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머신 들고 이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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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生花)
작품등록일 :
2022.10.30 12:28
최근연재일 :
2022.11.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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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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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란과 미체스트(3).

DUMMY

호록-


케이가 차를 홀짝이는 순간, 버밀이 눈썹을 들썩였다.

마수를 제압할 때나 쓰는, 마취침의 마취제를 한 스푼 통으로 투하한 차다. 혀에만 닿아도 그 약효가 드러날 터였다.


"어때요~ 맛이, 일품 이···지, 요?"


그리 말하며 버밀은 고개를 까딱거린다. 씨익 웃은 호위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번에야 말로-


"그렇네요. 향이 일품입니다."

"·····."


케이가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반응이 호위들을 멈춰 세웠다.


"허."


버밀은 헛숨을 내뱉으며 입을 벌렸다.

아니 무슨, 저 독차를 음미하는 것도 모자라 향까지 맞는다고?


호위들이 또? 라는 표정으로 멈춰서고, 쩔그럭 거리는 구속구를 늘어뜨린다.

버밀이 주먹을 부르르 떨며 요리사를 노려봤다. 눈빛만으로 뚫어 버릴 기세였다.


'너 이새X····.'

'아, 아니, 이게 아닌데····?'


차를 다 마신 케이가 찻잔을 내려놓는다. 정말 효능이 있었는지, 이마에서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잘 마셨습니다. 배가 부르니 노곤하군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 그러세요. 하, 하, 하!"


버밀이 아랫입술을 짓씹는다. 성난 눈으로 호위들에게 눈짓했다. 억누른 분노를 작게 내뱉었다.


"덥, 쳐!"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방심하고 있는 지금 제압해 버리면 될 터.

마찬가지로 짜증이 솟구친 두 호위가 케이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던 순간이었다.


휘청-


"잠깐!"

"으음····."


잘 걸어가던 케이가 순간 비틀거린다. 미간을 찌푸리며 제 이마를 짚었다.

요리사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뭔가 이상하지만, 약빨이 통한 것이다!


요리사가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미소 지었다. 버밀이 마주 웃으며 호위들에게 턱짓했다.


"아···왜····이러지?"


고개를 끄덕인 호위들이 클클 웃으며 케이에게 접근했다. 쓰러질 때까지 기다릴 요양으로 거리를 벌린 채, 천천히 다가간다.

휘청거리던 케이는 이내 쓰러지듯 천막으로 들어간다.


호위들이 따라 들어서는 순간 버밀이 안색을 확 바꾼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끼 자락을 펄럭였다.


"약효가 왜 이래?! 관리 똑바로 안 해?"

"죄송합니다. 유통 기한이 다 됐나 봅니다. 하하···."


요리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카악- 하고 거칠게 목을 긁은 버밀이 가래를 퉤 하고 뱉는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가봐! 만약, 교육 상태가 엉망이면···크흠!"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제대로 마사지 해 놓겠습니다!"


요리사가 연신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비장한 눈빛을 드러내며 각오를 다졌다.


'오늘밤····! 제발, 죽여 달라고 빌게 만들어 주마.'


조리장 뿐만 아닌, 노예의 교육 또한 담당하는 그다. 고기만큼이나 신입 노예를 능숙하게 다질 자신이 있었다.

고분고분해진 노예를 선보이면, 이번 실수를 만해할 수 있을 터.

요리사는 이내 연장을 점검하러 자신의 천막으로 향했다.


"크흠."


어느세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저녁.

중간중간 자리한 횃불만이 아슬하게나마 어둠을 몰아낸다.


휘이이잉-


차디찬 밤바람에 버밀이 옷깃을 여미었다.

분노에 달아올랐던 열기는 이미 식은지 오래. 나오지 않는 호위들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왜 이리 오래 걸려. 흠흠. 이놈이나 저놈이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버밀은 안달감에 천막으로 걸어간다.

이미 예상과 달리 너무 오래 시간을 끌었다. 화롯불에 따뜻한 위스키 한 잔이 간절했다.

천막을 젖히며 버밀이 말했다.


"뭐 한다고···응?"


어두운 천막 내부.

흐릿한 음영 아래 쓰러진 두 명의 인영이 보인다. 한차례 저항이 있은 듯, 조카 놈과 호위가 얼싸안고 있었다.

호위 한 놈은 등을 보인 채 몸을 숙이고 있다.


"흠. 저항이 있었나?"

"·····."


호위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갑옷의 끈을 조이고 부츠의 끈을 묶었다.

마치, 지금 막 착용하는 듯이.

버밀이 눈쌀을 찌푸리며 그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어이. 대답해."


호위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 단검을 차고는 몸을 일으킨다.


'이렇게 컸었나?'


호위가 몸을 곧추세울수록, 올려다보는 버밀의 목이 덩달아 솟구친다.

자신보다 머리통 두 개는 더 큰 키. 아무리 자기가 작다곤 해도, 호위단에 이 정도로 큰놈은 없다.

버밀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간이었다.


