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 펑크의 마나 먹는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가입일짜
작품등록일 :
2022.10.26 10:03
최근연재일 :
2022.11.30 20:16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489
추천수 :
238
글자수 :
156,232

작성
22.11.06 18:18
조회
78
추천
4
글자
11쪽

8화. 의뢰

DUMMY

데일이 열어준 출구는 안톤 진료소가 아닌 허름한 공터로 이어져 있었다.


‘그나저나 낮이 낮 같지가 않군.’


고개를 돌려 바라본 도시는 밤에 비해 분위기가 색다른 편이었다.

정오의 햇살이 먼지들과 어우러져 밝은 우중충함이라는 이중적 감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 빛은 하나의 선을 그어 사람들을 구분지었다.

음지의 인간들은 그늘진 건물 안쪽으로 숨어들었고 양지의 인간들은 바깥쪽의 일터로 내쫓기듯 걸어갔다.

공터에서 벗어난 이든은 후자의 인간들을 따라 걷다가 중앙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조그마한 단말기를 꺼내들었다.


삐빅

능숙한 솜씨로 버튼을 몇 번 두드리자 눈앞에 도시 전체의 약도가 펼쳐졌다.

이든은 자신이 헤매었던 낙후 지역을 기점으로 도시 전체를 훑어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크기는 상당했다. 낙후 지역은 세발의 피로 보일 정도로.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변방의 도시조차도 필요한 것은 거의 다 있었다.

거기에 지금 찾아가야 할 곳은 다른 도시 못지않게 구색을 갖춘 상태였다.


‘이 건물이라고 했었나?’


손가락을 좌우로 벌려 어소시에이션 이라 적힌 건물을 확대했다.

전체적인 외관은 다른 곳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그 역할은 남달랐다.

옛 길드처럼 구획의 전반적인 행정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계층들의 의뢰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든은 이곳에서 정식 계약을 맺을 생각이었다.


본래 신분이 없는 몸이었다면 그걸 만들기까지 음지에 발이 묶일 터였다.

하지만 이든에겐 흡수했던 자들의 신분과 르블랑이라는 모방 마법이 존재했다.

덕분에 시정부에 발을 걸칠 시도를 할 수 있게 됐다.

계약을 위한 진입 장벽이 높은 대신 연관되는 의뢰들 대부분이 제값을 할 터였다.


그리고 이쪽에서 쌓은 명성은 그늘진 곳의 불나방들을 더 쉽게 꼬이게 할 수 있었다.

시정부라고 해서 독립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진 않을 테니 알음알음으로 넘어가다 보면 음지의 이름난 놈들과도 엮일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 이보다 더한 진척도 가능할 터. 당연하게도 이든은 그런 방면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중앙 구획 근처에 내려 걸어가자 우중충한 무리들 대신 번듯한 자들만이 남게 되었다. 또한 멀끔하게 포장된 도로와 세련된 건물이 늘어갔고 그럴듯한 치안대까지 눈에 띄었다.

확실히 노후한 구획과는 구분되는 격차가 있어 보였다.


‘확실히 어느 시대나 중앙은 그럴 듯하네.’


이든은 주변을 곁눈질하며 가장 커다란 건물로 들어갔다.


지이잉


생체 스캐너를 통과한 뒤 몇 번의 검문을 거치고 안쪽으로 들어서자 나름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본관을 가득 채운 일자 테이블이 여러 칸막이로 구분지어져 있었고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좌측에 쏠려 있었다. 그리고 우측에 놓인 별도의 구획으로 다양한 행색의 사람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얇은 장검을 등에 꼽고 전신 슈트를 입은 여자라든가 우락부락한 몸을 비좁은 공간에 끼워넣고 있는 남자. 사자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한 수인들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과거의 모험가를 떠올리게 할만한 사람들이었다.


‘이 광경은 여전하구나.’


머나먼 세상에서 익숙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가슴이 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자신을 발견한 접수처 행정 서기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입구에서 생체 스캐너에 표시된 시민 코드를 봤던 모양이다.


그녀는 이 구역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을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손은 이미 테이블 밑의 버튼을 향해 있었는데 그 모습에 어떤 위화감도 없어 보였다.


“무슨 일로 왔지?”

“계약자 등록을 하려고 합니다. 관련 수속을 최대한 빨리 밟아주셨으면 하는데요.”

“신분증.”


그녀의 말에 단말기를 들어 버튼을 조작했다.

잠시 뒤 옆에 떠 있는 패널로 베레타의 얼굴과 각종 이력이 상세하게 표시되었다.

