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3.01.09 16:33
연재수 :
102 회
조회수 :
13,040
추천수 :
195
글자수 :
790,635

작성
23.01.03 18:42
조회
45
추천
0
글자
22쪽

94.

DUMMY

*


파티Party.


일종의 연회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모이는 자리는 말이다. 비록 그들 중에서 파티에 대한 참석 의사를 나타낸 이들은 아무도 없었지만. 어쨌건 그들은 한 자리에 초대가 되어서 모였다. 인종도, 국적도 연령과 성별도 모두 다른 이들이었다.


구면인 이들도 충분히 많았다. 이번에 벌어진 파티는 이전에 벌어졌던 곳과 동일한 곳에서였다.


태국의 한 빌딩. 그 빌딩 내부는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콘크리트 기둥들을 제외하고는 내부를 구분하는 어떤 벽도 없는 한 층 그대로의 빈 공간.


하얀색으로 칠해진 그곳에 사람들이 나열해 서 있다. 민서는 그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었고, 몇 명의 점퍼 조직에서 나온 전투 요원들과 언어 전문가들이 그들이었다. 점퍼 중에서도 전투 요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홍인수와 쉴더, 야가미 소우타였다.


사람들을 초대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한 백 수십 명 정도는 거뜬히 수용을 할만한 자리였고, 빼곡히 선 채로 있다면 그 이상도 충분히 자리할 수 있다.


전투 요원들은 눈에 보이는 무장을 하고 있었다. 지나친 위협을 가하는 것은 점퍼 조직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어떤 이가 올 지 모른다는 점에 있어서 무력을 드러내 보이는 것도 꽤나 괜찮은 수단이었다. 민서를 비롯해 다른 인원들 또한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방탄 피복 따위와 간단한 권총 정도로 호신용 무장을 갖고는 있다.


한 명 두 명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채 하루가 가기 전에, 반나절만에 약 오십여 명이 모였다. 민서는 일단 재밍 능력을 거두었다. 사람들이 쌓일 때마다 민서와 조직원들은 이야기를 시도했고, 무장한 채 나열한 여러 명의 군인들은 대화 의사를 촉진시키는데 충분한 효능을 보였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와 아프리카 대륙의 절반, 그리고 호주 대륙을 포함한 범위에서 점프를 사용한 모든 이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구면인 사람들은 또냐, 는 표정을 지었고, 초면인 사람들도 고분고분하게 말을 따랐다. 이미 준비된 용병들을 보고 섣부르게 무력 시위를 시도할 대담한 자는 아쉽게도 없었다.


이전과 비슷한 수순으로 단체 면담이 진행되었다. 간략하게 정세 현황과 점퍼 조직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 뒤, 가급적 협조를 구했다. 점퍼 조직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가장 좋고, 그렇지 않아도 힘을 빌려주는 쪽으로. 중립적이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은 연락망을 활성화 시키는 것으로 그쳤다.


다소 미안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통제를 위해서 그들의 개인적인 정보를 요구했고, 신분과 주소 따위를 확인한 뒤에야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허락했다.


일정한 거주지도 무엇도 없는 떠돌이나, 범죄 이력이 있는 자들의 경우에는 간단한 발신기를 부착했다. 구속구의 종류는 아니었고, 간단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목걸이나 팔찌였다. 헐렁한 넓이로 제작된 그것은 빼놓거나 걸치고 다니기에 편했고, 그 근처에만 두어도 괜찮다. 착용자의 생체 데이터를 가늠해서 주변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고, 반경 수 미터 내에만 있다면 문제 없었다.


어떤 대략적인 데이터도 예측군도 없이 전 세계에서 점퍼들을 수색해서 관리하는 것보다, 핀포인트로 고작 수십에서 최대 백 명 정도를 관리하는 건 어마어마한 인력의 절약이 있는 변화다.


또한 추가로 점퍼들 모두에게 지구상 어떤 위치에서나 통신이 가능한 휴대폰 기기를 나누어주었고, 주기적인 연락으로 그들의 현황 따위를 파악한다.


