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정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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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해츨링
작품등록일 :
2022.10.31 16:03
최근연재일 :
2022.11.30 22:45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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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수 :
115,979

작성
22.11.0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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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8화_왜. 내 저택도 뒤지게?

DUMMY

장대비가 내리는 밤.

키르젠 후작가는 잠들지 못하고 환한 불을 밝혔다.

사용인들은 굳은 표정이거나 안절부절 못했고, 갑주를 찬 후작가의 기사와 병사들은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그때, 본저의 문이 급하게 열렸다.

“아직도 찾지 못했다?”

루티엔이 일견 평이한 어조로 되물었다. 보고를 올렸던 기사단장이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군다.

“죄송합니다.”

찰박—

대꾸도 하지 않고 루티엔은 현관의 계단을 밟았다. 그들을 따라 나온 집사가 기겁하여 서둘러 우산을 펼쳤다.

기사단장이 우산을 받아 루티엔에게 씌우며 말을 이었다.

“크리스틴 아가씨께서 마지막으로 계셨던 가게를 다시 한 번 조사해보겠습니다.”

“벌써 하훼이아 공작가가 뒤집어 엎었는 곳을 또 뒤진다고 뭐가 나오나?”

“······.”

몇 시간 전, 미하엘과 연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맞추러 간 크리스틴이 사라졌다.

미하엘은 그녀의 실종 직후 키르젠 후작가로 사람을 보냈다.


“혹시······ 크리스틴 아가씨께서 돌아오셨습니까?”


그제서야 루티엔도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여느 때처럼 둘이 다퉜을 거라고 여겼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크리스틴은 미하엘이 결혼하고 나서 더욱 그에게 집착했다.

‘도대체 그런 놈 어디가 좋다고!’

언짢았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틴이 미하엘을 두고 자리를 떴다는 이야기에 루티엔의 안색은 변했다.

크리스틴은 미하엘에게 붙어 있지 못해 안달인 아이였기 때문이다.

미하엘의 행보 역시 평소와 달랐다.

대규모 신성 마법진을 펼친 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키르젠 후작가로 찾아왔다.


“숨겨주는 거라면 관두십시오.”

“무슨 헛소리야?”


비에 젖은 꼴은 둘째치고, 궤변을 늘어 놓는 것이나······.

‘눈이 완전히 맛이 갔었지.’


“내게서 그애를 빼돌린 건 아니어야 합니다, 후작.”


새빨간 눈이 기묘하게 번들거렸다.

어린 시절부터 따지면 거의 평생을 본 미하엘인데 껍데기만 같은 다른 사람처럼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미하엘의 이상 행동이 아니었다.

“크리스틴이 친하게 지내던 영애들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던가?”

“예. 수소문 중이지만 아가씨를 봤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루티엔이 우뚝 멈췄다. 뿌득 이를 간 그가 결국 노성을 쏟아냈다.

“그 새끼는 애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도망을 가게 만들어!”

몇 시간 전부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하엘의 얼굴을 본 시점부터 부글부글 끓던 게 터진 것이다.

“데리고 나갔으면 잘 데리고 들어와야 할 거 아냐!”

주변을 살핀 기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그를 말렸다.

“하훼이아 공작가 기사들도 있습니다, 주군.”

루티엔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넘겼다.

“그게 뭐!”

사나운 금안이 갑주에 하훼이아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이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며 짓씹듯 말했다.

“무능한 것들이 남의 동생을 잃어버리고 찾지도 못했으면서 무슨 할 말이 있다고?”

하훼이아 공작가의 기사들은 분한 기색이었지만 일언반구도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때 거친 말발굽 소리가 후작가 정문을 넘어 들어왔다. 선두에 선 미하엘이 루티엔 앞에서 고삐를 당겨 멈췄다.

말 울음 소리가 길게 울리고 미하엘이 말에서 내렸다.

“정말 여기에 없습니까?”

차가운 빗물에 창백해진 얼굴에 눈빛만 형형했다.

루티엔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금세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미하엘을 죽일 듯 노려봤다.

“왜. 내 저택도 뒤지게?”

“허락하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하······!”

미하엘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제도 내는 전부 수색했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후작가에 크리스틴은 없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수색 범위를 제도 밖으로 넓히고 인신매매 집단도 철저히 조사해야겠지.

루티엔은 기사 단장에게 짧게 손짓했다.

오랫동안 후작을 모신 기사 단장은 그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급히 다른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해 봐, 어디.”

루티엔이 기사가 들고 있던 우산 밖으로 성큼 나왔다.

붉은 머리카락을 타고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림자 아래의 금안에서는 불티가 튀었다.

“잘 됐군. 안 그래도 네 놈을 죽여버리고 싶었거든.”

미하엘에게 고개를 숙인 루티엔이 조용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거 아나? 크리스틴이 아니었으면 아주 예전에 넌 이미 내 손에 명을 다했을 거다.”

이 자식은 아니라고, 몇 번을 말렸던가!

미하엘은 정혼자인 크리스틴을 버리고 물의 정령과 결혼했다. 가문을 이끄는 수장으로서는 그 선택을 이해한다.

‘정령을 부릴 수 있는 방법은 계약 아니면 사랑 뿐이니.’

산달폰의 신성력을 이어받은 하훼이아, 그리고 하훼이아와 긴밀한 키르젠, 황실의 소수만 아는 사실이었다.

‘이왕이면 정령의 사랑을 받는 게 좋긴 해.’

계약으로 빌린 힘은 지독한 가뭄을 물리치기에 역부족이다.

