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축복받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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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오
작품등록일 :
2022.10.2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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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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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의 숲(2)

DUMMY

성에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날붙이라고는 레이네가 가진 검 하나뿐인데도, 그걸 확인하겠다고 마차의 모든 짐을 다 뒤집어 까야만 했다.


마차를 전부 뒤엎어 놓고도, 신원을 보증할 수 있는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도망자 두 명에 집이 어딘지도 모르는 아무개 한 명··· 사실 지금까지 국경을 넘어온 게 기적인 거 아닐까?


다행히 티오가 뒤늦게 꺼낸 사제의 증표를 보여주자 바로 통과가 허락 되었다.


성직자랑 마족이 같이 올 리는 없다나 뭐라나···


"티오와 같이 올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네."


그렇지 않았으면 얼마나 오래 실랑이를 벌였을까, 아니 입장 자체를 거부당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러게요. 신원까지 파악하려고 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요."


"어? 레이네도 몰랐어요?"


"네. 저도 아르드바르는 처음 와봐요. 그나저나 아르드바르에는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전투들이 몇 가지 있거든요. 저는 그전까지 과장이 많이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와보니 실제로 있었어도 어색하지 않을만한 훌륭한 성이네요."


이미 딴 세상으로 빠졌구만···


"그럼 레긴도?"


내 질문에 레긴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나도 처음 오는데."


"아니 그럼 도대체 두사람 다 무슨 자신감이었던 거야? 둘이서 그렇게 아는 척을 하더니 하마터면 들어오지도 못할 뻔 했잖아!"


"잘 풀렸으니까 됐지 뭐."


레긴이야 매번 무대포였으니 그렇다 쳐도, 레이네까지 무대책일 줄이야. 이거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검문소를 지나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 그 곳에는 해자와 함께 또 하나의 성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개교를 건너 들어간 내성문 안쪽에는, 다시 성벽이 나타나서 성문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었다. 뭐 이렇게 성벽을 많이 쌓았담. 차라리 하나를 높고 튼튼하게 짓는 게 낫지 않나?


결국 성문을 세 개나 지나고 나서야, 사람 사는 곳 같아 보이는 곳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변이 온통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 외에는, 겉보기에 다른 마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 눈에 띄는 큰 차이점 한 가지가 있었다. 마을 안에 풀 한 포기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건물 외에는 어딜 봐도 불그스름한 땅만 보이고 눈을 안정시킬 푸른빛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마을에선 지천으로 깔려있던 농기구가 이곳엔 단 한 개도 없었다. 대신 당장에라도 발에 챌 것처럼, 온갖 장 병기들이 널려 있었다.


지하에서도 농사를 하는데, 여긴 농사를 안 하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레이네가 입을 열었다.


"말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황량한 땅이네요. 마석에서 나오는 돈만으로 도시의 경제가 돌아간다더니, 그 말 그대로인가 봐요. 여기저기 일확천금을 노리고 온 듯한 초보자도 많지만, 나름 능력이 있어 보이는 실력자도 있네요."


여러 사람이 지나다니는 거야 나도 보이지만, 도대체 마차에 타고 있으면서 실력이 있는 지 없는 지는 어떻게 알아차리는 거지?


"마석이라는 게 그렇게 비싸요?"


"네. 보통 사람들이라면 싸구려 하나만 얻어도 몇 년은 먹고 살 수 있을걸요. 마석의 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아무리 낮은 품질이어도 같은 무게의 금값이고 최고 품질은 금의 수백 배에 달한다고 해요."


여기서 금이 얼마나 비싼진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 비싸다는 이야기겠지?


"그렇게 비싼 것 치고는 사람이 별로 안 모이는 거 아닌가요? 겨우 마을 하나로 해결될 수준이면 돈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말대로 도시 하나를 지탱할 수 있는 양이니, 그걸 생각하면 적은 편이죠. 만약 마석이라는 것이 오늘날 처음 발견된 것이라면요."


"어, 그 말은..."


"벌써 마물에게서 나오는 마석으로 이 도시가 유지된 지도 몇백년은 되었으니까요. 이미 마석을 구할 때의 위험이나, 기대치 정도는 알 사람들은 다 알지요. 게다가 미라도 오면서 느꼈겠지만, 여기까지 오는 것도 돈 없이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뭐, 다 알고도 덤벼드는 사람들은 계속 나오는 것 같지만요."


"아까 초심자라고 했던 사람들이요?"