서기는 내역을 직접 입으로 읽어 내려갔다.


“베레타 테넌. 시민 코드는 F인가.”

“네.”


이든의 짧은 대답에 서기는 인상을 왈칵 구겼다.

시민 코드가 F라는 뜻은 카스트 최하위에 위치한 사람이란 뜻이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밑바닥에 구를 수밖에 없는 쓰레기. 그것이 베레타의 위치였다.


“범죄 경력은 절도에 상해 공갈 및 협박..”

“일단은 미수범입니다. 그리고 제 죄도 많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변명아닌 변명에 서기는 펜대를 손으로 꽉 쥐었다.

더 이상 말을 섞기도 싫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항목을 죄다 읽고 나서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흥. 그나마 자랑이란 게 살인 경력 하나 없는 거군. 어디 스캐빈저나 갱단이나 할 것이지 왜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어. 겨우 범죄경력 없는 거 가지고 등록을 할 생각이었나? 단순한 노역장을 찾는 거라면 바깥쪽 창구로 나가는 게 어때?”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도 이든은 차분히 말했다.


“거기에 한 줄만 추가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손에 그어진 마나흔을 앞으로 내보였다.

직원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얼굴을 짓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이거 진짜냐?”

“네. 얼마 전에 마력 각성을 해서 말이죠.”


서기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라.”


그녀는 서랍장을 뒤적거리더니 작은 막대기 같은 것을 내밀었다.


“측정해 봐라. 혹시라도 장난으로 그린 거면 즉시 연행될 줄 알아라.”

“그러도록 하죠.”


이든은 그녀가 준 막대기에 손을 얹고서 마력을 순환시켰다.

그러자 계측기의 숫자가 팽팽 돌아가더니 이내 문자를 띄워 올렸다.

그것을 본 직원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6..6계위.”


직원은 침을 꼴깍 삼키고서 헛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마음을 정돈한 것인지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마력 각성하신 지 얼마 안 된 겁니까?”

“네. 마나흔도 어젯밤에 새겨졌습니다.”

“세상에..”


총 8개의 체계 중 여섯 번째, 초계(超界)에 속하는 것이다.

마나를 깨달은 지 하루 만이라고 한다면 저런 반응도 당연하겠지.

적어도 마탑에 입문할 수 있을 정도의 레벨임에도 연방을 찾아와준 것이니 이쪽 입장에선 함부로 대할만한 입장이 아니게 되었다.


접수처 직원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자판을 두드려댔다.

그리고 잠시 뒤 간신히 입을 열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관할부서로 이동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구획으로 향하는 문을 직접 열어주었다.


“이쪽 길을 따라 쭉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머지 사항은 안쪽의 직원분께서 안내해주실 겁니다. 그리고.. 아까 있었던 일은 제발 잊어 주십시오. 관례상 그렇게 응대하는 거니까요.”

“아.. 예.”


이든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 또 다른 구획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갑작스레 접수처의 풍경이 사라지고 얕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통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 전체에 왜곡을 걸어 놨나?’


공간 전이와는 다른 인식을 굴절시키는 마법. 데일이 보여주었던 방황 결계보다도 고등급에 속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이 정도 규모의 인식 우회라니. 분명 상당히 많은 마나를 소모해야 할 터.

아마 하루를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5서클 마법사의 마나통을 모두 긁어내야 하겠지.


일개 도시의 기관이 그만큼 많은 마나를 비축하고 소모할 역량이 된다니. 세상의 변화가 절로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불빛을 따라 앞으로 향했다.

구조는 그다지 복잡하진 않았는지 몇 번을 꺾어 들어가자 곧 작은 문 하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앞쪽의 대기선을 밟자 슬라이드 도어가 자동으로 열렸다.

안쪽 공간은 생각보다 횡량했는데 작은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인 것이 전부였다.



“어서 오시지요.”


그리고 그곳에 흑발의 머리를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녀의 검은색 제복엔 메디 하퍼라는 전자 명찰이 달려 있었는데 이름조차 없던 접수처 직원과는 사뭇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이든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착석하기를 권유했다.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마법사님. 인력 관리부서의 메디 하퍼라고 합니다. 저희 직원의 불성실한 태도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베레타 테넌입니다. 굳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그녀는 이든이 자리에 착석하자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시니 다행이네요. 보고받기론 첫 각성만에 6계위 라고 하시던데 실력에 걸맞게 인품도 뛰어나시군요.”

“그렇습니까.”


