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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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랑(安郞)
작품등록일 :
2022.10.29 21:33
최근연재일 :
2022.12.0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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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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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화 - 또 조중사?

DUMMY

"마지막 남자분! 뛰세요. 어서요!!"


...


"저기요! 얼른 뛰시라구요!"

"더 이상 버티기 힘듭니다. 빨리요!"


30년된 17층 복도식 아파트 꼭대기층 난간.


나만 남았다.

그리고 불길은 점점 거세어졌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새까만 연기는 조금 전 지수를 떨어뜨릴 때보다 훨씬 짙어져 있었다.

메스꺼운 건 둘째치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38분 전.


아파트 화재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을 땐 또 누가 장난하나 싶었다.

근데 5분이 넘도록 계속 울려대는 통에 뭔가 이상하다 싶어 현관문을 열자 밑에층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난간 밑으로 고갤 내밀어 살펴보니 12층에서 불이 난듯 했다.

난 딸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지수야! 지수야! 얼른 나와! 지금 나가야 돼!"


"응? 아빠 나 이거까지만 보면 안돼? 거의 다 봤어~ 응?"


지수는 방에서 DVD를 보다가 갑자기 나가자는 말을 듣자 더 보겠다며 졸라댔다.


"지수야. 지금 불났어! 우리 빨리 나가야 해! 얼른 신발 신고!" 


어리둥절한 지수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쪽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베이터는 멈춰 있었다.

비상계단쪽 철문을 열자 1701호 사람들이 황급히 다시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길이 올라와 탈출구가 막혀버린 것이다.


13층 주민들까지는 비상 계단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지만 그보다 윗층에 있던 사람들은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아파트는 옥상이 지붕구조였던 탓에 헬기 구조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구조대는 신고가 들어간 지 9분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지상엔 신속하게 에어매트가 설치되었다.

불길이 빠르게 올라오며 번지고 있었기에 구조대의 지시에 따라 14층 사람들부터 하나 둘 에어매트로 점프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어떤 몰상식한 인간은 값나가는 물건들을 챙겨 밑으로 던졌다가 욕을 바가지로 쳐먹었다.


"물건 던지지 마세요! 에어매트에 손상이라도 가면 인명구조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봐요!! 물건 던지지 마시라구요!!"


값나가는 물건들을 챙겨나온 건지 가방을 난간 너머로 던지려던 사람들은 움찔했다.

게중엔 아파트 복도 맨 끝으로 가 화단쪽으로 축구 경기에서 스로인(throw-in)하듯이 가방을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14층, 15층, 16층 사람들이 모두 뛰어내리고 마지막으로 17층에 있던 사람들 차례가 왔다.

그러는 동안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17층엔 모두 3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노인부부가 살던 1703호는 다행히 집을 비운 듯 했다.

또 다른 옆집 1701호 사람들은 자신들이 호수가 빠르니 먼저 뛰어내려야 한다며 구조대가 17층이라고 외치자마자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1702호에 살던 나와 9살 된 딸 지수만 남았다.

그나마 둘째 어린이집 끝나면 데리고 시장 다녀온다던 아내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지수를 난간 위로 들어 올려 지상에 설치된 에어매트로 떨어뜨려야 했다.


지수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울먹였다.


"아빠 나 너무 무서워. 지수도 다른 사람들처럼 뛰어내릴 수 있겠지? 지수 용감하니까? 으으그 그래도 무서운데 아빠랑 같이 뛰어내리면 안돼? 응? 아빠가 안아주고 뛰어내리면 안돼? 응?"


너무 높았다. 아홉 살 어린 여자 아이가 뛰어내리기에 17층은 너무 높았다.


그때였다.


- 뻐억! 뻐버벅!! 칭그렁


1701호의 복도 쪽 창이 깨지며 화염이 튀어나왔다.


"지수야, 지수야 둘이 같이 뛰어내리다가 잘못해서 부딪히면 크게 다치게 돼. 응? 그래서 한 사람 씩 뛰어내려야 하는 거야. 옆집 사람들 뛰어내리는 거 봤지? 응? 그렇게 뛰어내리면 돼. 응? 지수도 할 수 있지? 아빠도 바로 뛰어내릴게. 자 이제 우리도 가자!"


나는 부들부들 떠는 지수를 난간 위로 안아 올렸다.


"으응. 알았어 아빠. 근데 그래도 너무 무서워 아빠. 아빠! 잠깐! 손 놓지마. 아빠.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놔야 대!"


지수는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 했다.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진주 방울 같은 눈물이 저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몸이 살짝 허공쪽으로 옮겨가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빨 쳐다보며 온 몸에 힘을 줬다.

