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라그나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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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염
작품등록일 :
2022.11.2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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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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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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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

DUMMY

첫 번째 튜토리얼의 내용은 정말 간단하다.


상하좌우가 막힌 채 앞으로만 뚫려있는 어두운 미궁. 이 미궁의 벽면에는 각각 창대의 길이가 다른 수많은 창들이 꽂혀 있다.


이 공간에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저 창들의 숲을 어떻게든 통과하는 것.


[Tip : 벽에 꽂혀 있는 창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 창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을 살펴보고, 몸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긴장을 유지하는 것만 할 줄 알면 된다. 물론 창의 틈새로 몸을 알맞게 집어넣을 수 있는 신체능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플레이어로 선택될 정도의 이들이라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튜토리얼이다. 그러나, 이전 삶의 나는 이 튜토리얼에서 상당한 곤혹을 겪었다.


운동 따위는 거들떠도 안 보던 재수생이었던 난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고, 몸에 근육도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았다. 그저 공포가 연료가 되어, 죽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부딪혔다. 덕분에 꽤 빠른 시간 안에 통과할 수 있었는데, 통과한 직후에 내 몸은 살색보다 핏빛이 더 많이 맴돌았었다.


"그 땐 그랬었지."


나는 덤덤하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창으로 우거진 밀림이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바로 앞에 다다르게 되자 나는 손을 뻗어 그 창대를 매만졌다.


창대를 이룬 나무의 까슬까슬한 표면을 느끼며 마나를 일으켰다. [화염심장]이 뿜어낸 마나가 기도를 타고 온몸에 흘렀다. 열기가 전신을 데우고 육체가 끓어올랐다.


그래. 나는 이전과 다르다.


몸을 움직이는 법 따위는 이제 너무나 잘 안다. 육체를 통제하는 것쯤은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마나를 이용해서 육체의 성능을 끌어올릴 줄도 안다.


그렇기에 고작 '통과'라는 목표에 만족할 수 없다. 그 따위 쯤은 너무 쉽게 할 수 있으니까. 꼭 튜토리얼이 아니더라도, 탑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쯤은 내게 거저나 다름없다. 따라서 나는 그 이상의 것을 쟁취하려 한다.


탑을 오르는 당시에는 얻을 수 없었던 정보들이 있다. 100층에 도달한 플레이어들. 흔히 랭커라 불리는 그들과 신들의 통제 하에 알려지지 않았던 히든 피스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들을 알고 있다. 아스가르드의 대전사라는 드높은 위치에 앉았던 만큼 그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잠시 눈을 감은 채로, 눈 쪽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눈에 위치한 미세한 기도(氣道)에 흐르는 마나를 섬세하게 통제하며 눈 안에 최대한 많은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순간 눈가에 열기가 몰리며 안구가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고통을 참아내자, 이내 시야가 한층 밝아지며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킬, '화안(火眼)'을 습득하셨습니다.]


선명해진 시야 사이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력이 갑자기 좋아지니 잠깐 어지러웠으나 눈을 몇 번 끔뻑거리자 금방 괜찮아졌다. 나는 스킬의 설명을 살폈다.


──────

[화안(火眼)]


[스킬]

[고유]

[숙련도 : 0%]

[밀집된 불 속성의 마나가 안구에 변화를 일으켰다. 시야가 넓어지며 선명해진다. 마나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


지난 삶, 쫓기던 신세일 때 잠시 힘을 합쳤던 누군가가 전수해준 기술이다. 그 때 당시에는 눈이 마나에 온전히 적응한 뒤라 습득하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수르트의 불을 어느 정도 담고 있는 [화염심장]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게 그 괴물 같은 눈이 된다 이거지······."


이 눈이 가진 가능성을 상상하자 곧장 몸서리가 쳐졌다. 지금은 고작 시력이 올라간 수준밖에 안 되지만,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더욱이 이 눈을 진화시킬수록, 화안은 그 어떤 눈보다 사기적인 눈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필요한 것도 얻어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나는 곧장 창대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날카롭게 갈린 창날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난 내가 지나가는 경로에 놓인 모든 창들의 날을 훑으며 계속 몸을 움직였다. 한 다리로 온 몸을 지탱하고, 창대에 매달려 허공에서 움직이고, 허리를 꺾어 림보를 하듯 창날을 지나는 와중에도, 내 시야는 모든 창날들을 훑으며 지나갔다.


