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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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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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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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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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6

DUMMY

카마인은 막사 밖으로 뛰어나갔다.

가정조차 하지 않았던 최악의 상황을 눈앞에서 맞닥뜨렸다.

머리에 난 뿔. 얼굴에 흐르는 혈흔. 까맣게 변한 피부. 온몸이 돌덩이처럼 갈라진 숲의 종족의 모습.


“단장님! 명령을!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한참 검을 휘두르는 노장이 외쳤다.

그의 온몸은 이미 피 칠갑이었으며 숨소리는 거칠기 그지없었다.


“단장님! 명령을···!”


숲의 종족이 마족화 하였다.

성기사단은 마기와 상극인 신성력을 다룸에도 밀리고 있었다.

이성을 잃고 두려움을 모르게 된 이종족들.

도대체 숲의 어디까지 마족화 됐는지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끊임없는 물량 공세가 이어졌다.


“모든 성기사는 듣거라-!”


카마인은 허리춤에서 검을 빼내 들었다.


“지금 당장 생존 인원을 파악하겠다. 큰 소리로 이름을 말하라!”


명령과 함께 파도처럼 몰려오는 마족화 군세를 향해 달려갔다.

은빛 신성력은 새까만 파도를 반으로 갈랐다.


“성기사 총 27명이 생존 중입니다!”

“견습사제의 위치와 수를 보고해라! 그들에게 무기를 주고 축복의 기도를 시작하라 알려라! 그리고 용사를. 용사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확인해라···!”

“들었지 말단 놈아! 당장 용사님을 모셔 와!”

“네! 알겠습니다!”


서걱.

어둠 속 붉은 눈이 사라지지 않는다.

숲 너머에서 검은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왔다.


“아아악! 제기랄-!”


우수했던 성기사 한 명이 파도에 휩쓸린 건 순식간이다.

그걸 눈여겨본 카마인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가셸!”


이종족의 시체를 치우고 밑에 깔린 하얀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는 이미 뇌수를 흘렸으며 눈에 초점이 없다.


“제기랄-!”


억울한 부하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또다시 몰려오는 인파에 진절머리내며 검을 휘둘렀다.


“너의 죽음은 나와 여신님이 기억할 거다!”


목에 걸린 이름표를 떼서 휴대용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몸을 놓고 또다시 몰려오는 검은 파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용사님은! 용사는 아직이냐!”


절망에 빠진 성기사가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용사가 나타나려면 진즉에 왔어야 했다. 그녀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카마인이 고함을 내질렀다.

야수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는 후회했다.

무리해서라도 숲을 들어갔어야 했다. 아니면 겁쟁이가 될지언정 원정을 포기했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닌 판단이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그들을 죽인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에 분노를 삭힐 수 없었다.


“단장님!”


퍽.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전황.

갑작스레 카미인의 몸이 밀쳐졌다.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뒤를 돌아보자 붉은 혈액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부단장···!”


부단장의 팔이 날아갔다. 잘린 어깨 밑으로 붉은 혈액이 기둥을 만들었다.


“이 이단자들이-!”


카마인은 검은 파도 너머를 노려봤다.

예비로 착용하고 있던 검을 빼내고 투창 자세로 던졌다.

엘프 저격수의 머리에 검이 적중하고. 신성력이 폭발하여 거대한 발리스타와 통째로 날려버렸다.


“단장··님······.”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카마인의 표정에 금이 갔다.

가시로 된 창은 부단장의 몸을 가시나무 마냥 여러 곳 꿰뚫었다.


“보고 받았습니다···. 아직··· 냇가에··· 용사가······.”

“라칸! 말하지 마라! 지금 바로 치유의 축복을 사용할 테니···!”

“단장님은··· 그런··· 거 젬병이잖아요···.”


카마인의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신성력을 아끼라는 듯 쥐고 있는 부단장의 손이, 더욱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가세요···. 용서가 걱정되잖아···요·····.”


눈동자가 빛을 잃고 장갑 위를 감싸던 손이 떨어졌다.

카마인은 목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의 두 눈을 감겼다.


“단장님 가시죠···.”


몸이 만신창이인 성기사가 말했다.


“단장님 가세요.”

“단장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카마인. 반드시 우리 중 두 사람만은 생존해야 하네.”


