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함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혼듸모영
작품등록일 :
2022.10.26 11:26
최근연재일 :
2022.11.30 10:42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82,370
추천수 :
3,251
글자수 :
170,904

작성
22.11.18 12:49
조회
2,441
추천
101
글자
10쪽

23화. 3군 사관(부사관)학교

DUMMY

1946년 5월 2일

북초등학교 해병대 사령부 회의실


박용만, 장동열 해군 대장, 김일호 중장, 국방부 장관 지청천, 그리고 3개 사단장이 모여 육, 해, 공군 및 해병대 장교 및 부사관 양성 시스템, 즉 사관학교 와 부사관학교 설립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4월 20일부터 열흘 동안 전국 각지에서 15,000명의 지원병이 모슬포 훈련소에 입소했고, 향후 매달 2만 명에서 3만 명이 추가로 입소할 예정이므로 이에 맞춰 이들을 지휘할 많은 초급 장교와 부사관 양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채용기준을 정하는 의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학력은 장교는 고등학교 부사관은 중학교 졸업 이상으로 기준을 정하였고, 각 부대에서 장교 및 부사관 추천과 본인의 희망하는 경우 지원서를 받기로 하였다.


2차 심사기준은 체력검정 통과로 정하였고, 3차는 국가관 및 안보관 면접, 4차는 구술면접에서 의사소통과 지휘 능력, 일관성 및 특이사항 확인 등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절대 지원 불가한 대상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자진 입대하여 장교 및 부사관으로 임관 후 군 복무한 자들로서, 설사 일본군에서 탈영하여 이를 반성하고 한국군에 입대하더라도 장교 및 부사관 지원 자격은 불허하기로 정하였다.


사관학교 1기생은 육군 300명, 해군. 공군. 해병대 각 50명 총 450명을 양성하고, 부사관은 그 두 배인 900명을 선출, 양성하기로 정하였다.


1946년 5월 10일

2차 지원병 수송 작전도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서울. 경기지역 현지 책임자인 장준하로부터 긴밀한 무선통신이 접수됐다.


VIP를 함께 보낸다는 전문이었다. 사령부와 임시정부에서도 보안상 정확히 누구인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음 날 제주항에 마라도함이 도착하고 하선하는 지원병들 사이에 VIP로 추정되는 인물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몽양 여운형이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조직되자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었고,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과 김원봉 모두 안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제주항에 지원병들을 마중 나왔던 김구, 김규식, 김원봉은 여운형의 등장에 깜짝 놀라며 반갑게 맞이 한다.


“아니 이게 누구야? 몽양 아니오? 이렇게 살아서 만날 줄이야”


네 사람은 제주도청 임시정부 회의실에 서로 마주 앉았다. 실로 한국 근현대사에 거두 4인이 모인 것이었다.


1946년 기준으로 김구는(1876년생, 71세) 김규식(1881년생, 66세)) 여운형(1886년생, 61세) 김원봉(1898년생, 49세)였으며 각기 나이 차이가 나지만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들이다.


이들은 술 한잔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독립운동이며 교도소 수감생활 등 수많은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밤을 넘기고 있다.


다음 날 여운형과 김원봉이 청년 10명을 대동하고 해병대 사령부로 찾아왔다.


사령부에는 박용만과 김일호 사령관이 있었고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였고 김원봉이 여운형 선생을 소개한다.


여운형이 갑자기 엎드려 큰 절을 하기에 두 사람은 깜짝 놀라면서


“아~니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일어나십시오”


“두 분이 뛰어난 활약상 덕택에 나라가 독립되는데 큰절 한번 하는 게 뭐 대수겠소? 정말 고맙소이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운형이

“오늘 바로 여기부터 찾아온 연유를 말씀드리겠소이다.”


“저기 뒤에 있는 청년들은 일본에서 유학 중 1943년 조선 청년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었습니다.”


“특히 고학력자여서 육군 장교 자원으로 뽑아갔고 주로 소모품 소대장으로 쓰려고 했죠. 예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군을 상대로 전쟁터로 가느니 목숨을 걸고 탈영하였고, 한 달 전 목선을 훔쳐 조선으로 들어와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제주로 가서 독립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도움을 요청하기에 여기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어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관학교 지원자를 모집한다고 하던데 이들도 지원할 기회를 줄 수 없겠습니까?”


김일호 사령관은 이들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자진 입대한 것도 아니므로 결격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보고 지원할 기회는 주기로 하였다.


뒤에 서 있는 청년 10명은 2년간 정식 군사교육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눈빛과 자세가 남달랐다.


지원서를 작성하게 한 후 각각 이름을 확인하던 중 박용만이 한 명의 이름을 보는 순간 시선을 멈췄다.


