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축복받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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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오
작품등록일 :
2022.10.2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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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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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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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

DUMMY

웅성웅성.


침대에 누워서 즐겁게 한낮의 심장 박동을 즐기고 있자니, 이 마을에서는 있을 리 없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도 없고 몬스터도 없는 이 마을에서 나오는 소음은 소, 개, 닭 등의 울음소리가 전부였고 사람이 떠드는 소리는 여지껏 듣지도 못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슬며시 창문을 열자 동시에 고성이 들려왔다.


"아! 글쎄 문 열라니까!"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웬 부랑인들이 문을 사이에 놓고 이 집의 하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선약도 없이 방문하신 것 같은데, 신원보증이 되지 않는 분들을 저택에 들일 순 없습니다."


집사인 니콜이 대표해서 이야기를 건넸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상대였다.


"그 말은 벌써 몇 번이나 들었다고 했잖아. 이 자식아! 어서 문 안 열어?"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대. 광인은 지하철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방문하신 연유도 모르는데 어찌 무장한 사람을 집안으로 들이겠습니까? 칼이라도 놓고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보자, 확실히 문밖에 있는 모두 허리춤에 칼을 한 자루씩 차고 있었다.


"호오. 끝까지 안 연다 이거지? 야! 넘어!"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지금까지 주절거리던 미친놈이 외치자 동시에 모두가 함께 문에 매달려서 넘어오려 했다.


그나저나 거적때기 같은 옷 입고 문에 달라붙으니 추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위험한 상황인 거 아니야?


"무슨 일입니까?"


하인들이 미친 인간들의 미친 행동에 당황하는 사이, 레이네도 소란을 눈치채고서 저택에서 나왔다. 레이네를 발견한 괴인들은 이도 저도 못한 채 문에 매미처럼 매달려 있었다.


"야. 주인도 왔잖아. 문 열어."


아까부터 말이 많았던 가운데 인물이 가장 순발력 좋게 문을 내려가 하인에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하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레이네에게 향했다.


"열어주세요."


끼이이이익.


철문이 둔탁하게 열리자 매달린 부랑자들은 전부 땅에 내려와, 그들의 칼자루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히이이익!"


"다들 물러나세요. 아무래도 말로 해결할 상대가 아닌 것 같군요."


레이네가 이야기하자 하인들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칼을 뽑아 든 칼잡이들은 열리다 만 문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레이네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우선 물어보겠습니다.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런 걸 우리가 말해줄 리가 없잖아~!"


와. 완전 싸구려 대사.


"그런 것 치고는 입이 많이 가벼우신데요. 뭐 좋습니다. 말이 안 통하면 실력행사를 하는 수밖에 없네요."


"네년이 아무리 기사 출신이었대도 아홉 명이나 상대하진 못할 거다!"


그 말대로 1:9는 무리인 게 아닐까?


보는 사람은 걱정이 되어 죽겠는데, 오히려 레이네의 태도는 담담했다.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 들었다. 칼의 날카로운 검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번쩍... 이지 않고?


뭐야. 목검?! 지금 목검 가지고 상대하려고 하는 거야?


"이 년이 돌았나? 가자 얘들아!"


한가운데 있는 남자의 구령을 신호로 칼을 꺼내든 남자들이 일제히 레이네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남자가 양손으로 칼을 내려치는 것을 본 레이네는 반 걸음 정도 뒤로 빠져 피하면서,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오른손으로 그 남자의 턱을 강하게 후려쳤다.


계속해서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남자의 뒤에서 재차 휘둘러지는 칼날을 밟고선 목검으로 머리를 쳐서 한 명, 칼을 찌르고 들어오는 팔을 잡아당긴 후 뒤통수를 내리쳐서 한 명, 다가오기도 전에 목검으로 머리를 내려쳐 한 명, 네 명을 순식간에 땅에 처박아 놓자 상대도 당황했는지 더 이상 달려들지 않고 있었다.


"괴... 괴물 아냐?"