카마인은 몰려오는 군세 앞에서 벽을 만든 성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살아남아야 할 두 사람 중 한 명은 용사이며, 다른 한 명은 우리의 기사단장이리라.

이미 각오를 다진 그들의 눈빛은, 함께 죽음을 결심한 이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여신님이 너희를 갸륵하게 여기어······”

“그녀의 낙원에 함께하기를.”


카마인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먼 훗날에 낙원에서 다시 마주하기를.”


함께 축복의 말을 하고 그들은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카마인은 차마 그들을 말릴 수 없었으며, 함께 곁에 설 수도 없었다.

그는 부단장의 이름표와 바닥에 깔린 수많은 이름표를 움켜쥐고 땅을 박찼다.


“으아아아아-!”


달리는 동안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목 바깥으로 터져 나왔다.

카마인은 아직 숲 너머의 냇가에 있을. 또 다른 생존자를 향해 달려갔다.


“킨, 키드, 기드, 진, 질리언, 카론, 에이먼, 셀린, 사이먼!”


아직도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그들의 이름을 외웠다.


“알린, 슈라, 레진, 쉘, 스피언, 슬리건, 케인, 헥스, 라칸·····!


연병장에서 흙투성이로 굴렀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얼굴들.

뒷골목에서의 버릇을 고치지 못했던 때에도, 단장은 자신뿐이라고 말해준 이들이었다.


”용사. 용사···. 용사······. 용사······!“


갈라지는 목소리로 그녀를 칭하는 이름을 불렀다.

언제나 사람들이 칭송하는. 정의의 심판자라 의심치 않는 영웅의 칭호.


”어째서 너희는 항상······.“


-칼리언, 너도 언젠가 증조부처럼···


”어째서 항상 나의 것을 빼앗은 거냐!“


그래도 그는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물안개가 서서히 끼고 냇가가 어둠 너머에 비치던 그때였다.


-쐐액


화살이 그의 발치에 꽂혔다.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가쁜 호흡을 몰아쉰 채, 위를 올려다봤다.

수많은 엘프가 나무 위에서 녹색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하···.“


결국 끝이었다.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소망을. 어렸을 적이나 지금이나 이뤄진 적이 없었다.


”우리가 그대들의 아픔을 모른 척한 건가.“


카마인은 두 눈을 감았다.

숲의 종족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솔루트에게 있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숲의 종족에게 협상 조건으로 숲을 내놓으라고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노예가 되라고도 말했을 수도 있겠지.

조국을 향한 애정이 눈곱만큼도 없었기에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인간족만을 사람 취급하는 이기적인 나라.

지금 이 상황과 마주하게 된 것도 그동안의 업보가 분명했다.


-사박


풀과 흙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인영이 그림자 속에서 겁도 없이 다가왔다.

당연한 일이다.

상대는 기사단장이라도 한 명. 상처를 입었고 지리적 우위는 그들에게 있다.

엘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은빛 날붙이가 달빛을 한껏 머금었다.

카마인은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숲 앞에 이것을 둬줘라. 내 소중한 동료들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굳이 갖다 놔 줄 필요 없다.“


자신의 이름표가 달린 목줄을 끊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주머니 안에 담긴 동료의 이름표를 엘프에게 건네줬다.


”학살자여. 남길 말은 있느냐?“


여성치고는 상당히 낮은 목소리.

카마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없다.“

”알겠다.“


짧은 대답과 함께 단검이 그의 목으로 쇄도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깔끔한 움직임이 이뤄진 그때였다.


”멈추세요.“


-찰팍


물에 젖은 발소리와 함께 엘프의 움직임이 멈췄다.

카마인은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용사···.“


냇가의 자갈밭에서 달빛을 받는 성직자가 있었다.

물에 젖어서 물방울을 흘리는 머리카락, 물안개 속에서도 빛나는 푸른 눈동자.

그녀는 저번에 겪었던 일이 워낙 충격이었는지. 남성용 옷을 입은 채로 목욕 중이었다.

물에 젖은 셔츠에 딱 붙은 하얀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용사,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라.“


카마인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더 이상 나는 그대를 보호해 줄 수 없다.“


만약 이곳에 용사 모두가 왔더라면 상황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이곳에는 마족화 된 숲의 종족을 모두 물리칠 실력자가 없었다.


