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리버사이드 타운(1)
7화. 리버사이드 타운(1)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단검을 빗겨내며 시야가 드러난 갈대사이로 밝은 보랏빛을 토해내는 구체가 갑자기 나타났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보랏빛 구체를 다급히 시미터를 들어올려 막아보았지만.
- 쩍. 차차창.
급히 들어올린 시미터는 보랏빛 구체와 맞닿은 부위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실금이 퍼져나갔고, 급기야 시미터가 깨져나가며 흩날리는 파편을 인지하기도 전에 보랏빛 구체가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검보라색의 검날이 옆으로 회전하며 자신의 상체를 갈라내며 빠져나갔다.
“마카도닉 검술 제 4식. 토네이도 커터!!”
- 아아악!!
갑자기 나타난 보랏빛 구체가 동료의 가슴을 관통하는 모습에 당황한 도마뱀들을 향해 시진은 검을 옆으로 눕혀 투스칸에게 배운 토네이도 커터를 시전했다. 검보라색 마력으로 이루어진 칼날 폭풍은 시진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과 갈대밭 일대를 갈갈이 찢어버렸다.
- 콰콰콰캉!!
“투스칸! 궁수의 위치는 찾았어?”
- 시진! 4시 방향. 갈대 밑이다.
주변을 갈갈이 찢어발기며 하늘 높이 날아 오른 시진은 투스칸이 알려 준 방향으로 검을 힘껏 던졌다. 검보라색 마력을 듬뿍 머금은 검은 서늘한 바람 소리와 함께 앞을 가로막는 갈대들을 모두 베어내며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검을 바라보며 죽음을 예감한 궁수의 몸을 반으로 갈라내고도 한참을 날아갔다.
- 쉬리리리릭!! 콰콰콰캉!!
- 크아아악!!
세찬 바람을 가르며 날아 간 검에 의해 잘려진 상반신에서 피분수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도마뱀 궁수를 확인한 시진은 시선을 돌려 갈대숲에 가려 보이지않던 커다란 강줄기를 바라보며 바닥에 내려섰다.
비록 상처는 없었지만 한 번에 자신의 모든 마력을 쏟아낸 시진은 온 몸의 근육이 떨려오는 근육통을 호소하는 힘겨운 몸을 이끌고 멀리 날아간 검을 회수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 시진.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안된다! 궁수가 한 놈만 더 있었어도 당하는 것은 네놈이었을 것이다!
“눼에~ 눼에~”
-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란 말이다! 고작 네놈 실력으로 리자드맨 무리와 싸움이라니! 다음부터는 절.대. 안되느니라!
“알았으니까 1절만 하라고.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건데 혹시 어둠의 마왕이 아니라 잔소리 대마왕 아니었어? 솔직히 말해봐. 맞지? 맞는 것 같은데.”
무리하게 마력을 사용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시진은 조용한 곳에서 회복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피 냄새를 맡은 다른 리자드맨 무리를 마주칠까 바람에 굼실대는 갈대에 몸을 숨기며 투스칸의 폭풍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좌측. 11시 방향에 리자드맨의 기척이 느껴지니 조심하거라.
“이번에는 마주치지 않게 조심할게. 이대로 물길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 그래. 조금만 더 가면 이 갈대숲도 끝이 날 것이야. 그동안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할 것이야.
단독 행동을 하지않고 무리지어 생활하는 리자드맨의 습성을 고려해 자칫 싸움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낭패를 볼 수 있는 만큼 시진은 물길을 우회해서 갈대숲을 벗어나야만했다.
- 시진. 마음 단단히 먹거라.
“갑자기 무슨 말이야? 리자맨은 11시 방향에 있다면서?”
갈대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던 시진에게 투스칸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마치 이 앞에 끔찍한 광경이라도 펼쳐져 있다는 것처럼.
사람이 죽는 광경정도야 군복무시절 이미 본 경험한 적이 있어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고, 심지어 얼마전에는 갈대숲 초입에서 마주친 리자드맨을 조각조각 베어내기까지한 시진이었기에 투스칸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투스칸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후..우..우욱..”
잠시 뒤 펼쳐진 눈앞의 광경에 시진은 숨을 깊게 내쉬며 놀란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구토감을 견딜 수 없었다.
“우..욱..웩..”
숲을 헤쳐나오며 마주치는 몬스터를 직접 죽이기도 하고 사체의 일부를 베어내어 구워 먹기도 했지만, 그 대상이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여서 일까. 부서진 짐마차들과 그 마차 주위에 신체의 대부분이 훼손된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멀쩡한 시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몸통이 파헤쳐져 있고, 일부는 무언가에 짓눌린 듯 짓이겨지고 신체의 일부가 폭탄에라도 직격당한 듯 터져있는 시체도 보였다. 엄청난 질량을 가진 무언가로 짓뭉개고, 사지를 뜯어내고 배를 갈라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이 야만스러운 약육강식의 잔혹한 일면, 살기 가득한 일면이 이 세계 초보인 시진의 앞에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대상이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 되자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 익숙해져야 할 것이야. 몬스터든 인간이든 힘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바로 이카루스 차원이니라.
“후...욱..”
흡수한 생명력과 마력을 나눠 준 투스칸 덕분에 최근 역량이 급격히 늘어난 시진은 마음 한 켠으로 이 세계를 게임처럼 여긴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 마주한 참상을 보며 어쩌면 자신도 저기 누워있는 시체가 될 있다는 생각에 시진은 무겁게 가라앉는 마음을 다 잡았다.
“투스칸.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이렇게 끔찍하게 당한 걸까? 아무리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 해도 스무명이 넘는 인원이 이렇게 끔찍하게 살해될 정도라니... 믿기지 않아.”
