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정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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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해츨링
작품등록일 :
2022.10.31 16:03
최근연재일 :
2022.11.30 22:45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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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79

작성
22.11.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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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_진짜 하훼이아 공작 부인이 누구지?

DUMMY

무대 위 사회자가 싱글싱글 웃으며 다음 경매품의 소개 멘트를 꺼냈다.

“자, 다음은 아주 희귀한 상품입니다! 최근 북쪽에서 섬이 발견된 거 다들 아시지요?”

장내가 조금 술렁이나 싶더니 곧 조명 아래로 한 남자가 등장하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검게 보일 정도로 짙은 적발, 거기에······.

“자안이군요.”

보라색 눈동자였기 때문이다.

“설마······ 북쪽 섬에 산다는 종족이 정말 악마의 핏줄일까요?”

꺼림칙해 하면서도 사람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손은 빠르게 팻말을 들었다.

“5만 골드!”

“여기, 8만 골드!”

빠르게 올라가는 낙찰가에 무대 위 남자가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장내를 두리번거렸다.

“30만 골드!”

“30만, 30만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자안을 가진 종족의 남자는 최고가를 찍고 내려왔다. 끌려가는 그는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러다 번뜩 정신을 차리더니 자신을 붙잡은 이들을 뿌리쳤다. 도망가려한 것이다.

하지만 재갈을 물고 손발에는 쇠사슬이 있는 그가 무장한 자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남자는 단 몇 분만에 제압 당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조차 여흥인지 즐겁게 웃었다.

“힘이 좋네요. 좋은 물건을 사셨어요. 부러워요, 부인.”

“뭐, 나쁘지 않군요.”

엘라임은 무심한 눈으로 소란스러운 아래를 내려다봤다.

‘질리지도 않나?’

벌써 여러 명이 노예로 팔렸다.

‘이종족에다 같은 인간들까지······.’

소유권을 가져서 뭐 어쩌려고? 엘라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열되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몬은 날 왜 이곳으로 부른 걸까?’

다시 만나리라 생각했는데 아몬은 보이지 않는다. 엘라임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나만 보고 싶었나······.’

울적해진 그녀가 한숨을 폭 쉬었다.

“다음 상품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입니다. 자, 그럼 보실까요?”

“음?”

짧은 소개조차 없으니 오히려 시선이 갔다. 엘라임이 무대를 돌아본 순간이었다.

“노예가 필요해?”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하훼이아 기사들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미하엘······ 그새 내가 경매장에 온 걸 보고 받았나 보네.’

그는 엘라임이 지저분한 장소에 가는 것을 못 견뎌 했었다. 헌데 노예 경매장이라니.

“시중들 자들은 얼마든지 있을텐데······.”

평이한 어조였지만 엘라임은 그의 심기가 상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훼이아의 기사들을 쓰지 그래? 네가 만족할 지 모르겠지만.”

아닌 척 비꼬기까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엘라임은 그에게 눈길 한 자락 주지 않고 옆에 놓인 와인잔을 들었다.

“안 돼. 마시지 마.”

커다란 손이 득달같이 붙드는 바람에 입에도 못 댔지만.

“뭐가 들었는 줄 알고?”

바로 옆 귓가에서 들린 목소리와 스치는 숨결. 엘라임이 그제야 시선을 틀었다.

미하엘의 붉은 눈동자는 처음부터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듯 곧장 마주쳤다.

무대에 집중된 조명 탓에 그의 긴 속눈썹 아래에도 그림자가 졌다. 지척에서 이렇게 보니 그의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싶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7년을 부부로, 미하엘만 바라보며 살았더니 그냥 보인다.

엘라임이 미간을 좁히자 그가 눈을 비꼈다.

“목 마르면 다른 걸 줄게.”

자신의 옆 얼굴에 머무는 시선을 알텐데 미하엘은 모른 척 손짓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부단장이 공손한 태도로 음료를 건넨 후 자리를 비웠다. 깨끗한 유리잔에 담긴 주스에서 올라온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하훼이아 공작 부인이었을 때 종종 마시던 것이다.

“······여기.”

그녀에게 잔을 내민 그의 손 끝이 조금 떨렸다. 엘라임은 의아했다.

‘왜?’

뭐든 원하는 대로 했으면서 이제와서 제 눈치를 본다. 어째서일까?