”우리는 전멸했다.“


카마인은 검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원정대는 전멸했다.

원정은 실패했다.

자만에 빠져서 위험을 알아채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를 구하는 것조차 그의 몫이 아니었다.


”엘프여 저 소녀는 우리와 상관없는 자이니,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란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성직자를 살리기 위해서 기사의 자존심마저 굽힌 그때였다.


”애처로운 모습이네요.“


카마인은 퍼뜩 눈을 떴다.

듣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거처럼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뭐··· 라고?“

”바솔루트 치고는 제법 좋은 호위를 붙여준 거 같아서 기쁘기도 하고요.“


성직자는 현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충격받은 카마인의 상태를 살피지 않았다.


”단장님은 저의 적인가요?“


그녀는 대신에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던지고 그의 의중을 파악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특


엘프 한 명이 납작한 쇠뭉치를 바닥에 던졌다.

그것은 난전 중에 찾지 못했던. 살아남지 못했을 정찰조의 이름표였다.


”열셋. 지금은 열. 대답은 빨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카마인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 이름표를 엘프가 가지고 있던 건지. 어째서 성직자가 이런 말을 하는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왜 엘프와 한패로 보이는 건지 말이다.


”아홉. 이 이상은 늦을 것 같네요. 대답은··· 조금 미루도록 하죠.“

”잠깐만, 기다려라! 대체 너는-“


-후욱


카마인이 그를 지나쳐 걷는 그녀에게 손을 뻗자, 바람이 그의 안면을 세게 때렸다.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는 냇가 옆에 있던 숲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라-!“


대신에 피비린내가 나는 전장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믿은 부하들을 사지로 내몬 그곳으로.


”큿. 용사-!“


숲의 악행이다.

숲이 그들을 이곳으로 보냈다.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서. 절망을 안겨주기 위해서. 지옥으로 그들을 내몬 게 분명했다.


”단장님! 어째서 다시 이곳에···!“


그나마 다행인 건 성기사가 아홉 명이 될 때까지 희생한 덕분에, 마족화 한 이종족의 수가 얼마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숲 어둠 너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안심해도 될 종류가 아니었다.

늦기 전에 현 위치를 벗어나야 했다.


”용사. 당장 여기서···!“


카마인이 성직자를 바라보며 외친 그때였다.

성직자는 수라장 속으로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블레이즈(blaze).“

”뭐?“


온 숲에 황금빛 알갱이가 떠올랐다.

이내 빛의 알갱이는 세밀하게 짜인 자수처럼 일제히 허공을 빛으로 엮었다.


”카악!“

”카아아아악!“

”키에에에에에엑!“


밤을 가로지르는 황금빛 신성력.

카마인은 쓰러지는 이종족을 보며 숨을 삼켰다.


”끄, 끝난 건가?“


한 성기사가 말했다.

상황은 종결됐다.

수많은 성기사가 희생해도 전멸을 피하지 못했을 상황이 역전됐다.


”용사. 너는 대체······.“


믿을 수 없는 힘을 보인 성직자가 천천히 카마인 쪽을 돌아보았다.

카마인은 이때 보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성직자의 신성력 깊이를. 소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냉혹한 눈빛을. 그리고 허벅지 위로 그려지는 한 문양의 형태를.


”위대한 열한 개의 날개···.“


위대한 팔라딘.

성직자의 허벅지 위로, 팔라딘의 징표인 열한 장의 날개와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외전편이니 후딱 끝내고 싶어서 많이 올리고 있습니다. 이야기 정리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었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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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5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5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4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6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7 0 20쪽
166 143화 십강 사무엘 24.02.28 9 0 12쪽
165 142화 십강[十强] 24.02.26 8 1 14쪽
164 141화 십강[十强] 24.02.23 7 0 21쪽
163 140화 십강[十强] 24.02.21 8 0 15쪽
162 139화 십강[十强] 24.02.19 7 0 17쪽
161 138화 십강[十强] 24.02.16 9 0 20쪽
160 137화 십강[十强] 24.02.14 7 0 15쪽
159 136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12 7 0 15쪽
158 135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05 10 0 18쪽
157 134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02 11 0 27쪽
156 133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31 8 0 21쪽
155 132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9 6 0 15쪽
154 131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6 6 0 15쪽
153 130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2 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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