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의 생존자는 웃는 얼굴로 살아갑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책먹는쥐
작품등록일 :
2022.11.13 18:50
최근연재일 :
2022.12.18 23:32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98
추천수 :
33
글자수 :
190,307

작성
22.11.20 21:26
조회
25
추천
1
글자
12쪽

분노

DUMMY

사람에 대한 혐오감. 분노. 증오.

내 안에 남은 감정들이다.


삐. 삐. 삐.


병원인가?


하얀색의 천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머지않아 누군가 울음을 터트리며 내 몸을 끌어안았고 그것이 내 가족들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연···, 이하연은요?!”

“너랑 같이 있던 여자애? 지금 다른 병실에···.”


몸을 일으켰다. 몸의 충격이 남은 건지 내 뜻대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 그럼에도 억지로 힘든 몸을 이끌었다. 그러자 턱! 하고 누군가 내 몸을 강하게 붙잡았다.


“형?”


고개를 들자 형이 있었다.


“있었어?”

“그려.”

“나 가야 돼. 놔.”


낮고 단호한 목소리. 구현국은 구현진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 그의 몸을 부축해주었다.


“알겠어. 가자.”

“어? 어.”


형을 의지한 적은 거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편해서 내가 먼저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형제···, 란 것이 어떤 건지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형은 이런 거구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힘든 약점이나 부탁을 할 수 있는 것이 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형에 대한 신뢰감이 조금은 올라갔다.


“저기야.”


형은 날 안내해 주었다. 링거를 맞은 팔을 이끌고 이하연이 있는 병실을 향하였다. 1인 병실에 있는 이하연.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듯,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현진아?”


날 부른 것은 이하연의 친언니인 이하은이었다. 그녀는 눈을 젖은 얼굴로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녀는 날 부축하고 있는 구현국에게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하였다.


“아, 안녕하세요. 전 이놈 형인 구현국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조금 어색한 분위기.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하연이는 괜찮나요? 생명에 지장은 없나요?”

“응. 휴식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라 했어.”“정말···, 다행이군요···.”


눈물이 나왔다. 멈추지 않는 눈물. 그런 날 위로하듯, 이하은은 날 끌어안아 주었다.


“넌 괜찮니?”

“네, 괜찮습니다.”



***



한동안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난 창문 밖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3인실이어서 옆의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생각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어머니께서는 사람이 불편하면 1인실로 옮겨줘도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젠 사람을 봐도 전혀 떨리지 않기 때문이다.


드르륵.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내게로 찾아왔다.


“현진아···, 괜찮아?”


상당히 의외의 인물이었다.


“지규혁?”


그는 밖에 나가면 상당히 소심한 성격으로 변한다. 트라우마가 그의 인생에 족쇄가 되어 모든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간호사님한테 허락받고 잠깐 밖으로 나갔다. 저번이 처음 대면한 거지만 지규혁과 둘이 있는 건 처음이었다.


“너, 조금 달라졌다.”

“내가?”


그의 말의 의미를 몰랐다.


“어, 조금 당당해졌다고 해야 될까? 사람이 달라 보여.”

“아···.”


잠시 진은희와 함께 본 이하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딴 장면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규혁아, 홍연기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을 들은 지규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건 왜?”

“궁금해서. 난 말이야···.”


마음을 진정시켰다. 여기서 감정을 터트리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화가 났던 적은 처음이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답변을 들은 지규혁은 양손의 주먹을 불끈 쥐며 높아진 언성으로 말하였다.

“나도! 그 새끼를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어! 그딴 게 담임이라고?! 그딴 게 선생?! 내 소중했던 학생 시절 돌려달라고! 내가···, 우리가 왜 그딴 놈 때문에 피해를 봐야 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학교에 억지로 끌려가서 그딴 취급을 받고···, 그딴 걸 이해해 줘야 하고···, 우리가 왜···, 감정 쓰레기통이 돼야 하는 거냐고?!”


붉어진 눈시울로 울분을 토하는 지규혁. 그의 말을 들으며 수많은 감정이 오갔다.


“역시, 너도 그놈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그걸 말이라고 해?!”

“응. 그러네.”


활짝 웃었다. 아마 이하연은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분노를 식히려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난 뒤를 돌아 허공에 말을 걸었다.

“진은희···, 여기 있어?”


내 말을 들은 지규혁이 매우 당황한 듯, 날 이리저리 살펴봤다.


