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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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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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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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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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백작이라는 작위의 체면을 생각하면 화가 나야 할 부분이었으나 그들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벼운 인원인 만큼 오히려 빨리 이동할 수 있을 테니까.


신경 쓸 인원이 적은 만큼 좁은 길이나 험한 지형도 자유롭게 넘을 수 있고, 속도도 더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산을 가로지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영지에 도착해야 했다. 어쨌든 공작의 약속은, 영지에 도착하는 대로 작위에 어울리는 물건과 병사들을 보내주는 것이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것들을 보내주겠지.’


카이델은 생각했다.

만약 그때도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들이 내려온다면, 이번엔 왕이나 공작에게 직접 따질 수밖에 없다고.


그것들은 카이델 개인에게 주는 게 아니라 영지에 내리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자신만 얽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벌써 귀찮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앞에 그려졌다.



*



한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가던 그들에게 작은 문제가 생겼다.


“아니, 노숙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변이 어두워지고, 길이 험하니 오늘 밤은 여기서 노숙해야겠다는 의견이 나오자 메이슨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카이델은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귀족 놈들이랑 함께 다니기 싫었는데.’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도 저렇게 노숙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귀족 놈들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봐주는 것 따윈 없었다. 일부러 질척한 땅에 재우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은 그런 전장 한복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이놈을 어린애처럼 어르고 달래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생각해보니···얘는 내 밑 아니야?’


메이슨은 그를 보좌하기 위해 온 인물이다.

즉 그의 아랫사람이고, 부하인 것이다. 그런 놈의 비위를 맞춰가며 설득한다는 게 더 우스웠다.


그는 메이슨의 앞에 서서, 일부러 시비를 걸듯 그를 삐딱하게 내려다보았다.


“노숙해본 적 없나? 귀족 나으리라?”


메이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델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귀족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냐.’


눈치도 없게 빈정거림도 알아듣지 못한 메이슨은 진지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은 그가 어떻게 하는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귀족을 상대하는 건 꺼렸다. 그나마 여기서 귀족에게 당당할 수 있는 건 카이델 정도다.


부하들의 응원인지 눈총인지 모를 기운을 등에 업으며 카이델이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백작님을 땅바닥에 재우다니, 어디서 배워먹은 예절입니까?”

“······.”


‘나 때문이었냐?’


하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그를 땅바닥에 재운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주제에, 그 화를 카이델에게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장 막사를 세우고 간이침대를 설치하십시오.”

“···내가?”

“여기 기사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나마 그는 자기 앞에 있는 게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런 거 없어.”

“뭐라고요?!”

“우리 짐엔 그런 거 없다고.”

“···?!”


마차는 고작 두 대.

거기에 막사를 설치할 재료를 쌓아두면 다른 자리가 없다. 거추장스러운 물건들 보다 우선인 것은 식자재.


한창 전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나무껍질을 뜯어 먹어 본 기억이 있는 그에게 있어서 그딴 물건 보다는 빵 하나를 더 싣는 게 나았다.

그리고 남은 공간에 여분의 옷과 무기를 채웠더니 마차는 순식간에 가득 찼다.


“그럴 수가···.”


새파랗게 표정을 굳힌 메이슨은 당장 짐마차로 달려가 안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어지럽힐 거면 네가 다 정리해라.”


카이델은 그런 그의 뒤에 한마디 던진 뒤 부하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했다.


마차 안을 헤집으며 물건을 하나하나 살피던 메이슨은 충격을 받은 듯 비틀댔다. 이건 자신의 실책이었다. 마차가 두 대뿐인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니.

게다가 여기에 있는 식자재는 알로이스까지 버티기에 넉넉한 편도 아니었다.


“뭐 저런 걸로 충격을 받는답니까?”

“내버려 둬. 귀족이시잖냐.”


카이델은 모닥불 옆에 앉아, 여러 가지 재료를 대충 넣은 스튜를 손으로 휘휘 젓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바탕 싸움으로 얻은 성의 품질 좋은 식자재들은 삐뚤삐뚤한 형태로 뒤엉켜 끓고 있다.


그는 그게 마치 자기 모습 같았다.

아무리 높고 좋은 작위를 내려줘봤자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모른다.


“하아···.”


카이델의 말대로 어지른 물건을 모두 정리하고 온 메이슨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도착했을 땐 스튜도 딱 먹기 좋게 끓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 메이슨에게 우울함을 더해주었다. 백작의 식사라기엔 단출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여행 중이라고는 하지만···.’


여행 중이라는 핑계를 댄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수도에서만 지내던 건 아니었다. 귀족이 움직이는 데 어느 정도의 인원이 움직이고, 물자가 얼마나 필요한지는 안다.


“마차가 두 대뿐인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짐이 이게 뭡니까?”

“나한테 따지지 말고, 폐하께 따져.”

“출발 전에 알았으면 따졌을 겁니다.”

“······.”


카이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메이슨은 왕이 직접 자기 손으로 뽑아 보낸 인물이지 않던가. 왕을 알현해서 따질 위치쯤은 될지도 모른다.


‘···그럼 돌아가서 따져보라고 하면 안 되나.’