앞으로 서서히 점프 능력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것은 통제가 있을 것이며, 가급적이면 점퍼 조직을 통해서 공공선을 위해 한정된 JE를 사용하라는 식으로 설득했다. 개중에는 드물게도, 이미 그런 류의 방식으로 점프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렌 시우나 쑨 핑같은 자들이었다.


아마 초기에 자신의 능력을 각성했던 점퍼들 중에서 이런 류의 사용이 더러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저 자신이 속한 작은 사회와 공동체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위해 능력을 사용하고,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점퍼 조직의 임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가급적 가능한 조건 내에서의 참여가 결국 조건이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작은 물건을 옮기는 것 정도는 가능했고.


그런 식으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점퍼 조직으로서도 이제 세상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준비가 되어가는 셈이었다.


내부가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외부 활동으로 뻗어 나가는 것도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모든 점퍼들이 조직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조직이 있다면, 다른 모든 점퍼들에 대한 입장 정도는 명확히 해야 세상에 그들의 이야기를 알릴 최소한의 준비가 되는 것이다.


점퍼 조직은 민서의 능력의 완성이 가시화가 되면서 슬슬 이제 계획상으로만 준비하던 일들을 현실적인 수준에 두고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점퍼’라는 존재에 대해 세상에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일이었다.


이전까지는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일이었지만, 어느 정도 조직에 여력이 생기고 점퍼들에 대한 통제력도 강화가 되는 시점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그들이 존재를 하는 한, 언젠가는 이루어질 방향성의 일이기는 했다.


JE는 공유되어야 한다. 물론 극도로 희소한 자원이며 그 총량 역시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어 인위적으로 늘릴 수는 없었지만, 계획된 사용 아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선택이 되어서 사용되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는 소수의 선택에 의해서 사용되던 에너지라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확장된 의견에 의해 사용될 것이다. 물론 효율성을 위해서 그 논의자들의 범위가 대책없이 늘어날 수는 없겠지만.


점프 에너지는 줄곧 사용되던 것이었으나 공개적인 논의 하에서 이용된 적은 그것이 만들어진 이래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이러한 방향성의 공개는 그것의 새로운 지평과 발전을 열어낼 것이라고, 한형석을 비롯한 여러 수뇌부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파티, 라고 불린 그 모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만에 이번에도 끝이 났다.


심지어 조촐한 다과나 음식물마저 준비를 했었고, 어떤 이가 어떤 상황에서 오게 될 지 몰랐으므로 응급상황에 대한 약간의 대처나 메뉴얼마저 있는 상황이었다. 점퍼가 어지간하면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테였으나, 위급한 상황 중에 갑자기 이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강제로 불러들인 쪽에서 대처를 해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어떤 조난 상태에서 점프로 탈출을 하려던 사람 따위는 없었고, 중환자도 없었다. 그리고 준비하던 조직의 경비들이 새롭게 중상자를 만들어내는 일도 없었다. 다소 반항적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무장을 하고 도열한 전투 요원들의 모습에 다른 생각을 품을 낌새를 보이지는 않았다.


두 번째의 파티가 끝나고, 민서는 마지막을 준비했다. 아마, 이런 속도와 방향성이라면 곧 그의 능력은 그의 상상처럼 곧 지구 전역을 덮을 테였다. 그리고 그 때가 아마 최종적 단계일 것이다.


*


미셸 베르나르.


라는 미인이 있었다. 점퍼였고, 웨이브 진 블론드 헤어를 곱게 길러 어깨 즈음까지 닿게 한 여성이다. 코드 네임은 ‘점퍼Jumper'였다. 별다른 특징이 없다는 게 그녀의 특징이었고, 딱 일반적인 수준의 도약 능력을 보유한 점퍼였다.