"네. 아마 그런 사람들도 포함해서 이 도시가 돌아가는 거겠지요. 이 성의 주인도 그래서 적극적으로 이주자를 받아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성의 주인이 누군데요?"


"성의 주인은 대대로 아브르 백작입니다. 마족을 저지하는 최전선에 서겠다며 이런 황무지에 성을 세우기 시작했던 가문이죠.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견고한 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공은 무시할만한 것이 못되죠. 약 200년 전, 마석의 독점을 원했던 에스플레나 제국의 황제가 무려 1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원정을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을 점령하기는 커녕 군대는 괴멸에 이르는 피해를 보고, 황제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제국의 붕괴를 자초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윽, 또 시작됐군.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레이네가 저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티오는 신나서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고 있다. 옛날이야기 같은 게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하지만 레이네의 옛날이야기는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마차가 마을 여관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려서 실린 짐을 전부 내리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하아, 사람이 많아지니까 짐도 많아져서 매번 싣고 내리는 게 일이네."


이삿짐 수준은 아니어도, 사람이 늘어났다는 핑계로 자꾸 이것저것 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마차 하나를 꽉 채울 정도 였다.


"그거라면 잘하면 해결될지도 몰라요."


"어. 어떻게요?"


그 마석인가로 대박치면 마차라도 살 건가?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이야기할게요."


왜 이렇게 매번 이야기를 안 해주는 거야. 답답하게.


"대신 오늘은 별다른 일정이 없으니, 푹 쉬세요."


아, 그런 거라면.


"쉬는 것보다 목욕이 하고 싶은데요. 어디 췌벡에 있던 목욕탕 같은 데 어디 없을까요."


마차를 타고 오면서 흙먼지를 수도 없이 뒤집어썼더니, 전신에 먼지 팩이라도 한 것 같이 답답해서 당장이라도 씻어내고 싶다.


"아! 저도요! 저도 씻으러 가고 싶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티오도 같은 심정이었나보다.


"물이 많은 지역이 아니라서 췌벡같은 목욕탕을 기대하긴 어려워도 씻을 곳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위치를 모를 땐 역시, 여관 주인에게 물어봐야지.


그러나 여관 주인에게서는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런 게 어딨냐며 되레 면박을 줄 뿐 아니라 그렇게 물에 들어가고 싶으면 강에나 들어가란 소리를 들었다. 그럼 이 마을 사람들은 안 씻고 사는 건가? 애초에 강은 어디에 있어?


한껏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여관주인에게 강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여관주인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위치를 알려주었고, 더 이상 바보 취급 당하기 싫어 곧장 밖으로 나왔다.


"이게... 강이야?"


이게 강이면, 한강은 바다겠다. 아무리 작은 강도 있다곤 하지만, 폭이 고작 4미터 남짓 되어 보였다. 깊이는 너비에 비해 꽤 깊어 보였지만, 그래봤자 절대 사람 키는 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걱정되는지 다리가 공중에 떠 있듯이 꽤 위에 지어져 있었다.


"티오."


"네? 왜요?"


"저기에 빠져도 아무 일 없겠죠?"


"미라, 설마 저기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아... 이제 그냥 뭐라도 좋으니 물에 들어가고 싶어..."


"미라, 참아요! 저 물이 어떤 물인지도..."


뭐 죽기야 하겠어?


어차피 높지도 않은 다리,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푸, 하!"


차가운 물속에 빠지자 피곤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물에 한 번 빠진 것 뿐인데도 속까지 씻겨나가는 느낌이네.


"티오~~!"


티오를 부르려고 고개를 들어 다리 위를 보았지만, 티오는 계단으로 돌아서 내려오고 있었다.


"미라! 괜찮아요?"


"네! 시원하고 좋은데요. 티오도 들어 와봐요! 개운해요!"


근데 정말 살 것 같다. 이 기분 그대로 돌아가서 침대에 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저는 그냥 간단하게 씻고 갈게요. 미라도 나와서, 그... 옷부터 말리세요."


티오는 정말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지 물가에 쪼그려 앉았다. 조심스럽게 물을 묻혀 닦으려는 모습을 보고, 장난기가 들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티오가 물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그 손을 붙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풍덩!


"아하하하하!"


"어푸, 무슨 짓이에요!"


티오는 내게 항의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문답 무용의 물 폭탄을 선사했다.


"자, 받아라!"


첨벙 첨벙.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티오는 물속에서 뒤뚱거렸다.


"아하하하하. 어때? 시원하지?"


"아, 정말. 미라 너무해요. 옷이 다 젖었잖아요. 이래서 안 들어오려고 한 건데..."