그러던 와중, 한껏 집중하고 있던 내 시야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잡혔다. 나는 곧장 그 쪽으로 손을 뻗어서 창대 하나를 잡아냈다. 그리고 힘을 주자, 이전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움직이지 않던 창대 하나가 쑥 뽑혀서 나왔다.


['???의 무딘 창'을 획득하셨습니다.]


'됐다!'


속에서 함성이 요동쳤다. 찾아냈다. 근처만 가도 베일 것 같던 날카로운 창들 사이, 유난히 끝이 뭉툭한 단 하나의 창. 이것을 찾아내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 [화안]을 유지했다. 마나가 계속 빠져나가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었는데, 결국 얻었다. 14에 달하는 초기 마력 스탯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창을 얻자마자 [화안]을 끄고 빠르게 창날 사이를 통과했다. 이젠 거리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치 타잔처럼 창들의 숲을 누볐다. 한 손에 창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속도는 늦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마나가 동나기 시작할 시점, 나는 미궁의 끝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첫 번째 튜토리얼을 통과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력이 2, 힘이 1,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20 튜토리얼 포인트(TP)를 획득했습니다.]

[두 번째 튜토리얼 장소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레벨이 오르고, 마나와 체력이 단숨에 회복됐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어. 이동한다."


동시에, 새하얀 빛이 내 몸을 감쌌다.



*



"······뭐야?"


전이가 완료된 후, 누군가의 떫은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왠지 익숙하게 느껴져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자, 이내 낯설지 않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돌벤.'


지난 삶에서도 내 튜토리얼 도우미였던 자. 그리고 동시에 탑 행정국 소속 수습직원으로, 내가 쫓기던 당시 행정국의 시선에서 날 벗어나게 해 준 인물이었다.


"플레이어인가? 그렇다기에는 너무 늦었는데······. 야. 너 뭐야? 뭔데 지금 여기 있는 거냐?"


'싸가지는 여전하네.'


오랜만에 듣는 돌벤의 날 선 말투에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 얜 원래 이런 놈이었지.


"······뭐야. 왜 웃어?"


돌벤의 인상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아무래도 자기 말이 무시당했다고 여긴 것 같다. 나는 돌벤의 물음에 대답을 해 주지는 않은 채, 형식적인 대화로 이어갔다.


"됐고, 나 플레이어 맞다. 그러는 넌 도우미 맞아?"


"도우미 맞긴 맞는데······. 진짜 플레이어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온 거냐? 튜토리얼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는데······."


"사정이 있었지."


"사정은 개뿔. 딱 봐도 존나 약해서 늦은 거네."


돌벤은 말 안 해도 안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굉장히 무례한, 보통이라면 나올 수 없는 태도였다.


본래 도우미들은 플레이어들한테 깍듯하다. 플레이어들과 친분을 형성해야 그들이 쓰는 포인트로 하여금 수수료를 받을 수 있고, 실적을 쌓아서 탑의 정직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튜토리얼 도우미가 후일 상점 브로커까지 맡게 되니, 플레이어에게 함부로 대하는 도우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있어 봐야 딱히 장래가 기대되지 않는 플레이어들한테나 그렇게 대하지.


하지만, 돌벤이라는 도우미는 그런 자들과는 다르다.


얘는······.


"야. 아무래도 넌 그 뭐냐, 그······. 폐급 같거든? 그것도 탑에서 제일가는. 그러니까, 넌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라. 일단 튜토리얼부터 설명을 해주자면, 곧 우리가 서있는 이 공간이 무너지고 숲이 나올 거다. 거기 고블린 부락이 하나 있는데, 숲에서 나오는 고블린들 피해서 목적지까지 가면 되고······."


······얘는 그냥 츤데레다.


말은 함부로 막 하면서도 남이 힘들어 하는 걸 잘 보지 못하는,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하는 녀석. 그래서 원래는 말하면 안 되는 히든피스같은 것도 혼자 줄줄 말하고 다닌다.


