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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관과 귀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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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merfa..
작품등록일 :
2022.09.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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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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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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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에서(2)

비판과 지적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댓글을 환영합니다.




DUMMY

"건강에 나빠요."


유리창 반대편으로 여인의 흐릿한 실루엣이 보인다. 의자를 다시 한바퀴 돌리자 여자는 어느새 자기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책상에 걸터앉아 있다.

사내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질끈 묶은 머리칼과 얼굴의 주근깨, 그리고 몸에 붙는 가죽재킷은 항상 그랬듯 잘 어울렸다.


허나 무엇보다 그녀는 향기가 났다. 꽃 향기.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인장 옆에 있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꽃. 자극적이었다.


한모금 더 내뱉은 다음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뭐가?"


"건강에 나쁘다구요."


"그러니까 뭐가, 리즈. 건강에 나쁜게 한두개가 아니어야지. 딱딱한 의자? 기름 잔뜩낀 케밥? 특등 수사관의 성깔? 모래먼지 날리는 공기?"


여인이 빙그레 웃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사내의 손에 손을 뻗는다. 담배를 가로챈다.


"다 맞는 말이지만 우선 이거요."


한모금 정도 더 빨만큼 남아 있었다. 리즈가 그 마지막 한모금을 들이마셨다. 꽃 향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간만에 여유로워 보이네. 탈주자는 다 잡아족쳤나?"


"재판소에 넘겼어요. 내일 광장에서 처형한다나 뭐라나."


탈주자. 이른바 제국의 역린. 수도에선 변방의 사막 동네에서 사람이 얼마나 죽든 거지가 얼마나 굶는 모래먼지가 얼마나 날리든 상관하지 않는다. 허나 동쪽에서 도망오는 탈주자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했다.

리즈는 그런 핵심 사안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법을 알았다. 어쩌면 그녀라면 이 늪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탈주자가 대체 뭐길래 수도에서 그렇게 집착을 하는건지 모르겠군."


"저도 사람들이 떠들고다니는 정도밖에 몰라요."


"나는 사람들이 뭘 떠들고 다니는지도 잘 몰라. 보다시피-"


사내는 어깨를 으쓱인다.


"사람들은 나랑 잘 떠드는 편이 아니거든."


리즈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꺼리는 표정도 아니었고, 어줍잖은 위로를 해주려는 기색도 아니었다.


"동쪽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들 해요. 옛날옛적 일어났던 윈헴의 반란만큼이나 큰 반란이. 수많은 귀족들이 가담했대요. 실패했고, 곳곳으로 도망 중이죠. 이곳 사막 지역도 포함해서. 황제는 전국에 도망귀족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그리고 알렌이 항상 말하듯-"


"뭐라고 했더라. 황제는 수천개의 손을 가졌고, 우리는 그 중 하나이다?"


리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 말에 반대한다며."


"반대하고 *싶은*거죠. 수사관은 정의를 추구하지만 황제 개인이 언제나 정의를 추구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니 수사관은 황제의 손이 되어서는 안되죠."


"하지만 이미 그 손이 되어버렸군. 반대하고 싶지만, 반대하지는 못하겠다, 이런 뜻인가."


그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광장이 보인다. 광장에 배치된 단두대도. 지나가는 행인들이 단두대를 게걸스럽게 바라본다. 내일 있을 구경거리에 잔뜩 기대라도 하고 있는지.


"당신은요, 별일 없었나요?"


"술주정뱅이 코피 터트린거 말고?"


리즈가 싱긋 웃는다.


"네. 그거 말고요. 그건 봤잖아요."


"딱히 없어. 알다시피 이 건물에서 딱히 *별일*이 있는 수사관이 많지 않거든. 사실 없다시피하지."


"숨이라도 쉬었을거 아니에요."


"토르티야도 먹었지. 콩을 곁들어서. 소스가 다 떨어져서 놀랍도록 맛이 없더군. 이런 얘기를 듣고 싶나?"


"저희 집에 와서 받아가요, 소스. 땅콩 소스에요. 알러지만 없다면 꽤 맛있을걸요."


그녀를 잠시 바라본다. 리즈는 또한번 사내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딱히 특별한 감정이 담겨있지도 않다.

때때로 궁금했다. 왜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건지. 심심풀이 땅콩을 찾는건지, 아니면 동정이라도 하는건지. 혹은 무슨 숭고한 이유라도 있는건지.


굳이 입 밖으로 물어본적은 없다. 물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을 돌린다.


"아까 알렌이 말하길 키바라에서 지부장이 직접 온다고 하던데."


"아 그거요."


사내는 그녀의 시선에서 작은 아쉬움을 보았다. 이윽고 사라진다. 눈동자는 항상 그랬듯이 맑다. 리즈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입에 손등을 가져다댄다. 속삭이듯 말한다.


"사실 들은게 있어요."


"그것도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던건가?"


"아뇨, 이건 저 혼자만 아는거에요. 탈주자 찾는다고 돌아다니다가 들었어요. 조금 있다가 지부장이 오면...글쎄요, 저라면 일단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겠어요."


