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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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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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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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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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위를 향해 올라갈수록 그들을 밀어내려는 듯 바람은 거세졌다.


“와···이거, 꼭 가야 하나···.”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이대로 돌아가면 그 자작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냐?”

“그건···그렇군.”


힘겹게 몸을 움츠리며 나아가던 세 기사의 눈이 앞을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엔 예티의 털에 둘러싸인 카이델이 있었다.

이런 설산에서 물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기에, 그들은 대충 눈으로 안쪽 피를 쓱쓱 닦아내었다. 덕분에 깨끗이 씻기지 못한 피와 눈이 뭉쳐 안쪽은 엉망진창이었고, 그다지 따뜻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카이델이 몸을 덮은 건 길게 늘어진 흰털 부분이었다. 털이 워낙 좋았기에 그것만으로도 따뜻했으나, 엉망진창인 부분이 겉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기괴한 모습을 연출했다.


웬만한 동물이나 몬스터는 다가오지 않을지 모른다.


“좀 치사한데, 우리 백작님.”

“우리도 추운데 말이지.”

“털가죽이 무겁지는 않으십니까?”


예티의 덩치가 컸던 덕분에 몸에 두를 수 있는 털가죽이 두 개, 목이나 팔다리에 걸칠 수 있는 게 몇 개 나왔다. 그리고 그건 모두 카이델의 손 위에 있었다.


본인은 이미 충분히 따뜻할 테니, 작은 조각 하나 정도는 줘도 좋으련만.


그 손에서 가죽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활약하는 놈에게 하나 주겠다.”

“여기···의외로 몬스터도 나오지 않습니다.”

“백작님이 걸치신 가죽이 이상해서 못 오는 거 아닙니까?”

“활약이라는 게 전투만 말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


휘이이이-


하지만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기사들은 제법 굳건히 버텼다. 투덜댈 기력이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투덜투덜 말을 내뱉던 그들의 눈이 뒤를 향했다.


“···으.”


뒤처져있는 레이나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눈밭을 헤쳐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그들이 지나온 곳을 그대로 따라오기에 체력 소모가 심하지 않을 텐데도 그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다.


추위를 막아내는 마법은 발동하고 있을 터였다. 단지 체력적인 부분은 해제한 것인지 눈밭에서 다리를 빼내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저 아가씨한테라도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둘러메고 가야 하나?”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카이델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잖냐.”

“···네?”

“이 정도는 버텨야지.”

“······.”


윌과 이반은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델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끼어들어오려는 곳은 평범한 기사단이 아닌 알로이스 백작의 기사단.

앞으로 이 비슷한 일쯤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때마다 도움을 줄 순 없다. 여기서 버티지 못한다면 돌아가는 게 낫다.


카이델은 마법으로 보조하는 것까지는 참견하지 않았다. 자기 능력은 뭐든 마음껏 활용하는 게 좋으니까.


어차피 그 자신도 마력검을 종종 사용하지 않던가.


그 기사단에 받아줄지 아닐지를 제쳐두고라도, 기사로서 체력과 근력을 기를 마음이 생겼다면 환영할 일이었다.


“이제 정상이 눈앞이다!”


카이델의 외침에 레이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상···!’


그 말은 기운이 빠진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레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올라가는 건 힘들어도 내려가는 건 분명 조금 더 편하다.

그리고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희망도 생긴다.


눈에 푹 빠지던 다리를 들어 올리며 그녀는 고개를 바짝 세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내면 드디어 정상이다.





*






“곧 정상이다, 정상!”


하지만 그런 카이델의 말이 무색하게도 정상은 멀기만 했다.


“······.”

“정말입니까?”

“이번엔 진짭니까?”


몇 번이나 계속된 거짓 외침에 여기저기서 불신이 튀어나왔다.


정상을 확인할 수 있는 건 멀찍이 떨어진 앞에서 척척 걸어가고 있는 카이델뿐이다.


그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그도 모른다. 산의 정상처럼 보이는 부근에 도착하면 그 앞에 끊임없는 길이 나타나곤 했다.


그런 길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가 나침반의 방향을 바라보며 한발을 툭 내디뎠을 때,


“···!”


갑자기 주위의 바람이 잠잠해졌다.

시야를 어지럽히도록 내리던 눈발도 날리지 않았다.


“정상이다.”


그리고 시야에 맑은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짓말하지 마십쇼.”

“정상이 아니면 한 대 쳐도 됩니까?”

“윌, 너는 툭하면 백작님을 때리고 싶어 하더라?”

“그런 때가 아니면 언제 때려보냐.”


산을 오르는 기사들은 앞을 보는 게 아니라 땅을 주시하고 있었다. 푹푹 꺼지는 눈이 위험하기도 했으며, 앞에 무언가 나타났다면 카이델이 신호를 보냈을 테니까.


“그 대신 정상이 맞으면 네가 한 대 맞을 거냐?”

“···!”


그제야 그들의 고개가 위를 향했다.


“정상이다···.”

“정말 정상까지 올라오게 만들다니. 지독한 놈들.”


바로 몇 걸음 아래와는 다르게 정상은 고요했다. 눈발도 날리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 고요한 하늘 아래에 무언가가 우뚝 솟아있다.


“저건가?”

“진짜 수정이 있긴 했군···.”


먼 곳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그것은 거대한 수정. 산 정상에 우뚝 솟은 보랏빛의 투명한 수정이었다. 사람의 세 배는 되는 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카이델은 우선 나침반을 이리저리로 움직여보았다.