간혹 일반적인 명사로서의 점퍼와 헷갈리기도 하지만, 정확히 사람을 지칭하는 형식에 이름으로서 들어갈 때는 그다지 혼동이 없었다.


흰 피부와 깔끔한 눈매의 이목구비에, 곱게 휘는 눈웃음이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면이 있는 여성이었고, 뚜렷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 요원으로서의 트레이닝 역시 훌륭하게 완수를 했기에 전장에서도 그럭저럭 믿을만한 동료로서 등 뒤를 맡길 수도 있었다.


올해로 딱 서른 살이 되는 나이였고, 어느 쪽으로도 특별하게 특출난 재능은 가진 바 없는 요원이었지만 달리 말하면 어떤 종류의 현장에서도 필요로 하게 되는 재원이기도 했다. 바쁘게 조직 내부에서 다양한 일 처리를 맡으며 살아오던 그녀의 관심사 중 한 가지는, 어떤 사내에 대한 것이었다.


이성에 대한 마음은 나름대로 강력한 원동력으로서, 사람이 사명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고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깨나 도움을 주고는 하는 힘이었다.


고단한 일의 흔적들 한가운데서 동료들끼리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법이었고, 그녀 역시 그런 것들에 관심이 아주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보기에 제법 괜찮아 보이는 남자는, 조직 내에서 아주 유명한 코드 네임을 가진 동양인이었다. 인종의 차이나 문화, 언어의 차이는 나름대로 큰 장벽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점퍼로서 누구와도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그들끼리의 사회성에 있어서는 그다지 의미 있는 차이점은 아니었다.


또한 쉴 새 없는 업무들의 한 가운데, 전장을 오가고 또 재난 상황의 현장들을 파헤치고 다니다 보면 그 사람의 깊이감 있는 내용을 보게 된다. 그러니까,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가 어떻게 대처하는가, 나 혹은 그 사람의 능력 따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홍인수라는 사내는 제법, 꽤나 믿음직한 사내였고 현장의 동료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또 인망이 있는 남자였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능력과 힘으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였으니 말이다.


그녀 역시 현장에서 일을 할 때 홍인수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고, 제법 훤칠한 태가 나는 외모나 나름대로 차려 입고 다니는 그의 스타일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전장에서의 사랑은 그녀의 무사 생환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미셸은 그런 생각을 하며 홍인수에 대한 호감을 간직해왔다.


그리고, 어느 날 점퍼 조직에서 별다를 것 없는 일과를 보내고 기지 내부를 돌아다니다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어느 시점부터 외부에서 영입되어 들어온 동남아 계열의 한 작은 여성이 있었는데, 유달리 홍인수와 친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묘한 분위기마저 그 사이에 감도는 듯하며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에 그녀는 그냥 지나가는 걸음을 걷다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지그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일은 아니었고, 단순히 본부 기지 내부의 이런저런 휴게 시설들이 모여 있는 동에서 걸음을 걷다가 한 휴게실 내부에서 둘이 같이 쉬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 아무런 인연도 아닌 이들끼리도 얼마든지 같이 있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 순간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묘한 감정의 기류, 남녀 간에 이어지는 정情이란 것의 흔들림을 본 것 같았다.


그건 참으로 미묘한 순간이었고, 감독의 시선으로 보자면 찰나와 같은 시간을 표현한 잠깐의 신scene이었다. 긴 서사나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다양한 감정들의 묘사를 잘 끌어와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 번에 전달하는 정교한 연출력이 필요한 모습이었고···


미셸은 그런 장면을 눈으로 목격했다는 점에서 아주 조금쯤은 씁쓰레한 기분이었다.


우연도, 이런 씁쓸한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옌, 이라 이름불린 한 점퍼와 홍인수는 아주 오랜 시간 그 장소에서 같이 있으며 서로에 대한 모든 긴장을 풀고 완전하게 쉬는 듯한 모습으로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주 먼 곳에 서로 떨어져 있지도 않았고, 꼭 붙어 있지도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두 걸음 즈음 사이를 둔 채 각자의 방향으로 앉아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게, 또 미셸의 눈에 선명하도록 하고 있는 듯했다.


