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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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寒爛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9.13 16:03
최근연재일 :
2022.12.0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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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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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처음은 늘 새롭지 (3)

DUMMY

“어우, 추워.”


현우가 몸을 떨었다. 코트 자락을 애써 여미며 바람을 막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슬슬 코트로는 버틸 수 없는 날씨였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겨울치고는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추울 일인가 싶을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져 있었다.


남매치킨으로 향하며 동네 카페 앞을 지나치던 현우의 눈에, 가게 안에 비치된 트리가 보였다. 전구가 반짝이며 제 빛을 뽐냈다.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이네.”


흥겨운 멜로디로 흘러나오는 캐롤까지. 본격적인 겨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매년 12월이 되는 순간부터 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이 확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라. 그때쯤이면 엄마도 퇴원하실 수 있으려나?’


상황을 좀 보아야겠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단란하게.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준비해볼까?’


본래 현우의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별달리 챙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야 어렸을 때는 산타의 선물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이후로는 일반적인 휴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로 보냈다. 그나마 정현이 기분이 내키면 케이크를 사 와서 나눠 먹는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는,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어머니와 누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현우가 조만간 계획을 세워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남매치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조금 걷자, 경준이 운영하는 부동산 건물이 보였다. 그 안으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경준의 모습도 보였다.


‘아, 아저씨다.’


경준은 업무 중인지 어딘가와 열심히 통화하고 있었다. 경준이 현우를 발견하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현우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 이 나이가 되면 새로운 일은 좀 두려워지거든.


현우는 며칠 전 경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상하게, 그 말이 최근 자꾸만 현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작 처음 먹어보는 음식 하나가, 그것도 크게 색다를 것도 없는 당근 샐러드 하나가 경준에게는 ‘새로운’ 일이라는 게 그의 마음을 자꾸만 복잡하게 만들었다.


현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경준은 뭔가 생각난 듯 손을 내저어 현우의 시선을 끌었다. 현우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입 모양으로 말하더니, 곧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왔다.


“왜요, 아저씨?”


“이것 좀 가져가.”


경준이 현우에게 쥐여준 것은 스틱형 커피 믹스 한 상자였다.


“뭘 이런 걸 주세요. 괜찮은데.”


“날도 추운데. 가게에서 한 잔씩 타 먹어. 피곤하거나, 어? 입 심심할 때.”


“아저씨 드시지······.”


“난 또 있어. 많으니, 가져가.”


경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현우의 등을 밀었다. 현우가 감사하다고 두 번 세 번 허리를 숙였다.


손에 들린 것은 그저 커피 믹스 한 상자였지만, 훨씬 더 무겁고 따뜻한 게 담겨있는 기분이었다.


*


남매치킨은 날이 갈수록 손님이 많아지고 있었다.

남매치킨의 로고송이 알고리즘을 타면서 손님이 늘어난 이후로, 이제는 주말이면 한 팀에서 두 팀 정도 대기가 생기고는 했다. 테이블이 네 개뿐인 남매치킨은 본래도 매장의 크기가 작은 데다가, 날이 추워지면서 야외 테이블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어휴.’


심지어 현우의 체력도 점점 힘에 부쳐가고 있었다. 손님이 그나마 적은 이른 오후 타임에도 다양한 재료를 썰어보며 박윤호 셰프의 수업을 복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킬이 체력을 보정해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사장님, 저희 주먹밥 추가했는데요.”


“죄송합니다!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덕분에 주문을 누락하거나, 실수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현우는 이제 슬슬,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것도 생각해보라던 누나의 말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며 연말연초에는 분명 바쁠 거야.’


어머니가 다시 장사를 시작하시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몸이 회복되어 퇴원한다고 해도 바로 궂은 식당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바쁜 주말 만이라도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면, 현우도 한결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을 듯했다. 월요일에 박윤호 셰프의 수업을 들으러 갈 체력도 마련할 수 있고.


양손에 두 개씩, 총 네 개의 맥주잔을 쥐고 걸어가는 현우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흘렀다. 어떻게든 입꼬리를 끌어올려 친절히 말하고는 뒤돌아선 현우의 앞에 순식간에 빵빠레가 튀었다.


“!”


매장 한가운데에서 비명을 지를뻔한 현우가 입술을 꾹 닫았다. 심장이 벌렁거렸으나 다행히 티 내지 않고 주방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업적 ‘3000명이 나의 가게를 인식’ 달성!]


‘이 빵빠레 좀 어떻게 해!’


현우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시스템은 딱히 알아들은 것 같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과 대화를 해주지도 않았으니까.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이러다 자신이 빵빠레에 놀라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쩔 셈이냐고 속으로 투덜거린 현우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알람을 읽었다.


‘3000명이라고? 벌써?’


현우가 신기한 듯 홀로그램 창을 더듬었다. 그렇게 한다고 글씨가 변하는 일은 없었다.

3000명이 되는 데에 큰 공헌을 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솔의 로고송 영상이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 중에 직접 남매치킨에 방문한 사람들은 소수였지만, 별생각 없이 설명란에 기재된 인별그램 링크를 클릭해본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남매치킨에 직접 가볼 생각이 전혀 없더라도, 서울 어딘가에 그런 이름의 치킨집이 있다는 사실은 꽤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보상은 이번에도 포인트 뽑기권인가?’


