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세계 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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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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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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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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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무대부터 독식(4)

DUMMY

신화 음반기획사의 대표 안치영은 요즘 따라 집무실의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많아졌다.


‘현이가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마음은 편해졌지만···.’


안치영의 첫째 아들인 안현. 기억을 잃기 전의 안현은 그야말로 망나니 중 망나니였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후의 안현은 과거의 그 자신과 비교했을 때 완벽하게 정반대의 인간처럼 느껴졌다.

물론 자신의 생모와 생이별을 한 처지기에 안현이 엇나가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예전에는 그 정도가 지나칠 때가 많았다.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혜택을 누리게 한 게 독이 된 건가?’

안치영의 자택은 그 규모가 말그대로 궁궐 그 자체였다.

6.25 전쟁 직후 미8군의 쇼 비즈니스부터 손을 댄 부친 안득남의 사업 성공에 더해, 안치영이 국민가수로 발돋움했고, 그런 이유로 그의 자택에도 항상 음악 비즈니스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에 손닙 접대와 방대한 규모의 집안 관리를 위해 집사들을 고용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식들이 다소 버릇없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안현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정신은 차려서 다행이지만···.’


안현의 못돼먹은 버릇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갑자기 안현의 성격이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고쳐진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아픈 골치가 일소에 해소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런 맥락 없이 그 변화가 너무도 급격히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뭐지? 무슨 이유로 아이가 변한 걸까?’


똑, 똑-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안치영은 턱을 괴던 팔을 풀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들어오세요.”


안치영의 집무실 문을 두드린 건 안치영의 백 밴드 기타리스트이자, 음반제작부를 책임지고 있는 조용탁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시나요, 대표님?”

“어, 용탁이. 어서 들어와.”


조용탁. 지금은 신화 기획사 소속의 임원이지만 안치영이 음악을 시작할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와 동고동락했던 둘도 없는 음악적 동료다.


“용무가 뭔데?”

“평소 같으면 합주실이며, 사무실이며 빨빨거리고 돌아다니실 텐데, 오늘은 집무실에서 한발짝도 안 나오시길래 궁금해서요.”


안치영은 조용탁과 함께 마실 믹스커피를 타 한 잔을 그에게 손수 건넸다.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현이 아드님 생각이겠죠?”

“어떻게 알았어?”

“이미 회사 내에 현이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사실이었다. 이미 신화 기획사의 창립자인 안득남이 자신의 장남인 안치영에게 대표자리를 승계한 상황. 그것은 이 회사가 족벌 체제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직원들 사이에 차기 대표 후보나 다름없는 현 대표의 자제들 일에 소문이 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이가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친다면서요?”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갑작스럽게 잘 치게 된 거지.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기획으로 참여하는 지역 행사에도 세워 보는 거잖아.”

“기억상실증 걸리기 전에는 피아노를 못 쳤나요?”

“전혀. 아예 거들떠도 안 봤다니까.”

“허 참, 신기하네요.”


안치영은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말을 이어갔다.


“신기한 건 그것 뿐이 아니야.”

“그럼요?”

“인격 자체가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네? 인격이요?”

“그래.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됐다랄까.”

“······.”

“이제 국민학교 5학년인 애인데, 몸속에 웬 아저씨가 들어 앉아있는 느낌이라고.”

“그래도 소문에 의하면 인성이 참 좋아졌다고 하던데요?”

“그래 맞아. 이젠 지가 자청해서 가족들과 밥도 같이 먹는다니까. 눈에 전에 없던 총기도 느껴지고.”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좋긴 한데, 걱정도 돼. 애가 너무 바뀌어서 말야.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케이스가 있나?”

“왜 해외뉴스에서 종종 그런 기사 나오잖아요. 누군가 머리에 심한 충격을 당하고, 성격이 바뀌었다는···.”


안치영과 대화하는 조용탁이 대답을 하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


“저기, 대표님. 안 그래도 현이에 대해 보고드릴 일이 있긴 한데요. 이걸 말씀드려야 할지 말지···.”

“보고? 무슨?”

“이번에 그 평택 밤가시 축제 행사로 조직된 프로젝트 팀 말이에요.”