이름이 김익렬이었다. 모습을 보니 짐작되는 인물인 듯싶다. 노트북에 있는 파일을 찾아보고는 김익렬을 부른다.


“김익렬 자네 1919년 6월 5일생이지? 경남 하 동출신이고, 일본 고베 상업학교를 졸업한 것 맞나?”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습니까?”


“동기들 중에서 제일 농담을 잘한다면서? 지금도 그런가?”


옆에 있던 다른 청년들도 자신들만 알고 있는 사실을 질문하는 것에 놀란다.


“모두들 사관학교 지원서는 받아줄 테니 4차 시험까지 반드시 통과할 수 있도록 알겠나?”


“넷~ 알겠습니다.”


“선배님 저 김익렬이라는 친구는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제주 4.3 사태 초기에 제주에 주둔하던 9연대장이었네, 미군정과 친일 경찰들이 제주도민을 강경 진압하려 하자 일부 극좌익 세력들이 일으킨 소요이므로 민간인들 피해가 없도록 김익렬은 '선 선무, 후 토벌'이라는 진압 원칙을 내세웠지”


“그리고 김익렬은 유서를 써 남겨두고 한라산 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의 아지트로 올라갔고, 4월 28일 구억리초등학교에서 김달삼과 협상을 벌여 평화적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는데”


“경무부장(현 경찰청장) 조병옥,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제주지사 유해진, 제주경찰 감찰청장 최천이 참석해 열린 회의에서 조병옥이 김익렬에게 좌익이라고 매도하며 트집을 잡았고 조병옥에게 달려들어 주먹다짐을 하자 9연대장에서 해임당했지”


“결국 미군정장관 딘 소장이 강력 토벌 작전으로 방침을 결정함에 따라 제주 4.3은 걷잡을 수 없었고 현재 제주에서는 김익렬을 학살의 광기로부터 무고한 양민을 보호하려 했던 의인으로 평가받고 있지”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일호 사령관은

“김익렬이라는 저 친구 대단한 기개와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네요”


“자네가 잘 지켜봐 주게 앞으로 대한민국의 훌륭한 군인으로서 키워야 할 친구야”


이후 2주에 걸쳐 지원모집 공고와 현지 부대장들의 추천을 받아 장교 지원자 4,500명, 부사관 지원자 8천 명의 지원서를 접수했고, 1차 서류심사에서 장교와 부사관 각각 3천 명, 6천 명을 선정했다.


다시 체력검정에서 100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2,000m 달리기, 팔굽혀펴기 등으로 장교와 부사관 각각 1천 명, 2천 명을 선발했고, 3차~4차 면접에서 최종 450명, 900명을 합격시켰다.


이들은 이틀 후부터 4주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난의 장교와 부사관 양성교육에 들어갔다. 전술 기초, 공격과 방어 등 전투지휘능력, 소부대 전투기술, 독도법, 공수훈련 등을 실시하게 된다.


4주 후에는 각 병과별로 보병, 포병, 기갑, 통신 등 특기병과 별로 전문 교육 실시하며 국가관 확립 정훈교육 또한 집중 이수한다.


특히 박용만은 사관생도들을 대상으로 한 정훈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매주 후보생들을 대상으로 2시간씩 ppt를 이용하여 허심탄회하게 질문을 받으며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 교육과 이들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국민들의 경제적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사례와 이유를 사진과 통계로 보여주면서 그들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리고 장교는 군대의 기간인 만큼 절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며, 국가에 충성하되 자국민을 살해하도록 하는 부당한 지시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피력했다.


제일 앞자리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김익렬 후보생의 눈에서 수긍하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6주가 지나 모슬포 훈련소 연병장에서 임정 요원들과 미 군사고문단, OSS 도노반 소장,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기 3군사관 및 부사관 임관식이 거행되었다.


450명 장교 후보생 중에서 김익렬이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김구 주석이 직접 임명장과 계급장을 달아 주었고, 수석 졸업자는 일계급 특진으로 중위로 진급하였다.


김구 주석은 단상에 올라 축하 연설에서 우리 장교와 부사관들이 중심이 돼서 반드시 우리 힘으로 대한민국 독립을 쟁취하자고 강조하였고


김일호 사령관 또한 강한 군인정신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강조하며 임관을 축하했다.


이제 해병대 3개 사단 육군 2개 사단 등 총 5개 사단 편제가 완성되었고, 매달 2만 명의 지원병이 제주로 도착하면서 8월까지 총 3개 군단 총 12만 명 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OSS 도노반 소장과 김구 주석 및 박용만, 장동열, 김일호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OSS 도노반 소장은 워싱턴 트루먼 대통령과 합참에서도 한국군 양성에 많은 기대를 갖고 있으며, 본토 상륙작전을 위해 미국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김구 주석에게 전달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재선을 앞두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고, 상당히 초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말

[팩트 체크]

본 웹소설은 팩트를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 역사와 다소 다를 수 있다는 점 미리 알려 드리고요 [23. 3군 사관(부사관)학교]에서 기술한 인물과 지명 중 팩트, 역사적 사실 여부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정리해 놓았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이 구분해 놓습니다.

