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도깨비실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망고바닐라
작품등록일 :
2022.09.10 16:20
최근연재일 :
2023.01.26 16:39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3,203
추천수 :
48
글자수 :
125,500

작성
22.11.09 18:05
조회
71
추천
1
글자
10쪽

23.

DUMMY

“엥?”

“왜 그러느냐?”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린 한량과 나. 나머지 둘도 예상치 못한 통과 과정에 적잖이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는 그냥 통과만 하면 되나요?”


랑이가 던진 질문처럼, 우리는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는 대문을 그냥 평범하게 걸어서 통과해 버렸다. 영방문보다 더 엄중한 경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다소 허망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아,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게냐?”


나리의 말에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거나, 몸을 흩어봤지만... 별 다른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엥...?”


전혀 모르겠다는 듯해 보이는 조원들을 대표해서, 결국 내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라고 소심하게 질문을 던지자, 나리는 호탕하게


“하하하!”


라고 웃고는, 우리에게 자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대문 위를 자세히 보겠느냐?”

“대문 위 말씀이십니까?”


지나온 대문으로 다시금 걸어가 위를 살펴보는 우리, 그 곳에는 정체불명의 그림이 그러져 있었다.


영멸청전문 역시 영방문과 같은 구조로 돼 있었지만,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이 없다는 것.


지나올 때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이 대문에는 문 대신에 위에 그림을 그려넣은 것이다.


“이 그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묻자, 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그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일종의 주언인 셈이지.”

“주언이요?”

“다시 말하자면 주술사들이 주구를 통해 천장에다가 그림을 그려 놓은 셈이지. 수많은 주술사들이 힘을 합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웬만한 도깨비들은 접근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주술이 걸려 있는 게지.”

“아하, 그래서 이 곳에는 초병들이 없었던 거구나.”


랑이는 납득이 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조원들 역시 주언의 신기한 효험에 천장의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자, 이제 슬슬 가보자꾸나.”

“아, 네!”


슬슬 가야할 시간이 다 됐는지 우리를 재촉하는 나리에 성화에 못 이겨, 우리는 마지못해 다시금 그의 뒤를 쫓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




끼이익-


나리의 뒤를 따라 들어간 영멸청 본관.


멀리서 봤을 때와는 또 달리, 직접 밑에서 올려다보니 그 웅장함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본관은 역시나 누각 형식으로, 사람이 직접 올라갈 수 있는 형태였다. 중앙에 박혀있는 거대한 심주와 층마다 각각의 기둥들이 탑의 무게를 받쳐주고 있는 형식이었는데,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은 심주를 나선형 방식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이니라.”


나리를 따라 간 곳에는 영멸청 단원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있었고, 그 옆에는 거대한 상자 4개가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


“이 자는 앞으로 너희들을 통솔할 단장이고, 이름은...”

“강필신입니다, 나리.”

“그래, 강필신! 크흠, 아무튼 앞으로 열심히 하거라. 틈틈이 지켜볼 테니.”

“아, 넵!”


나리는 머쓱한지 우리를 한번 쓱 흩어보고는 위층으로 냅다 올라가버렸다. 그렇게 갑작스레 나리가 떠나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정식적인 인사를 할 틈도 없이 그와 헤어지게 됐다. 그리곤, 강필신이라는 이름의 단장 앞에 우리 4명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상황이 됐다.


“일단,”


우물쭈물하게 가만히 서 있던 우리를 보곤, 단장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 상자들을 하나씩 받거라. 본인의 이름이 쓰여 있는 상자를 가져가면 된다.”

“이, 이것은 무엇입니까?”


단장으로부터 정신없이 상자를 하나씩 받아가는 조원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량이 질문을 던졌다.


“영멸청 단원이 되면 주는 보급품.”

“오오...”


다소 냉한 단장의 반응에도, 조원들은 새로운 보급품을 받는다는 사실에 들떠있었다. 그래서인지 받자마자 뚜껑을 열어보려고 하는 석오를,


“지금 열지 말고, 기숙사로 가서 열거라.”

“아, 넵...”


단장은 손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결국 열어보지 못한 채 단장의 손에 이끌려 기숙사로 향하게 된 우리.


기숙사는 영멸청전문과 본관을 있는 대로 양 옆쪽에 있었는데, 단층이었지만 대로를 따라 길게 쭉 늘어져있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단장의 말로는 종9품부터 정7품까지는 기숙사에서 항시 대기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종6품부터는 기숙사에서 계속 살아도 되고, 본가에서 출퇴근 형식으로 지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소리다.


“여기서 오른쪽, 영멸청전문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것이 너희들이 지내야 할 기숙사이니 이쪽으로 가거라.”


본관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오른쪽 기숙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단장. 우리는 무거운 상자를 낑낑 들면서 그가 가리킨 기숙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숙사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리의 눈에는 가장 먼저 가로 세로로 쭉 뻗어있는 복도가 들어왔다. 가로 복도의 각 처마 아래에는 칸마다 <일,이단>, <삼,사단>, <오,육단> 이라는 한자들이 쓰여 있었다.


“너희들은 앞으로 제 11영멸단에 속해서 임무를 맡을 예정이니, 저쪽으로 가거라.”


단장의 손끝에는 11, 12단이 쓰여 있는 팻말을 가리켰고, 우리는 부랴부랴 그쪽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뒤 왼쪽으로 틀자, 양 옆으로 총 6개의 미닫이문이 있었다.


