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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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uan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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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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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DUMMY

K와 연락 후 연구소에 머무르는 동안 당장에 할 일은 최대한 많은 샘플을 구해오는 것이 전부였다. K는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연구소에 머무르면서 그들을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분명 한강을 버리고 이동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기도 했고 당장 수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지금 이동하는 것은 사람들의 반발심을 키우는 일이 될 것을 염려했다. 대신 최대한 한강을 사용하지 않고 비를 맞지 않게 하면서 안전하게 이동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여기도 아무것도 없으면 오늘도 허탕이네."




M이 마지막 건물을 들어서며 우산을 접었다. 우산을 쓰는 것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그동안 굳이 비를 맞지 않을 이유도 없었고 오히려 우산을 들고 다닌 다는 것은 여러모로 생존에 불편했기에 사용한 적이 없었다.




"아니, 꼭 우산에 우비까지 입고 움직여야 하는 거야? 이거 어디 불편해서 수색이나 하겠나."




M은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뭐 안 쓰고 싶으면 안써도 돼. 우산도 우비도. 하지만 네가 두억시니가 된다면 내가 형으로써 마지막 자비를 생각해 고통없이 한 번에 죽여줄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말 한번 무섭게 하네. 그냥 불편하니깐 그런 거지."




"죽기 싫으면 불편해도 감수해."




건물은 어두웠다. 전기가 끊겼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비때문에 충분하지 못했다. 건물 안은 습하고 싸늘했다.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창문은 깨져있고 복도는 난장판 이었다. 약 1시간 동안 건물을 살펴보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오늘도 허탕이네요. 복귀할까요?"




여진우는 작동 중이던 카메라를 껐다.




"나는 꽤 중요한 것을 하나 구했지."




"뭐에요?"




"이따가 복귀하면 알려줄게."




M은 여진우가 궁금해 하는 것을 보는 것을 즐겼다. 그 나름의 소소한 재미를 일상에서 찾고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을 토대로 볼 때 귀매와 두억시니는 당장 한강 쪽으로 내려올 가능성은 없었다. 아마도 탄천을 타고 위로 올라가 용인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 예상했다. 다만 그것들이 용인으로 향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곳을 가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걷다 보니 그쪽으로 향하게 된 것인지 알아내야 했지만, 괴물들에 대한 정보가 현저히 적은 탓에 그들을 쫓아 가는 것은 포기했다.




귀매가 나타난 후 그것들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었기에 P는 탄천에서 한강으로 내려가는 길에 보초병을 세워 경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한강이 안정화에 접어 들면 소규모 팀을 꾸려 연구소로 조금씩 이동 시킬 것을 제안했다.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효율성을 최대화 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그는 소규모로 팀을 이동시키면서 각기 다른 루트로 이동을 하게 하여 한강에서 연구소까지의 모든 거리를 안전지대로 만들 계획도 세워두었다.




"뭐 좀 알아낸 게 있나?"




S에게 먼저 복귀를 알렸다. 여진우는 점차 자신들이 군대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세삼 신기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름의 계급이 정해지고, 연구소 밖을 나갈 때에는 가장 높은 S에게 보고를 한 후 움직였다. S와 여진우 M과 N 모두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딱히 없습니다. 이 주변은 정말 쥐죽은듯 조용합니다. 두억시니는 물론 사람들의 기척도 없습니다."




외부 활동 후 거의 모든 보고는 N이 도맡아서 했다. S는 주로 연구동에 남아서 건물을 지키는 일을 해왔고, Q는 평소에는 S와 함께 했지만, 가끔은 샘플을 찾으러 나가기도 했다.




"자자, 이거 보라고. 아까 내가 건물에서 찾아낸 거야."




보고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M은 큰 책자 같은 것을 꺼냈다. 여진우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스마트 폰으로 지도를 보고 이동거리와 시간까지 모두 한 번에 확인이 가능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국지도책'이 반갑게 느껴졌다.