 

1. (인물) 몽양 여운형(1886~1947)

부유한 양반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906년 부친이 사망하자 집안의 노비를 모두 불러모아 노비문서를 모두 불태워 그들을 해방시켰다.

 

1919 4월 상해임시정부가 조직되자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싱가포르에서 인삼사업을 모색하다 1929 7 10일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는 혐의로 상하이 주재 일본영사관 경찰부에 체포되었다.

 

재판 결과 독립운동을 전개한 죄목으로 4년간 복역하였고 1933년 출옥하자 그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되었고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하지만 베를린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서 신문에 인쇄한 말소사건으로 1936년 신문이 일제에 의하여 폐간되자 사임한 후 1944년 비밀결사인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였다.

 

해방 후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극우파 한지근에 의하여 1947년 암살되었다.

 

2. (인물) 김익렬(1921~1988)

   1943년에 일본에 체류하던 유학생시절 강제입대로 예비육군사관학교를 다녔고, 해방후 1946 1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한 후에 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 1947 9월 제9연대장으로 부임하였다.

 

  제주 4.3 초기에 김익렬은 김달삼과의 담판에서 평화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으나. 강경 진압을 주장하는 경찰청장 조병옥에게 좌익이라고 매도당했다. 이 때문에 조병옥에게 달려들어 주먹다짐을 벌였고 5 6 9연대장에서 해임되고 만다.

 

  이후 육군 제8보병사단장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육군 제1군단장, 국방대학교 총장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였고, 자신의 회고록 ‘4.3의 진실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이는 1991 MBC에서 방송된 여명의 눈동자에서 김달삼과의 담판 장면이 방송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김익렬 중령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학살의 광기로부터 무고한 양민을 보호하려 했던 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라도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업로드 관련 안내드립니다. +1 22.11.03 2,277 0 -
33 33화. D-Day +13 22.11.30 2,296 55 10쪽
32 32화. 서대문 형무소 +14 22.11.29 2,047 45 10쪽
31 31화. 동계 물자를 생산하라 +12 22.11.28 2,102 47 10쪽
30 30화. 물자 보급기지 +27 22.11.26 2,351 115 10쪽
29 29화. 서해를 차단하라 +20 22.11.25 2,373 122 10쪽
28 28화.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22 22.11.24 2,460 117 10쪽
27 27화. 밀정 +26 22.11.23 2,458 112 10쪽
26 26화. 지휘관(First In Last Out) +22 22.11.22 2,475 112 9쪽
25 25화. 지휘관(항명사건) +27 22.11.21 2,531 111 10쪽
24 24화. 지폐 원판 회수작전 +10 22.11.19 2,542 108 10쪽
» 23화. 3군 사관(부사관)학교 +16 22.11.18 2,442 101 10쪽
22 22화. 지원병 수송작전 +14 22.11.17 2,463 94 10쪽
21 21화. 제주 4.3을 말하다. +14 22.11.16 2,480 96 10쪽
20 20화. 진급 및 휴가 +8 22.11.15 2,470 96 10쪽
19 19화. 만주국 일본육군군관학교 +7 22.11.14 2,485 99 10쪽
18 18화. 진압(친일 장교들) +12 22.11.12 2,542 98 10쪽
17 17화. 반란 +8 22.11.11 2,508 90 11쪽
16 16화. 아버지란 이름 +6 22.11.10 2,513 89 10쪽
15 15화. 친일파 재판 +10 22.11.09 2,530 85 10쪽
14 14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귀국 +8 22.11.08 2,365 92 10쪽
13 13화. 휴전협정 +10 22.11.07 2,311 80 14쪽
12 12화. 함정(포로교환) +12 22.11.06 2,320 82 14쪽
11 11화. 임시정부(김구) +12 22.11.05 2,321 83 13쪽
10 10화. 해안 7km +8 22.11.04 2,324 85 13쪽
9 09화. 조리병(K-푸드) +8 22.11.03 2,360 91 14쪽
8 08화. 훈련소(신병교육대) +6 22.11.02 2,407 94 15쪽
7 07화. 전우(전사자들) +10 22.11.02 2,384 91 12쪽
6 06화. 동굴 진지 +11 22.11.01 2,425 88 14쪽
5 05화. 모슬포(알뜨르)비행장 +13 22.11.01 2,502 9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