지수의 경직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 팔을 잡고 있는 손가락에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손톱이 내 팔뚝을 파고들었다.


"괜찮으니 얼른 뛰세요! 어서요! 불이 더 번집니다!"


밑에선 구조대원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수야, 눈감아봐. 응? 그리고 하나 둘 셋 세는 거야. 내려가는데 1초도 안 걸려. 지수가 둘을 세기도 전에 밑에 도착할거야. 지수야 이제 눈감아 봐. 그리고 몸에 너무 힘주고 있으면 다치니까 자 힘을 살짝 빼볼까? 아빠가 살짝 놓아 줄께 속으로 둘 까지만 세는 거야 알았지?"


"아빠, 아빠도 바로 올거지? 아빠 나 내려가면 바로 와야 대!"


지수가 눈을 감았다.


"응! 지수야 센다 하나."


난 에어매트 중앙 쪽을 향해 밀듯 지수의 옆구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꺄아아악!"


- 푸덕!


"자 어서! 시간없다. 매트에서 얼른 꼬마 내려!!"


난 지수를 확인하기 위해 난간 밑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구조대원들이 지수를 에어매트에서 끌어내리는 모습이 검은 연기 사이로 살짝 보였다.


- 푸화악!


그때 갑자기 아래층 난간 밑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라왔다. 구조대원은 다급히 소리쳤다.


"내려보시면 안되요! 불길이 칫솟고 있습니다! 바로 점프하셔야 합니다! 아 저 사람 어떡하지? 뛰기 힘들거 같은데. 지금 하나도 안 보일거야. 난간을 짚고 올라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닐텐데, 다른 방법 없어?"


......


- 푸화아악! 푸화악


아래층에서 치솟는 불길은 이미 난간의 하얀 페인트를 시커멓게 태우고 17층으로 넘어들고 있었다.

그 누구도 뛰어내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구조대원들도 알고 있는 듯했다.


- 뻐억! 철그럭


등 뒤 우리집 복도쪽 유리창이 깨져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벽쪽으로 물러설 수도 난간 쪽으로 다가갈 수도 없는 상황.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12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그때와 다른 건 지금 내 곁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불현듯 날 구하고 어이없게 병실에서 죽어버린 이중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일이 있은 후 난 전역 신청을 했다. 

특임대에서 10년 가까이 훈련해 온 것들은 돈을 버는 데엔 그리 활용도가 높지 못했다.

해양안전이나 재난구조 같은 걸 교육하면서 받는 강사수입은 몇 푼 안되었기에 아내인 세현이의 수입을 더해도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빌린 돈의 매월 원리금을 갚고나면 생활비가 모자랐다.

세현은 힘들어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둘째가 나오고 나선 대리운전도 하고 이런 저런 알바자리를 구해 일만 하며 살았다. 딱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이 그저 그렇게 힘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삶.

딱히 특임대 시절을 떠올릴 여유란 것도 없이 그렇게 또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겨 중년이 된 나는 예전같았으면 훌쩍 뛰어넘었을 장애를 앞에 두고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애들은 세현이가 어떻게든 잘 키워주겠지.

아, 참 어이없구만 한때 특임대 최강병기였다는 게 아파트 화재로 죽는다니.

이중사야 조만간 보자.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세현이의 울먹이는 얼굴도.. 그리고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의 얼굴도 떠올랐다.


순식간에 불길의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야겠지.


난 1703호쪽으로 갔다.

아침마다 물을 주며 커다란 화분을 소중하게 여기던 옆집 어르신께는 죄송했지만 반 보 밖에 되지 않는 공간을 도약해 가슴까지 오는 난간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화분이라도 발판으로 삼아야 했다.

화초들을 발로 짓뭉갰다.


- 훕. 타닥!


화분을 밟고 도약한 나는 난간을 넘었다. 그리고 낙하하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감았던 눈을 떴다.

검은 연기 사이로 에어매트 옆에서 걱정스레 올려다보는 지수의 얼굴이 살짝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 퍼엉! 푸쿠우왕!


15층 쯤 이었을까.


엄청난 폭발이 내 몸을 휘감았다.



***


'...아 여기는...'


"조 중사, 깨어났나?"

...


어?

뭐지... 병실?

아.. 산 건가. 다행이다. 우리 지수는 어디.. 어? 근데 내가 예전에 중사였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거지?


"아직은 움직이기 힘들테니 그대로 있게. 그보다 이번에 같은 구조팀이었던 이 중사는 중퇴에 빠져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야. 내가 여기서 근무하는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구."


...?


