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클래스로 게임 속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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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기
작품등록일 :
2022.10.31 23:35
최근연재일 :
2022.12.2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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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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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그 종착지는 정령왕의 목이었다.

DUMMY

드래곤과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동굴 벽면에 불이 차례로 붙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진우는 드래곤의 위용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다.


예상과 같이, 불의 정령이라 그런지 핏빛과 같은 비늘을 가진 레드 드래곤이었다.


“오랜만일세!”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진우와 뮤이와는 달리, 대지의 정령은 드래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에 맞추어 태산과 같이 무거워보이던 드래곤의 입이 열렸다.


[그렇군. 반갑네, 정령이여. 수십 년 만이던가?]


드래곤의 말은 마치 머릿 속에 직접 문장을 꽂아넣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건네는 말에 뮤이는 깜짝 놀라 꼬리를 세우며 진우의 뒤로 숨었다.


반면 진우는 그나마 우호적으로 보이는 드래곤의 말에 조금 안심하며 대지의 정령을 돌아보았다.


“이 드래곤이 불의 정령입니까?”


“그렇다네!”


[그럴 리가 있나.]


하나의 질문에 당사자와 당사자의 친구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


드래곤은 대지의 정령을 보며 눈을 흘긴 후 가볍게 웃었다.


‘파충류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아니, 파충류는 아닌가.’


다행히도 진우의 무례한 생각을 읽지 못한 드래곤은 진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정령왕과의 맹약에 따라, 불의 정령의 ‘업무’를 수행중인 드래곤일세.]


드래곤은 그 말을 마치며 가볍게 날개를 펼쳐보였다. 그 결과로 광풍이 몰아쳤다.


[보시게. 드래곤이지 않은가?]


“하하! 이 친구, 또 그럴싸한 거짓말을 하는구만!”


대지의 정령은 진우의 옆으로 다가와 팔꿈치로 진우의 팔을 쿡쿡 찔렀다.


“저 친우는 저렇게 지내는 게 취미인 특이한 정령이라, 이해해주시게.”


드래곤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렇게 벌써 수십 년째 못 믿고 있다네.]


진우는 어느 쪽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일단은 호칭부터 정리해야했다.


“그럼 그, 드래곤이시여? 정령이시여?”


이때까지 모든 정령에게 반말을 일삼아 온 진우였으나, 차마 이번에는 말을 놓지 못했다.


[일단은 정령의 업무를 수행중이니, 정령이라 부르시게.]


“예에, 정령이시여. 저와 계약한 정령의 그릇이 깨어져 정령왕을 만나야 합니다. 불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진우의 용건을 들은 드래곤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참, 곤란하군.]


“대체 어떤···.”


엎드려있던 드래곤은 앞발을 세워 천천히 일어났다. 때문에 드래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진우는 고개를 최대한 위로 꺾어야하만 했다.


[말했다시피, 나는 불의 정령의 일을 하는 것이지 불의 ‘정령’은 아니라네. 그래서 계약의 증표인 ‘정령의 마음’은 없지.]


“하하! 마음이 없는 정령이 어디있나!”


“아니, 당신은 가만히 좀 있어 봐.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나요?”


진우는 애가 달았다. 말을 마친 드래곤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정령의 마음을 모아 계약할 목적은 아닌 것 같고··· 요지는 그 정령을 고치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정령왕을 만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요.”


‘퀘스트가 따로 뜬 것도 아니고, 소질이 전혀 없다는 걸 보니 정령왕과 계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드래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부탁해 봄세나.]


진우는 반색하며 되물었다.


“네?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건가요?”


[귀찮은 날파리를 처리해 준다는 모양이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날파리···?”


잠깐 머릿속에서 무언가 스쳐 지나간 진우는 대지의 정령과 불의 정령을 번갈아 보았다.


“혹시, 차원 몽마?”


[그렇지. 눈치가 빠른 마물이라 드래곤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이 근처는 전혀 오지 않아서, 잡기 까다로웠던 참이야.]


이렇게까지 정령의 부탁이 한쪽으로 쏠린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이 퀘스트의 보스는 차원 몽마구나.’


잠시 허공을 보며 멍하니 있던 드래곤은, 무언가가 끝난 듯 진우를 불러 가까이 오게 했다.


그리고 손톱 끝에서 붉은 마나 덩어리를 만들어 진우에게 건넸다.


[내 마력의 일부일세. 이거면 증명이 되겠지.]


그리고 드래곤은 친절하게도 이제는 익숙한 워프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이제 가게나. 나는 이 친구와 오랜만에 한잔 해야겠어.]


저 덩치 큰 드래곤과 정령이 어떻게 한잔을 할지 궁금했지만, 진우는 정령과 드래곤에게 목례를 하고 워프게이트를 통과했다.




워프게이트 건너는 별천지와 같았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그리스식의 신전에는 지붕에서부터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내려 조그마한 폭포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푸르른 정원과 나무, 꽃이 어우러져 청량한 조화를 이끌어 내었다.


그 위로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떠다니는 반딧불은 마치 별이 떠다니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우선 먼저 해야 할 게 있었다. 진우와 뮤이는 서둘러 신전의 안으로 향했다.


신전의 안은 생각보다 검소하고, 소란스러웠다.


