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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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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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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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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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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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 만능, 무감 (2)

DUMMY

스크린 너머로나 구경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함선의 조종실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금속으로 뒤덮인 회색 지구, 그 위를 빙빙 도는 것은 숫자를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의 수많은 인공위성.


“꽉 잡으십쇼! 위성을 피해 가려면 거칠게 움직여야 하니까!”


레빈씨가 말했다.

지금부터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란 암시에 나는 안전벨트를 꽉 조였다.


“우리야. 너도 조금만 더 꽉 매자.”

“끄야!”


우리의 벨트도 조였다.

벨트가 답답한지 우리가 발버둥을 치는데 그래도 잠시 참는 게 위험해지는 것보단 나은 일 아니겠나.

어찌어찌 우리를 다독이던 중이었다.


“하강 개시!”


오퍼레이트로 보이는 아가씨의 외침과 함께 기체가 ‘쿵!’하고 흔들렸다.

이윽고 함선이 덜덜 떨리더니 앞으로 쏘아졌다.

그러니까, ‘쏘아’졌단 말이다.


“으아아아!!!”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게 이런 건가 싶은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함선은 어느새 지상에 착륙해 쿵쿵대며 중심을 잡고 있었다.


“착륙 완료! 재밍기 이상 무! 갑판 광학미채 이상 무! 엄폐 모드에 돌입합니다!”


아가씨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쓰레기장?”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온갖 고철이 널브러진 쓰레기장이다.

레빈씨가 다가와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아뇨··· 그보다 왜 여기로 오신 건가요?”


지상으로 간다길래 나는 바로 사일리카의 코앞에 배달이라도 해주는 줄 알았다.

한데 이리 외진 쓰레기장에 도달해버리니 의아함이 샘솟는 것 아니겠나.

레빈씨는 내 질문에 바로 답해줬다.


“사일리카가 있는 통제 구획은 지대공 레이저가 쫙 깔려 있거든요. 저희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던 그것보다 빨리 레이더로 포착해서 바짝 구워버리죠.”


아, 미사일도 아니고 레이저가 깔려 있었구나.

스케일이 아주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이 쓰레기장으로 온 겁니다. 통제 구획에서 가장 가깝고 사일리카의 눈을 잠시는 피할 수 있는 장소죠.”

“쓰레기장이요?”

“여기 고철에서 흘러나오는 전파가 사일리카의 신호를 흩어주거든요. 게다가 함선 자체 재밍기까지 있으니 적어도 사흘은 안전할 겁니다.”


레빈씨가 엄지를 척 치켜세우시며 웃었다.

무슨 고도의 기술로 어떻게 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를 살폈다.

우리의 눈이 핑글핑글 돌고 있었다.


“딸입니까? 그럼 딸도 막 사신이고 그래요?”


그걸 이제야 물어보십니까.


“그냥 천사 같은 거로 생각해요.”

“천사같이 생기긴 했네요.”


레빈씨가 낄낄 웃으며 우리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잘 부탁한다! 아기 천사.”

“그야아···.”


우리가 멀미에 절어있는 상태로 답했다.

음, 우리는 우주선 멀미가 있구나.

조금도 실용성 없는 지식이 늘었다.




*




지상에 착륙한 레빈씨는 무슨 거대한 회의실 같은 곳으로 날 이끌어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인 작전은 이렇습니다.”


딱, 레빈씨가 손가락을 튕기자 홀로그램이 솟아났다.

드높은 빌딩이 한가득 솟아있는, 딱 봐도 미래도시라는 게 느껴지는 도시의 조감도였다.


“여기가 바로 행성 통제 구획 스카이시티입니다. 이 호박 같은 건물 보이죠? 이게 사일리카의 본체가 있는 장소에요.”


레빈씨가 손가락으로 도시 중앙의 꼭대기가 동그란 빌딩을 가리켰다.

그 동그란 부분이 레빈씨 말마따나 호박 모양이었는데, 빌딩 몸통보다 머리가 더 커서 꼭 막대사탕처럼 보이기도 했다.


“위장 신분으로 도시에 잠입할 거예요. 그리고 안쪽에서 난동을 피우는 거죠. 저희 군대가 시선을 끄는 동안 신님은 사일리카가 있는 꼭대기 층으로 진입, 우당탕탕 사일리카를 처리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양동 작전이라는 말일 테다.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물었다.