“너 왜 그래? 진은희라면···, 그때 죽었잖아. 이하연까지 저렇게 되고 정신줄 놓아버린 거?! 정신 차려!”


걱정하는 그의 반응과 다르게 진은희는 병원 건물을 뚫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


“왜?”

“홍연기는 지금 어딨어?”

“그러게, 5년 형을 받았으니까···, 1년 전에 출소했겠네.”

“겨우 그거밖에···.”


지규혁은 진은희가 보이지 않는지 허공에 대화하는 구현진의 모습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넌 나한테밖에 보이지 않는구나.”

“그렇지.”


처음부터 그랬을까? 어느 순간부터 검붉은 눈빛이 심오하게 보였다.

난 세상을 오해했다. 사람이 무서워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회피하였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다. 사람에게는 선과 악. 두 가지의 개념이 존재하였다.

선한 사람은 악한 사람을 두려워하며 도망친다. 하지만 그건 정말 정답일까?

아니, 내 답은 다르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인 악을 제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난 싸우는 선이 될 것이다.


“도망치지 않을 거야.”


내 혼잣말에 진은희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와주었다. 병원에서의 하루가 끝나고, 난 형이 끌고 온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형.”

“뭐?”

“난 어떤 사람이었어?”


내 말의 당황한 구현국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건···, 갑자기? 왜? 너 정말 어디 안 좋냐?”

“아니, 그냥 궁금해서. 옛날, 엄마 아빠가 키우신 난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고.”

“지금이랑 크게 다르겠냐? 나한테 대하는 태도만 빼고는 지금 하고 똑같아.”

“형한테 대하는 태도?”

“너 툭하면 나한테 시비 걸었다. 이 형의 자비로움도 모르고 덤볐다가 죽어라 뚜드려 맞고.”


내가? 형한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다른 형제들을 보면 모두 티격태격하였다.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걸지도.


“뭔가, 미안합니다.”“그 점이 다르다는 거야! 형제가 사과하는 경우가 어딨냐?! 징그럽게.”

“응?”

“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과거에 네가 어떤 인생을 살았든 간에 지금이 중요한 거니까. 지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그걸로 충분하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아직 혼수상태인 이하연의 얼굴을 떠올렸다.

난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형한테 말하였다.


형, 이미 결정했어. 미안해. 우리 가족한테는 또 한 번 괴로움 기억이 찾아올지도 몰라.


평화로운 세계. 그 누구도 만들지 못한다면 내가 만들어버리면 되는 거다. 너무나 간단한 사실. 그런데 어째서 난 이렇게나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 데 이리 오래 걸려버린 걸까?

어째서 난 정신병에 걸려버린 걸까?


진은희가 준 식칼. 그것이 내 손 위에 있다. 아무래도 날 제외한 다른 사람은 이 칼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칼은 네 감정이야.”


어느 순간 뒷좌석에 타고 있던 진은희가 말을 하였다.


알고 있어.


대충 감이 왔다. 칼이 보여주는 환각. 이건 내 트라우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하는 행동은 옳은 행동이겠지.


내 의문에 대답하듯, 진은희는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이지.”



***



“정확히 계획이 뭐야?”


생각의 늪에 빠진 날 보며 진은희가 말을 걸었다. 난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였다.


“정해진 계획 따위는 없어. 그냥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야.”

“원하는 세상이라···.”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진은희, 그런 그녀에게 난 한 가지를 제안하였다.


“그 검붉은 하늘의 세계.”

“내면의 세계를 말하는 거구나.”

“내면?”

“응. 그건 네 정신 상태라 봐도 돼.”


내면의 세계? 그게 뭐지?


“단순하게 정신병 같은 거라 생각해. 어떤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하잖아.”

“그럼 그 정신세계에 하연과 난 어째서 같이 들어간 거야?”

“같은 아픔을 지녔으니까. 네가 봤던 괴물들은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없어. 단 너와 이하연···, 더 나아간다면 지규혁이나 임경훈에게도 피해를 끼칠 수 있겠지.

“위험한 거잖아.”


그런 일이···, 다시 한번 더 일어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괴물들, 없애고 싶어?”

“당연하지.”

“그래?”


불길한 느낌이다. 진은희의 얼굴에 소름 끼치는 미소가 지어졌다.


“방법이 있는 거야?”

