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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멈추는 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정천강근극
작품등록일 :
2022.09.27 14:39
최근연재일 :
2022.10.09 20:49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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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34,460

작성
22.10.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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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전생의 마지막

DUMMY

그는 작은 가게에서 밥과 국을 팔았다. 먹을거리를 만들어주고 그 대가를 받아 먹고살았다.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양심적으로 장사를 했다. 무게를 속이지 않았고 상한 재료를 섞어 팔지 않았다.


어렵게 차린 가게였다. 젊은 시절 뼈 빠지게 일해 모은 돈을 가게에 들이부어 보증금을 치르고 인테리어를 했다. 차라리 그 돈을 가지고 음식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우는 게 더 실속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프랜차이즈 간판을 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오래 전부터 프랜차이즈의 수익구조에 관한 풍문들을 익히 들어온 터였다.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가게 이름을 직접 짓고 간판을 맞췄다. 그렇지만 인테리어업자를 너무 믿었던 것이 패착이었다. 당시는 기업이 쓰다가 내버린 은퇴자들이 자영업자들이 되어 창업 붐을 일으킬 때였고, 그래서 인테리어 수요가 넘쳤다. 사실상 인테리어업자들이 갑이었다.


인테리어를 마쳤다고 해서 가 보니 그의 가게는 꼭 죽은 뒤에 묻힐 관 같았다. 항의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인테리어업자는 음식 맛만 좋으면 장사는 잘 되게 마련이라며 도리어 설교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 말과는 달리 고객들은 인테리어를 보고 가게를 골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음식은 차려놓고 진열을 할 수 없고, 맛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2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억지로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바꿔놓게 돼있던 프랜차이즈 식당과는 달리, 그의 가게는 차츰 식어갔다. 아무리 문질러도 주방 벽 타일에 낀 기름때를 지울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사업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장이라 불렸지만, 그건 사업이 아니었다. 고만고만하게 벌어 모은 돈은 거의 다 건물주에게로 입금됐다.


노예처럼 살았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그는 결혼을 하지 못했고 만성피로에 시달렸으며 계속 밤늦게까지 밥을 팔았다. 영업시간은 갈수록 점점 자라났고, 밤의 어둠이 깊어지면 종종 사람에게 물리곤 했다. 술에 취해 다투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두려워졌다. 짐승 같은 자들이었다.


자영업자는 늘 늦게 잠들었지만, 조금이라도 싸고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먼 거리를 오가곤 했다.


그날 자영업자는 매우 불길한 꿈을 꾼 참이었다. 돈을 주고라도 누구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시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멀리서 재료를 사오는 보람이 없었다.


새벽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차를 몰고 나갔다. 잠이 다 깨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 아는 길이 더 위험하다. 그가 잘 아는 길목, 가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자주 졸음이 스며들었다.


신호가 아주 긴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췄다.


끔찍한 꿈 때문에 바짝 긴장해 있던 터여서 피곤은 더했다.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까지 눈꺼풀을 잡아끌며 눈을 가렸다.


사실 그는 전에도 그 자리에 멈춰 잠깐씩 졸았던 적이 있었다. 뒤차 경적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날 때가 종종 있기는 했어도 사고가 난 적은 없던 곳이었다.


온 세상이 나른했다.


끼이이익! 쿠쾅!


커다란 충돌음이 귀를 찢어놓을 것처럼 파고들어 그대로 심장을 찔렀다. 끔찍할 정도로 놀란 그는 허우적대며 잠에서 깨어났다. 하마터면 실수로 엑셀을 밟을 뻔했다.


그는 헐레벌떡 차 문을 들이받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안전벨트가 몸을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두 박자 정도 늦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중앙선 위에 서 있었다.


선뜻한 새벽 공기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를 당해 뒤집혀 있던 것은 옆 차선의 차였다. 은회색 SUV. 꼭 졸고 있었던 그를 대신해 사고를 당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얀 글자가 그의 시선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글자는 위급하게도 상하가 뒤집혀 있었다.


졸음이 다 가시지 않아 멍하기는 했지만, 교통사고 환자는 전문 인력이 도착해 구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일반인이 주제넘게 나섰다간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까지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새벽이라 다른 차가 없었다. 사고차량 두 대를 제외하면 남아있는 것은 그 혼자뿐이었다.


문득 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였다. 언어가 입혀지기 이전의 위험과 공포가 날것으로 길 위에 내던져졌다.


“어... 이거 어떻게 좀...!”