“그런데 지대공 레이저가 깔린 도시라면서요. 딱 봐도 보안이 살벌한 동네 같은데 위장 신분 정도로 될까요? 그··· 안면 인식이나 유전자 인식 같은 기술도 있지 않나?”


왜, SF영화의 단골 소재가 아닌가.

로봇 경비병들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분석해서 신분을 알아내는 일 말이다.

괜히 걱정되어 묻자 레빈씨가 답했다.


“그게 언제 적 기술입니까? 진짜 원시··· 아니, 죄송.”


나는 찌푸린 표정을 애써 풀어냈다.

그래, 이 사람들 입장에선 내가 원시인이겠지. 놀랄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조선시대 사람이 내 앞에서 ‘신분패 없이 어찌 한양에 들어가오?’라고 묻는다면 웃음이 나올 것 같긴 하다.

레빈씨는 어떻게든 수습하시려는 건지 곧바로 말했다.


“요즘엔 그냥 몸에 박아넣은 칩으로 해결하죠.”

“칩이요?”

“예, 여기 목덜미 뒤에 보이십니까?”


레빈씨가 목덜미를 보여주셨다.

덥수룩한 머리칼을 걷어내니 과연, 그 밑에 삑삑 소리를 내며 빛나는 붉은 칩이 꽂혀있었다.


“이게 사람 유전 정보랑 신분을 다 증명해줍니다. 도시 전체에 깔린 보안망이 실시간으로 이 칩을 스캔해서 정보를 사일리카에게 보내죠.”

“···그런 걸로 보안이 돼요?”

“네, 이게 한 사람당 하나밖에 못 박는 물건에다 자기 칩이 아닌 걸 심으면 뇌가 터지거든요.”

“···그런 걸 제 목에 박으라고요?”

“안 박죠. 그냥 피부 위에 붙여두기만 할 겁니다. 이것도 원래는 불가능한 건데 저희가 우주선에서 꽤 연구를 해왔거든요.”


레빈씨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음, 저렇게까지 확신하는데 위험한 물건은 아니겠지.

일단 믿어보자.


“빌딩 꼭대기는 어떻게 들어갈 건데요?”

“일단 이것부터 입으시겠습니까?”


레빈씨가 선반 같은 걸 열더니 반짝거리는 쫄쫄이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방탄복이요. 광학미채가 내장된 물건이라 입어도 티는 안 날 거예요. 옷 안쪽으로 입으면 되고··· 정장은 너무 튀니까 밖에 입는 옷은 이걸로.”


이어 레빈씨가 내민 것은 정말 SF스러운 검은색 단벌옷이었다.

가죽인지 뭔지 모를 재질에 손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형태의 무늬 없는 옷.

우리에겐 똑같은 디자인의 아이용 옷을 건넸다.


“아기 천사도 받아라.”

“꺄아!”


우리 꼬까옷 생겼네.


“갸샤!”


감사 인사도 하고, 참 장하구나.


“기본적으로는 잠입이죠. 물론 들킨다면 싸움도 불사하긴 해야겠지만 신님한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저희가 잘 막아드리겠습니다.”


레빈씨가 악수를 청해왔다.

나는 가만 그걸 바라보다, 이내 손을 마주 잡았다.


“예, 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뭐가 됐든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




출발은 빨랐다.

곧장 도시 안으로 진입해 안전 가옥에서 한 번 더 정비하고 작전을 시작할 거라나 뭐라나.

여하튼 옷을 갈아입고 나와 쓰레기장을 따라 쭉 걸으니 바로 도시의 입구였다.

레빈씨는 말했다.


“이제부턴 걸음걸이 하나도 조심해야 해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늘 높이 솟은 금속 담벼락, 그 한가운데 높이가 8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타원형의 게이트가 있었다.

그곳을 통과한 직후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그랬다.


‘···이게 미래도시?’


상상 속의 미래도시와 기본 구성은 비슷하다.

타원형이거나 직사각형인 높은 빌딩들, 그 사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들.

하지만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건 오로지 하나였다.


‘사람들이 얼이 빠져있어.’


삑, 삑. 소리가 들려온다.

