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화랑이 무림을 정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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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이야기
작품등록일 :
2022.10.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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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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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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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 (3)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어진 허구입니다.




DUMMY

제갈진이 자리를 떠난 것을 확인한 노인은 더욱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 그래? 고려에서 왔다고?"


" 그렇습니다."


" 이곳은 아무런 배경 없이 처음으로 맹에 들어오려고 하는 이들을 관리하는 곳이네. 본래 같으면 자네 같은 세외의 인물은 신분과 실력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제갈진 소가주께서 보증하신다고 하니 그 절차는 넘어가도록 하지."


" ...감사합니다."

" 다음에 우연히라도 다시 보게 된다면 감사 인사를 해두게. 혹시 아는가? 그런 분과 닿은 연이 이어져 더 높은 곳으로 가게 될지 말이야."


말을 마친 노인은 천천히 걸어, 먼지가 굴러다니는 낡은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은 오랫동안 청소가 되지 않았는지 퀴퀴한 냄새마저 났다. 간단한 지필묵을 꺼낸 노인이 위민에게 다시 물었다.


" 여기서 간단한 장부만 정리하면 곧 끝나네. 자네의 사문은 어딘가?"


" ...고려에 있는 풍월문입니다."


" 풍월문이라... 무림맹에서 평생을 일한 나지만 처음 들어보는 문파군. 흠···. 이름은?"


" 이위민이라고 합니다."


" 위민(爲民)이라. 이름 하나는 거창하군. 혹시나 해서 묻네만, 무림에서 사용하는 별호는 있는가?"


별호가 있을 리 없는 위민이 입을 다물자, 노인은 예상했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 그럴 줄 알았네. 혹시 생각하고 있는 별호가 있으면 대충 말해 보시게. 어차피 사용될 일은 없겠지만, 그냥 요식적으로라도 기재는 해 놓아야 하니깐."


잠시 생각을 마친 위민은 이내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 화랑검(花郞劍)"


" 꽃 같은 남자의 검이라. 무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별호군. 뭐, 자네의 외모를 보니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하군."


말을 마친 노인은 그 외에도 이것저것을 묻고는 서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질문이 끝난 후 노인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 흠... 어디 보자. 자네는 백호단(白虎團) 사십구조에 들어가면 되겠군. 그곳 인원이 많이 부족하거든. 저기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악진이라는 자를 찾게. 그가 사십구조에 조장이니. 이 서찰을 건네주면 알아서 안내해 줄 것이네."


위민에게 서찰을 건넨 노인은 바쁜 일이 있다는 듯 급히 자리를 이동했다. 그의 머릿속에 고려에서 온 어린 무인에 관한 생각은 이미 사라진 것만 같았다. 가만히 서찰을 받아든 위민은 노인이 알려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위민은 무림맹에 들어와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을 보았다. 비좁은 전각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상처를 입은 이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또한, 그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개성이 넘쳤는데, 공통점이라고는 생기를 잃어버린 눈과 가슴에 부착된 하얀색 명찰뿐이었다.


' 이곳이 내가 지금까지 봐온 무림맹과 같은 곳이란 말인가? 열악하기 그지없군.'


위민의 등장에도 사람들은 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잠시 상황을 지켜본 위민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 악비라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 악비? 흠..."


" 사십구조에 조장이라고 들었습니다."


" 사십구조? 에잇 재수가 없으려니까. 저기 있는 전각 안으로 가 봐라. 그곳이야말로 죽음의 그림자가 물씬 풍기는 곳이니깐 단번에 찾을 수 있을 거다."


알 수 없는 말을 마친 사내는 정말로 재수가 없다는 듯 바닥에 가래를 걸쭉하게 뱉고 사라졌다.


' 죽음의 그림자라···. 재밌군.'


그렇게 사내가 알려준 전각 안으로 들어간 위민은 급히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피 냄새와 사람의 살이 썩어 가는 기분 나쁜 향이 전각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 윽.


코를 막고 주변을 살핀 위민의 눈에는 지독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사지가 멀쩡한 자는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고, 많은 이들이 홀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은 처절하기만 했다.


' 이게 사십구조인가?'


그때, 분주하게 움직이며 환자를 돌보는 이가 위민의 눈에 띄었다. 그는 한쪽 눈이 없는 애꾸였는데, 그 누구보다도 환자들의 상태를 유심히 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전각 안으로 들어온 위민을 보며 물었다.


" 누구시오?"


" 오늘부로 사십구조에 입맹하게 된 위민이라고 합니다."


" ... 운이 지지리도 없는 모양이군. 일단 반갑다. 내가 조장을 맡은 악진이라고 한다. 맨손으로 온 것은 아닐 테고?"


그제야 위민은 노인에게 받은 서찰을 악진에게 건넸다. 서찰을 잠시 살펴본 악진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 화랑검, 위민이라···.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별호군. 일단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곳 사정이 영 복잡하거든. 혹시 간단한 응급조치 할 수 있나?"


위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악진은 자신의 손에 있던 응급약들을 넘기며 말했다.


" 일단은 여기 이들부터 돕고 나서 이야기하지. 손이 부족하던 참인데 잘 됐군."


그렇게 위민은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고려에서 함께 다닌 청운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던 위민이었기에 간단한 처치는 쉽게 할 수 있었다.


' 상태가 심각하군. 적당히 내공을 불어 넣어서 숨통이라도 트이게 해야겠어.'