"뭐 어때. 옷 좀..."


젖은게 어떠냐고 하고 티오를 보니 젖은 옷이 몸에 딱 달라붙어 그대로 몸매가 드러날 뿐만 아니라, 옷 속이 비치고 있었다.


티오의 모습이 저렇다는 것은...


문제를 깨닫고 바로 아래를 내려다 보자, 티오보다 훨씬 얇은 옷이기에 그만큼 더 노골적으로 존재감을 자랑하는 내 몸이 있었다.


"티오는 봤으면 미리 이야기를 해줬어야지!"


"그치만, 미라는 들어가지 말래도 빠졌잖아요. 게다가 옷을 말리라고도 말했었는데..."


그건... 그랬지.


"이 꼴로 여관까지 어떻게 돌아가지..."


"일단 나가서 조금이라도 말려요."


나는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물 밖으로 나가서, 가장 커 보이는 돌 위에 누웠다. 주변이 전부 황무지일지라도, 물가는 돌이 많아 흙이 많이 묻지는 않았다. 티오는 손수 옷에 있는 물기를 짜며 내게 물었다.


"그러고 있어도 괜찮아요?"


"이러고 있는 편이 더 잘 마르지 않을까?"


어느 쪽이 더 옷을 잘 마르게 할 지는 모르겠지만, 누워서 볕을 쬐고 있으니 이건 이것대로 만족스러웠다. 돌도 데워져서 나름 뜨끈뜨끈 했고.


"그렇게 매번 누우려고 들면, 살쪄요."


"윽."


그 소리를 듣고 배를 만지자, 분명 배에 살집이 조금 잡히기 시작한 듯한 느낌도 든다.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운동을 안 해서 그런가?


"그래도 이거 기분 좋은데, 티오도 와서 누워봐."


건조중인 빨래가 이런 기분일까? 한 번 차가워진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느낌이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항상 이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저는 괜찮아요. 그래도 확실히 개운하긴 하네요. 물이 맑아서 다행이에요."


맑은가? 지저분했던 것 같은데. 뭐, 아무렴 어떠랴.


"헤헤, 들어가길 잘했지?"


"그건... 그렇네요.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말을 놓아요?"


"응? 그러네... 이게 편하니까 티오도 말 편하게 하는 게 어때?"


"좋아ㅇ... 그럴게! 미라도 이제 일어나. 얼른 돌아가자."


음음 아직 어색하구만.


"그치만 옷 아직 하나도 안 말랐는데..."


내가 일어날 기미가 없자, 티오는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였다.


"사람들이 수군대면서 이쪽을 보고 있단 말이야. 어서 일어나."


윽, 그건 안 되지.


나와 티오는 최대한 옷이 드러나지 않도록 몸을 가린 채, 빠른 걸음으로 여관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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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마족의 숲(9) 22.12.19 13 0 14쪽
40 마족의 숲(8) 22.12.16 13 0 12쪽
39 마족의 숲(7) 22.12.15 16 0 17쪽
38 마족의 숲(6) 22.12.14 13 0 15쪽
37 마족의 숲(5) 22.12.13 13 0 11쪽
36 마족의 숲(4) 22.12.12 15 0 12쪽
35 마족의 숲(3) 22.12.09 17 0 12쪽
» 마족의 숲(2) 22.12.08 17 0 12쪽
33 마족의 숲 22.12.07 17 0 11쪽
32 천재(7) 22.12.06 17 0 13쪽
31 천재(6) 22.12.05 16 0 12쪽
30 천재(5) 22.12.02 22 0 13쪽
29 천재(4) 22.12.01 17 0 11쪽
28 천재(3) 22.11.30 20 0 11쪽
27 천재(2) 22.11.30 23 0 12쪽
26 천재 +1 22.11.29 34 0 15쪽
25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10) 22.11.28 28 1 16쪽
24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9) 22.11.26 28 1 14쪽
23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8) +2 22.11.25 25 3 12쪽
22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7) 22.11.24 32 3 12쪽
21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6) 22.11.23 28 5 11쪽
20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5) +3 22.11.22 34 6 11쪽
19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4) +1 22.11.21 35 3 13쪽
18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3) +1 22.11.19 33 2 12쪽
17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2) 22.11.18 40 6 11쪽
16 부나방은 불의 크기를 재지 못한다 22.11.17 40 4 11쪽
15 꽃은 싹 없이 피지 않는다(14) 22.11.16 37 5 12쪽
14 꽃은 싹 없이 피지 않는다(13) +1 22.11.15 3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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