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쓰레기 제자가 되었다(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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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류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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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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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노나라의 격변

DUMMY

내가 들은 정변의 전개 과정은 역사상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미래지식을 좀 더 써먹을 수 있을 듯 싶다.


//


기원전 505년, 노(魯)의 정공(定公) 5년 6월,

계손씨의 가주 의여(意如, = 계평자[季平子])가 급사한다.

동야(東野) 지방을 순시하고 돌아오던 중의 일이었다.


가주 지위는 아들 사(斯, = 계환자[季桓子])에게 이어졌다.


//


계평자가 급사하긴 했지만,

이 때만 해도 계손씨 세력 내에서는 그다지 갈등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주공께서 돌아가셨다! 빨리 사 도련님과 가문의 중진들께 소식을 알리도록!"


연락망은 제대로 작동했고, 가신들은 제 때 모였으며,

의견 일치 역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도련님, 가주의 자리를 한시라도 비워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적장자이신 사 도련님 외에 누가 계손씨의 번영을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숙손씨와 맹손씨와의 연대를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손씨가 삼환 중 필두의 위치를 이어나가는 것 역시 막중한 일입니다.”


“선대께서 사 도련님을 다른 명문가들과의 교류에 앞장서도록 배려하신 것도,

다 후계자 수업의 일환 아니었겠습니까? ”


"여러분들은 모두 우리 집안을 받치는 기둥과 같은 분들이오.

다들 하나같이 내가 가주의 중책을 맡아야 한다 권하시니,

내 아직 아버님을 잃은 슬픔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어찌 그 마음을 거부하겠소?"


사망한 계평자의 가신들은 일심동체라도 된 듯,

일사천리로 죽은 주군의 젊은 적장자, 계손사를 옹립해 나갔다.


"가신 일동의 뜻을 모아, 나 계손사, 계손씨 가주의 자리를 계승하겠소.

돌아가신 아버님을 보필했듯이, 앞으로는 내게 많은 도움 주길 바라오."


"물론입니다, 가주님!"


"선대 주공께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혹자는 이를 사실상의 공개투표이자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라 깎아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승 분쟁으로 몰락하거나 쪼개지는 세력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안정적인 계승은 그 자체로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었다.


이게 이루어진 시점에서 가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들의 관심은 곧 삼환의 다른 두 가문이 보일 반응에 대한 예상과,

삼환 내에서 계손씨가 쥔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논의 등으로 옮겨갔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훈훈한 계승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이 정작 임금을 국외로 내쫓고 망명생활 끝에 객사하게 만든 전적만 없었다면.


그런 놈들이 끼리끼리 둥기둥기 어화둥둥하면서 서로 얼굴에 금칠해주는 실상을 생각하면,

제3자가 보기에는 실로 꼴불견이라 할 만 했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


삼환은 장기간 노(魯)나라의 권력을 잡고 휘둘러왔다.


때문에 예법을 업신여기며 대부(大夫)의 신분으로 허락되지 않는 짓들을 벌이고,

그렇게 자존자대하는 것을 위세를 과시하는 방편으로 생각하게 된 세월 역시 길었다.


죽은 계평자는 집안 잔치에 천자의 예식에나 쓰이는 춤을 추게 했고,

삼환 모두 천자의 제사에나 쓰이는 시를 읊으며 가문의 제사를 마친 바 있었다.


모두 공자의 날 선 비판을 받았지만, 그게 이들의 오만함을 고치지는 못했다.


이런 부분에서 여러 모로 수완을 발휘해 계평자의 총애를 받았던 양화(陽貨)는,

당연히 이번 장례 또한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충성과 능력을 증명하여,

새 주인 아래서도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려고 하였다.


"선대 주공께서는 그저 그런 평범한 대부가 아니셨는데,

꼭 대부의 예에 맞춰 장례를 치르는 게 어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양 가재(家宰, 대부 집안의 재상)께서는 부족하다 여기시나 봅니다?"


"마땅히 몇몇 부분에서 그 격을 높여 주공의 효심을 보이고,

동시에 계손씨 가문의 성세는 여전하다고 위세를 떨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 생각해 두신 방책은...?"


"여번(璵璠)! 선대 주인어른을 염할 때 이를 사용하는 게 좋겠소."


"여번이면... 제후가 달고 다니는 옥(玉)이 아닙니까?"


"천자의 춤도 잔치에서 썼고, 천자의 노래에도 제사에서 쓰는데,

제후의 옥 정도야 뭐가 문제겠소? 오히려 너무 초라하지 않을까 걱정이오."


이쯤되면 이게 후빨하는 모습으로 새 주인에게 자신의 충성심을 어필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예법이고 뭐고 X도 없고 그냥 무조건 비싸고 좋으면 장땡이라 여기는 건지,

문제삼는 놈이 나오면 칼질 좀 해주며 또 공안정국을 조성하자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세 가지 다 양화의 계산 속에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매파인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있었다.