"진정해! 한명씩 달려드니까 그런 거야! 아직 다섯 명이나 있으니 한 번에 달려들면 된다고! 모여있지 말고 떨어져서 한 번에 치고 들어가자고! 셋 셀 테니까."


얼씨구, 작전을 상대 앞에서 다 설명해주고 있다.


레이네 역시 작전을 다 듣고 당해주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상대가 공격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먼저 공격해 나갔다. 들고 있던 목검으로 칼을 쳐내곤 상대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사람이 날아간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 거야?


진귀한 광경에 눈이 쏠려 있는 사이 레이네는 어느새 다른 남자의 뒤로 돌아가 목을 조르고 있었고, 나머지 세 명은 혼비백산 문밖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상황이 정리된 듯싶어서 나가보니 멀리선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여기저기 피가 튀어있었다. 쓰러진 남자들도 상처가 심한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역시 불살 같은 건 만화에서나 나오는 소리구나···


"레이네, 괜찮아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레이네의 안부를 물었는데, 역시나 레이네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긴, 다칠 리가 없지. 칼이 스치지도 못했는데.


"뭐 하러 나왔어요. 위험할 수도 있는데."


"상황이 정리된 듯해서요. 그나저나 레이네는 대단하네요. 혼자서 칼 든 남자들을 이렇게 많이 때려눕히고."


"때려눕히다뇨. 듣기 안 좋네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칼만 들었지, 훈련받은 적 없는 초보들이에요.”


초보들을 전력으로 구타하는 기사···


“힘 조절을 잘못해서 죽지 않았나 확인해봤는데,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네요."


아, 전력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그 사람들은 다 뭐 하는 사람이에요?"


"저도 모르겠는데요. 지금부터 물어보려고요."


그리곤 상대적으로 가장 멀쩡해 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양 뺨을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저러다 진짜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으... 살려줘..."


"일어났나 보군요. 자,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마... 말할게요... 다 말할 테니 목숨만은..."


멱살을 잡은 상태로 저런 대사라니, 오히려 레이네가 악역 같지 않아?


"일단, 뭐 하러 온 거죠?"


"현상수배서, 현상금이 붙어서 그걸 받으려고 왔어요."


"현상금? 왕국 기사 상대로 그런 건 의미 없을 텐데요. 누구의 이름으로?"


"국왕 폐하의 직인이 찍혀있었어요..."


왕이 자기 부하를 잡으라고 현상금을 걸어?


"그럴 리가 없다. 왕이 신하에게 현상금을 걸다니."


"난 몰라... 요. 폐하의 직인이 맞다고 확인도 해줬는걸요. 그리고."


"그리고?"


"금발의 여자애도 같이 잡아 오라고..."


금발의 여자애라니?


남자의 시선이 레이네 어깨 너머 뒤편, 그러니까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레이네의 시선도 같이 집중 되었다.


아. 나?


"그래요. 믿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치죠. 그럼 제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왔죠?"


"일행 중에 여기에 살던 놈이 하나 있어요. 그놈이 이름을 보곤 여기에 있을 거라고..."


이름만 보고도 어디 출신인지 알 정도로 유명한 거야?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한테 더 덤빌 생각이 있나요?"


"어... 없습니다! 돌아가서 평범하게 살겠습니다!"


"그럼 일행 데리고 돌아가세요. 자비는 한 번뿐입니다."


"네... 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황급히 도망갔다.


다른 남자들도 비슷한 절차를 거치고 마찬가지로 전부 도망간 후, 레이네는 나에게 왔다.


"미라..."


"괜찮아요? 그... 현상금이라니."


"이걸 볼래요?"


레이네가 내민 것은 방금 남자 중 한 명으로부터 받아낸 종이 쪼가리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 이름과 레이네의 이름 -레이네와의 공부로 글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동화책 정도는 문제 없이- 그리고 도저히 레이네를 그린 것이 맞는지 알아차릴 수 없는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초상화 밑에는 우리의 외모에 대한 설명 -특이한 점이라면 금발, 그러니까 나를 잡되 상처 하나 없이 잡아 오란 희한한 요구가 적혀있었다- 과 함께, 잡아 왔을 때 받을 포상의 목록이 쓰여 있었다.


