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고작 73년, 수많은 문명이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종족이 멸종 당했다. 150조가 넘었던 지적 생명체의 수는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말 그대로 우주를 뒤흔들었던 전쟁이 끝난 지 5년, 우주는 전례 없는 평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주에 살고 있는 70조의 지적 생명체들, 그들 각자의 삶은 여전히 전쟁과도 다름없다.
그들에게는 '전례 없는 평화' 라는 말은 우주의 역사서 따위를 편찬할 때 '쓸 내용이 별로 없다' 라는 말로 느껴질 뿐이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족과 문명들은 각자의 문화와 신념, 종교 따위로 수많은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저런 것들이 모두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단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싸움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살아가려면 이익이 필요하고, 누군가 이익을 본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니까.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 우주에 살고 있는 지적 생명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생명체가 죽었지만 아직 죽어야 할 생명체들은 많이 남아있다.
전쟁에서 책임을 지지 않은 자, 전쟁으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영웅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복수의 대상이 된 자 혹은 전쟁을 피해 도망친 자 등.
전쟁은 끝났지만 이들은 모두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생명체들로 인해 부흥한 직업이 있다.
바로 현상금 사냥꾼이다.
전쟁 전에도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직업은 있었지만 기껏해야 경찰의 하청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전쟁의 여파 중 하나인 엄청난 범죄율 상승은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직업의 폭발적 성장이란 결과를 낳았다.
국가, 기업, 길드 등과 같은 집단들에서 현상금 사냥꾼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났고, 뿐만 아니라 전쟁은 개인의 복수 따위로도 현상금을 붙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맞물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점과 일확천금의 기회가 있다는 점은 전쟁이 끝나며 직업이 사라진 수많은 용병과 군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여기 주변에 떠 있는 다른 우주선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고물 우주선 한 대가 행성의 800km 상공에 있다.
그 우주선 안에는 조종석 의자에 앉아있는 문어 형상의 생명체 하나가 있었고 인간 한 명이 그 의자 등받이에 팔을 올려 기대고 서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온 몸을 전투적으로 개조하여 키가 2m는 넘어 보이는 개조 인간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고 그 옆에는 파란색의 미끈하고 단단한 외골격 피부를 가진 크리소 종족 한 명이 서 있었다.
의자에 기대어 서있던 인간이 둘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너네 같은 초짜들은 원래 이런 일에 안 껴줘, 왠 줄 알아? 왜냐면 100% 다 죽거든. 근데 안 죽고 살아남는 방법이 딱 하나 있어. 내 말을 잘 듣고, 잘 기억하고, 그걸 그대로 하기만 하면 돼, 쉽지? 그럼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라. 죽기 싫으면."
이 말을 들은 개조 인간은 화가 났는지 얼굴을 붉히며 팔짱을 풀고 인간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 새끼가 지금 미쳤나! 좆도 없어 보이는 새끼가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어? 너야 말로 지금 당장 여기서 죽여줄까? 어?"
그 모습을 본 인간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죽는다는 건 일하다 죽는 거 뿐만이 아니야. 듣는 태도가 개 같아서 내가 빡치면 널 그냥 죽여버릴 수도 있다는 거야, 알아들어?"
둘을 지켜보던 문어가 의자에서 일어나 인간을 다독이며 말했다.
"한아, 곧 일 해야 되는데 지금 이러면 어쩌니? 일단 진정 좀 하구 설명은 내가 해줄 테니까 잠깐 앉아 있으렴."
인간은 문어의 말을 듣고 의자에 퍼질러 앉았다.
"어차피 내려가면 바로 뒤질 거 같은데 설명은 뭐 하러 해요?"
3m가 넘는 문어의 체구를 보고 위압감을 느낀 개조 인간은 문어에게 정신이 팔려 인간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문어는 인간의 말을 무시하고 뒤돌아 개조 인간과 크리소 종족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설명 해줄게요!"
그런 문어의 뒤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인간은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개조 인간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방금 좆도 없어 보인다고 했지? 난 원래 좆 없이 태어났어, 보면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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