“물론이지.”


그녀가 손을 뻗었다. 다섯 손가락 쫙 핀 상태로 내 안면에 가까이 오자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내가 있던 장소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 이제 익숙해진 냄새. 난 검붉은 하늘의 세계.

[내면의 세계]에 빠졌다.


***



방금까지 집에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희망 중학교다. 그곳에 난 서 있다.


“여기가···, 내 학교?”


저번에 본 그 장면 그대로다. 학교의 벽에는 인체의 근육과 장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살려줘!”

“어째서?!”

“현진아!”

“히히!”


건물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 서서히 퍼즐이 맞춰가지는 기분이다. 처음 내가 이 장소에 왔을 때의 당혹감은 이제 사라졌다.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억제하기 힘든 분노다. 사람이 밉다. 우릴 도와주지 않았던 모두가 밉다.


“도망친 거구의 괴물. 어디 있어?”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하였다. 뒷짐을 진 진은희가 콧노래를 부르며 앞장선다. 난 그녀를 조용히 따라가며 학교의 곳곳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집에 가고 싶다.”

“언제 끝나냐?”

“홍연기 오늘도 X랄 하는 거 아니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거 같다. 그때의 학교의 상황이.


“따라와.”


진은희의 낮고 진중한 목소리.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 이곳저곳에 있었다.

그들을 볼수록 진은희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고 나 또한 긴장감 덕분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걱정 마. 전에도 말했지만 너한테는 우리가 있어.”

“우리?”

“어, 너와 동일한 대상에게 동일한 분노를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시선을 내려 양손을 바라보았다. 전에도 느꼈지만 다시 온몸의 힘이 도는 것 같다. 진은희의 검붉은 눈의 색처럼 내 손 근처에도 검붉은색의 기운이 생겨났다.


“현진아, 사람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녀의 말에 머뭇거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거대한 감정이야.”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느껴졌다. 내 몸을 휘감는 강력한 에너지. 난 더 이상의 전의 내가 아니게 되어간다는 느낌 또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재앙의 생존자는 웃는 얼굴로 살아갑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재앙의 생존자는 웃는 얼굴로 살아갑니다. 22.12.18 11 0 12쪽
36 트라우마 22.12.17 10 0 11쪽
35 또 다른 재앙 22.12.16 12 0 12쪽
34 마음 아픈 아이 22.12.15 11 0 12쪽
33 불운의 아이들 +1 22.12.14 16 1 11쪽
32 나 자신과의 토론 22.12.13 11 1 12쪽
31 돌아온 일상 22.12.12 14 1 12쪽
30 홍연기 22.12.11 14 1 12쪽
29 내전 22.12.10 16 1 12쪽
28 멸망한 세상2 22.12.09 14 1 12쪽
27 멸망한 세상 22.12.08 17 1 12쪽
26 과거의 기억 22.12.07 17 1 11쪽
25 이예은 22.12.06 15 1 12쪽
24 불행한 일상 22.12.05 14 1 12쪽
23 일상 22.12.04 17 1 12쪽
22 해방 22.12.03 20 1 12쪽
21 아동학대 22.12.02 19 1 12쪽
20 고문 22.12.01 19 1 12쪽
19 돌연변이 학교 22.11.30 21 1 11쪽
18 폭주자 22.11.29 20 1 12쪽
17 두 번째 무기 22.11.28 22 1 11쪽
16 알파 22.11.27 24 1 12쪽
15 돌연변이 관리 부대 22.11.26 24 1 11쪽
14 능력자 단체 22.11.25 21 1 11쪽
13 종교(3) 22.11.24 20 1 11쪽
12 종교(2) 22.11.23 20 1 12쪽
11 종교(1) 22.11.22 27 1 12쪽
10 사람의 이기심 22.11.21 29 1 11쪽
» 분노 22.11.20 26 1 12쪽
8 과거의 기억 22.11.19 30 1 12쪽
7 붉은 하늘의 세계 22.11.18 32 1 12쪽
6 임경훈 22.11.17 31 1 13쪽
5 지규혁 22.11.16 31 1 10쪽
4 붉은 하늘의 세계 22.11.15 38 1 9쪽
3 이하연과의 만남(2) 22.11.14 43 1 9쪽
2 이하연과의 만남(1) 22.11.14 60 1 8쪽
1 내가 모르는 나의 과거. 22.11.13 113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