“왼쪽 끝 방을 제외하고, 들어가고 싶은 곳으로 들어가거라.”

“네.”


그렇게 나, 석오, 한량, 랑이 순서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나씩 방을 맡았다. 오른쪽 맨 끝 방을 제외하고 전부 다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상자 안에 있는 복장과 무기를 지참하고 나오라는 단장의 명령에 천천히 상자를 열어봤다.


상자 안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는데, 영멸청 소속 단원임을 상징하는 도복부터, 갓, 사인검, 그리고 엽전 몇 개가 담긴 주머니가 있었다. 검 집에서 검을 살짝 꺼내보자, 날에는 주언으로 보이는 글씨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것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른 조원들이 기다릴 것을 생각해 정신을 차리고 황색갈의 도복을 집어 들고 갈아입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방에 어떤 것이 구비돼 있는지 한 번 둘러봤는데, 기본적으로 이불 베게, 작은 서궤, 그리고 장롱이 설치돼 있었다. 기본적으론 영멸원의 기숙사와 비슷한 구조였지만, 방의 크기가 전에 비해 좀 더 컸으며 물건들의 품질도,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훨씬 뛰어나 보였다.


나는 만족하다는 표정으로 몇 번 더 주위를 둘러보곤, 사인검을 허리에 착용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물론 주머니 역시 품에 넣어둔 채로 말이다.


준비를 다 마친 우리는 단장이 서있던 기숙사 정문 앞으로 걸어 나왔다. 도복은 모두 똑같았지만, 무기는 서로 다 달랐는데, 랑이는 나와 같은 사인검, 한량은 큰 월도, 그리고 석오는 검은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한편 무표정인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단장은, 우리의 준비상태를 보곤 흡족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자, 그럼 출발 해볼까?”


라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




“단장님?”

“왜 그러느냐.”


영문을 모른 채 끌려가던 우리는, 영방문을 지나가기 직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


잠시 동안 흐르는 정적. 곧이어, 그는


“일하러.”


라는 짤막한 답변만을 내놓은 채 다시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일이라니, 설마 도깨비를 죽이러?”

“그런 것 같아. 오늘 바로 투입할 줄은 몰랐는데.”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거지.”

“크흠.”


수군수군 거리며 따라가는 우리에게 할 말이 있는 듯한 단장은 헛기침을 하곤 우리를 슬쩍 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아직 신입인 만큼 되도록 근방에서 경계 위주로 일을 하게 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경계라면, 영멸청 외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확한 경계 위치가 궁금한 랑이의 질문. 단장은 그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더니,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전 11영멸단 애들이 경계를 맡았던 곳.”

“그곳이...”

“본청 위쪽에 있는 한 마을의 경계 작전 정도라고 해두지. 예성강이 흐르는 쪽이니 가면 알게다.”

“아, 감사합니다.”


랑이는 궁금증이 해소됐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단장님?”


단장을 다시 불렀고, 그는 이어지는 그녀의 질문이 다소 귀찮은 듯 냉담하게 답했다.


“왜?”

“그럼 전 11영멸단에 있던 단원들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질문을 들은 단장은 갑자기 자리에 우뚝 서버렸고, 돌발적인 그의 행동에 우리 역시 그 자리에 멈춰버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시지?’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을 때, 단장은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보더니 무표정한 표정으로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전해줬다.


“모두 다 죽었다. 단장까지도.”

“...”


예상치 못한 그의 답변에 얼어붙어버린 분위기.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랑이는 서둘러


“아, 죄송합니다.”


라는 사과인사를 전했고, 단장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해라.”


라고 말하며 덕담 아닌 덕담을 전해줬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조선도깨비실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관련 공지(수정) 22.09.30 99 0 -
33 9. 전투(3) 23.01.26 20 1 6쪽
32 8. 전투(2) 23.01.23 20 1 7쪽
31 7. 전투(1) 23.01.19 20 1 7쪽
30 6. 조우(3) 23.01.17 22 0 7쪽
29 5. 조우(2) 23.01.15 26 1 6쪽
28 4. 조우(1) 23.01.13 28 1 6쪽
27 3. 환지혼(2) 23.01.11 28 1 6쪽
26 2. 환지혼(1) 23.01.09 30 1 7쪽
25 2장 1. 중중등 도깨비 23.01.07 41 1 7쪽
24 1장 마지막화. 22.11.18 92 1 7쪽
» 23. 22.11.09 72 1 10쪽
22 22. 22.11.08 78 1 10쪽
21 21. 22.11.07 78 2 9쪽
20 20. +2 22.11.03 84 2 10쪽
19 19. 22.11.01 82 2 10쪽
18 18. 22.10.31 84 2 9쪽
17 17. 22.10.28 84 2 9쪽
16 16. 22.10.27 88 2 10쪽
15 15. 22.10.26 88 2 9쪽
14 14. 22.10.24 100 1 9쪽
13 13. 22.10.19 98 2 9쪽
12 12. 22.10.17 99 2 9쪽
11 11. 22.10.15 99 2 9쪽
10 10. 22.10.10 105 2 9쪽
9 9. 22.10.08 110 2 9쪽
8 8. 22.10.03 105 1 9쪽
7 7. 22.10.01 121 2 9쪽
6 6. 22.09.25 133 2 9쪽
5 5. 22.09.24 154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