오가는 사람들은 멍하니 허공을 보며 열을 맞춰 걷고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선 이지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사일리카의 지배가 시작된 후 사람들의 정신은 모두 전뇌 세계에 갇혀버렸어요. 남은 육신은 저런 귀신 꼴이 돼서 칩의 통제에 따라 노동만 하죠.]


이어셋으로 레빈씨의 설명이 들려왔다.


[이상 행동을 보이면 바로 들킬 거예요. 저 사람들이랑 똑같이 행동하세요.]


한발 앞서 나간 레빈씨가 걸음걸이 시범이라도 보이겠다는 듯 작위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 행동을 따라 하며 도로를 걸었다.

와중 드는 생각이 있다.


‘역시···.’


사일리카는 신이라는 개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영향력이 아무리 대단하건 아주 정교하게 짜인 기계 이상으론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풍경, 사람 그리고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이 그런 추측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신앙이 없어.’


사일리카를 이루는 요소에 신앙이 없다. 신을 진정 신으로 만드는 ‘믿음’이 없단 말이다.

처음엔 이 도시의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사일리카에게 신앙을 보낸다고 생각했지만, 여기 이지조차 없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그런 쪽은 아닌 듯하다.

생각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느새 안전 가옥이었다.

도시 구석진 자리의 허름한 반지하 방이었는데, 내부는 외부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온갖 복잡한 기계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개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안마의자처럼 생긴 거대한 기계 의자에 앉아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 저 친구들이요? 전뇌 세계를 감시하는 친구들입니다. 기계에 개별코드를 심어둬서 사일리카의 지배를 피할 수 있죠.”

“전뇌 세계···.”

“보시겠습니까?”

“볼 수 있나요?”

“예, 여기 화면으로 친구들 시야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레빈씨가 가리킨 자리엔 벽 한쪽을 가득 채우는 크기의 스크린이 있었다.


“네, 마침 궁금한 게 있었거든요.”


사일리카가 신으로 표현되는 이유, 어쩌면 그 답이 저 전뇌 세계에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레빈씨는 키보드 같은 걸 조작하면서 물어왔다.


“궁금한 게 뭡니까?”

“사일리카가 신인 이유요.”

“음?”


레빈씨가 날 바라봤다.

얼굴 위론 의문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아, 너무 뜬금없는 말이긴 하겠다.

나는 뒤늦게야 그걸 떠올리고 부연설명을 더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떠올렸고, 내가 아는 신이라는 개념이 어떤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레빈씨는 표정을 구기면서 말했다.


“···그거, 이유 알 것 같네요.”

“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삐빅, 소리와 함께 스크린이 켜졌다.

드러난 풍경에 나는 헛숨을 삼켰다.


‘저게 전뇌 세계라고?’


스크린 너머의 세상은 한없이 현실과 닮아 있었다.

아니,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숲속 한가운데 공터, 바위을 깎아 만든 제단이 있었고 그 앞으로 기묘한 복장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덜덜 떨며 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영광! 영광! 영광!


처절했다.

사람들의 얼굴엔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아니, 누군가에게 위협받고 있는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까지 하얗게 질린 얼굴이 설명되지 않았다.


“···저게 뭔가요?”

“도시에서 본 사람들이요.”

“네?”

“말했잖습니까. 여기 사람들 정신은 전뇌 세계에 갇혀 있다고.”


레빈씨의 표정이 구겨졌다.


“신님 말을 들어보니 그렇네요. 여길 발견한 지가 벌써 네 달째입니다. 그동안 저희는 왜 사일리카가 잡아놓은 사람들에게 저런 일을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봤다.

이윽고 레빈씨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답이었다.


“믿음을 강요하고 있네요. 그 신앙이라는 거, 저 사람들한테 착취 중인 겁니다.”


레빈씨가 손으로 가장 앞 열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유독 목소리가 작았던 남자다.

그 순간이었다.


-끄어어어···!


남자가 제 목을 움켜쥐면서 괴로워하다, 이내 눈깔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죽은 것 같다.

직후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영광! 영광! 영광!


“공포를 무기로 말이에요.”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른다.

시선이 나도 모르게 레빈씨에게로 향했다.

그런 탓에 보인 것이 있었다.


“···진짜 나쁜 새끼네요.”


‘슬퍼해?’


레빈씨는 슬퍼하고 있었다.

사일리카를 나쁜 놈이라고 말하면서, 그 사실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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