주위를 둘러봤지만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고차량의 운전자 역시 부상을 당한 듯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영업자는 전복된 차량에 다가섰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으므로,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휴대전화로 신고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어온, 그리고 앞으로도 그 일을 해나갈 손이었다. 그 손으로 불운한 아이를 돕다가 다치기라도 했다간 앞일을 짚을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했다. 오늘이 뒤틀려버린 자영업자의 내일이 밝은 경우를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다. 결국 현장에서 등을 돌리고 말았다. 자기 차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그런데 다시 운전대를 잡은 순간, 땅에 떨어진 털실뭉치처럼 가늘게 사고차량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트렁크 문을 열고 목장갑을 꺼내고 말았다. 바닥에 엎드려 사고차량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뺨에 닿는 아스팔트는 차가웠다. 잠이 확 달아나면서 지금 대체 뭐하는 짓인가 하는 회의가 찾아왔지만, 울고 있는 아이의 자그마한 머리가 눈에 비친 뒤로는 그런 생각마저 사라졌다.


강화유리는 박살이 나 있었다. 깨진 유리조각을 쓸어내고 손을 밀어 넣었다. 쉽지 않은 순간이었다. 우는 아이를 살피려면 손이 닿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어깨를 깊이 밀어 넣으면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든 차에 불이 붙을 것 같았다. 차라리 늑대 아가리에 손을 넣는 일이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의 의식이 돌아왔다. 비명을 지르고 슬프게 울면서 발로 쿵쿵, 차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여자가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면 절대로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뒤가 없는 불안에 시달리던 여자의 히스테리에 자영업자의 정신까지 흐트러지고 있었다.


엄마? 아이? 어느 쪽을 먼저 구해내야 하는가. 엄마를 잃은 아이 혹은 아이를 잃은 엄마의 미래를 상상하며 생의 무게를 가늠해볼 겨를도 없었다. 사실은 그 역시도 공황상태였다.


아이를 둔 여자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기화로 삼기라고 한 듯 차에 불이 붙었다. 뒤집힌 차는 어린 생명을 뱃속에 삼킨 채 검은 연기와 끔찍한 냄새를 내뿜으며 불길을 물고 혀를 날름거렸다.


여자의 비명은 더 커졌다. 결국 더 시끄러운 쪽을 먼저 구하기로 했다. 차체가 찌그러지면서 조수석의 차 유리는 벌써 깨져 있었고, 그래서 쉽고 간단하게 일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안전벨트가 있었다. 여자의 목숨이 차 유리를 깨고 튕겨나가지 않도록 붙들고 있던 질긴 끈이 이번에는 구조를 가로막고 있었다.


천만다행히도 주머니칼이 있었다. 스위스 나이프라는 이름이었지만 실은 싸구려 모조품이었던, 자그마한 칼. 아는 동생에게서 개업기념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날도 제대로 서 있지 않았지만, 식품재료박스를 묶는 노란 플라스틱 띠를 자르는 데는 쓸 만했다. 작은 가위와 톱은 물론, 코르크마개를 따는 핀과 드라이버까지 달려 있었지만, 그가 쓰는 용도는 그것 하나였다. 그 한 가지 쓰임새 때문에 버려지지 않은 칼이었다.


그 칼로 안전벨트를 끊었다. 그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사람을 끌어내는 일은 더 어려웠다. 성인 한 사람의 무게라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하나의 목숨을 온전히 내걸어야만 다른 하나의 목숨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자영업자는 여자의 옷 뒷덜미를 두 손으로 잡고 발로 차체를 밀어내며 사력을 다해 끌어냈다. 갤리선의 노예가 노를 젓듯이.


처음에는 저항이 있었지만, 한계 이상의 힘을 가하자 여자의 몸은 한 번에 쑥 빠져나왔다. 사고차량에서 이탈해 나온 여자는 꼭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새 생명 같았다.


여자는 정말 갓난아기처럼 울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는 못했지만, 그 엉망이 된 얼굴에는 자기 아기를 구해달라는 무언의 요청이 떠올라 있었다.


자영업자의 가슴 속에 사람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렇지만 그는 어떤 말도 없이 바로 다음 행동으로 들어갔다.


운전석 뒷자리에 있는 아이가 하늘의 별만큼이나 멀었다. 차체가 심하게 우그러지는 바람에 창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손을 넣을 수는 있으되 아이를 꺼낼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조수석 뒷자리의 깨진 차창으로 팔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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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의 마지막 22.10.01 22 0 9쪽
1 영웅전 22.09.30 31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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