저런 식의 아부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했기에 이든은 심드렁한 표정을 보였다.

그의 심경을 눈치챘는지 메디는 곧바로 작은 칩 하나를 꺼내들었다.


“사족이 길어졌군요. 필요하신 예비 라이센스라면 이미 처리해 드렸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정식으로 계약을 맺으려면 절차를 조금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절차 말입니까?”

“네. 마법사님들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지만 보유 마력량 만으론 실전의 유용성을 판단하기 힘들다 보니 말이죠.”

“어떻게 진행되죠?”

“원래라면 지정 의뢰 몇 개를 달성하는 방식입니다만..”


메디는 테이블 밑의 서류철을 빠르게 꺼내들더니 따로 선별하지도 않고 앞쪽에 내밀었다.


“뭐든지 형식대로 할 필요까지야 없겠죠. 그냥 원하시는 것 하나만 골라서 처리하는 걸로 끝내도 될 겁니다.”


스케빈저 때도 그렇고 데일 때도 그랬지만 마법사는 생각 이상의 입지를 지닌 모양이다.

굳이 없는 절차까지 만들어내 선심쓰는 척을 하고, 마력흔 하나로 태도를 손쉽게 뒤집어 댈 정도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가 문외한이다 보니 직접 몇 개를 선정해주셨으면 하는군요.”

“이해합니다. 그런 부분은 온전히 저희에게 맡겨 주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하시니 다행이군요.”


메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얘기를 진행했다.


“안 그래도 마침 마법사님께 적합한 의뢰가 몇 개 들어 와있던 참입니다.”


그녀는 마치 준비되어 있던 것 마냥 정확하게 파일들을 골라냈다.

그리고 색깔별로 출력된 의뢰서들을 이든 앞으로 밀어냈다.

주어진 내역을 읽어내려가고 있자니 메디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 의뢰로 진행하시겠습니까?”


여러 장의 의뢰서를 둘러보다 붉은색 종이에 눈을 돌렸다.

다른 것들에 비해 간략한 요약 사항만 적혀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평범한 것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이건 어떤 의뢰죠?”

“보시는 대로입니다. 계약자님에게 적합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물건이죠.”


적합하면서도 위험하다. 그 말은 곧 돌아오는 것 또한 상당하다는 뜻.


NOTICE.


작전 식별 코드:S-003

집행 우선도:F

의뢰인: 엔야 메르데인


세부 사항: 40번 구획 은닉처에 체류 중인 요인의 신변 보호.

관할 구역까지 신속하게 이송해줄 것을 요청한다.


이든은 간략 사항을 읽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의뢰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케인 펑크의 마나 먹는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화. 결전 22.11.30 48 0 9쪽
29 29화. T 22.11.29 37 1 9쪽
28 28화. 이변 22.11.28 46 1 9쪽
27 27화. 진입 22.11.26 47 1 11쪽
26 26화. 계약 22.11.25 49 1 11쪽
25 25화. 테스트 22.11.24 60 2 11쪽
24 24화. 제안 +1 22.11.23 63 3 12쪽
23 23화. 탐독 22.11.22 57 4 11쪽
22 22화. 약진 22.11.21 51 2 11쪽
21 21화. 전진 22.11.19 51 3 12쪽
20 20화. 진화 22.11.18 57 3 11쪽
19 19화. 결전 22.11.17 54 3 12쪽
18 18화. 전초전 22.11.16 58 4 11쪽
17 17화. 심부 +1 22.11.15 59 2 11쪽
16 16화. 소탕 22.11.14 53 4 12쪽
15 15화. 진입 22.11.13 58 5 12쪽
14 14화. 보급 +1 22.11.12 59 5 13쪽
13 13화. 새 의뢰 22.11.11 58 4 13쪽
12 12화. 정돈 22.11.10 65 6 12쪽
11 11화. 수령 22.11.09 74 5 13쪽
10 10화. 완료 22.11.08 74 4 11쪽
9 9화. 수행 22.11.07 79 4 13쪽
» 8화. 의뢰 22.11.06 79 4 11쪽
7 7화. 개선 22.11.05 82 5 13쪽
6 6화. 서클 22.11.04 96 4 12쪽
5 5화. 조각 22.11.03 115 4 12쪽
4 4화. 상처 치료 22.11.02 117 6 13쪽
3 3화.마족 +2 22.11.01 184 42 11쪽
2 2화. 마나 +2 22.11.01 204 45 12쪽
1 1회. 환생 +12 22.11.01 356 6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