"어때? 이거면 연구소나 한강 근처의 지리는 훤하게 알 수 있다고."




"그러네요. 정말 엄청난 걸 찾아냈네요.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보고 난 후에는 처음 본 거 같은데요?"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다행히도 맨 앞장에 지도를 보는 법이 다 나와 있더라고."




"어렸을 때 가족들이랑 지도책 가지고 여행 갔던 게 떠오르네요. 그때는 스마트폰은 물론이거니와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운전석에서 아버지가 운전을 하면 이모부께서 조수석에서 길을 찾아 주시곤 했는데 말이죠."




M은 한 번도 지도를 본적이 없었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볼 일이 없었다.




"뭐야? 너 이런 지도책 본 적 있어?"




"아... 그럼요. 다들 한 번쯤 보지 않았나요? 어렸을 때 아버지 차 글로브박스에는 항상 있었는데요?"




"오... 그래? 우리는 그런 거 몰라."




여진우는 M이 모르는 이유에 대해서 얼핏 알 듯했다. 그가 듣기로 M과 N은 쌍둥이 이지만 부모님이 안 계셨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물어본다 한들 M과 N은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묻는 다는 게 조금 꺼림직해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잡담은 그만하고. 이제 앞으로 어디쪽을 수색하면 좋을까?"




N이 지도를 펴며 물었고, 여진우는 지도를 살펴보았다. 오래된 책이다 보니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오래되지 않았더라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음... 지금 지도상 저희가 있는 곳은 대충 이쯤이에요."




여진우는 손가락으로 지도 위에 보이지 않은 원을 그렸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병원이 하나 있고, 그 옆으로 백화점이 하나 있어요."




그는 지도에 손을 올려 둔 채 길을 그리며 설명했다. M과 N은 여진우의 손끝을 따라 지도위에서 움직였다.




"제 생각에는, 약국보다는 병원에 의약품들이 더 많을 거고 잘 보관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럴까요?"




"맞아. 약국에 있는 것 보다는 병원에 있는 의약품들이 더 좋긴하지. 단, 보관이 용의하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약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약들을 찾을 수는 있을 거야."




N은 지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여진우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언젠간 자신이 줄곧 생각해 왔던 것을 여진우에게 말해줄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병원에서 일을 마무리하면 백화점에 가서 옷도 한번 바꿔 입어 보는 게 어때요? 마지막으로 옷을 갈아입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요. 오염되지 않은 물이 귀하다 보니 샤워도 못하고 옷도 못빨고. 이러다 냄새 때문에 쓰러지겠어요."




M은 자신의 옷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나도 동감이야. 옷좀 갈아입자. 혹시 가능하면 샤워도 했으면 좋겠는데."




"좋아요. 백화점에 간 김에 음식도 있으면 찾아봐요."




여진우와 두 쌍둥이 형제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Q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도만 쳐다보았다.




"저기... 백화점 둘러보는 거 동의하죠...? Q?"




여진우의 긴장과는 달리 Q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진우는 그녀의 눈동자를 따라 가봤지만, 딱히 어느 한 곳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마치 지도를 외우려는 것 처럼 구석구석까지 그녀의 시선이 닿았다. 그러다 여진우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갑자기 고개를 획 하고 들어 올렸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하자."




N은 의약품을 담을 수 있는 박스를 임동주에게 미리 부탁했다. 임동주는 자신은 해야 할 일이 바쁘다며 투덜거렸다.




"앞으로 이런 것들은 나혜주 연구원 한테 이야기 하면 됩니다. 그녀가 웬만한 건 다 알아서 준비해 줄 거에요."