위민이 돌아다니며 상태가 위중한 자들에게 내공을 불어 넣자, 그들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멀리서 치료를 하던 악진도 그런 위민의 모습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내공을 불어 넣어 치료한다는 것은 악진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경지였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났을까. 많은 이들의 치료가 끝나고 위민이 한숨 돌릴 때, 악진이 그를 불러 세웠다.


" 오자마자 고생했군. 잠시 나가서 목 좀 축이고 오지."


" 네."


밖으로 나간 악진은 바닥에 대충 앉아 호리병 하나를 건넸다.


" 잘 마시겠습니다."


호리병을 들고 시원하게 들이키던 위민은 마신 모든 것을 그대로 뱉어내고 말았다.


- 컥


" 자네, 술은 처음인가?"


" ...콜록···.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술을 건네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 하하하하. 아직 애송이인가 보군. 지금 상황에는 술이 더 필요할 것 같아 건넨 것이니 노여워하지 말게. 그래, 우리 조에 편입되었다고?"


그제야 입가에 술을 닦은 위민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호리병을 들이켰다.


- 벌컥 벌컥


" 이제야 사내답군."


" 네. 오늘 입맹했습니다."


" 흠... 그런데 사십구조라니... 혹시 자네 누군가에게 밉보인 적 있는가?"


" 아니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 그런데도 우리 조에 편성되었다는 거지? 흠. 자네 사문은 어디인가?"


" 풍월문이라고 합니다."


" 풍월문? 무림 밥을 꽤 먹었지만 그런 문파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 저의 고향은 고려입니다. 들어보지 못하신 게 당연하지요."


위민의 답을 들은 악진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그렇군. 누군가에게 밉보인 것이 아니고 차별을 당한 것이었어."


"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니 미리 말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자네도 봤겠지만, 우리 조는 전투 수행이 불가능한 자들을 모아 둔 곳이라네. 대부분이 부상병으로 이루어져 있지."


" 그렇다면 다시는 전투에 나가지 않는 조라는 말씀이십니까?"


" ... 그렇지는 않다네."


" 그게 무슨...?"


" ...오히려 반드시 죽음이 필요한 곳에 투입되는 조라네."


그제야 악진의 말을 이해한 위민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굳었다.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소모품'


위민의 표정을 알아차린 악진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우리의 역할은 미끼 또는 화살받이라네. 그런데 자네처럼 사지육신이 멀쩡한 이를 이곳으로 보냈으니 차별을 받았다고 이야기 한 것이네."


"..."


" 혹, 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가게. 내가 다시 잘 말해 보겠네. 오늘 정말 고마웠네."


악진은 눈앞의 소년이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 어떤 사람이 화살받이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싶단 말인가. 하지만 위민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 남겠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흠... 그래. 자네 뜻이 그렇다면. 그리고 말은 편하게 하게. 내가 생각보다 많이 어리네.“


악진이 하나 남은 눈으로 찡긋거리자 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알겠어."


" ... 빨라서 좋군. 일단 머물 곳을 알려주지. 나를 따라오게."


악진은 위민이 지낼 수 있는 숙소를 안내했다. 같은 무림맹이었지만, 그 크기와 상태는 지난밤 제갈진이 제공한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방문을 열자 깜짝 놀란 쥐들이 정신없이 도망가기에 바빴다. 작은 침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방으로 들어간 악진이 말했다.


" 상태는 이렇지만 우리 사이에서는 엄청 귀한 독방이네. 흠흠. 이 방의 주인은 지난번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했으니 여기에 있는 짐 중 필요한 것은 편하게 써도 되네."


" ...고맙군."


" 혹시 또 궁금한 것 있는가?"


" 내가 청색 명찰을 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뭐가 있지?"


위민의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던 악진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청색이라... 이거 놀라운 질문이군. 뭐, 좋아. 그런 희망이라도 있으면 없는 그것보다야 낫겠지. 일단은 가장 쉬운 방법은···."


" 쉬운 방법은?"


" 다시 태어나는 거야. 오대 세가의 일원이든, 구파일방의 제자든."


" ...다른 방법은."


" 상위 명찰을 가진 무인과 대련을 해서 세 번 이기는 거지. 하지만, 청색까지 가려면 적색과 황색을 거쳐야 하니 최소한 9번 대련하면 되겠군."


" 그 대련은 바로 할 수 있어?"


" 그게 문제야. 대련은 일 년에 정해진 기간에만 가능하거든. 그마저도 긴급한 전투가 있다면 취소되는 경우가 대다수고."


악진의 설명을 들은 위민의 표정은 급격하게 실망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이렇게 된다면 내 힘으로 고려와 화랑의 힘을 알리겠다는 계획이 무산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 다른 방법은 없어?"


"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해."


" 그게 뭐야?"


" 당연히 공을 세우는 거지."


" 구체적으로 어떤 공을 세워야 하는 거지?"


" 무림맹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혈천문도 우리와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어. 부르는 호칭이야 조금씩 다르지만."


" 그럼?"


" 맞아. 아마 거기 대주나 부대주 정도의 목을 가지고 온다면 고속 승진도 가능하겠지. 물론 우리 같은 이에게 잡혀줄 거물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 ...그렇군."


"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런 식으로 한 번에 청색 명찰을 단 이는 무림맹 역사의 한 명도 없으니깐 꿈도 꾸지 말아. 괜히 그러다가 제 명에 못 살 테니."


하지만 조만간 벌어지는 사건으로 무림맹의 역사는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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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남궁세가 구출 작전 (4) 23.02.09 8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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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남궁세가 구출 작전 (2) 23.02.03 9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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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위민, 무림으로 향하다 (2) +1 23.01.18 9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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