현우가 심드렁한 얼굴로 생각했다. 지금은 비어 있는 속성 칸이 없었기 때문에 포인트 뽑기권이 있어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은색 칸이 또 나와줄 거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었다.


[보상 측정 중······]


그런데, 홀로그램 창은 보상을 측정 중이라는 알람을 띄웠다. 현우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말줄임표를 빤히 바라보았다.


[보상 측정 완료!]


[신규 스킬을 지급합니다!]


“신규 스킬?”


현우가 중얼거렸다. 현우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시스템이 곧장 현우의 스킬창을 띄웠다.


[스킬창]


미각 Lv.5 [1892/5000]

염지 Lv.3 [274/300]

튀기기 Lv.3 [282/300]

굽기 Lv.3 [175/300]

칼질 Lv.4 [1143/1000]

식재료 감별 Lv.3 [79/300]

요리사의 마음가짐 Lv.? [??/???]


총 6개의 스킬이 스킬창을 채우고 있었다. 포인트를 사용하거나, 직접 연습을 통해 숙련도를 올린 스킬들이었다.

다만 요리사의 마음가짐이라는 스킬만큼은 현우가 건드릴 수 없는지, 회색빛으로 굳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레벨이며 숙련도마저도 제대로 표시해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눈부시게 푸른 빛이 어리더니 빛이 사그라들며 새로운 글자가 생겨났다.


“조리······분석?”


[새로운 스킬이 등록되었습니다!]

[‘조리 분석’ : 타인이 만든 요리를 먹고 조리 방법을 분석합니다.]



“헉.”


스킬의 설명을 본 현우가 숨을 들이켰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현우에게 가장 필요한 스킬이었다.


안 그래도 박윤호 셰프와의 수업에서 앞으로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되는 참이었다. 당근 라페 같은 음식을 굳이 검색해 찾아낸 것도, 그런 불안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런데 음식을 먹고 조리 방법을 분석할 수 있는 스킬이라니! 처음에는 스킬의 레벨이 낮으니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레벨을 열심히 올리다 보면 정말 전문 요리사들처럼 음식을 입에 넣는 것만으로 레시피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현우가 헤벌쭉, 웃고 있는데 밖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현재 테이블은 만석이었으므로 대기에 대한 안내를 하기 위해 현우가 밖으로 향했다.


“앗, 현우 씨!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빈이었다. 현우 역시 정현을 통해 수빈이 며칠 간의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가 의아하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오늘 누나도 야근이라고 하던데요.”


“아아, 정현 언니 보러온 건 아니고요! 동생이 과제 한다고 쫄쫄 굶고 있길래, 치킨 한 마리 먹여주려고 왔어요. 간만에 저도 본가 와 있거든요.”


정현의 고등학교 후배인 수빈은, 평상시에는 방송국 근처에 있는 본인의 자취방에 머물렀다. 하지만 휴가를 맞은 김에 지금은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서 끝내주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근데 알고 보니 동생도 현우 씨랑 아는 사이인 거 같더라고요? 지난번에 뭘 도와주셨다면서요?”


“네?”


현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매치킨의 밖을 바라보자, 밖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던 젊은 남성 한 명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익숙한 얼굴에 현우가 그제야 입을 떡 벌렸다.


“설마······.”


“네, 쟤가 제 동생이에요.”


수빈이 푸스스 웃었다. 마침 통화를 마친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형.”


오랜만인 얼굴이었다. 수학 능력 시험 이후, 몰아치는 실기 시험 탓에 한솔이 한동안 남매치킨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강수빈, 강준혁.”


수빈이 준혁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현우는 그제야 자신이 왜 수빈을 처음 봤을 때 유독 더 익숙하게 느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니 남매는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누나가 늘 신세 지고 있습니다.”


“뭐래?”


준혁의 어깨를 찰싹 때리는 수빈의 모습에 현우가 웃었다. 남매들은 어느 집이나 비슷하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자리가······.”


현우가 말하려는 순간 한 테이블에서 손님들이 일어섰다. 현우가 그쪽을 가리키며 앉아 계시면 곧 테이블을 치워드리겠다고 말하고는, 포스기가 있는 카운터를 향해 달려갔다.


*


“으···. 회사 폭파시키고 싶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구기며 중얼거린 정현은 의자에 한껏 몸을 기댔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퇴근을 하지 못한 직장인인지라, 뭐라도 파괴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정현이, 휴대폰 진동에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현은 몇 마디 상대의 안부 인사에 대꾸하다가, 한참 동안 전화를 듣고만 있었다. 정현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지자 맞은편의 회사 동료가 정현을 힐끔댔다.


“아니, 그게 무슨......”


정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사 동료와 눈이 마주치자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취해 보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정현은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돼요,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정현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대꾸하며 침착하려 애썼다. 그러나 영 쉽지 않았다. 전화 저편의 상대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글쎄, 어쩌겠어요. 그렇게 됐으니까, 이번 계약 기간 끝나면 연장 없이 해지하는 걸로 부탁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휴대폰에서는 뚜, 뚜, 하고 반복적인 전자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현우야, 큰일 났다!’


정현의 손이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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