임동주는 샘플에 대한 연구의 진척이 진행 될 수록 점점 까칠해져 갔다. 반면 나혜주는 언제나 상냥하게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녀의 웃지 않는 얼굴은 아무도 본적이 없을 정도로 모두에게 친절했다. 나혜주는 임동주 소장의 뒤를 쫓아 다녔는데, 그녀는 임동주의 자잘한 심부름부터 그의 짜증까지 모두 받아 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녀가 임동주의 비위를 맞춰 가며 그의 곁에 있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일뿐 누구도 그 진실을 알아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일행은 비옷에 장화까지 신고 있었지만 비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바람에 따라 비의 방향이 바뀌기도했고, 벽에 붙어 이동하다 보니 어딘가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빗물까지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이전보다 비에 젖는 정도가 눈에띄게 줄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병원까지 이동하며 묵묵히 길을 걷던 중 가장 먼저 침묵을 깬건 기대도 하지 않았던 Q였다.




"병원에 도착하면 제가 도울게 있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발언이었지만, N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목숨을 믿고 맡겼던 동료를 침착하게 대한다는 게 아이러니 했다.




"도착하면 필요한 목록을 모두에게 적어줄 거야. 그럼 각자 찾아오면 되는데, 아마도 약국처럼 한눈에 보이는 구조가 아니라 찾기가 힘들 수도 있어."




Q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진우는 그녀의 행동이 이전과는 변하고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진우 뿐만 아니라 모두 그녀의 행동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병원 근처에 도착하자 주변에는 경찰차와 경찰들의 시체, 소방차와 소방관의 시체, 두억시니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관과 소방관이 입고 있던 제복이 없었더라면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시체는 들개에 의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최대한 시체들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지나가는 동안 Q는 경찰관 시체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찾아요?"




여진우는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그녀가 행동할 사람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총이요. 아니면 그 외에 쓸만한 물건들이요. 경찰관이나 소방관들, 그리고 두억시니의 시체가 한곳에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출동해서 싸우다 죽었을 거에요. 신체변형과 관련된 정보가 거의 없었을 때 인데도 최선을 다해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거죠. 예상치 못한 적과의 싸웠기에 그들이 총기를 들고 왔을 수도 있어요. 그걸 찾는 거예요."




그녀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찾는 것을 끝내고 난 후에는 죽은 경찰관들을 향해 짧은 묵념을 빼놓지 않았다. Q를 제외한 일행들도 그녀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며 필요한 물품들을 찾아다녔고, 그녀의 말 처럼 생각보다 쓸만한 물건들을 찾을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우비를 벗어 적당한 곳에 걸어두었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필요한 것들을 적어 줄게."




N은 주변에 있던 의사 시체 주머니를 뒤적거려 펜을 찾아왔다. 그리고 수납처에 들어가 서랍을 뒤져 종이를 꺼내와 필요한 목록을 작성했다. 그동안 여진우와 M, Q는 1층을 둘러보며 위험요소가 없는지 확인했다.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보였고, 접수하는 곳과 번호 대기를 뽑는 기계도 보였다. 한쪽 벽에는 층별 안내가 있었고, 다른쪽에는 ATM기가 보였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장소에는 의사와 간호사, 시민들의 시체도 있었다.




여진우는 그곳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간호사, 의사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ATM기에서 돈을 뽑고 대기번호를 뽑아 전광판에 표시된 숫자를 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층별 안내를 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사람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두억시니, 혹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상태가 이상해 보이던 사람이 두억시니로 변하면서 혼비백산되었을 장면이 떠올랐다. 도망치기 바쁜 사람들과 아이를 지키려던 부모, 두억시니와 싸우려는 사람들, 엎어진 의자들 깨진 유리들 망가진 접수대와 쓰러져 있는 사람들. 여진우는 갑자기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때 M이 그를 불렀다.




"여진우!"




M은 자신도 모르게 C의 본명을 불렀다. N과 M은 여진우와 Q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여진우 역시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Q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는 현 상황을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M과 N 역시 같은 생각 이었다.




"아.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자 이건 네 거야. 아마 3층에 가면 있을 거래. 다 찾으면 다시 1층에서 만나기로 하지."




