 한없이 내렸다. 야겜 같은 미연시, 힙스터 감성 충만한 퍼즐을 지나, 갑옷과 지팡이가 그려진 홍보 배너에서 멈췄다.
[‘마법의 중세 대륙 유타니아.’ 리얼한 중세 판타지 세계를 체험해보세요!]
중세 판타지는 흔하지만, 제작사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서 끌렸다. 캐릭터 생성을 누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호오.”
모닥불에 둘러앉은 용사군단이 날 맞이했다.
단순 그래픽을 넘어, 홍보 문구대로 생동감이 엄청났다. 군침이 싹 돌았다. 엔딩까지 봐야지.
그중 기사로 전직할 수 있는, 우락부락한 종자(Squire)나, 신비로운 눈의 학자(Scholar)가 제일 눈에 띄었다. 대표 직업이라 앞에 있는 모양이다.
근데 기사나 마법사라··· 너무 식상한데. 어, 추천 직업이 있네?
[개발자의 추천 직업 : 성기사(Paladin)]
-수도사(Monk)로 시작합니다.
-유일신을 섬기는 예블라 교단 최고위 전사입니다.
-타 직업은 사용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힘, 신성력을 사용합니다.
-명예와 자비를 직업으로 처녀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유일무이라는 단어가 날 잡아 끌었다. 추천 직업이면 찍먹하기 좋을 테니 이걸로 결정이다. 그대로 생성을 눌렀다.
스텟은 자동 분배로 설정했다.
수도사의 주요 스텟, 민첩과 신앙심에 큰 부분을 할당하고, 몇 포인트 안 남은 건 떨이하듯 힘으로 설정했다. 게임의 팁이 추천한 대로.
특성 스킬 창은 좀 특이했다.
다섯 개 홈이 뚫린 보석함이었다. 하나뿐인 스킬 젬을 박자 신성력 게이지가 차올랐다.
『남은 신성력 : 100%』
[S급┃예블라의 무한한 믿음.]
-유타니아의 창조자 예블라는 추종자들에게 무한한 믿음을 보냅니다.
-때때로 추종자가 정도에서 벗어날지라도, 유일신의 마음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오직 한 가지만 보이면 됩니다. 주신을 향한 변함 없는 믿음을.
-초보자 전용 특성으로 더 많은 요소에 신성력이 적용됩니다.
-본작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습니다.
“초보자 전용이라···”
약간 자존심 상했다.
난 게임을 잘하는 축에 속한다. 타 게임에서 고인물 소리도 듣고. 보스 최초 클리어를 노리는 순위권 공대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 게 그 증거다.
그래도 특성 젬을 빼진 않았다. 찍먹부터 해보고 2회차에 빼야지.
커스터마이징도 금세 완성했다.
매일 아침, 화장실 거울에 비친 모습대로 만들었다. 본래 얼굴보단 조금 못생겼지만, 대충 만족하고 넘어갔다.
닉네임 설정에선 잠깐 멈칫했다.
성기사하니 커뮤니티에서 본 전설의 썰이 생각났다. 실실 웃다가, ‘인간성기삽니당’이라고 적어봤다.
[비속어 및 금칙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분이 팍 상했다. 실시간 다운로드 순위 1000위도 안 되는 마이너 게임이 날 무시해? 나는 비속어와 금칙어 없는 복수를 준비했다. 최대 글자 수 11자를 꾹꾹 채웠다.
-개발자까불면나한테죽어
[사용할 수 있는 닉네임입니다!]
1:1 문의 읽을 때마다 엿이나 먹어라.
튜토리얼은 스킵했다.
귀찮기도 하고. 하면서 배우면 되겠지 싶었다.
게임이란 시간 죽이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시작 버튼을 누르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창문을 열어놨나?
눈 비비던 손을 치운 그 순간
-히이이이잉!
어디선가 나타난 마차가 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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