길게 이어지는 밝은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친 한 장면에서 그녀는 그 방 안에서 두 사람이 보냈을 많은 이전의 시간들을 순식간에 상상해서 떠올리곤 그대로 잠시 멈추었던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을 그대로 두고, 그녀는 자신이 가던 옆으로 이어지는 복도의 길을 쭉 걸어갔다.


*


“다가오지 마!”


라고 외친 건 한 흑인이었다. 아프리칸 계열의 사내였고 약간은 허름한 민소매 티와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있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통풍이 잘되는 샌들을 신고 있고 사내는 창 하나를 꼬나쥐고 있다.


창이라. 참으로 이 시대에 보기 어려운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나이프, 혹은 총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진지하게 호신용 무기로 무언가를 든다면 다른 선택지가 아주 많았다.


그에 비해 창은, 지나치게 눈에 띄고 또 숨기기도 어려웠다. 굳이 만들어서 그것을 숨기고 다니다가 상대의 약점을 찌르고자 한다면, 그보다 훨씬 작으면서 먼 거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무기의 선택지가 아주 많았다.


만일 제대로 된 창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닌다면, 그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곧 야만의 사회에 가까울 것이다. 현대 도시에, 치안 유지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창이란 그토록 이질적인 모양과 성질의 무기였다.


사내는, 아프리카라고 모든 지역이 첨단 도시 문명에서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으나, 개중에서도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부족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가 사는 곳이라고 현대 문명의 공산품들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래. 사내는 진지하게 생활의 중간에 사냥을 나서곤 했었다. 심지어 창을 꼬나 쥐고서. 여러 명의 건장하고 탄력이 좋은 사내들이 힘을 합쳐서 나선다면, 이빨과 발톱이 있는 야수나 맹수라고 하더라도 사냥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부족의 전사들, 사냥꾼들이 충분히 모인다면 그들은 투창만으로 사자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내의 눈 앞에 있는 남자는 사자보다도 조금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흑인 사내가 본인의 경험과 고향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도구와 재능을 가진 상대였다, 홍인수는.


흑인 사내는 점퍼였다. 그는 부족에서도 전사의 일원이었고, 많은 사냥에 참전을 했던 베테랑이자 증명된 사냥꾼이었다. 야수와 맞상대를 벌일 수 있는 담대한 심장을 가졌고 다른 인종이 갖지 못한 탄력적인 근육과 관절을 보유했다.


그러나 홍인수는 보기 드문 천재의 일종이었고, 그가 상대하기에 아주 어려운 다양한 최첨단의 발톱들을 여러 종류 가지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창을 전력으로 던진다고 하더라도, 홍인수가 입고 있는 방어 장비인 수트를 꿰뚫을 수조차 없다. 물론 더럽게 아프겠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그는 손가락 정도는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홍인수는 그 정도의 타격 속에서 중거리의 사격을 한 두 치의 오차만으로 모조리 맞추어낼 수 있는 솜씨의 명사수였다.


흑인 사내, 의 이름은 ’은차티‘였다. 긴 성이 따로 있었으나 부족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은 그렇게 간단하고 짧다.


흑색의 긴 팔다리, 뒤로 땋은 치렁한 흑발. 그는 잠시 사냥에 나서기 위해 혼자서 점프로 마을에서, 그가 잘 다니는 사냥 스팟spot으로 이동을 한 참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이었다.


일반적인 생물의 동작 궤적에서 벗어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점퍼는, 충분한 신체 능력과 경험만 받쳐준다면 이론상 혼자서 사냥 또한 가능했다.


맹수라고 하더라도 느닷없이 머리 위 허공에서 내리 꽂히는 창날을 맞는다면 꼼짝없이 목숨을 내어주어야 하고 마는 것이다. 은차티는 그런 방식의 사냥을 연습하는 젊은 청년이었다.


