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헌터는 C급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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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성
작품등록일 :
2022.10.26 23:54
최근연재일 :
2022.11.3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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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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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같이 갈래요?

DUMMY

여성이 자신의 검을 다시 장비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목소리가 들릴 거리가 되자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얼굴이다.

그리고 한 명이 아니다.

그녀의 뒤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정장 차림으로 존재했다.


게이트 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녀가 입은 갑옷이 아니었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누구지.’


이현이 경계를 풀지 않으며 바라보는 그때,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


말을 하려다 말고 그녀가 멈추고 옆의 노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허리를 숙여 그녀와 키를 맞추며 정중하게 듣고 있던 그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현에게 똑바로 걸어온다.


뚜벅-


노인의 구두가 신전의 돌바닥과 부딪혀 절도 있는 소리를 냈다.

이현과 대치하자 품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꺼낸 손에 들려있는 것은 작은 케이스였다.

그것을 공손하게 이현에게 내밀었다.


받아든 케이스를 열자 이어폰을 연상케 하는 물건이 들어있었다.


스윽-


노인이 말을 하지 않고 몸짓으로 표현했다.

케이스를 가리킨 후 귀를 가리킨다.


‘귀에 끼라는 건가.’


노인이 준 물건에서 마나가 느껴진다거나 특이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어폰을 귀에 밀어 넣자 드디어 노인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들리십니까?”


“와앗!”


함께 물건을 착용한 정윤이 깜짝 놀란다.


‘통역기였나보군.’


이현이 물건의 정체를 파악했다.

어렴풋이 낮은 음색의 외국말이 같이 들린다.

용건이 끝나자 여성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언어가 통하지 않다 보니 초면에 실례했네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다.

따뜻한 미소를 짓는 여성에게 이현이 대꾸했다.


“누구시죠.”


게이트 안이다.

헌터로 보이긴 해도 적인지 아군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현의 물음에 여성이 급하게 답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헌터인 밀리나 에케르트입니다. 반가워요.”


“어, 엇? 외국인······?”


반 박자 늦게 반응한 정윤이 옆에서 소리쳤다.

같은 게이트 안에서 다른 헌터는 많이 만나 봤지만, 외국인은 처음이다.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생긴 게이트 아닌가.


“혹시 그쪽은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그냥 C급 헌터입니다. 이쪽은 제 파티원이고.”


처음 보는 이에게 굳이 신상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적당히 둘러대자 밀리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빙긋 웃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먼저 레이드 중이셨던 것 같은데 저희가 함께······.”


“괜찮습니다.”


“······.”


칼 같이 거절당하자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쓸데없이 짐을 늘릴 필요는 없지.’


어차피 이런 C급 게이트 따위, 마음만 먹으면 이현 혼자서도 클리어 가능하다.

마음 같아서는 B급 게이트에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헌터 등급이 낮았기에 출입을 통제당했다.


그렇다면 정윤의 등급을 올려서 그녀와 함께 들어가는 수밖에.

한시라도 그녀를 더 굴려서 실력 있는 B급 이상의 헌터로 만들어야 한다.


“아, 음······.”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는지 밀리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노집사, 세바스찬이 나섰다.


“밀리나 아가씨께선 A급 헌터십니다. 동행하시면 여러분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A급?!”


옆에서 듣고 있던 정윤이 펄쩍 뛰었다.


“A급이래요! 저, 저 실제로는 처음 보는데! 와아······!”


떨리는 목소리에서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럴 만도 하다.


S급 헌터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게다가 종말의 시대를 겪고 나서 거의 모든 S급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다.

남아있는 S급 헌터는 이미 늙거나 병들어서 은퇴한 이들이 대다수.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남은 것이 A급 헌터들.

현실적으로 그들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


그런 A급 헌터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떨리지 않을 수가······!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어······?”


방금 뭐라고?


“가자.”


“자, 자, 잠깐만요!”


꽈악-


그대로 돌아서 가려는 이현의 옷자락을 정윤이 붙잡았다.


“즈금 므흐스는 그으여······.”


정윤이 이를 꽉 물며 밀리나 쪽에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안 놔?”


A급 헌터가 정윤에겐 하늘같이 보일지 몰라도 이현에게는 그 의미가 달랐다.

같은 S급 헌터들조차 경외심을 품었던 나다.