정원처럼 꾸며진 신전 내부에는 갖가지 정령들이 모여 사담을 나누고 있어 마치 정령왕의 신전이라기 보다는 만남의 광장에 가까웠다.


“아, 왔다!”


정령 중 일부가 진우를 알아보고 가까이 날아왔다.


“너, 정령왕을 뵙기 위해 온 인간이지?”


이미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빨랐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령왕을 뵐 수 있을까요?”


바람의 정령으로 보이는 초록빛 머리칼의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의 계약자는 가능해. 고양이는 여기 있어.”


“아니, 왜···!”


뮤이가 항변하거나 말거나 정령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저만치 먼저 날아갔다.


뮤이는 불만에 볼을 퉁퉁 부풀리면서도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진우는 뮤이에게 미안하다는 눈짓을 주고 날아간 정령을 놓칠 세라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신전 내부는 보이는 것 보다 깊었다. 대리석 기둥 사이로 얼마동안 걸어가자, 드디어 어전 같이 보이는 길이 나타났다.


깔려있는 레드 카펫의 붉은 천은 자세히 보니 작지만 이글거리고 있는 불이었다. 그 바깥쪽에 금박으로 장식이 되어 있어 고급스러움을 선사했다.


진우는 깜짝 놀라 발을 급히 떼었지만 신기하게도 뜨겁지는 않았다.


불의 레드 카펫을 따라가자, 푸른 색의 옥좌로 보이는 대리석의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정령왕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령왕에게 다가가기에는 자그마한 문제가 있었다.


‘저게 왜 떠 있어?’


길이 끊겨있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정령왕에게 다가가는 계단이 없었다. 뭐 날아다니는 정령만 가능한가?


‘인간에 대한 역차별인가?’


일단은 진우는 길의 끝까지 가서 소리칠 요량으로 양 손을 입으로 갖다댔다.


[올라오게나.]


머리 속에 직접 울리는 진언. 드래곤의 그것과 같았다.


‘아무래도 그건 진짜 드래곤 이었나 본데.’


그건 둘째 치고, 올라오라고는 하는데 어떻게 올라오라는 거야?


그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던 정령왕은 그 이유를 눈치 채고 나지막히 웃었다.


[미안하네. 인간을 본 것이 워낙 오랜만이라··· 바람의 길이 있으니 그냥 올라오면 되네.]


그러나 허공에 발을 딛기는 꽤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잠시 망설이던 진우는 이를 악물고 허공에 발을 내딛었다.


타닥.


단단한 바닥의 느낌. 진우는 보이지는 않는데 무언가가 존재하는 이 느낌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거 좀 쫄리는데···’


하지만 다른 길은 없었다. 진우는 되도록 의연함을 연기하며 바람의 길을 걸어 정령왕의 앞에 섰다.


[꽤나 강심장인 인간이군. 아니면 연기파거나.]


가까이서 본 정령왕은 수려한 미모를 지닌 미청년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연갈색의 머리칼과 그 사이로 보이는 왕관, 연녹색의 눈.


딱 봐도 정령스러웠던 이때까지의 정령들과는 달리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외모를 가졌다.


“정령왕이십니까?”


정령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네. 뒤쪽이 깨어진 나의 아이구나.]


진우는 등에 업혀있는 아르카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어둠의 정령입니다. 지금은 저와 계약하고 있습니다.”


정령왕은 빙긋 웃었다.


[알고 있네. 오랜 시간 인간계에 갇혀있으며 고생한 아이인데,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진우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르카나를 위험에 빠트린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니까.


“······죄송합니다.”


정령왕은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사과를 받을 일은 아닐세. 그 아이가 결정한 일이니.]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르카나를 고쳐주실 수 있습니까?”


[그릇의 수복 말하는 건가?]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안되네.]


정령왕의 단호한 거절에 진우는 저도 모르게 하, 하고 숨을 삼켰다.


“어째서입니까? 당신의 아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정령왕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진우에게 반문했다.


[지금은 자네와 계약한 정령이지 않는가?]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 왔지 않습니까!”


진우는 목까지 차오른 욕지기를 겨우 삼켜내었다.


정령왕은 진우의 항변에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찾아왔으면, 내가 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할 수는 있단 말이지?”


진우는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릇의 창조를 한 내가, 그릇의 수복을 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래? 그거면 됐다.”


진우는 말을 듣자마자 인벤토리에서 화신체의 검을 꺼내어 휘둘렀다.


정령의 그릇을 깨부순 검. 그 종착지는 정령왕의 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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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8. 그렇게 먹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데 +2 22.12.21 70 4 12쪽
48 47. 어어어어어머니시여!!! 22.12.20 70 4 13쪽
47 46. 숙녀의 위기를 구하는 것은 신사의 숙명 +1 22.12.19 79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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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 그 미친 놈의 영역인데. 22.12.15 9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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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1. 어둠의 발자국 22.12.12 101 4 11쪽
» 40. 그 종착지는 정령왕의 목이었다. 22.12.10 109 3 10쪽
40 39. 그 파충류를 닮은 눈과 마주쳤다. 22.12.09 104 4 12쪽
39 38. 가슴이 웅장해진다···. 22.12.08 11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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