작위, 영지, 금화, 보석, 말 등 상상하기 힘든 양의 재물이 우리에게 걸려 있었고 그 밑에는 미드리치 국왕의 도장이 함께 찍혀있었다.


"그 국왕 폐하가 우리한테 현상금을 건 거에요?"


설마 우리 통수를 친 거야? 다 자기 계획이었다면서!


"아뇨. 이건 프라스예 폐하의 직인이 아니에요. 뭔가가 잘못됐어요. 그래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국왕을 사칭하다니 대역죄입니다."


"저를 알고 있는 사람이면 몇 명 안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네요. 미라한테 원한을 가질만한 인물이라면..."


아마 레이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토타크 그 자식이..!"


레이네는 수배서를 돌돌 말아 바지에 챙기고 이야기했다.


"궁전으로 돌아가죠. 폐하께 말씀드리면 그에 맞는 처벌을 내릴 겁니다."


그때 문으로 누군가가 급히 달려들어 왔다.


"헉... 헉... 레이네님!"


"다닐? 여기엔 무슨 일로 온 거에요?"


아는 사이인가?


"어서 여기서 피하셔야 합니다."


"현상수배서 때문에요?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아뇨. 기사단이 오고 있습니다."


"예?"


"기사단이 레이네님을 잡으러 오고 있다고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가짜 현상수배서에 기사단까지 움직인다고요?"


"아이고, 아직 소문을 못 들으셨나 보네. 도시에는 이미 싹 퍼졌습니다."


"무슨 소문이요?"


"볼프 공작이 폐하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옹립했다는 소문이요."


충격적인 이야기가 연속으로 들려오는구나.


“다닐은 그걸 어떻게 안거죠?”


“어제 시내에 기사단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아봤죠. 레이네님을 잡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달려온 겁니다.”


“그랬군요. 믿어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도 한때 게윈가에 헌신하던 몸인데, 레이네님이 그러실 분이 아니란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단이 나왔다면 죄목이 있을 텐데, 그건 뭐였죠?”


“그게···”


왜 뜸 들이지?


“뭔가요?”


“유아 납치 및 살해, 그리고 이단 혐의라고···”


“네?!”


“그리고 같이 있는 여자애는 납치피해자니 절대로 상처입히지 말라고···”


우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거지? 그런 걸 믿을 사람이···


있구나. 그것도 눈으로 본 것만 아홉명이나.


“알겠습니다. 돌아갈 때는 조심하세요. 혹시 엮이지 않도록···”


“아, 네. 그럼 레이네님도 건강하시길.”


다닐이라 불린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후우···”


"레이네. 어떻게 할 거예요? 궁전으로 가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은데요..."


"예? 아... 네, 그렇죠···"


나한테보다는 레이네에게 더 충격적인 사실이었나보다. 칼이 앞에 있어도 침착하던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도망가야 한다잖아요."


"네..."


"기사단이 잡으러 온다잖아요!"


"예... 후우."


짝.


레이네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양 손바닥으로 본인의 얼굴을 쳤다.


"생각을 정리하기보단 움직이는 게 우선이겠죠. 먼저 짐부터 챙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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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천재(7) 22.12.06 17 0 13쪽
31 천재(6) 22.12.05 16 0 12쪽
30 천재(5) 22.12.02 22 0 13쪽
29 천재(4) 22.12.01 17 0 11쪽
28 천재(3) 22.11.30 20 0 11쪽
27 천재(2) 22.11.30 23 0 12쪽
26 천재 +1 22.11.29 34 0 15쪽
25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10) 22.11.28 28 1 16쪽
24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9) 22.11.26 28 1 14쪽
23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8) +2 22.11.25 25 3 12쪽
22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7) 22.11.24 32 3 12쪽
21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6) 22.11.23 28 5 11쪽
20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5) +3 22.11.22 34 6 11쪽
19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4) +1 22.11.21 35 3 13쪽
18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3) +1 22.11.19 33 2 12쪽
17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2) 22.11.18 40 6 11쪽
»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 22.11.17 40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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