가주가 바뀌는 취약한 시기에 강강강강으로 계속 밀어붙이기보다는,

적절한 완급 조절로 세간의 이목을 흩뜨리는 게 우선이라는 비둘기파의 존재였다.


"양 가재, 그 무슨 말씀이시오? 그럼 주공의 장례에 옥을 쓰겠다는 말이오?

이 중량회(仲梁懷), 그런 일을 위해서는 옥을 내놓을 수 없소이다!"


"이보게 중 공, 다 선대 주공과 현 주인어른, 그리고 계손씨 전체를 위한 일 아니겠나.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양 공이야말로 다시 생각해 보시오!

굳이 대부의 예법을 어겨가며 옥으로 선대 주공을 염해야겠소?

그렇잖아도 이러쿵저러쿵 세간에 말이 많은데,

주공께서 새로 가주에 오르시자마자 구설수에 오르는 게 뭐가 좋겠소?"


"세간의 말? 그래서 그 말 많은 놈들이 여태껏 뭘 했단 말이오?

반발하는 놈들이 튀어나오면 짓밟아 버리면 그만!

오히려 이런 때는 물렁하게 보이는 거야말로 가장 큰 문제란 걸 모르시겠소?"


둘의 의견은 계속 평행선을 달렸고,

중량회는 끝내 양화에게 옥을 내어주기를 거부했다.


중량회가 앞장서서 비둘기파의 기치를 내걸고 매파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니,

슬슬 이번에는 중량회의 말을 따르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중론이 모였다.


'도련님께서는 아무래도 양화보다는 중량회의 의견이 더 마음에 드신 것 같은데...?'


'계평자 어르신의 총애를 오래 받더니, 양화도 감이 많이 죽은 듯 허이.

사 도련님은 어르신이 아닌데 말이야.'


'아무래도 막 가주가 되신 몸이고, 세간의 평에 신경을 안 쓰실 수가 없지.'


'어차피 여기 노나라 안에서 계손씨의 권세가 최고라는 건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

굳이 일을 더 만들어봐야 변수만 생길 뿐이지.'


제각기 마음에 품은 계산은 조금씩 달랐지만,

매파와 비둘기파의 대결은 이렇게 일단 비둘기파의 승리로 끝났다.


//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일격을 당한 양화는 분할 수 밖에 없었다.

여태껏 대부의 예법이니 하는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던 이들이,

왜 젊은 새 주인의 앞에서는 체면치레하는데 신경쓰는 척 가식을 떤다는 말인가?


"공산 공, 내가 명색이 가재(家宰)인데, 어찌 이런 망신을 당할 수 있단 말이오?

주공께서 결정을 내리셨을 때 중량회 그놈의 표정을 보셨어야 하오..."


중량회에게 악감정이 잔뜩 쌓인 양화는 비읍(費邑)의 읍재(邑宰),

공산불요(公山弗擾)를 만난 자리에서 이를 하소연했다.


공산불요는 계손씨 가신들 중 중요하기로는 손꼽히는 위치였지만,

저 자리에는 계손사에 대한 지지의사만 표명했을 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다.


이는 그가 맡은 직책, 비읍의 읍재란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비읍은 계손씨 영지의 중심지로, 나라로 치자면 수도에 해당하는 곳.


읍재는 이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으니,

요즘으로 치자면 서울시장에 수도방위사령관이 더해졌다면 비슷할까.


따라서 양화가 공산불요 앞에서 중량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은,

단순히 다른 가신에게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 뿐 아니라,

같이 중량회를 견제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평균 수준에서는 양화와 공산불요가 손잡고 중량회를 견제,

계손사가 이걸 말리고 중재해보려다 도리어 다툼이 커지는···


그런 형태로 일이 풀리기 십상이었지만,

놀랍게도 이때까지도 유혈 이벤트의 트리거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이보게, 양 가재. 한 잔 마시고 잊어버리게. 둘 다 주공을 위해 낸 의견 아닌가?

자네 의견이 충분히 일리가 있었네마는, 계속 마음에 품고 있어봐야 뭐하겠나?

시간이 지나면 다들 잊어버릴 테니 너무 자학하지 말게."


【공산불요(은)는 상대적 정상인이었다! 공산불요의 '다독이기!'

양화은(는) 상태이상 분노(에)서 회복했다!】


SYSTEM 창이 있다면 아마 이런 메시지를 띄우지 않았을까.


"뭐, 그리 말씀하시니 별 일 아닌 문제인데 민감하게 생각했던 것도 같고..."


양화 역시 공산불요가 자신을 달래자, 정말로 진정했는지,

아니면 편들어줄 것 같지 않다 여겨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긍하고 물러났다.


//


그렇지만 별 일이었다.

얼마 뒤, 계손사는 여러 가신들을 거느리고 영지를 둘러보다 비읍에 이르렀다.


비읍은 계손씨 영지의 중심지였지만,

계손씨들은 정작 노나라 전체의 수도인 곡부(曲阜)에 더 오래 머물렀다.

노나라의 권력을 삼환이 장악하면서 각자 중요한 중앙 관직 역시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다.