M은 N에게 받은 종이 중 한장을 내밀었다.




"알겠어요."




Q는 N이 준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진우도 그녀와 같은 이유로 종이를 쳐다보았다. N은 악필이었다. 종이에 적힌 글자를 보면서 무슨 단어인지 생각해야 하는 단계가 추가되었다. 여진우는 종이를 N에게 보이며 말했다.




"근데 다음부터 적을 게 있으면 불러주세요. 제가 적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도통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네요."




"하. 원래 천재는 악필이라고 했어. 에디슨, 아인슈타인, 베토벤 등. 알지?"




"그럼요. 잘 알죠. 하지만 악필이라고 해서 다 천재는 아니더라고요."




"가서 찾아오기나 해. 중요한 물건들이니깐 찾으면 소중하게 다뤄달라고."




"네. 혹시 모르니깐 조심들 하세요. 건물 안에서 딱히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층마다 잠자고 있는 두억시니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여진우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건물 안에서 이상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해 보았다. 처음 능력을 얻었을 때보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 시키면 평소보다 몇 배 이상 능력이 강해졌다. M은 여진우의 말을 듣고선 미소 지었다.




"너한테 그런 말을 들을 날이 올 줄 몰랐네."




Q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에는 예전처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움직였다. N의 말에 의하면 병원에는 비상사태를 대비해 전력이 끊기는 문제가 생겼을 경우 예비 전력이 돌아가고 있어 의약품들은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냉장보관이 필수인 약품들이 있기에 일차적으로 전기가 나가면 예비전력은 약품들을 위해 돌아가게 설계되었을 것이라 했다. N이 말한 대로 3층에는 그가 적어준 목록들이 있었고, 약들을 보관하는 냉장고 역시 비 정상적으로 쓰러져 있는게 아니라면 대부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여진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약품들을 챙겼다. 약품을 다 챙긴 후에는 한쪽에 잘 내려 놓고 3층에 있는 모든 문을 열어보았다. 혹시나 두억시니나 생존자가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확인작업은 필수였다. 문을 열때마다 두억시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살아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동시에 들었지만 그 어느 것도 충족시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볼 때마다 안도의 한숨과 아쉬움의 한숨이 뒤섞여 나왔다. 3층이 안전한 것을 모두 확인하고 다음 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3층에서 했던 일을 반복하며 한층 한층 위로 올라갔다. 8층에 도착했을 때 이미 Q가 확인한 듯 모든 문이 열려있었다.




Q도 여진우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Q.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이름이요?"




Q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 아까 두현씨가 제 이름을 말하는 거 들으셨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시길래. 혹시..."




Q는 여진우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죠. 제 이름은 태원 선우에 편안할 정자를 써서 '선우정'이에요."




여진우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듯 눈을 치켜올렸다.




"참고로 '선우정'이란 이름은 태원 선우 씨의 시조였던 분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거에요."




"그렇군요. 그럼 제가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그녀는 잠시 고민 했다.




"우정이라고 불러주세요. 친구들은 그렇게 불렀어요."




"그럼 저도 그렇게 부를게요. 익숙한 게 좋잖아요."




선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진우는 그녀가 최두현과 최두희 형제와 자신이 서로의 본명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구태여 거론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선우정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난 후 별다른 행동 없이 계속 위로 올라갔다. 여진우와 선우정은 필요한 물건들을 다 챙겼지만, 혹시나 생존자를 찾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위로 향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중간 지점에서 최두현 최두희 형제를 만났다. 최두희는 선우정과 여진우를 마주치고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다들 잘 챙겨왔네. 그럼 이제 백화점으로 가기전에, 두현아."




최두희는 최두현의 이름을 불렀다.




"왜?"