"지금 구조팀이라고 하셨..습니까? 이 중사요?"


"어라? 설마 머리에도 손상이 있는 건 아니겠지? 겁주지 말게. 나 지금 심각하니까."


"아 예.. 저 그런데 오늘 날짜가.."


갑자기 기억 저 편에 묻어 둔 채 살았던 오래 전 그 일이 튀어나와 스트리밍 될 것처럼 움틀거렸다.


"흠.. 정말로 이상이 있는 건 아니지? 11월 24일. 자네가 실려온 지는 딱 13시간 7분쯤 되었군."


...?


"설마! 몇 년도냐 물으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냐.. 그건 아니지?"


"죄송합니다. 몇 년도.."


"으와악!"

"정말이야? 조 중사! 정말 기억 안나? 큰일이군. 자네 이름이 조. 완. 인 건 알고 있는 거지?"


- 11월 24일


그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이 그 11월 24일이라고?


"네, 그럼 혹시 지금 2010년.."


"오! 그래! 맞아 2010년 어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다행히 머리는 안 다친 모양이구만. 정말 다행이야."

"조 중사 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사고가 나던 당시 상황을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현재 조 중사 밖에 없다면서 위에서 한 시간마다 경과를 물어와서 말야. 당시 상황, 기억은 하는 거지? 조 중사."


헉 이게 무슨.

돌아왔다. 과거로.

아니 이런 걸 회귀라고 하는 거 같던데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났다구?

어라? 그럼 결혼도 하기 전인데 그럼 우리 지수는? 지민이는? 세현이는? 다 어떻게 되는 거지?


아파트 난간 밖으로 뛰어내리던 순간 에어매트 옆에서 아빠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지수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몇 분 전처럼 생생한 장면이 12년 후의 일이라고?

이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 순간 덜컥 병실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이대로만 가면 얼마 안 가 쓰리스타, 그리고 차기 해군 참모총장도 맡아 놨다고 소문이 자자 했던 인물, 차무진 장군이었다.

역시 듣던 대로 훌륭한 인품과 강직함이 느껴지는 그의 아우라가 병실을 가득 채우는 듯 했다.


난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왼쪽 허벅지 쪽이 살짝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몸을 일으키는 동안 양팔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필승!"


"아니, 됐네.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이 경례는 무슨 경례야. 조완 중사, 몸은 좀 어때? 내가 괜히 온 건 아닌지 모르겠어."


"네, 중사 조.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부대장도 아니고 투스타가 직접 문안을 오다니.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본 순간 방금 전 겪었던 화재가 아니라 12년 전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사건과 당시 구조팀으로 투입되었던 상황이 먼저 떠올랐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나도 모르게 쫀건가.. 군대, 계급, 작전, 이딴 거 다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오래전 전역했음에도 계급장 앞에서 스스로 꼬릴 내리고 있는 내 모습이 맘에 안 들었다.

한편으론 한 때 장교가 아닌 부사관으로 지원한 걸 후회했을 정도로 존경했던 인물이 내 앞에 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내가 소속해 있던 특수부대의 지휘관으로 근무할 당시 장교였음에도 수많은 작전을 직접 뛰며 전설을 만들어낸 인물.

나 역시 선임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그에 관한 몇 개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역시 부하들에게 소탈하기로 정평이 난 인물다웠다.

투스타 장군이란 무게가 내게 전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그의 눈빛은 오로지 내가 걱정되서 들렀다는 듯 말해주고 있었다.


차장군 옆에서 못마땅한 눈으로 계속 날 쳐다보는 저 인간만 없으면 참 좋겠구만.


사소한 이야기를 몇 마디 더 주고 받은 뒤 내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차장군이 일어섰다.

병실을 나가려는 그를 따라 몸을 돌리다 말고는 박 소령이 껄쩍찌근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아 저 인간 참 꼴보기 싫군. 지금 얘기 안하면 나중에 더 귀찮아지겠지.


"사령관님, 이번 작전 중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내 말을 듣자마자 박 소령은 그동안 참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렇지 조중사.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건가? 이 중사가 중상을 입은 건 알고 있지?"


"네, 그건.."


그때였다. 차 장군이 나가려던 몸을 돌렸다.


"아니, 박 소령 쉬게 놔두게. 이만하길 다행이지 않은가? 사고 경위야 나중에 들으면 그만이야."


"넵! 아니 그래도 지금 당장은 24시간을 넘지 않아 잠잠하지만 잘못해서 이번 일이 밖으로 새나가면 정말 큰일입니다. 민간 언론에서 일을 키우기 전에 먼저 상황 파악을 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해 둬야.."