휘잉~


바람에 입구의 가림막이 휘날리며, 달빛이 안을 비춘다. 털모자를 깊게 눌러쓰는 호위의 흰 얼굴이 드러났다.

버밀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조, 조카갸갸갸갸갹-"


털썩-


파직- 하고 스파크가 터지는가 싶더니, 버밀의 신체가 무너진다.

호위, 아니 케이는 버밀의 몸을 천막 안쪽으로 옮긴다.


케이는 호위들이 들어서자마자 제압했다.

원래라면 호위로 변장한 채 버밀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버밀이 그의 수고를 덜어준 격이었다.


"가볼까."


케이는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힌 호위를 들처맨다. 털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밖으로 나온다.


'요리사의 위치는?'


[안내합니다.]


케이의 발아래 화살표가 나타난다. 요리사의 천막을 가리켰다.

케이는 천천히 그곳으로 이동했다.


"크큭, 엉덩이 이쁜데."

"휘익~"


지나치는 호위들이 케이, 아니 호위를 휘롱했다. 다행히 어둠 때문인지 케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나가지."

"그래, 교육자님이 기다리시겠어. 크큭."

"하하하하!"


묵묵히 걸음을 옮긴 케이는, 이내 요리사의 천막에 당도한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꽤 넓은 천막 내부.

수갑이 달린 의자가 중앙에 있고, 고문도구로 보이는 채찍과 흉기들이 한쪽 책상에 즐비했다.

피가 덕디덕지 묻은 앞치마를 두른 요리사가 말했다.


"어, 왔냐. 앉혀."

"·····."


케이는 들쳐맨 호위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숯불에 인두를 달구던 요리사가 뒤를 돌아본 순간이었다.


파지직!


철푸덕-


뒷목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함께 요리사가 쓰러졌다. 눈을 뒤집은 채 바닥에 엎어진다.


'알리바이는 확보했군.'


이로 서 상단의 놈들은 자신이 고문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울려 퍼지지 않는다면 곧 눈치챌 터.

주어진 시간이 많다고 볼 순 없었다.


'암행 모드.'


[예스 마스터.]


두근, 두근···두근.


심박수가 줄어들며 호흡이 가라앉는다.

슬그머니 천막을 빠져나온 케이는 천막의 그림자에 스며든다.

완전히 자연히 일체가 된 듯, 순식간에 그 존재감이 옅어졌다.


케이는 호위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할란과 미체스트의 천막으로 다가갔다.

아직 둘이 잠들지 않았는지 천막 틈새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두런두런 대화가 흘러나온다.


-쯔읍, 왜 이렇게 이빨에 껴 가지고. 그냥 구이로 할 것이지···.

-고기만 버렸군.

-그렇지?! 요리사 놈이 요즘 신경을 안 써!


혹여나 음영이 비칠까, 수레 아래에 숨어 숨을 죽이던 순간이었다.


-아! 술 한잔-


이어가던 대화가 갑자기 뚝 끊긴다. 침묵이 이어졌다.


'····?'


설마, 눈치챈 것인가.

케이가 위화감에 허리춤에 손을 올린다.

근육이 긴장하며, 언제라도 박동할 준비를 했다.


5초, 10초·····.


무거운 분위기 속, 침묵이 길어지던 순간이었다.

끊겼던 미체스트의 목소리가 돌연 들려왔다.


-아니, 안 잘 거야?

-확인할 게 있다. 먼저 자라.

-그러냐. 불 좀 꺼. 나 먼저 잔다.


훅-


천막의 불빛이 꺼뜨려지고, 할란이 밖으로 나온다. 무언갈 확인하러 가는 듯 할란이 천막에서 멀어진다.

곧이어 시끄러운 코골이가 울려 퍼진다.


코오오옥-쿠흘.

코오오오오옥-


'운이 좋군.'


빠르게 미체스트를 제압하고, 돌아올 할란을 기다렸다 처리하면 될 터.

좀 전의 침묵이 의심스럽긴 했으나, 미적거릴 시간은 없다.

만에 하나, 할란이 자신을 확인하러 간 것일 수도 있었다.

케이는 호위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타이밍을 노려 천막 안으로 진입한다.


'야간 투시.'


[예스 마스터.]


칠흑 같은 어둠 속, 케이의 시야에 윤곽이 드러난다.

케이는 시야에만 의존하지 않고 상대의 기척을 쫓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기감을 최대로 확장한 순간이었다.


"·····."


스르릉-


케이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든다. 천천히 몸을 곧추세웠다.

단검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천막 속 무거운 공기에 케이의 목소리가 스며든다.

마치 혼자만 있는 듯한 적막.

하지만 케이는 알고 있다.


"후우-"


자신의 뒤편에 또 다른 숨소리가 이어지고 있음을.

곧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큭. 이거, 그냥 애송이가 아니었네?"


스릉-


검날이 검집을 부드럽게 스치는 소리가 울린다.

케이는 이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의 마나가 뒤편에서 요동친다. 무거운 압박이 밀려들었다.


"불인 것 같으면서도·····쇠 냄새가 나는, 그런 아리까리한 마나. 크큭. 그게 너거든."