"너는 이걸 가지고 먼저 연구소로 돌아가. 장기간 가지고 움직일 만큼 우리가 가진 보관상자가 좋은 건 아니야. 한두시간 정도야 크게 문제 없겠지만, 그 이후에는 힘들게 얻은 약품들을 모두 버려야 할지도 몰라."




"그렇다고 나보도 지금 가라고? 이제 백화점 가는 타이밍에?"




최두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너말고 달리 돌아갈 사람이 없다."




"아니, 왜 Q도 있고 여진우도 있잖아?"




여진우는 두 사람이 본명을 말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며 개의치 않기로 했다.




"너도 알잖아. 두 사람은 꼭 필요하다는 걸."




최두현은 인상을 쓰면서 최두희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알았어. 대신 꼭 좋은건 내것도 챙겨와."




최두현은 돌아서서 갈때까지 씩씩거리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최두희의 결정을 따라주었다.




"자 이제 정말 백화점으로 출발하자."




최두현에게 물건을 모두 넘기고 그가 왔던 길을 잘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난 후에 그들은 움직였다.




"네. 가죠 우정씨."




여진우가 Q의 이름을 부르자 최두희가 여진우를 쳐다 보았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체했다. 그리고 최두희도 굳이 자세한 상황은 묻지 않았다. 그에겐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백화점까지 이동하는 길에도 두억시니와 사람들의 시체는 널려있었다. 최대한 시체를 밟지 않게 조심해서 이동했고, 역시 주변을 둘러보면서 필요한 물건이 있을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백화점 정문은 자동차로 막혀 있었는데, 자동차가 비정상적으로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두억시니가 던졌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좋은 방어막을 형성해 주었다. 하는수 없이 그들은 지하주차장이 있는 쪽으로 향했지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 가는 길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차들을 뒤엉켜 놓은 것 처럼 막혀 있었다. 백화점을 반 바퀴 돌아 후문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았다. 편의점으로 물건을 나르는 5t 트럭이 후문을 막고 있었다.




"누군가 백화점에 있는 게 분명해.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길도 그렇고 후문도 그렇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외부에서의 출입을 막기 위해 해놓은 것 같아."




최두희는 트럭의 운전석을 살펴보았다. 일부러 운전을 할 수 없도록 키를 넣어 놓은 채 부셔뜨려 놓았다.




"사람들이 백화점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근데,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협조적일지는 장담 할 수 없어."




"어쨌든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설득이라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네요."




여진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작은 기대감이 생기면서 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는지 특정할 수는 없었다. 정문과 후문은 외부에서 두억시니의 침입을 잘 차단해 주고 있어 건들지 않고 지하주차장으로 통해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정문과 후문은 그대로 두지. 오히려 외부 침입을 막아주고 있어 지금 상태가 좋을거 같아 번거롭더라도 지하주차장으로 가는게 좋겠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거긴 복잡해도 완전히 막힌 건 아니라 잘하면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은 주차장 입구를 통해 뒤죽박죽으로 엉켜져 있는 차들 사이를 지나갔다. 여진우가 차의 창문을 부수며 통로를 만들어주면 그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여진우의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최두희가 작게 속삭였다.




"선물상자는 열기 전까지는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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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서막 23.02.16 24 0 18쪽
49 삼자회담 23.02.12 23 0 18쪽
48 결정 23.02.09 29 0 18쪽
47 모래위의 성 23.02.05 26 0 19쪽
46 인간이 아닌자. 23.02.02 31 0 19쪽
45 광기 23.01.29 34 0 19쪽
44 강은혜 (마지막) 23.01.26 37 0 18쪽
43 강은혜 (3) 23.01.22 38 0 18쪽
42 강은혜 (2) 23.01.19 36 0 19쪽
41 강은혜 (1) 23.01.15 35 0 18쪽
40 기억 23.01.12 39 0 22쪽
39 낯선 이 23.01.08 45 0 18쪽
38 준비 23.01.05 47 0 18쪽
37 원인과 결과 23.01.01 5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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