“응. 그 팀이 왜?”

“현이와 만나 회의를 하게 생겼다는데요?”

“음, 뭐. 기획팀이 출연자 호출해서 회의하는 건 당연하지. 현이 시간 많으니까 마음껏 부르라고 해. 근데 그게 왜?”

“그게 아니라, 회의 주재를 현이가 했대요.”

“뭐? 현이가?”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표정이 된 안치영.

아무리 대표의 자제지만 이제 국민학교 5학년이 회사일에 관여하려 한다? 여태까지 안현이 걱정은 됐어도 탈은 나지 않았는데, 결국은 사고가 터졌다.


“특히 류병택 부장 하소연이 이만저만 아니더라고요.”


류 부장의 불만. 안치영 대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공연기획에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5학년짜리 꼬마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꼴이 됐으니 어이가 없었을 거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기엔 대표의 자제이니 혼꾸녕을 내기도 뭣하니 속만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란 걸 안치영이 모를 리가 없었다.


“현이가 잘 못한 일이야. 아들 놈이 폐를 크게 끼쳤군.”

“그렇다고 너무 모질게 혼내진 마세요.”

“아니. 혼낼 땐 따끔하게 혼내야지.”

“그럼, 대표님. 현이가 주재한 회의는 제가 취소할까요?”

“······.”


조용탁의 질문에 안치영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뗐다.


“그건···. 일단 냅둬 보자고. 혼내려도 무슨 짓 하려는 지는 알아야지. 녀석이 뭘 하려는 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는 싶네.”


***


밤가시 축제 행사가 일주일 남았다.

그리고 이곳은 신화 기획사의 연습실. 밤가시 축제가 열리기 전 장비체크를 위해 류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호출되어 오게 되었다.

류 부장이라는 사람이 도착하기 전 난 미리 장비를 체크하며 축제 준비 과정에 대해 머릿속으로 정리하였다.


안치영 대표가 내게 무대에서 설 것을 제안하고 오늘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 흘렀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나는 2명의 조력자를 구했다. 그 2명은 다름아닌 동생 안욱과 최윤희 교수.


‘이 두 명을 포섭하는데 머리를 꽤나 굴려야 했지.’


특히 동생 안욱 녀석.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인 상황이다. 하지만 동생 안욱의 과거 만행을 캐내서 그 증거로 협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본인이 알아서 처신할 걸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되지.’


안욱은 수가 틀리면 언제라도 내 뒤통수를 칠 녀석이다. 녀석의 행동은 계속 주시하면서 일을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최윤희 교수는 회유를 하는데 공을 들여야 했다.

처음에 나의 연주를 보고 실의에 빠진 최 교수였지만, 다시 나와 만난 후 마음을 여는데 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회유만 해도 된다고 쉬웠던 건 아니었어.’


최윤희 교수.

이제 나와 세 번 밖에 안 만났지만,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상황에 있어서 무척 활용도가 높은 인물이라는 것을.

허나 이제 갓 30대를 넘은 젊은 교수였지만 회귀 후 나는 12세 어린이인 몸. 나와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무리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12살인 척 하지 않고 그녀에게 음악적 선배로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줬다. 회귀 전 주워들은 그럴싸한 말들을 가지고.


“먼저 도착했구나, 안현군.”

“안녕하세요.”


두 사내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었다. 류 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보자 손을 가볍게 흔들었고, 그의 뒤에 부하 직원이 따라 들어왔다.


“아, 여긴 오병수 대리. 앞으로 실무를 도와줄 거야.”


오병수 대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나는 류 부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했다.


“이 장비들이 행사 당일 사용될 장비들인가요?”

“뭐 그렇긴 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

“네. 문제가 심각한데요.”

“·······.”


나를 바라보는 류 부장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바로 국민학생 꼬마가 어른 말은 안 듣고 어디서 토를 다느냐는 눈빛.

나와 류 부장과의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그의 옆에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던 오병수 대리가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류 부장님, 한 번 소리를 들어 보실래요?”


내가 기타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자, 류 부장의 옆에 서 있던 오병수 대리는 내쪽으로 달려와 합주실에 비치된 앰프 인풋에 기타 케이블을 연결해 줬다.