저녁 무렵의 태국. 아프리카에 그가 있던 곳의 시간으로는 한창 태양이 뜨겁던 낮이었으나 이곳은 저녁이었다.


물론 사방이 틀어막히고 해조차 보이지 않는 밀실인, 빌딩 내부에서는 그곳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어려웠다. 점퍼이면서도 외부 세계에 대한 모험이 적고 경험이 별로 없는 은차티가 느끼기엔 거의 별세계나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흑인의 말에, 홍인수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다만 내부의 스피커로 다른 곳에서 통역 전문가가 음성을 전달 받아 듣고는 있었다. 아프리칸 계열의 언어들 역시 전문가들은 드물게 있었고, 개중 하나가 은차티의 말을 번역해서 다시 홍인수의 귀에 꽂힌 통신기로 전달을 해주었다.


홍인수는 비교적 어눌한 발음으로, 통신기에서 전달되는 소리를 따라 뱉었다. 약간은 어색한 말투였으나, 그는 다행히 곧잘 따라했고 곧 은차티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반갑습니다. 당신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차티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알아는 들을 수 있었지만 영 어눌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처음 보는 낯선 동양인이 자신들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건 다소 반가운 일이었다.


은차티의 표정에 약간 누그러질 기색이 보이자, 홍인수는 대화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점퍼 조직에서 전달해야 할 다양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그의 실력으로 정확하게 말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귀에 낀 통신기를 툭툭 두드렸고, 그 제스쳐에 내부 모습을 영상으로 전달받아 바라보던 조직의 데스크에서 다른 스피커를 이용해 음성을 직접 연결했다.


통역 전문가이 목소리가 빌딩의 벽이나, 천장 따위에 잘 보이지 않게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직접 흘러나왔다.


-경계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한 것들을 줄 수 있고, 또한 우리 역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분명 순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점퍼’일 것이고, 우리는 그런 이들이 모여 있는 조직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국가들의 협조와 지원을 받고 있으며, 만일 당신이 동의한다면 훨씬 나은 환경의 삶을 제공해주며 기쁜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은차티는 문득 입매를 위쪽으로 휘게 만들며 웃어 보였다. 젊은 흑인 사내의, 매력적인 미소였다. 그러나 홍인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어딘가 눈매가 긴장되어 있는 듯했고, 은차티의 몸에서 느껴지는 전투와 경계의 분위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던 탓이다.


은차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나 경험하는 것이 별로 없는 부족의 젊고 또 어떻게 보면 어리기까지 한 전사였으나, 인생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남들과 잘 비교할 수 없는 특이함을 가진 존재라는 것도.


저토록이나 사정이 잘 들어맞고 편리하며, 또 좋은 말만 해대는 연설은 은차티에게 묘한 경곗미을 더욱 불러 일으켰다. 달콤한 말로 그에게 갑작스럽게 접근하는 이들은 높은 확률로 사기꾼일 수 있었다.


사납고 또 날카로운 야성의 감각을 다져 온 은차티는 눈앞의 이들이 이해할 수 없고 또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알 수 없는 종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젊고 또 어린 전사는.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이 젊은 전사는 기어코 움직임을 시작했다. 조금의 여유나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허점을 찌르는 공격이었다.


갑작스럽게, 그가 제 자리에서 번쩍 도약을 하며 창을 높이 치켜 올렸다. 투창이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고, 홍인수는 도리어 올 게 왔다는 듯한 표정을 순간 지었다.


전장에서의 감각은 아주 중요하며 또한 생명을 살려줄 때조차 있는 좋은 친구였다. 그런 홍인수의 감각이, 눈앞의 흑인 사내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감지를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만큼은 풀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은차티가 움직이자마자, 홍인수 역시 대응을 위해 발을 박찼다.