"허허. 괜찮아. 박 소령.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사고를 돌이킬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자, 이제 그만 가자고. 조 중사도 좀 쉬어야 할 거 아닌가."


"네.. 넵."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박 소령을 향해 썩소를 날린 뒤 몸을 다시 돌리는 차장군을 향해 팔을 올렸다.


"필승."


"응. 푹 쉬게."


그들이 병실을 나가자 혼란에 머리가 아파왔다.

한편으론 이 중사를 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연습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자꾸만 아른거리는 두 딸은 원래부터 없는 존재이고 날 이해해주고 믿어준, 전역 후 변변치 못한 내 벌이에도 늘 미소로 두 아이를 키우며 웃어주던 아내 또한 이 세상 그 어딘가에서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현실이 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뭐라 말하기 힘든 이 공허한 느낌도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이 새끼를 이렇게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이 중사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발을 디디자 왼쪽 무릎에 극심한 통증이 몰아쳤다.

내가 아는 그대로다.

난 이 사고로 인해 왼쪽 다리 전후방십자인대가 모두 파열됐다.

그리고 이 중사는 어처구니 없게도 수술이 끝난 후 회복실 침대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재활을 거쳐 부대에 복귀할 수 있었음에도 난 그러질 못했다.

내가 군복을 입고 사는 동안은 그 어떤 곳에 있다 해도 이 중사에 대한 생각을 지우기 힘들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 중사 아니 철혁이는 그날 작전 도중 있었던 사고에서 날 구해내고는 다음날 새벽 사망했다.

적어도 그때의 난 철혁이의 목숨 값을 빌어 산 주제에 조국을 위한 헌신이랍시고 군에 남아있을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그런데 아직 기회가 있다.

아니,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병실을 절뚝거리며 나온 난 의료진같아 보이는 이가 눈에 띄자마자 붙잡고 물었다.


"저기요. 이철혁 중사 어디에 있습니까?"


"네? 이철혁 중사.. 아 이철혁 씨요? 지금 수술 중인데.. 수술 들어간 지 어머 벌써 12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곧 끝날거 같긴 한데.."

"저도 의사선생님 따라 급하게 온 거라 자세히는 몰라요. 민간 병원에서 진행할 수 없는 수술이라고만 들어서."


12시간.

수술 시간이 이렇게 길다는 것 만으로 이 중사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었다.

또 의료진을 이곳으로 불러 수술을 진행할 만큼 이번 사고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군에선 얼마나 만전을 기하고 있는지도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기로 당시 이 중사의 상태에 비하면 수술은 그나마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중사가 의식을 차린 건지 어떻게 침대에서 낙상한 건지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목격자가 없어 이 중사가 스스로 굴러 떨어지는 과정에서 목 뒷부분 수술 부위가 찢기면서 내부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침대의 손잡이가 내려가 있었다고..


난 그의 회복실에 들어가 침대의 손잡이를 올려 고정해 놓을 생각이다.

그러면 철혁이의 말도 안되는 죽음을 막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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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 이동수가 사라지다 22.12.02 20 1 12쪽
27 27화 - 윤미혜, 내 심장을 보관중 22.12.01 26 1 12쪽
26 26화 - 이동수의 전화가 끊어지다 22.11.30 26 1 13쪽
25 25화 - 윤식당 22.11.29 30 2 12쪽
24 24화 - 최병두가 확실하군 22.11.28 33 1 13쪽
23 23화 - 마산에서 최영두를 만나다 22.11.26 43 2 13쪽
22 22화 - 마지막 만찬 22.11.25 38 2 14쪽
21 21화 - 카페주인은 장각진 22.11.24 40 2 13쪽
20 20화 - 민식이냐 +2 22.11.23 45 2 12쪽
19 19화 - 고광철 22.11.22 48 2 13쪽
18 18화 - 난다걸스 22.11.21 5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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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 꿈 꿨다며 찾아온 특임대 녀석들 22.11.15 75 6 17쪽
12 12화 - 장각진과의 밀당 22.11.14 78 5 13쪽
11 11화 - 작당모의 22.11.12 91 5 13쪽
10 10화 - 윤정혜를 안다구? 22.11.11 109 4 12쪽
9 9화 - 미친! 이게 누드냐 임마! 22.11.10 109 5 14쪽
8 8화 - 셋이 모이다 22.11.09 116 3 13쪽
7 7화 - 지수.. 라구? 22.11.08 150 6 13쪽
6 6화 - 장선생의 본모습 22.11.07 146 5 13쪽
5 5화 - 이동수가 로엔 오빠? +1 22.11.05 161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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