“기타, 건반 일체형인 소리조아(Sorijoa) 앰프라···. 시중에서 파는 앰프 중 가장 저렴한 제품이네요.”


내가 이 앰프를 모를 리 없다.

21세기가 되기도 전에 회사의 부도로 단종된 국내브랜드 소리조아(Sorijoa). 한 중소기업에서 박리다매 전략으로 내 놓은 제품이다. 하지만 아무리 박리다매 제품이라도 소리의 퀄리티가 지나치게 떨어지는 바람에 출시 직후 단종의 길을 걷게 된 걸로 유명한 브랜드였고 말이다.


디리리리리링~


앰프의 전원을 올리고 C코드를 긁은 뒤, 앰프의 노브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이것 보세요. 미드레인지(mid-range, 중음역대) 노브는 아예 먹히지도 않고, 트레블(고음역대)는 높여봤자, 소리만 깨지죠? 이 앰프로 공연을 하라고요?”


내 설명이 끝나자, 그야말로 똥 씹은 표정이 된 류 부장.


“아니, 대표님 아드님. 이런 건 그냥 넘어가시지? 어차피 동네 노인네들이나 보는 변두리 행산데.”

“그런 생각이시라면 류 부장님도 손 떼시죠. 어차피 동네 노인네들이나 보는 변두리 행사인데요.”

“······.”


한 마디도 안 지는 내 말에 류 부장은 뒷목을 잡으며 혈압이 올라가는 듯한 낯빛이 되었고, 그 사이에 안 대리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류 부장 옆에서 쩔쩔 매고 있었다.


‘류 부장과 오 대리라···.’


나는 이번 밤가시 축제 무대를 기획할 두 사람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류 부장이란 사람. 심드렁하고 귀찮아 하면서도 이 프로젝트를 놓지는 않고 있고, 그리고 오 대리라는 사람은 뭔가 주눅들고 피곤에 절어 보이는 모습이라?’


프로젝트 팀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변두리 행사라고? 장소가 어디든, 규모가 어디든 사람들 앞에서 펼쳐지는 무대는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내가 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해봤자다.


“류 부장님. 도저히 안 되겠네요. 다음 주에 회의 한 번 하시죠?”

“아니, 회의? 그게 무슨?!”

“이번 행사요. 이런 식으로 하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관계자들 모두 모여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뜯어 고쳐야 해요.”


이젠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는 류 부장. 국민학생에게 끌려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테니 화가 날만은 했다.


“크흠. 그래, 좋아. 안현 군.”


그렇게 흥분하던 류 부장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언성을 높이다 말고 갑자기 목소리 톤을 낮췄다.


“우리 신화 기획사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니 안현 군 의견은 존중은 하도록 하지.”

“······.”

“단, 안현 군은 미성년자시니 우리 지시 외의 행동을 하실 경우 보호자 동의도 받아야 할 거 같아.”

“보호자요?”


보호자라.

나, 안현의 보호자라면? 당연히 안치영 대표를 말하는 거다.

아마도 신화 기획사에서 부장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적어도 10년 이상 근무를 했을 테고, 안치영 대표의 특징을 파악했을 터. 지금 내가 주재하고자 하는 회의가 대표의 귀에 들어가면 그의 성격 상 자식의 무례함을 사과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회의도 없었던 게 되고, 행사공연 팀에서 배제가 될 것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뭐,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보호자라면 이미 지금 대동했는데요?”

“네, 네?”

“최 교수님? 들어오시죠!”


철컥!

내가 소리를 치자, 합주실 문이 열리면서 최교수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최윤희 교숩니다.”

“아, 아니. 저 사람이 보호자? 보호자라면 부모님이···.”

“아, 무슨 말씀을요. 최윤희 교수님이라면 음악치료 교수님으로서 제 멘탈을 관리해주시는, 없어서는 안 될 제 보호자시죠.”


지금의 내 신분은 미성년자다. 앞으로 내가 일을 하는데 있어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태클을 걸 일은 부지기수가 될 테다.

최윤희 교수. 다시 생각해도 영입하길 잘했다.


<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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