*


짧은 대결은 금세 결과가 나왔다. 은차티와 홍인수. 소드마스터는 그 이름답게, 이번에는 짧은 단검을 사용했다. 총상을 입히자니 적당히 손대중을 하는 것이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익숙하게, 은차티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카운터를 날렸고, 약 두세 번의 점프를 사용하며 수 싸움을 벌이다가 손쉽게 제압을 했다. 간단하게 어깨의 관절을 빼는 정도로 날뛰는 은차티를 멈추게 만들었다. 물론 목에 가깝게 댄 나이프의 서늘한 날 역시도 필요했다.


정력이 넘치는 젊고, 활기찬 사냥꾼은 기어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와 대상에게 덤벼들었고, 자신의 온 힘을 부딪히고 나서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의지를 가졌다.


그러고도 이 젊은이를 납득시키고 이해시키는 데는 상당한 수고가 들었다.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점퍼 조직의 실체를 보여주고 나서야 그의 협조를 구하는데 성공을 했다. 의외로 다혈질처럼 보였던 전사는 순박한 구석이 있었고, 여행과 모험을 바라기까지 했던 그의 마음에 따라 점퍼 조직의 임무에 참여해보고자 하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급작스러운 만남의 마무리가 잘 이어졌고, 피를 보는 일 없이 대담이 끝났다.


이런 식으로, 민서는 재밍 영역을 활성화 시켜놓기 시작했다. 그의 능력의 변화에 따라, 영역 내에서 점프를 사용하는 점퍼가 그의 곁이 아닌 점퍼 조직의 요원들이 모여 있는 빌딩 내부로 이동하게 도약지를 맞추어 놓았고, 그곳에서 정해진 인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을 가졌다.


전 세계에 있는 점퍼들을 다 만나게 되는 것과 민서의 재머로서의 능력이 온전히 성장하는 것은 꼭 같은 순간에 일어나지만은 않는 일이었으나, 결국 비슷한 시점에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3월을 지나, 4월의 끝 무렵이 올 때 즈음 민서는 완벽하게 전 세계를 능력 범위 내에 두게 되었고, 조직에서 파악하고 있던 대략적인 현대의 점퍼들의 총 계와 비슷한 수가 조직과의 면담을 하게 되었다.


4월이 지났고,


5월이 오기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일이 벌어졌다.


점퍼 조직은 각국의 정부와 긴밀한 협력 관계 속에서 계획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공개했고, 세상에 그런 특수한 능력자들이 존재하며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공론화시켰다.


*


작가의말

다소 어수선할수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인물소개 23.06.12 25 0 -
공지 전자책을 내보았습니다. 22.12.17 83 0 -
102 작가의 말, 후기 +2 23.01.09 77 1 3쪽
101 96. (끝) 23.01.09 69 0 17쪽
100 95. 23.01.07 47 0 21쪽
» 94. 23.01.03 46 0 22쪽
98 93. 22.12.30 44 1 14쪽
97 92. 22.12.28 42 0 16쪽
96 91. 다시, 봄 22.12.26 39 1 14쪽
95 90. 22.12.23 42 1 16쪽
94 89. 22.12.23 48 0 16쪽
93 88. 22.12.21 39 0 20쪽
92 87. 22.12.20 39 0 17쪽
91 86. 22.12.17 58 0 19쪽
90 85. +2 22.12.14 56 1 15쪽
89 84. 22.12.12 44 1 23쪽
88 83. 22.12.09 50 1 16쪽
87 82. 22.12.08 50 0 11쪽
86 81. 22.12.07 48 1 13쪽
85 80. 22.12.07 51 1 16쪽
84 79. 22.12.07 42 1 14쪽
83 78. 22.12.04 43 1 21쪽
82 77. 22.12.03 48 0 13쪽
81 76. 22.12.02 55 0 30쪽
80 75. 22.12.02 43 0 12쪽
79 74. 22.12.01 40 0 13쪽
78 73. 22.11.29 49 0 22쪽
77 72. 22.11.28 45 0 18쪽
76 71. 22.11.25 53 0 23쪽
75 70. 22.11.25 48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