"왜, 눈 마주치면 발표라도 시키려나보지."


"비슷해요."


리즈가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하는 순간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몸을 일으켜 정문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들어오고 있다. 차려입은 정장. 짜증과 귀찮음으로 가득한 얼굴. 지부장이라는 작자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사내는 알 수 있었다. 그게 지부장이라는걸. 그냥 느낌으로.


"지부장은 마법사인가?"


"어떻게 알았어요?"


"저기 들어오고 있으니까."


앞쪽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조용해졌다. 술주정뱅이들과 꼴초들이 조용해질 수 있다니. 마법사는 사람들을 닥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건가. 그게 아니면 알량한 카리스마 덕분인가.


지부장이 주위를 슥 훑는다.


최근에 승진했대요.


옆에서 리즈가 들릴듯말듯 속삭인다.


그럴거 같더라.


맞아요. 지부장치고는 젊어보이죠.


아니, 나이 말고 표정이.


표정이 왜요?


꼭 세상이 지 따까리라도 되는 표정이잖아.


리즈는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여기가-"


지부장이 말한다.


"썩어빠진 사막에서도 가장 썩은내가 진동을 한다는 곳이군. 지독해."


지부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부여잡았다. 이 공간 자체는 좀 냄새가 지독하긴 하지. 커피와 담배의 조합이라는게 원래 그러니까.


하지만 썩은내라니. 사내는 동의하지 않았다. 썩은내라는건 썩을게 있어야 나는거야. 부패는 부가 있어야 발생하는거고. 이 동네에 대체 썩을게 뭐가 있을까. 잘난 귀족도, 잘나가는 상인도 없는 사막에서. 텅 비었는데.


지부장은 연설을 했다. 굳이 열심히 들을 정도로 의미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사람은 죽고, 비는 내리지 않고, 아이들은 굶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수사관에게 따질 내용이 아니라 신과 황제에게 따질 일이다.


"모두 너희의 탓이다."


사막에 흉년이 드는게 우리의 탓이라네요.


옆에서 리즈가 빈정거린다.


그보다는 비를 내리지 않는 신의 탓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사막에 유배지를 차린 전임 황제들의 탓이겠고.


"너희는 그저 제국의 녹을 훔치는 역겨운 기생충일 뿐이다. 심지어는 황제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탈주자 문제마저-"


지부장이 말을 이어나가는데 옆에 있던 보좌관이 지부장의 귀에 뭐라 속삭였다. 헛기침이 몇번 이어졌다. 지부장의 시선이 잠깐 리즈쪽을 향했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에게 지금까지의 무책임을 만회할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그러니까 이게 핵심이겠네. 사내는 리즈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눈을 피하면 된다는 건가.


정확해요.


"다른 지부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 중이고, 피해자는 대부분 어린 소녀들이다. 심지어는 귀족의 자제들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군. 황제께서도 대단히 심각하게 여기고 계신다."


낯선 상황이었다. 지난 몇년간 겪어본적이 없었다. 물론 사막 내에서 다른 부서로 지원을 가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단 한번도 사막을 넘어 다른 지부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없었다.


몇몇 수사관들이 눈을 빛냈다. 때로는 늪에 빠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구원자가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쇠락한 기차역에도 기차가 지나가기 마련이다. 나갈 수 있는 기차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특등 수사관 알렌이 침묵을 깼다.


"어느 지부입니까?"


지부장은 웃었다. 상대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안다는 것처럼. 그 기대를 깨트리는게 즐겁다는 것처럼.


"동부의 베일루스 지역이다."


리즈는 이미 예상했었는지 희미하게 비웃을 뿐이다. 알렌은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무식한 사내조차 무슨 의미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야망있는 자들은 이 사막을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연옥에서 탈출하고 싶다는건 천국에 가고 싶다는거지, 그 누구도 지옥에 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지부장의 시선을 피했다. 지부장의 웃음이 점차 무표정으로, 무표정은 점차 귀찮음과 짜증으로 변해간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건가?"


개고생인데 출세길도 아니잖아. 대체 누가 지옥으로 가는 여정에 *지원*을 하지?


"쓰레기 같은 년놈들이군. 그 누구도 제국과 황제폐하를 위해 한몸 바칠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 이건가. 그 정신머리로 수사관을 자처하다니."


모두가 기다릴 것이다. 멍청한 인간이 한명 정도는 있기를. 살다보면 보통 있곤 했다. 한명 정도는 반장이 되고 싶어했고, 한명 정도는 전투병이 되고 싶어했다. 그러면 구경꾼들은 박수를 쳤다.


그런 용기있는 자가 한명쯤 있는건 박수를 받기 때문이다. 단지 바보가 될뿐만 아니라 멋지다는 칭찬도 같이 듣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자원하는건 용기있는게 아니다. 멋지지도 않다. 그저 인생을 추락시킬 뿐이다. 아무도 박수쳐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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