‘아니, 생각하기 싫어.’

의식적으로 사고를 끊어낸 엘라임은 빠르게 그럴듯한 이유를 떠올렸다. 그녀가 입고 있는 이 몸이 미하엘이 사랑하는 정부의 것이라는, 그런 이유.

저절로 입가가 굳었다. 그의 손에서 잔을 빼앗듯 가져왔다.

미하엘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스를 한 모금 마신 엘라임이 냉정하게 다시 미하엘에게 돌려줬다.

“왜······.”

“입에 안 맞아. 별로야.”

그녀가 다리를 꼬고 턱을 괴더니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내 몸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 크리스틴이 즐겨마시던 음료는 뭐야? 역시 와인인가?”

“······.”

눈에 띄게 굳은 미하엘의 얼굴을 감상하듯 응시하는 금안은 마냥 차가웠다.

“몰라? 그럴 리가 없는데······ 너희 항상 같이 있었잖아. 아! 밤은 빼고.”

매일 밤 넌 내 침실을 찾아왔으니.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알아?”

상냥한 목소리 밑에 미하엘을 난도질하는 칼이 숨겨져 있었다.

“미하엘, 네가 크리스틴과 저녁까지 함께 있다 내게 오면 다음 날 크리스틴이 어김없이 날 찾아왔다는 거.”

“······뭐?”

번뜩 정신을 차린 미하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아무런 보고가 없었지?”

저택에 온 손님은 모두 가주에게 보고를 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엘라임은 동그란 눈으로 갸우뚱 했다.

“무슨 소리야? 그 애는 손님이 아닌데 뭐하러?”

“그게 무슨 말······.”

피식 웃은 그녀가 정말 모르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 하훼이아 공작 부인이 누구지?”

“······.”

“공작과 공식적인 자리 참석, 가문의 대소사의 결정권, 심지어 하훼이아의 금고까지 손 댈 수 있는 여자가 엘라임이야, 크리스틴이야?”

엘라임은 하훼이아의 비를 내리고 공작의 침대를 데우는 허울뿐인 공작 부인.

반면 크리스틴은 공작 부인의 실질적 권리를 모두 가졌다.

“헌데 내가 너와 함께 보내는 밤조차 가지고 싶었나 봐.”

미하엘이 공무로 자리를 비우면 크리스틴이 찾아와 갖은 모욕을 줬다.

“해가 뜨자마자 침실로 찾아와서 그러더라. 몸을 팔아 고귀한 하훼이아 공작가의 안주인 자리를 차지한 더러운 년이라고. 그리고 또······.”

“그만.”

미하엘은 흐트러진 숨을 내뱉으며 눈가를 손으로 덮었다. 엘라임이 멀뚱히 그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겨우 이 정도로 뭘.”

정령의 비상한 기억력은 크리스틴으로부터 들은 폭언을 잊지 못했다. 그게 고통스러운 적도 있었다.

‘이젠 상관 없어.’

기이하게도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물론 불쾌하긴 했지만 그뿐.

하지만 미하엘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감히······!”

누구도 공작 부인의 침실을 처들어 온 크리스틴을 막지 않았다. 공사다망한 주인에게 알리는 일도 없었다.

경련하는 미하엘의 손을 엘라임은 감흥없이 쳐다봤다.

‘아마 가문 사람들이 너에게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은 부분이 화가 나겠지.’

하훼이아 공작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었으니까.

‘재미 없어.’

흥미가 물에 빠진 솜사탕처럼 꺼져버렸다. 엘라임이 시끄러워진 경매장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넌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

순간 엘라임의 눈동자가 검게 가라앉았다.

“말했더라면, 그럼 적어도 그딴 말은 안 듣게 해 줄······.”

“누가 날 그렇게 만들었는데?”

천천히 손을 내린 미하엘이 그녀를 바라봤다. 버석한 표정의 그녀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하나였다.

‘성가심······.’


***


엘라임이 어리석은 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현자처럼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내게 무슨 권리가 있었지? 아무 것도 없었어. 네가 내게 내 준 건 침실 하나 뿐이었잖아.”

“엘라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싸늘한 시선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찾아온 오빠를 만나지도 못하게 내게 알리지도 않고 돌려보냈으면서, 만나기 싫은 사람을 네가 막아줬을까?”