가서 따지고 오라고 하면, 이 귀찮은 놈을 치울 순 있겠으나 왕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 얼마나 심한 마이너스일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쉬운 마음을 다잡으며 열심히 스튜를 입으로 옮겼다.


그래도 성의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식자재라 그런지 대충 끓여도 맛은 좋았다.


“······.”

“······.”


그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맞은편에 앉아있는 메이슨은 죽상이었다.


“땅바닥에서 자기 싫으면 귀족 나으리께선 마차에서 주무시던가.”


물론 마차에 사람이 누울 공간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건 지금 짐을 정리해본 메이슨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것도 싫으면 돌아가라는 말도 슬쩍 담겨있었다.


“백작님께서 바닥에서 주무시는데, 그럴 순 없습니다.”

“···아니, 폐하는 어디서 이런 충신을 구하셨대?”


카이델은 헛웃음을 지었다.

빌어먹을 충신이 옆에서 계속 말대꾸를 해대는 통에 그는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주변 기사들은 뭐라 반응하기 애매했다.

어쨌든 상대는 귀족이었으니까. 그들은 카이델과는 다르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골로 갈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 잊고 계신 게 있습니다.”

“뭔데?”

“당신도 이제 귀족입니다. 알로이스 백작님.”

“······.”


그랬다. 그도 이젠 귀족이었다. 백작이라는 건 카이델이 개명한 이름도 아니고, 별명도 아닌 그의 작위였다.


‘망할 놈의 귀족.’


물론 그가 바라지 않던 신분이었지만.


카이델은 풀의 줄기를 꺾어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댔다. 씁쓸하게 올라오는 맛은 배를 곯던 시절을 상기시켰다. 사람들이 부러워할 귀족이라는 게 됐는데, 그의 처지는 그때와 별다를 게 없었다.


“백작님. 귀족은 그런 상스러운 짓은 안 합니다.”

“······.”


아니, 이것만은 달랐다.

귀족이 되니까 혹을 달고 다니게 됐다.


“알았으니까, 그만 자라.”


어쨌든 막사는 재료도 없으니 칠 수 없고, 그는 본래 계획대로 노숙을 하게 됐다. 메이슨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은 덕에 가장 따뜻하고 마른자리가 카이델의 차지가 되긴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환영할 상황은 아니었다.


‘저놈을 어떻게 돌려보내지···.’


왕명으로 온 놈을 마음에 안 든다고 돌려보낼 순 없다.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간다면 모를까.


그는 눈을 감았다.

꿈에 저 잔소리가 나올까 무서웠다.





*





이튿날,

걱정과는 달리 메이슨의 잔소리가 꿈까지 따라붙진 않았고, 그는 개운한 얼굴로 검을 뽑아 들었다.


“히이익!”

“클렌은 오른쪽을 맡고.”

“네~”

“헤이든은 왼쪽을 맡아라.”

“네!”


카이델의 말에 맞춰 기사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흩어졌다.


“백작님, 저는?”

“아, 너는···.”


다른 기사들은 모두 명령이 내려졌는데, 자신만 멀뚱히 서 있게 되자 윌은 불만스럽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 윌을 힐끗 돌아본 카이델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깃발이나 잘 들어.”

“네?!”


꿈도 안 꾸고 간밤에 잘 잤다고 생각했더니, 눈을 뜨자마자 불청객이 그들을 맞이했다.


눈앞에 나타난 건 커다란 멧돼지.

녀석은 마치 그들이 전투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듯 앞발로 땅을 긁으며 콧바람을 뿜어대고 있었다.


평범한 멧돼지보다 덩치가 좋고, 철을 박아놓은 듯한 크고 단단한 송곳니가 우뚝 솟아 번뜩였다.


윌은 커다란 깃발을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이런 것 때문에 사냥에서 제외된 게 영 못마땅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펄럭이며 그가 휘두르는 동작에 맞춰 물결치던 천이 돌연 휘리릭 봉에 감겼다.


‘오호···이거 창으로 쓸 수 있겠는데?’


깃발의 끝은 제법 날카롭다.

봉의 무게도 만만치 않으니, 제대로 찌르면 크게 박혀 들어 깊은 상처를 줄 듯했다.


그는 깃발을 앞으로 내리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 잠깐! 깃발을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제정신입니까? 폐하께서 내리신 물건이라고요! 빨리 제대로 펴세요!”

“······.”


어느새 다가온 메이슨의 제지가 없었다면 실행해봤을 것이다.


‘겁쟁이 놈이···.’


처음 멧돼지를 목격하고 비명을 내지른 것은 메이슨이었다. 이 보좌관은 싸움엔 젬병이다. 멧돼지를 보자마자 뒤로 숨었고, 의연한 척하면서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럼에도 잔소리를 위해 튀어나온 점은 조금 존경스러웠다.


‘쯧.’


하지만 윌의 불만이 수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툴툴대며 깃발을 다시 폈다.

응원하는 의미로 살랑살랑 흔들어 댔으나 그 속마음은 달랐다.


‘한 놈이라도 쓰러지면 바꿔야지.’


저 멧돼지에게 쓰러지는 기사가 생기면 바로 위치를 바꿀 생각이었다.


탓-


그런 그의 마음을 헤아려 준 듯 멧돼지가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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