그런 녀석이기 때문에, 이전 삶에서 자신이 죽을지언정 나를 도왔다. 그 기억이 너무도 선명해서, 이 녀석이 아무리 싸가지가 없더라도 딱히 화가 나질 않는다.


"······그리고 너 TP 있지? 그걸로 아이템을 사야하는데, 이것들 사. 너 같은 좆밥들은 일단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 그리고 보물 고블린이라고 히든 피스가 하나 있는데, 그거 잡아서 나오는 걸로 스펙업 해. 그리고 또······."


나는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하는 돌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찌푸린 얼굴로 토씨 하나 안 빼먹고 친절히도 말해준다.


"······이 정도면 대충 다 말한 것 같네. 다 알아들었냐? 그럼 빨리 이것들이나 사. 아마 너한테 제일 도움 될 거니까."


시간이 지나, 설명을 마친 돌벤은 허공에 띄워진 상점창을 내게로 들이밀며 구매를 종용했다. 가격은 20TP로 첫 번째 튜토리얼에서 얻은 수치와 정확히 일치하며, 추천한 목록들은 하나같이 유용한 것들뿐이다. 다른 도우미가 어떨지 모르지만, 감히 평가하기에 탑 안에서 얘가 제일 유능한 도우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내 사정은 내 사정이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상점창을 그대로 꺼버렸다.


"됐어. 필요 없다."


"······뭐?"


내가 상점창을 끄자 돌벤의 얼굴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인간의 얼굴이 저렇게까지 찌그러질 수가 있나. 살짝 놀라울 정도다.


"너 설마 괜한 자존심 부리는 거냐? 그건 아니겠지? 그러다 죽는 수가 있어. 첫 번째까지는 어찌어찌 됐을지 몰라도, 여기부턴 진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아니니까 신경 끄고, 빨리 두 번째 튜토리얼이나 시작해."


"야! 죽는다니까!"


"안 죽어. 빨리 시작이나 해. 도우미 바꿔버리기 전에."


튜토리얼에선 플레이어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도우미를 교체할 수 있다. 돌벤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눈을 쌍심지를 키듯 뜨면서도 한 발자국 물러나며 말했다.


"······후회할 거다."


"안 해."


"쯧."


돌벤은 마지막으로 혀를 차며 허공에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돌벤이 사라진 자리에는 탑의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두 번째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고블린 부락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하세요.]


메시지를 읽자, 곧 내가 서 있던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방이 벽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벽면이 허물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배경이 드러났다.


눈에 보이는 건 나무, 그리고 수풀. 동시에 간간이 푸르고 광활한 하늘이 나무들 사이로 엿보이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숲의 풍경이다.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푸르른 녹음. 그래. 겉으로만 보면 틀림없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건, 절대적으로 평화와는 거리가 먼 족속들이다.


"······키릭."


슬금슬금, 내게로 다가오는 녀석이 보인다.


초록색 몸뚱어리와 땅딸막한 키, 그리고 흉측한 외모를 가진 종족, 고블린.


그들은 신체적인 약점을 악의와 교활함으로 메꾸며 생존한다. 납치와 강간은 기본이고, 함정과 약품 등등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원래는 몬스터에 한없이 가까운 종족.


그런 고블린들을 피하거나 상대하며 숲을 건너는 게 바로 두 번째 튜토리얼이다.


"키릭? 킥. 키익······."


조잡한 단검 하나를 꼬나쥔 녀석은 내 눈치를 보며 서서히 거리를 좁힌다. 나는 그런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한다.


두 번째 튜토리얼. 내가 여기서 얻어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답은 너무, 너무 간단하다.


나는 첫 번째 튜토리얼에서 얻은 [???의 무딘 창]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화륵─ 창날에 불길이 솟는다. 나는 그것을 쏘아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내 손을 떠난 창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고, 뭉툭한 창날은 그대로 고블린의 안면에 처박혔다.


쾅!


요란한 소리가 난 그곳에는, 더 이상 고블린의 형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1 TP가 주어집니다.]


고블린을 잡으면 TP가 주어진다.


그리고 난, 이곳의 모든 고블린을 잡을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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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적의 발현자 (3) 22.12.02 61 3 15쪽
3 기적의 발현자 (2) 22.12.01 6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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