'그런가.'


기척을 전부 지웠다고 생각했거늘.

미체스트는 케이의 특이한 마나를 감지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 여기 있어요~ 하면···."


콰앙-!


순식간에 달려든 미체스트가 대거를 휘둘렀다. 케이가 내지른 단검과 부딛치며 굉음을 발했다.


치릿-


순간 치솟은 불똥이 활짝 웃는 미체스트의 얼굴을 비춘다.

둘은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어쭈?"

"호···."


상대의 힘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동시에 깨닫는다.


'육체 강화, 같은 건가.'


대거와 팔뚝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마력. 케이는 미체스트의 능력을 어렵지 않게 예측했다.


'그렇다면.'


케이가 왼손 바닥을 펼쳤다. 화악- 하고 솟구친 불꽃이 순식간에 작은 구로 응축했다.

눈 앞에서 터트릴 기세로 왼손을 휘둘렀다.


"크큭!"

"····!"


그때였다.

왼손으로 이어진 흐름이 끊어지는가 싶더니 응축시킨 화염이 힘없이 소멸한다.

케이의 눈이 확대된 순간이었다.


"어딜 한눈팔아-!"


퍼억-


미체스트의 외침과 함께 둔탁한 충격이 배를 강타했다.


쿠당탕!


데구르르르르-!


케이의 신형이 천막을 무너뜨리며 날아갔다. 몇 바퀴를 구르고 나서야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케이는 서둘러 자세를 낮추며 역수로 쥔 단검을 앞으로 내민다.

나노머신이 보고했다.


[보고. 퇴각을 권고합니다.]


“·····.”


화륵-


언제 다가왔는지, 횃불을 든 호위들이 캠프를 빙 둘러쌌다.

선두에 선 할란이 팔짱을 낀채 자신을 굽어보고 있었다.


'아니. 싸운다.'


[승리 확률 47%. 불리합니다. 퇴각을 권고합니다.]


나노머신의 이어진 권고에도 불구하고 케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한 차례의 격돌. 특이한 고유마법 만큼이나 상대는 강하다.

이미 기습이 실패로 끝난 이상, 후일을 도모하는 게 맞았다.


'가능하다.'


하지만 케이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꺼낸 것도 아니다. 아직 상대가 방심한 지금,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터.

최적은 아니어도 적기가 분명했다.


그 말을 방증하듯, 휘적휘적 걸어 나온 미체스트가 소리쳤다.


"어이! 건드리지 마. 훠이! 내가 상대한다. 크큭."

"그럼 빨리 처리해라."

"알았어. 조금만 놀게."


미체스트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대거로 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 반 죽일 각오로 찬 건데. 인정, 라크보단 한 수 위. 크큭.

"·····."

"그럼, 어디 한번 놀아볼까?!"


푸확-


미체스트가 거칠게 케이 에게 쇄도했다.

대거를 쥔 팔을 뒤로 크게 내뻗는다.


'제타 강화.'


[전투 보조 ON]


케이는 치달은 미체스트에게 왼손을 휘둘렀다. 응축된 화염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진동했다.


"학습이 덜됐지?! 하하!"


미체스트가 대거를 휘둘렀다. 검날의 예기가 왼손을 잘라버릴 듯 쇄도했다.


파스슷-


불의 구가 또다시 꺼뜨려진 순간, 케이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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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형제, 그리고 동료(1) +3 22.11.26 250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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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황야의 오크(5) +3 22.11.22 292 11 11쪽
22 황야의 오크(4) +1 22.11.21 327 10 13쪽
21 황야의 오크(3) +1 22.11.20 377 16 11쪽
20 황야의 오크(2) +1 22.11.19 397 15 11쪽
19 황야의 오크(1) 22.11.18 447 16 12쪽
18 동기는 집 나온 도련님. 22.11.17 464 20 13쪽
17 도시 무음, 그리고 연락소. +2 22.11.16 504 22 12쪽
16 독성으로 마력 업. 22.11.15 521 25 16쪽
15 검은 머리, 미남, 그리고···. 22.11.14 548 21 11쪽
14 할란과 미체스트(5). +3 22.11.12 562 23 13쪽
13 할란과 미체스트(4) 22.11.11 555 22 15쪽
» 할란과 미체스트(3). 22.11.10 570 19 12쪽
11 할란과 미체스트(2). 22.11.09 580 21 14쪽
10 할란과 미체스트(1). +1 22.11.08 611 21 11쪽
9 기사(2) 22.11.07 623 25 12쪽
8 기사(1) 22.11.06 657 25 10쪽
7 화염 술사 라크(3). +2 22.11.05 657 25 17쪽
6 화염 술사 라크(2). +1 22.11.04 676 26 11쪽
5 화염 술사 라크(1). +1 22.11.03 732 24 11쪽
4 북부 촌락 케딜락(3). +2 22.11.02 744 26 12쪽
3 북부 촌락 케딜락(2). +2 22.11.01 799 31 11쪽
2 북부 촌락 케딜락(1). +3 22.11.01 914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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