"선대의 일로 심려가 크시겠지만, 가주님께서는 이겨내실 수 있을 겁니다.

저와 비읍의 사람들 모두 주공을 보필하는데 진력하겠습니다."


공산불요는 젊은 새 가주를 진심을 다해 위로하고,

성의껏 자기가 여태껏 비읍을 다스린 내역 상세를 보고하였다.

계손사 역시 이에 화답하며 훈훈하게 끝나는 듯 싶었는데... 중량회가 초를 쳤다.


"양 가재가 읍재와 만났다고 하던데, 읍재께서는 어찌 이를 고하지 않으십니까?"


"사사로이 별 거 아닌 이야기 좀 나눴을 뿐인데,

굳이 이를 시시콜콜히 언급할 필요야 있겠소?"


"양화가 장례식 준비에 있었던 일로 여기저기 불만을 표하고 다녔는데 말입니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면 공을 만난 뜻도 뻔하지 않습니까?"


"뻔한지 아닌지, 그걸 왜 중 공이 넘겨짚으시오?"


공산불요도 이미 양화와 한 패거리라 오해한 건지,

아니면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 편을 확실하게 정하라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중량회는 계속 공산불요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자, 자. 두 분 다 그만 하시오. 이 이야기는 그만 하도록 하십시다."


결국 계손사가 둘을 떼어놓고 말다툼을 멈추게 했지만,

당연히 그것으로 일이 끝날 리가 없었다.


"무례하게 군 것은 중량회 그 놈이 아닌가!

주공께서는 어찌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라 하신다는 말인가?"


여기까지도 그나마 계손사의 젊은 나이를 생각해,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기는 어려웠을 거라 이해하고 넘어간 공산불요였지만...


"중 모가 어찌하여 주공께 영지 곳곳을 안내하는데 계속 따라붙는다는 말입니까?"


"주공께서는 아직 영지의 일에 익숙하지 않으신데,

어찌 그대의 설명만 듣고 영지를 파악하시겠소? 공정하지가 않잖소."


"내가 주공께 속이고 거짓을 고하기라도 할 거란 말이오?"


"거짓을 고하지는 않더라도, 사실을 다 말씀드릴지는 과연 믿을 수 있겠소?

양화를 만난 일은 이미 감추고 말씀드리지 않았잖소."


"중량회!"


이렇게 갑질을 당하니 공산불요의 마음도 처음과 다르게 변할 수 밖에 없었다.


//


「선대 주공께 받은 은혜가 있어, 새 주공을 성심으로 섬기려 했소.


그렇지만 중량회 그 놈이 나를 모욕주고,

주공께서는 이를 제대로 제지하지 못하시니 이를 어찌 그대로 참고만 있겠소?


일전에 그대가 호소하던 바를 귀담아 듣지 않은 게 후회될 뿐이오.


- 공산불요」


"드디어 때가 되었다!"


공산불요의 서신을 받은 양화는 자신의 대저택이 떠나가라 크게 웃음지었다.


//


『三家者 以雍徹. 子曰 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삼가자 이옹철. 자왈 상유벽공 천자목목 해취어삼가지당.』


(해석)

세 집안(= 삼환)이 옹(雍)의 노래를 부르며 제사를 마쳤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사를 돕는 제후와 천자의 단아한 모습’을 읊은 노래를

어찌 대부인 저들 집안에서 부르는가?


-《논어》(論語) 팔일편(八佾篇)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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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0. 심문 +6 22.12.18 554 33 11쪽
40 39. 살아남아야 한다 +2 22.12.16 543 36 9쪽
39 38. 돌아가는 날 +5 22.12.15 557 34 13쪽
38 37. 활로를 찾아 +4 22.12.14 607 46 13쪽
37 36. 절체절명 +3 22.12.12 610 40 13쪽
36 35. 각자의 계산 +5 22.12.10 598 35 13쪽
35 34. 눈치싸움 +1 22.12.09 619 38 13쪽
34 33. 지나치게 가까워진 +7 22.12.08 628 43 14쪽
33 32.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7 22.12.07 654 41 13쪽
32 31. 범인은 바로 그 +5 22.12.06 655 39 14쪽
31 30. 재여식 해결책 +3 22.12.05 686 40 13쪽
30 29. 다가오는 굴욕 앞에서 +1 22.12.03 681 39 12쪽
29 28. 준비된 시련 +3 22.12.02 701 40 13쪽
28 27. 가자, 북으로! +3 22.12.01 724 45 14쪽
27 26. 스승의 은혜 +2 22.11.30 713 44 13쪽
26 25. 집단지성의 힘 +3 22.11.29 759 43 13쪽
25 24. 내가 돌아왔다 +2 22.11.28 759 47 11쪽
24 23. 스승님의 이름을 걸고! +8 22.11.26 761 50 14쪽
23 22.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기 +5 22.11.25 768 48 11쪽
22 21. 좌충우돌 초보출전자 +6 22.11.24 786 46 12쪽
21 20. 양화 동생 양월 +5 22.11.23 798 4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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