이미 정점을 찍었던 본인에게 A급이든 D급이든 똑같은 헌터일 뿐이다.

침팬지냐 고릴라냐 그 정도 차이인데.


“A급이라고요! 무려 A급! 그런 사람이 파티를 요청했다고요! 저희 쪽에서 엎드려서 부탁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게······.’


얘가 사람 속을 긁을 줄도 아네.

누가 누구한테 엎드려?


‘그냥 확 밝혀버릴까.’


사실 내가 S급 헌터였단다.


그렇게 말해봐야 씨알도 안 먹히겠지.

믿어주는 건 고사하고 정신병원 가보라는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레이드 뛰는 목적을 생각해. 네 사심이나 채우려고 여기 들어온 줄 알아?”


“으······.”


이마에 튀어 오르는 힘줄을 누르며 이현이 대답했다.


“C급으로 승급하는 게 우선이다. 이런 거에 혹할 시간 있으면 몬스터 한 마리를 더 잡아.”


“이, 이런 거라니······.”


A급 헌터와 만난 상황을 ‘이런 거’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이 남자밖에 없을 거다.


만년 D급이던 정윤이었으나 이현 덕분에 게이트 실적이 꽤 쌓였다.

현재는 C급 승급을 앞두고 있는 상황.


이 기세를 몰아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게 더 많은 전투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

저 A급 헌터가 골렘을 상대로 무쌍을 찍어버리면 정윤이 나설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이현이 다시 밀리나에게로 향했다.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너도.”


귀에 착용한 통역기를 가리키며 정윤에게 말했다.

울상이 된 그녀가 마지못해 손을 움직인다.


그러나 미련이 남는지 그녀가 이현에게 달라붙었다.


“그,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


후욱-


바람이 인다.

정윤의 시야에 가득 들어차는 금빛의 섬광.

그와 함께 검은색 신영이 함께 휘날린다.


카앙!!!


카각!!!


곧이어 두 개의 충돌음이 고막을 강타한다.

눈 깜빡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히끅!”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상황에 정윤이 딸꾹질했다.

눈을 돌리자 그제야 보이는 모습.


자신의 옆으로 나란히 검과 단검을 빼든 이현과 밀리나가 있었다.


정윤의 등 뒤에서 날아온 암석을 이현과 동시에 쳐낸 밀리나가 웃으며 말했다.


“잠시 같이 움직여야 할 거 같은데요?”


“······.”


하여튼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



스걱-!


“—————!’


레이피어를 연상시키는 얇은 검이 골렘의 핵을 가르고 지나간다.


쿠웅! 쿵!


눈가에서 점등하던 골렘의 눈이 서서히 꺼진다.

힘없이 돌덩어리들이 내려앉으며 작은 운무를 뿌린다.


“후우.”


순식간에 골렘 한 구를 처리한 밀리나가 검을 한 차례 털었다.


유진철 회장과 면담을 나눈 후 그녀는 헌터 협회로부터 타 게이트 출입을 허가받았다.

요청받은 A급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개인적으로 레이드를 뛰겠다는 것.


다른 게이트를 클리어하면서 몸을 깨우고 전투 감각을 되새기겠다는 의도였다.

겸사겸사 게이트 수를 줄이는 일이니, 한국에도 도움이 될 터.


그렇게 자신의 집사 세바스찬과 함께 들어온 C급 게이트였다.

낮은 수준이니 가볍게 무장한 채 입장했는데 이미 한 파티가 들어와 있었다.


인원은 남성과 여성 2명.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작은 체구의 여성이 골렘에게 쫓기고 있고, 건장한 남성은 그저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같은 파티 맞나?


가만히 놔두면 여성이 위험할 것 같아 발 빠르게 골렘을 처치해주었다.

다만 간과한 것은 그녀가 무너지는 골렘의 잔재에서 피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것.


다행히도 남성이 구출해주면서 마무리되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그에게 다가가 함께 움직일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거절당했다.


‘혹시 무슨 실례를 저지른 건가?’


자랑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A급 헌터다.

나름대로 거기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 자신을 대하면서 표정 변화가 없다.

오히려 귀찮음마저 느껴진다.

C급 헌터에게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지금!”


“어스 브레이크!”


콰광!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여성이 마법으로 골렘의 핵을 부순 뒤였다.

꽤 날렵한 움직임을 보이길래 자신과 같은 검사 클래스인 줄 알았는데 마법사 클래스였나.