- 크...흠...
냉병기로 무장한 용병으로 보이는 시체들은 두 대의 마차를 방어하듯 마차의 앞을 반원형으로 감싼 진형을 유지한 체 뜯겨 있었고, 마차 뒤로는 일꾼으로 짐작되는 무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강한 힘에 의해 짓이겨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도주를 시도했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살해당한 듯 부서진 마차에서 얼마 떨어지지 못한 곳에는 머리가 사라진 두 명의 용병이 시체가 되어 쓰러있었고, 그 용병의 곁에는 하반신이 사라지고 상반신만 남은 여자의 시체도 있었다.
그리고 하이에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하이에나 보다 조금 더 큰 덩치를 가진 몬스터와 고릴라를 2배정도 늘린 것과 흡사한 체형을 가진 몬스터들의 사체에도 수많은 화살과 칼이 꽂힌 체 쓰러져 있었다.
- 이놈들의 서식지는 강가나 갈대숲이 아니라 우거진 숲이여야 할터인데... 오랜시간 봉인되어 지내는 동안 몬스터들의 습성이 바뀐 것인가...
“투스칸은 이놈들의 정체를 아는 거야? 대체 어떤 놈들이야?”
- 내 기억이 맞다면... 가죽에 얼룩처럼 점이 있는 놈은 크리쳐라는 놈인데 주로 늑대처럼 숲에서 무리지어 지내고 사냥 할 때도 8~10 놈씩 뭉쳐서 사냥을 하는 놈이지. 특이한 것은 크리쳐가 아니라 콩이라는 놈이야.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곳에 사는 놈이 여기까지 왜 내려왔을까? 한 놈이라면 특이한 놈이라 하겠는데 지금 보이는 사체만 해도 3구나 있지 않느냐.
“흠... 누군가 저 놈들을 조종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서로 다른 종류의 몬스터들을? 그게 가능해?”
- 크..흠..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지금 보이는 것만으로는 그 이유를 추측하기 힘들구나. 피 냄새를 맡고 다른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어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시체를 뒤로한 시진은 얼마 도망가지 못하고 머리통만 사라진 용병에게서 필요한 것을 챙겼고, 상반신만 남은 여자의 목에서 초록빛이 감도는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발견해 아공간에 던져 넣고 자리를 벗어났다.
* * *
어느새 도시가 가까워졌다.
시진의 기준으로는 조금 큰 마을 정도였지만, 변방에선 이정도면 충분히 도시라 부를 수 있었다. 돌담 대신 높다란 돌담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그보다 더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커다란 저택이 보였다.
[E등급 : 진]
갈대숲을 벗어나며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 처참한 모습으로 절명한 용병에게서 습득한 신분증을 경비병에게 건네 준 시진은 혹여나 꼬투리를 잡힐까 긴장하며 경비대원을 지켜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며칠만 머물거예요. 혹시 추천해 줄 만한 여관이 있을까요? 한동안 노숙만 했더니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면 여한이 없을 것 같네요.”
“여관? 아. 처음이라고 했지. 그럼 광장 북쪽에 있는 바람의 숲에 한번 가보슈. 거기 스튜가 일품이거든. 초록색 지붕에 3층으로 되어있어 찾기 어렵지 않을 거요. 그리고 요즘 도시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사고 치지말고 조용히 지내다 가슈.”
“네. 사고칠게 뭐 있나요. 몇 가지 물품만 보충하고 떠날 거예요. 염려마세요.”
신분증과 함께 루팅한 1실버를 신분증 밑에 슬쩍 끼워 건넨 덕분인지 검문자체가 원래 그리 빡빡하진 않은지 피 묻은 사슬 갑옷을 입고 있는 시진이었지만, 도시의 출입문을 지키는 병사는 시진을 한차례 훑어볼 뿐 앞을 가로막지는 않고, 별말없이 들여보내주었다.
어디 몬스터 사냥이라도 한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어쩌면 애초에 검문이 까다롭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검문을 마치고 도시에 들어선 시진의 눈앞에 펼쳐진 넓은 대로의 바닥이 전부 석재로 마감 처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중세시대에 흙길이 아닌 도로라니... 그리고 도로 위를 달리는 마차와 대로를 따라 오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덴마크풍의 주황색 지붕에 하얀 돌들로 다듬어진 주변 건물도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와~~~”
- 목욕부터 한다더니 뭘 그렇게 넋 놓고 있는 것이냐?
“도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멋진데. 투스칸이 살던 시대에도 이랬어?”
- 크흠. 고작 이 정도로 그러느냐. 이 몸이 살던 마계에 비하면 여긴 그냥 오크부락 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나 할까.
“설마... 마계라면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껴있고,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푸른 바다가 있어야 할 곳에는 불타는 용암이 흐르는 그런 곳 아니었어?”
- 떽!! 대체 어디서 무슨 말을 어떻게 들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냐? 그런 곳에 생명체가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마계도 다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이니라.
“그럼 투스칸이 살았던 진짜 마계는 어떤 곳이야?”
- 비록 푸른 바닷물 대신 피처럼 붉은 물이 넘실대고, 회색빛 하늘이긴 하지만 푸른 달이 떠 오른 날에는 온 세상이 푸른 빛깔에 물들어지는 신비롭기 그지 없는 곳이니라.
“...”
자부심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마계를 설명하는 투스칸의 말에 어느 대목에 아름다움이 묻어 나는지 알 수 없어 시진은 황당한 얼굴을 숨기지 못한 체 어딘가를 가리켰다. 주변 건물보다 유난히 높게 올라와 눈에 띄는 건물 사이로 3층으로 이루어진 초록색 지붕의 모습이 고개를 내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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