나침반이 어디에 놓이든, 그 바늘의 끝은 수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맞네.”

“휴···드디어···.”


그리고 그들이 수정 쪽으로 걸어갔을 때였다.


후두둑-


수정 앞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하얀 물체가 몸을 일으키며 그 위에 쌓였던 눈덩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온몸이 하얀 눈으로 뭉친 생명체.


“쳇, 예티가 아니군.”

“골렘인가?”

“최소한 털이 있는 놈이 나오라고. 털가죽이 필요해···.”


그들은 투덜댔다.


“마침 잘 됐군.”


하지만 카이델만큼은 반응이 달랐다. 그는 몸에 둘렀던 털가죽을 눈바닥에 깐 뒤에 그 위로 나머지 가죽들을 툭툭 던졌다.


“지금까지 너희가 얼마나 한심하게 굴었는지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

“···으···.”

“갑자기?”


긴장감이 빠진 기사들의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카이델은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알로이스의 몬스터는 강하다. 하지만 아직 그 깊은 곳에 들어오지 않은 덕에 오크 이외엔 강한 놈을 보지도 못했다.


이 골렘도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더 강한 놈들이 나오기 전에 기사들의 정신을 다잡아야 했고,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도 아까웠다.

출발은 아침에 했음에도 이미 해는 저편으로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더 시간을 끌 순 없다.


탓-


그는 검을 뽑자마자 골렘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골렘 역시 그가 달리는 순간에 맞춰 위로 뛰어올랐다. 예상외로 높이 올라간 골렘의 몸이 빠르게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


물론 녀석이 노리는 건 카이델.

그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가 점점 크고 짙은 색을 띠기 시작했고, 카이델은 가만히 그걸 바라만 보았다.


쿵!


결국 그 자리엔 맞으면 뼈도 못 추렸을 만한 강한 충격이 떨어졌다.


“그런 걸 피하는 건 일도 아니지.”


하지만 골렘이 제대로 깔아뭉개기 전에 카이델은 자리를 피한 뒤였다. 그는 천천히 골렘을 살폈다. 그 겉은 눈이 뭉친 형태였으나 안은 단단한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반짝 빛나는 건 마찬가지여도 그건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단단해도 결국 얼음덩어리.


그런 걸 부수는 건 간단하다.


부웅-


그를 인식한 골렘은 곧바로 팔을 휘둘렀고, 카이델은 역시 검을 내질렀다.


팅-!


카이델이 노린 건 그 주먹의 가장 약한 부분. 계속 눈으로 주시한 그 지점에 정확히 검이 꽂히자 곧바로 쩌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번 크게 금이 가니, 그 옆으로 수많은 자잘한 금들이 빠르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것들은 골렘의 팔을 타고 주르르 올라갔고,


챙-!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뒤는 간단했다.

카이델은 바로 골렘의 핵을 검으로 꿰뚫었다.


콰직!


“오···.”

“오오···과연, 백작님.”

“빠르시군.”


기사들은 태평하게 그걸 구경했다.


쓰러지는 골렘을 내버려 두고 그가 기사들에게 한마디 하려고 뒤를 돌아봤을 때,


“······.”


카이델의 앞에 펼쳐진 건, 그가 놓은 털을 깔고 앉아 그 위에 놓았던 털을 사이좋게 두른 기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들 사이엔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레이나마저 끼어 있었다.


“······너희, 뭐하냐?”

“아니, 이렇게 따뜻한 걸 혼자 쓰셨습니까?”

“너무 따뜻합니다.”


말없이 바라보는 카이델의 눈치를 보며 기사들은 아쉬운 듯 털가죽 밖으로 나오려 몸을 움직였다.


“됐다. 그러고 있어라.”


어차피 일은 끝났다.

그가 다시 앞으로 돌았을 때까지도 기사들은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추위에 포근하고 따뜻한 털은 벗어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그렇게 기사들을 놔두고 척척 앞으로 걸어간 카이델은 수정 기둥 앞에 섰다.


“이게···자작이 말한 수정이군.”


산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수정.

무엇을 위해 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엔 유리처럼 약해 보여도 분명 저 골렘의 얼음덩어리보다 강할 것이다.

이 산 정상에 아직도 버티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여기에 이걸 뿌리라고?’


카이델은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안에는 뼛가루 같은 하얀 가루들이 들어 있었다.


“흠···.”


그는 잠시 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걸 어떻게 뿌리는지를 듣질 못했다. 이렇게 큰 수정인 줄 알았다면 더 자세히 들었을 텐데.


결국 그는 끝을 잡아 주머니째로 뒤집어 대충 수정을 빙 돌며 가루를 털어내었다.


“이러면 되겠지.”


어쨌든 뿌리긴 했다.

만약 다른 방법이었다면 자세히 말하지 않은 세페르 자작의 잘못이었고, 그에겐 그걸 따져 물을 권력도 자격도 있었다.


카이델은 마지막으로 수정을 손으로 툭툭 쳐보았다.


퉁-


예상대로 무겁고 단단한 울림이 이어졌다. 순간 검으로 베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그가 가진 모든 자제심을 동원하여 눌렀다.


여기서 이걸 베어냈다간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른다. 그는 그걸 시험해볼 정도로 무모한 성격은 아니었다.


카이델은 등을 돌렸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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