“아직도 늦어. 내가 얘기하기 전에 스스로 판단해.”


“네에엡.”


“그 말투는 뭐지?”


투닥투닥하는 소음이 밀리나의 귓가를 자극했다.

풋, 하고 그녀가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아뇨, 그냥······.”


저도 모르게 웃은 모양이었다.

곧바로 저쪽의 일행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린 세바스찬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좀 전의 일은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먼저 움직였어야 했는데.”


“음?”


갑작스러운 사과.

그러나 방금 전, 여성에게 날아온 공격을 이야기한 것임을 알아차린 밀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먼저랄 게 있나요.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죠.”


어두운 시야 속에서 가해진 공격이다.

A급 헌터인 그녀는 돌덩어리가 정윤과 충돌하기 직전, 초인적인 움직임으로 그에 반응했다.

단 1초라도 늦었다면 위험했을 상황.


“그런데 저 남자분, C급 헌터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타이밍에 암석을 쳐냈다.


‘아니, 분명······.’


그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그 말은 자신보다 더 빠르게 반응했다는 소리.

심지어 그는 여성과 함께 등을 돌린 채였다.

마주 보고 있던 그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각도였는데.


“그가 스킬을 썼던가요? 미리 움직이고 있었다든가.”


탐지 스킬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물음에 세바스찬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네?”


“부끄럽지만, 저분이 아가씨와 함께 움직인 모습만 확인했습니다.”


그럴 리가.

그의 집사는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현역 시절 A급 헌터로 활동했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집사 업무뿐만 아니라 게이트에도 함께 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고작 C급 헌터의 움직임을 놓쳤다고?


결론은 하나다.


“C급 헌터라는 게 거짓말이라는 거군요.”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늙은이의 착각일 겁니다.”


세바스찬이 공손히 답했다.


‘착각······.’


어릴 적부터 봐온 가족 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런 실수를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심한 듯 밀리나가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저 C급 헌터.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녀는 멈칫했다.


“······뭡니까?”


“······.”


이현은 정윤에게 포션을 먹이는 중이었다.

탈진한 그녀의 입에 링거 바늘을 꽂듯 포션을 주입하는 모습에서 미약한 광기마저 느껴졌다.

애써 그 광경을 무시하며 밀리나가 입을 뗐다.


“혹시······.”


쿠구궁-!


거대한 진동이 공간을 뒤흔든다.

신전의 바닥이 뒤틀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밀리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위로 태산 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녀의 금발이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반파되는 신전 안에서 돌가루 섞인 안개가 퍼진다.

신전 돌기둥에 꽂힌 횃불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일렁이는 공간 속에서 번뜩이는 안광.


‘보스 등장이구만.”


아까의 골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마치 작은 산과도 같다.

천장을 부술 듯 공간을 가득 메우는 암석의 육체.

흑색의 몸뚱이 위로 푸른 빛을 내는 광석이 조각조각 박힌 채 마나를 뿜어냈다.


“———— ——!!!’


이현의 판단이 끝나기 무섭게 골렘이 기세를 뿜어냈다.

성대가 없어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살갗을 때리는 위력이 느껴진다.


골렘의 눈이 밀리나를 포착했다.

집채만 한 주먹이 그녀를 깔아뭉개기 위해 날아든다.


“으읍?! 으븝! 으그읍!!!”


밀리나를 바라본 채 정윤이 괴성을 지른다.

포션 병이 입에 물려 있어 발음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철컥-


“으븝?”


밀리나가 검집을 닫았다.

아니, 검을 뽑아야지 왜 다시 집어넣는······.


스륵-


쿠웅!!!


정윤의 의문이 풀리기도 채 전에 골렘의 팔이 떨어진다.

이어서 들려오는 굉음.


콰앙!!! 쾅!!!


“······?!”


잘게 조각난 골렘의 몸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처럼 내린다.


정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초 전이다.

방금 막 등장한 보스 몬스터의 등장이다.

그런데 쓰러지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이야.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밀리나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앞에 선다.


철그럭-


그녀의 검집이 갑옷과 맞닿으며 흔들렸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였다.


“그쪽.”


밀리나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까 하지 못한 말.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정식으로 제안하죠. 이번에 열린 A급 게이트에 참전할 생각 없나요?”


그녀가 녹옥빛의 눈을 투명하게 빛내며 이현에게 물어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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