‘싫었구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고매하신 하훼이아 공작님께 한낱 정령 따위가 뭘 요구하는 게 가당키나 해?”

날 선 적대감이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미하엘은 조금 진정했다.

‘네가 내게서 완전히 돌아서면, 그러면······.’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는 정녕 몰랐다. 크리스틴이 자신 몰래 엘라임을 그렇게 핍박하는 줄은. 겨우 심술 정도라고 생각했다.

가문 사람들도 정령인 그녀가 낯설어서 그런 것이라고, 곧 적응하리라 여겼다. 어느 순간부터 저택은 고요했으니까.

설마 그것이 엘라임이 참고 침묵한 결과일줄이야······.

당시 그는 황제에게 비밀리에 특명을 받고 몇 년 간 바빴다. 가문 내의 일을 하나하나 챙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전부 변명이야.’

무지가 면죄의 이유가 되진 못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엘라임이 다시 감정이 사라진 낯으로 바뀔 때까지도. 그녀가 경매장을 돌아봤다.

“50만, 50만 나왔습니다!”

“70만!”

떠들썩한 장내를 훑은 엘라임의 눈이 커졌다. 곧 이어 어둑하던 금안에 반짝 빛이 들어왔다.

살짝 상기된 볼과 미미하게 올라간 입꼬리.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던 생기 있는 모습에 미하엘은 짙은 불안감을 느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린 순간.

“꺄아악!”

“자, 잡아! 도망가잖아!”

조금 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소란이 파도처럼 경매장을 휩쓸었다. 쇠사슬에 묶여 있던 남자가 무대 위에서 객석으로 난입한 것이다.

어디를 다친 것인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어서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쪽으로 간다, 막아!”

남자는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 특별 객석인 발코니 아래까지 온 그는 가볍게 뛰어 올랐다.

비명과 잔이 깨지는 소음 따위가 점점 가까워진다.

“엘라임!”

미하엘이 급하게 그녀를 보호하려 손을 뻗은 찰나. 엘라임이 허공으로 솟아오른 남자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얼룩덜룩한 붕대 사이의 푸른 눈동자가 섬뜩한 안광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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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_진짜 하훼이아 공작 부인이 누구지? 22.11.29 10 0 10쪽
24 24화_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22.11.28 10 0 10쪽
23 23화_난 더 이상 네 아내가 아니야 22.11.26 12 0 10쪽
22 22화_다 알면서 왜 날 거부하지 않았어? 22.11.25 11 0 10쪽
21 21화_외박할지도 모르겠네 22.11.24 14 0 9쪽
20 20화_우리 가문에 그런 미친놈은 못 들여 22.11.23 9 0 10쪽
19 19화_평생 날 고문한다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22.11.22 13 0 9쪽
18 18화_그냥 전부 죽여버릴까? 22.11.21 12 0 10쪽
17 17화_저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22.11.19 16 0 10쪽
16 16화_이제 질려, 다른 남자 만날래 22.11.18 23 5 11쪽
15 15화_난 널 즐겁게 하는 용도야 22.11.17 22 2 10쪽
14 14화_난잡한 여자가 되는 건 어때? 22.11.16 27 2 9쪽
13 13화_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지요? +1 22.11.15 22 1 10쪽
12 12화_미하엘, 나 결혼 못 해 22.11.14 20 1 10쪽
11 11화_네가 원한다면 친구도 연인도 될게 +2 22.11.12 50 1 10쪽
10 10화_넌 내 몸도 좋아하잖아 22.11.11 52 1 10쪽
9 9화_미하엘, 싫어! 이러지 마! +2 22.11.10 48 2 10쪽
8 8화_왜. 내 저택도 뒤지게? 22.11.09 42 2 10쪽
7 7화_아몬, 내게서 떨어지지 마 22.11.08 37 3 10쪽
6 6화_정말 못 알아봤을까? 22.11.07 39 2 10쪽
5 5화_감히 남의 여자한테 손을 대? +1 22.11.05 43 2 10쪽
4 4화_난 너랑 한 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 +1 22.11.04 46 2 10쪽
3 3화_이 남자가 왜 이래? +1 22.11.03 54 8 10쪽
2 2화_혼약서에 서명 못 해! +1 22.11.02 70 7 10쪽
1 1화_네 정부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2 22.11.01 147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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