그러나 정령은 연인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한다.

당시 하훼이아 공작령의 가뭄은 극심했고, 미하엘에게 청혼한 물의 정령, 엘라임은 다시 없을 기회였다.

‘설마 공작령의 가뭄을 완전히 해결할 줄은 몰랐지만.’

약간의 해갈, 그 정도를 기대했지만 엘라임의 힘은 더 대단했다.

결과적으로 가문의 이득을 따져야 하는 공작으로서 미하엘의 선택은 옳았다.

파혼 후 크리스틴에게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루티엔은 미하엘이 마뜩찮았다. 크리스틴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초조해 했다. 네 놈이 곁에 있건 없건 말이지.”

“······.”

미하엘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마주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젠 도망을 갔네?”

얼마나 지독하게 굴었으면!

미하엘의 어깨를 으스러뜨릴 기세로 꽉 움켜잡은 루티엔이 돌연 손을 털고 물러선다.

“저택을 뒤지든 말든 뜻대로 해. 하지만 내가 허락한 건 아니지.”

루티엔은 미하엘을 지나치며 무겁게 경고했다.

“흙발로 내 영역에 들어와 무례를 범한 대가는 치러야 할 거야.”

빠르게 멀어지는 루티엔을 가만히 지켜보던 미하엘이 몸을 돌렸다. 그의 발이 망설이지 않고 키르젠 후작가로 향했다.

하훼이아 공작가 기사들이 재빨리 그에게 따라 붙었다.

“샅샅이 찾아라.”

“예.”

“알겠습니다.”

명을 받은 이들이 미하엘을 앞질러 나갔다.

키르젠 후작가는 가주의 허락도 없이 들이닥친 타 가문의 기사들 때문에 혼비백산 했다.


***


아몬은 이지러지는 물결을 올려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령들은 위험한 순간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정말이었군.’

물론 ‘정령의 입장에서’ 안전한 장소를 의미한다.

허나 이렇게 멀리 올 줄은 몰랐다.

‘바다라······.’

제도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까지도 말을 타고 한 달이다.

‘그 미친놈은 확실히 따돌렸겠어.’

아몬은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여자를 기특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몸에는 힘이 없었다.

‘지칠만도 하지.’

엘라임이 일으킨 거대한 정령의 힘은 그들을 바닷가가 아닌 대양 한 가운데로 옮겨놨다.

인간에게 많은 것을 베풀지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장소.

‘하지만 너에겐 이보다 마음이 놓이는 곳은 없었을 거야.’

물의 정령에게 바다는 견고한 성이자 모든 것이 자신을 지키는 무기가 되어줄 보고였다.

새카만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는 중, 아래에서 수 십 쌍의 눈이 번쩍였다.

“······!”

깊은 바다, 인간들은 결코 닿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사는 존재들이다.

아몬은 긴장한 기색으로 엘라임을 더욱 단단히 끌어 안았다.

완전한 물의 정령도,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엘라임에게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 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그것들은 조금씩 아몬과 엘라임에게 다가왔다. 베일처럼 불투명한 햇빛이 펼쳐진 영역까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불현듯 밤이 찾아온 양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들어 태양을 가린 존재를 확인한 아몬이 입술을 굳혔다.

언뜻 익히 아는 바다 생물을 닮았으나 전혀 다르다.

‘머리가 세 개인 고래는 듣도보도 못했어!’

심지어 뿔까지! 절대 일반적인 고래의 크기라고 할 수 없다.

어느새 아몬과 엘라임은 괴생물의 여섯 개의 눈 앞에 섰다. 그는 만일을 대비해 천천히 힘을 끌어 올렸다.

녹안에 검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막이 씌인 것처럼 흐릿한 회색빛 눈동자가 그들을 관찰하듯 살폈다. 다른 괴생물들도 그들을 에워쌌다.

고래를 닮은 삼두 괴생물이 엘라임 쪽으로 고개를 스윽 들이 밀었다.

바짝 긴장한 아몬이 보호하듯 그녀를 더욱 자신에게 밀착했다.

그 모습을 본 괴생물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뭔가를 알아챈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피식—

‘뭐야······.’

비웃었다, 분명히.

시선이 아몬을 한 번, 엘라임을 한 번 콕콕 건드렸다. 이어서 고개를 쳐들고 주변을 휘 둘러보더니 다시 픽 웃는다.

마치, ‘네가 얘를, 여기서 지켜준다고?’ 이러는 것처럼.

뽀글뽀글 올라가는 방울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머리가 세 개라서 아주 물보라가 친다.

일자로 굳었던 아몬의 입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하지만 목에 선 핏대는 그의 기분이 결코 유쾌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이 고래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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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_외박할지도 모르겠네 22.11.24 14 0 9쪽
20 20화_우리 가문에 그런 미친놈은 못 들여 22.11.23 9 0 10쪽
19 19화_평생 날 고문한다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22.11.22 1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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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_넌 내 몸도 좋아하잖아 22.11.11 52 1 10쪽
9 9화_미하엘, 싫어! 이러지 마! +2 22.11.10 48 2 10쪽
» 8화_왜. 내 저택도 뒤지게? 22.11.09 43 2 10쪽
7 7화_아몬, 내게서 떨어지지 마 22.11.08 37 3 10쪽
6 6화_정말 못 알아봤을까? 22.11.07 39 2 10쪽
5 5화_감히 남의 여자한테 손을 대? +1 22.11.05 43 2 10쪽
4 4화_난 너랑 한 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 +1 22.11.04 4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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